2021/05/24

노장(老莊)을 말한다 > 동양고전(1980) | 바보새함석헌

노장(老莊)을 말한다 > 동양고전(1980) | 바보새함석헌

고전연구 | 노장(老莊)을 말한다
작성자 바보새 14-02-07 14:48 조회2,3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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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老莊)을 말한다
 

死而不亡者
노자·장자의 인생관에 대한 것을 써보라는 요구를 들었을 때 이미 두려운 생각이 들었는데, 내 마음이 약해 분명히 거절을 못했고, 그 때문에 한 달을 두고 생각을 하면서도 글이 되지 않았고, 그랬으면 그때라도 용기를 내어 분명한 말을 했어야 할 것인데, 연기할 터이니 이제라도 쓰라는 간청에 다시 약해져서 이 시간까지 왔는데, 글은 되지 않고 생각나는 것은 『사기(史記)』가 전해 주는 젊은 공자의 말뿐이니, 가슴이 무겁기만 하다.
이랬다는 것이다.
공자가 주(周)나라로 노자를 찾아가서 예(禮)를 물었더니, 노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말하는 그것은 말한 그 사람들과 그 뼈다귀가 이미 다 썩어졌고, 이제 그 말이 남아 있을 뿐이다. 또 군자란 것이 제 때를 만나면 수레 타고 다니지만, 때 얻지 못하면 허줄한 꼴로 다니는 법이다. 나는 들으니 잘하는 장사치는 잘 간수한다는 것이 도리어 슬쩍 묻어 둔다고 하더라. 군자도 높은 속ᄋᆞᆯ이 있으면 그 모양이 도리어 어리석어 보인다. 그대의 교만한 기운과 욕심 많은 것과, 꾸민 꼴, 지나친 생각, 그것이 다 그대에게 좋지 못한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다.” 했다
공자는 돌아가서 제자들을 보고 말하기를 “새는 날 줄 아는 놈인 것을 내 알고, 물고기는 헤엄칠 줄 아는 놈인 것을 내 알고, 짐승은 달음질할 줄 아는 놈인 것을 내 안다. 달음질하는 놈은 그물이면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놈은 낚시면 잡을 수 있고, 나는 놈은 활로 쏠 수 있는 줄을 알지만, 용이란 놈은 바람·구름을 타고 하늘 위에 나니 내 그 어떻게 할지를 알 수 없다. 내 오늘 노자를 보니 그는 용 같다고나 할까”했다.
공자도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것을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일까? 그러나 그러면서도 지금 이렇게 붓을 드는 것은 내가 노자·장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천지의 정(正)을 타고 6기(六氣)의 변화를 부려 무궁(無窮)에 노니는’ 그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철학적으로 음미를 해, 인생관이니 사상이니 하고 큰소리를 하라면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지만, 내 좋아하는 스승 혹은 친구에 대해 두더지가 백두산 천지 가에 갔다 왔듯이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도 못하겠다면, 그것은 우선 그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는 노자·장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숲에 깃들인 뱁새’ 같이 ‘시냇가에서 물 마시는 두더지’ 같이 날마다 그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혹 그들이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냐, 정말 생존했던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토론하기도 하고, 그들의 이름으로 전해오는 글은 사실 그들이 쓴 것이 아니라 후대의 사람이 지은 것이라 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런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앉을 한 가지를 찾고 마른내 목을 축이면 그만이다.
그러면 혹 그래도 역사적으로 사실을 밝혀야 그것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 할지 모르지만, 2천 년 이상을 이만큼 시간 공간을 뚫고 내려왔으면 그것이 곧 역사적 존재지 그 이상 무엇을 더 밝힐 것이 있을까. 어디에 누구의 아들 딸로 났던 것이 분명하면서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으며 무슨 일을 했던지 전혀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격은 결코 한 육체 속에만 갇혀 있으면서 한 때만 사는 것이 아니다. 무한히 자란다. 소위 죽었다는 후에도 계속 살고 자라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예수, 석가, 노자, 장자는 영 알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노자요, 장자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는,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 오래 삶
 
이라 했다.
나는 일제시대에『구약』의「이사야」,「예레미야」를 많이 읽었다. 그 압박 밑에서 낙심이 나려 하다가도 그들의 굳센 믿음과 위대한 사상에 접하면 모든 시름을 잊고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말을 해주는 산 영(靈)이었지 결코 죽은 글이 아니었다. 내가 그들을 다 알지 못해도 좋다.
마찬가지로 이 몇 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올 수 있는 것은 날마다 노자· 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于道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불쟁 처중인지소악 고기우도)
썩 잘함은 물과 같다. 물은 모든 것을 좋게 해주면서도 다투지 않고 누구나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있으려 한다. 그러므로 거의 도에 가깝다.
 
하는 노자의 말을 듣지 못했던들 씨ᄋᆞᆯ을 잊어버리고 낙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침 저녁으로 장자를 따라 무용(無用)의 대수(大樹)를 아무도 없는 동리나 넓은 광야(無何有之鄉 廣莫之野)에 심어놓고 그 옆을 한가로이 서성이며, 또 누워 잘 줄 몰랐던들(『장자』,「소요유 편」), 이 약육강식과 물량 퇴폐의 독한 공기 속에서 벌써 질식이 되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현실 초월
노자·장자는 한마디로 이 현상계를 초월해 살자는 것이다. 초월한다는 말은 결코 내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이 현상계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양으로 꿈도 아니요, 허망한 것도 아니요, 내버려야 하는 악한 것도 아니다. 노자·장자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살지도 않았다. 이 현상의 세계는, 그 안에 태어난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피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그런 것, 자연적인 것이다. 자연이므로 필연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 그 태도가 문제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생각을 하면 생각하는 나 자체와 마주 서는 세계를 알게 되고, 알면 좋다 언짢다 하는 감정이 붙게 되고, 좋다 언짢다가 생기면 그 좋은 것을 취하고 언짢은 것을 버리자는 의지가 발동하게 된다. 이른바 지(知), 정(情), 의(意)다.
그럴 때 이 생각하는 나와 나를 둘러싸는 세계 또는 그 안에 있는 나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이 세계는 문제를 가진 세계라, 인간은 그 자체가 문제라 하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그래서 장자도
吾生也有涯 而知也 無涯 以有涯隨無涯 殆已
(오생야유애 이지야 무애 이유애수무애 태이)
“나의 삶은 한이 있으나 나의 앎은 한이 없다. 한이 있는 것을 가지고 한없는 것을 쫓으려 하니 어렵지 않은가”
했다. 여기 지(知)라 한 것은 지각, 지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의식적으로 하는 모든 욕망의 뜻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생명은 한이 있는데 우리 욕망은 한이 없다. 그러니 문제 아니냐 하는 뜻이다. 이 말은「양생편(養生篇)」 첫머리에 나오는데, 여기서 보면 알 수 있는 것같이 노자·장자는 삶을 아주 귀중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그 생을 받아서 났으면 잘 쳐서, 제 타가지고 나온 목숨, 곧 천년(天年)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내걸어 놓은 문제에 대한 장자의 대답은 무엇이라 했느냐 하면 이렇다.
 
緣督以爲經 可以保身 可以全生 可以養親 可以盡年
(연독이위경 가이보신 가이전생 가이양친 가이진년)
“독(督)을 따라 올로 삼으면 몸을 보존할 수가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으며. 어버이를 칠 수 있고, 해를 다할 수 있다.”
 
독(督)은 등골이란 뜻이다. 기경팔맥(奇經八眼) 중 중맥(中脈)을 독맥(督脈)이라 하고, 옷의 잔등으로 가는 등골의 혼〔縫〕것을 독(督)이라 한다. 그러므로 독(督)은 중(中)의 뜻으로 해석한다. 즉,『중용』에서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喜怒哀樂之未發)을 중이라(謂之中)” 할 때의 그중이다. 그러고 보면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란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 그 감정 이전에 올라가서 아직도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은 중정(中正)의 근본 지경을 올로 삼아 살아가도록 하라는 말이다.
중(中)은 다른 말로 하면 영원 무한의 구경 원리다. 노자는 그것을 상(常)이라고 했다.『도덕경』제1장에 있는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길 길삼을 수 있으면 늘 길 아니고, 이름 이름할 수 있으면 늘 이름 아니다
 
할 때의 상도(常道) 상명(常名)이 곧 그것이다. 도란 우주의 궁극의 자리,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원리 혹은 실제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성질상 공간 이전, 시간 이전, 인식 이전의 절대적인 자리가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상(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상(常)의 지경은 우리 감각으로는 파악 못하는 절대의 지경이요, 우리가 아는 것은 상대적인 현상계뿐이다. 이 상대의 세계도 그 절대의 세계에서 나왔을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無名天也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천야지시 유명만물지모)
이름 없음이 하늘 땅의 비롯, 이름 있음이 모든 것의 어미
 
그러나 그것을 말로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傲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오)
그러므로 늘 하고자 함 없어 그 묘를 보고 , 늘 하고자 함 있어 그로써 그 끄트머리를 본다
 
묘(妙)는 직관으로 느껴 알 수 있으나 말로 설명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상대가 서로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량자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이 둘은 한가지로 나와서 이름이 다르니 한가지로 일러 까맣다. 깜한 것의 또 깜한 것이 뭇 묘한 것의 문이다
 
라고 한다. 상대에서 절대를 보아 절대에서 상대가 나왔음을 안다. 그렇게 함이 현실을 초월함이다. 절대도 영원 무한, 상대도 영원 무한, 상대에 살면서 절대에 하나 되기 때문에 ‘현지우현(玄之又玄)’이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 속에서 그대로 절대와 하나 되기 때문에 ‘중묘지문(衆妙之門)’이다. 노자·장자의 삶은 도에서 시작되고 도에서 끝난다. 끝이 시작이요, 시작이 끝이다.
 
그러므로 노자·장자의 도는 공자·맹자가 말하는 도와는 다르다. 공자가『대학』에서 말하는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대학의 길은 밝은 속알 밝힘에 있으며, 씨알 사랑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중용』에서 말하는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말씀하신 것을 이른 바탈이요, 바탈 따름을 이른 길이요, 길 닦음을 이른 가르침이다
 
의 道는 길, 곧 목적에 이르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지만, 노자·장자의 도는 길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한없이 크고 넓고 깊은 것이다. 삶의 근본, 있음의 밑바닥이다. 영원 무한이다.
이것은 공자·맹자와 노자·장자의 그 시대를 보는 눈이 서로 다른 데서 나온 것일 것이다. 하나는 보다 현실적이요, 하나는 보다 이상적이다. 유교는 실천도덕으로 단계적으로 지도하자는 것이요, 노·장의 가르침은 궁극의 자리를 뚫어 단번에 현실을 초월하는 자리에 가자는 것이다.
이 관계를 생각하면 자연 예수가 밤에 찾아와서 “선생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인 줄 압니다” 한 니고데모에 대해,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하여 첫머리에서부터 까버리던 장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후에도 두고두고 논쟁이 있었다.
예수가 바리새적인 길로 구원이 될 수 없는 것을 알았던 것같이 노자·장자도 유교의 가르침으로 춘추전국시대가 건져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가 자기의 길은 좁고 험하다고 했던 것같이, 노자는 자기의 길은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不可致詰
(시지불견 명왈이 청지불문 명왈희 박지불득 명왈미 차삼자불가치힐)
보아도 못 보니 그 이름이 어릿, 들어도 못 들으니 그 이름이 흐릿, 잡아도 못 얻으니 그 이름이 야릇, 이 셋은 따져 될 것이 아니다
 
했고, 또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赛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 曰道.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새혜 독립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오불지기명 자지 왈도)
몬이 있어 두루뭉수리로 되어 하늘 땅보다 먼저 낳으니 괴괴하고 고요하여 홀로 서서도 고치지 않고, 두루 다녀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의 어미로 삼을 만하더라. 내 그 이름을 모르니 불러서 도라 하자 
 
하기도 했다. 따져서 될 수 없는 것은 이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요, 무엇이라 이름 할 수도 없으나 그렇기 때문에 하늘 땅 이전이요, 그렇기 때문에 천하의 어미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에 그것은 원인 없는 원인이다. 스스로 그런 것, 곧 자연이라고 하기도 하고 아무 것도 없음, 곧 무라고 하기도 한다.
배움은 날로 더함이요,도를 함은 날로 덞이다
 
虛無 柔弱
그러면 그 도를 깨달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노자는 그것을 위해 지적(知的)으로는 허무(虛無), 적막(寂寞),염담(括淡)을 강조했고, 실행으로는 무위(無爲), 유약(柔弱), 부쟁(不爭) 복귀(復歸)를 말했다.
 
致虚極 守靜篤 萬物並作 吾以觀其復 夫物芸芸  名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기복 부물운운 명귀기근 귀근왈정 시위부명 부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비임을 이루게 하기 다시 없이 하고, 고요를 지키기 도타이 하면 모든 것이 아울러 일어나나, 나는 거기서 돌아감을 본다. 모든 것이 무럭무럭 자라지만 저마다 그 뿌리로 찾아 돌아가는 것이니, 뿌리로 돌아감을 고요라 하고, 고요를 말씀에 돌아감이라 하고, 말씀에 돌아감을 떳떳이라 하고, 떳떳을 앎은 밝음이라 한다. 떳떳을 알지 못하면 함부로 짓을 하여 언짢고, 떳떳을 앎은 받아들임이요, 받아들임은 번듯이 내놓음이요, 번듯이 내놓음은 임금이요, 임금은 하늘이요, 하늘은 도요, 도는 오래 있어 몸이 꺼져도 죽지 않느니라
 
비인다는 것은 곧 자기 부정이요, 고요히 함은 무한히 기다리는 태도다. 그러면 하나님의 모습대로의 나에 돌아가 우주의 근본 의미를 알게 된다. 『주역』에서 말히는 寂然動 感而遂通天下之故(적연부동 감이수통천하지고)다.
그러면 그것이 명(命) 곧 말씀에 돌아간 것이기 때문에 상(常) 곧 영원 무한에 하나 됨을 얻으니 자연 밝다.「요한복음」에 “말씀으로 모든 것이 지어졌고, 그 말씀이 생명이요, 생명이 사람에게 빛이더라” 하는 말과 잘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 ‘沒身不殆’(몰신불태)라, 곧 영원한 생명에 든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之 以至干無爲 無爲而無不爲
(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지 이지간무위 무위이무불위)
배움은 날로 더함이요. 도를 함은 날로 덞이다. 덜고 또 덜어서 안함에 이르면 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한다. 학(學)은 적극주의요, 도(道)는 소극주의다. 앞의 것은 서양식이요, 뒤의 것은 동양식이다. 적극주의는 얻는 것 같은데 결국은 모르는 것이고, 소극주의는 밑지는 것 같은데 결국에 가서는 버린 것을 다 찾는다. 그래서 장자는
 
日計之而不足 歳計之而有餘
(일계지이불족 세계지이유여)
날로 계산하면 모자라는데, 해로 계산하면 남는다.
 
라고 한다. 그의「제물론」(齊物論)은 이 적극주의, 유위주의(有爲主義), 학문주의가 진리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서 한 말이다. 세상에서는 시비 토론으로 사리를 밝히려 하지만 시비로는 밝혀지지 않는다. 시비란 따지고 보면 없다. 이 상대의 세계에 객관적 표준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地一指也 萬物一馬也
(대지일지야 만물일마야)
하늘 땅은 한 손가락이요, 만물은 한 마리 말이다
 
해서 그 한 소리에 모든 학문이 그만 바벨탑처럼 무너지고 만다. 그럼 장자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休乎天鈞 和之以是非
(휴호천균 화지이시비)
하늘 고름에 쉬어 고르기를 시비로써 한다
 
상대에 집착하니 옳다 그르다 크다 작다 하지, 절대의 자리에 서서 볼 때 다 하나 아니냐, 그것을 천균(天鈞) 혹은 천균(天均), 즉 천예(天倪)라 하고, 그 자리에 선 것을 明(밝음)이라 한다. 장자가 이 말을 한 것은 전국시대에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서로 싸우던 제자백가(讀子百家)를 향해 던진 것이었으니, 그 시원함을 무엇으로 형용할까? 하물며 아인슈타인 이후 한때 확고부동한 진리인 줄 알았던 과학이 토대에서부터 흔들리고 이제 불확론(不確論)을 말하는 이 때에서일까.
 
평화주의의 제1인자
나는 노자를 평화주의의 첫째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그전에 이미 이사야가 있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을 외친 일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노자처럼 시종일관 순수한 평화주의를 부르짖은 사람은 없다. 더구나 살벌한 부국강병주의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리고 장자는 그것을 우주적인 나팔로써 외쳤다.
중국 역사에서 하(夏) 은(殷) 주(周)룰 3대라 해서 그 발달했던 문물을 예찬한다. 그것은 원시의 부족시대로부터 나와서 첨으로 통일 문화를 건설했던 때다. 그런데 주나라 말기에 와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자가 난 것은 그때였다. 그는 정치로써 할 수 있다면 해보려고 “공자가 앉은 자리는 따뜻할 새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천하를 두루 다니며 정치의 길을 찾았으나 아니 되므로 물러가서 그 말년을 교육과 문필에 맡겨 정성을 다했다. 공자가 간 후 그 제자들은 가지가지 의견과 이론으로 갈라졌고 그가 바라던 천하 통일은 멀어져 갔다.
노자는 공자의 선배라는 것이 전통적인 기록이나, 근래에 고증을 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공자보다 후의 인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선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혼란기에 나서 세상을 건져보려고 애를 썼던 점에서는 같다. 그 의견은 위에서 이미 말한 대로 서로 다르다.
노자가 유위(有爲)의 방법으로 안 될 것을 첨부터 밝히 안 점에서 우리는 공자에게보다도 그에게 더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실제적인 입장에서 가능한 것을 해보자고 했던 점에서 공자의 생각은 찬성자를 얻기 쉬웠고, 중국 역사 수천 년에 늘 정치 지침을 제공해오기도 했지만, 또 피해도 많았다.
우리가 노자·장자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들은 애당초 정치하잔 생각은 없었고 이상론을 펼친 것이니 크게 정치에 영향을 끼쳤다 할 수는 없지만, 우주 근본의 깊은 데를 파고 들어간 말이었던 만큼 앞으로도 오히려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상이 높은 사람은 언제나 그런 것이다. 노자도 외로웠고 장자도 외로웠다.『도덕경』제20장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何若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我獨怕兮其未兆 如嬰兒之未孩 乘乘兮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擔兮其若海 寂兮似無所止 衆人皆有以 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절학무우 유지여아 상거기하 선지여악 상거하약 인지소외 불가불외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향태뢰 여춘등대 아독파혜기미조 여영아지미해 승승혜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아우인지심야재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속인찰찰 아독민민 담혜기약해 적혜사무소지 중인개유이 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배움 끊어라, 근심 없을 거다. 예함 아함이 그 서로 먼 것이 얼마며, 어질다 모질다가 서로 다른 것이 무언가.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 나도 두려워 않을 수 없으니, 허허 헌출해 다할 길 없어라. 뭇사람 히히 하하해 큰 잔치라도 지내는 듯 봄 돈대에 오르기라도 한 듯. 나 홀로 고요해 낌새도 뵈지 않아 어린이 해죽할 줄도 모르는 듯 둥둥 떠다니며 돌아갈 데 없는 것 같고 뭇사람 다 남았는데 나 홀로 잃은 듯. 나 어리석은 사람 마음인 듯 멍멍하고나. 세상사람 또렷또렷, 나 홀로 어득. 세상사람 깔끔깔끔, 나 홀로 멍청. 가물가물 그믐(바다)인 듯. 괴괴해 끊일 줄 없는 듯. 뭇사람 다 씀 있는데 나 홀로 굳고 더러운 듯하니, 나 홀로 남과 달라 어머니 먹기 좋아
 
이것은 동양식「이사야」53장 아닌가. 그렇지만 노자는 결코 우울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직업이라고 조그만 나라 도서관 사무원으로 있었다 하니 누가 크게 알아주었을 리 없고, 그래도 자기 믿는 바에 스스로 평안히 하고 즐거워함이 있다가 오랜 후에야 그 빛을 세상이 알게 되니 그때는 벌써 백발이라. 그래서 세상에서 부르기를, 저 늙으신 선생님이라 해서 아마 노자(老子)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고 한다. 본래,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불지)
아는 사람 말 아니하는 것이고, 말하는 사람 아는 이가 아니다
 
라 하는 이니 말과 글을 많이 했을 리 없고, 후에 전하는 것이 이른바『도덕경』이라는 5천여 자 되는 글뿐이다. 그 5천 자 속에는 무한 영원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들어 있다.
장자의 이야기는 더 기막히다. 그 난 곳을 송(宋)이라 하는데 송이 어떤 곳이냐? 중국 옛날 글들을 보면 송나라 사람은 언제나 어리석다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맹자의
 
宋人有一妻一妾 而處室者……  宋人有悶其苗之不長而揠之者……
(송인유일처일첩 이처실자……  송인유민기묘지불장이알지자……)
 
가 그 좋은 실례다.
첫 번 것은 어떤 사람이 妻, 妾을 데리고 사는데 날마다 나가면 취해서 늦게야 들어온다. 그 어디서 그렇게 먹었나 물으면 늘 누구누구하는 잘난 사람이라는데 한 번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그래 그 처,첩 두 사람이 의심이 나서 몰래 뒤따라가 보았더니 공동묘지에 가서 남들이 제사하고 남은 퇴잔을 여기저기 다니며 얻어먹고 오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당시에 소위 정치운동 다닌다는 것들을 비웃노라고 한 말이어서 “천하에 정치한다는 것들, 이 송나라 놈같이 제 처, 첩들이 몰래 울지 않을 것들 없지”했다.
다음 이야기도 같이 정치 비판하는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이 제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 것 같아 애태우다 못해 하루는 나가서 그 고갱이를 모두 죽죽 뽑아 올렸다. 아들보고 그 자랑을 해 나가보니 햇별에 다 말라죽었다. “세상 정치가 곡식고갱이 뽑는 짓 아닌 것이 없지” 했다.
송나라 사람은 그렇게 바보라는 것이다. 사실을 알고 보면 눈물나는 이야기다. 송이 어디냐 하면 옛날 은나라 땅이다. 중국 고대의 은나라 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던 것은 소위 은시대의 갑골문자(甲骨文字)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글자를 처음으로 발명해 쓴 것이 그 은나라다. 그런데 후에 다른 민족인 주(周)한테 망해버렸다.
예나 이제나 지배자의 심리는 고약한 것이어서, 싸워서 나라가 망한 것만 해도 분한데, 또 영구히 두고두고 지배 착취해먹기 위해 계획적으로 그 피지배 피압박의 은나라 백성을 바보다 바보다 하고 멸시했다. 그것이 유전이 되어서 후대 송나라 사람을 세상이 바보 대접을 해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장자의 그 자유 분방하면서도 칼 같은 익살이 들어 있는『장자』의 십만 자의 문장이 어디서 나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로서는 요새 정사(正史) 문제로 말이 많지만, 그 은(殷) 문화가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장자』는 그저 단순히 시원한 문학만이 아니다. 피눈물이 결정된 저항의 문학이요, 삶의 부르짖음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의 영대를 흔드는 글이지만, 그 내막을 알고 읽을 때 가슴이 끓는 물처럼 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볼 때 그 평화주의란 결코 평안에서 오는 한가한 말이 아니요.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비폭력의 부르짖음임을 알 수 있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그 글 안에 보면 어떤 때는 끼니 양식이 떨어져 꾸러 갔다 하고, 직업이라고는 미투리를 삼아 파는 것이라고 했다. 아내가 죽으매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 구절도 있다. 그렇게 가난한 살림을 하면서도 임금들이 사람을 보내 불렀을 때는 한마디로 차 버렸고, 포악한 지배자들 밑에 허덕이는 씨ᄋᆞᆯ들을 건져주기 위해 애를 태웠던 사람이요. 그것을 위해 불같은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시대에 사람들이 부국강병이라 하며 짐승보다 더 잔악한 전쟁을 하며, 또 생각 없는 씨ᄋᆞᆯ이 거기 휘말려 그저 살겠다는 옅은 생각에 올 줄, 갈 줄을 모르고, 지식 있는 놈은 시비 싸움에, 없는 놈은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 다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고는 “不亦悲乎(불역비호) 또한 슬픈 일 아니냐”라고 자주자주 탄식했다.
제사 돼지로 팔리기보다는 진창 속에서 절벅거리며 살겠다 했고, 들사람[野人]의 살림에 만족하면서 스스로는 영원 무한 속에 소요유(道遙遊)를 하고 붓을 들면 천하의 임금이라 영웅이라 호걸이라 학자라 하는 것들이 하나도 그 붓끝에 휘말려 돌아가기를 면한 자가 없다. 그러나 그 재주 때문에 뜻을 놓쳐서는 안 되고 그 기운 때문에 그 믿음을 얕봐서는 안 된다. 그는 천하를 건지자고 부귀영화를 다 초월해 절대의 세계를 개척하기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天將救之
이제 역사는 크게 변하려 하고 있다. 물질주의, 지식주의, 권력주의, 적극주의의 서구문명이 차차 사양길에 들었고, 사람들은 그 산업방법, 그 학문, 그 종교를 근본에서 고쳐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때를 당했다. 세상에서는 공연히 어렵게만 알지만, 자기로서는
 
吾言甚易知 吾言甚易行
(오언심역지 오언심역행)
내 말은 아주 알기 쉽고 아주 행하기 쉬운 거다
 
라는 노자에 한번 겸손히 귀를 기울여보지 않으려나. 그는 자기는 세 가지 보배를 가졌노라 했고, 하늘이 구해주려 할 때는 혜가림으로 지켜준다고 했다.
 
我有三寶 寶而持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夫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今舍其慈旦勇 舍其儉且廣 舍其後且先 死矣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아유삼보 보이지지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부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 고능성기장 금사기자단용 사기검차광 사기후차선 사의 부자이전칙승 이수칙고 천장구지 이자위지)
내게 세 가지 보배 있어 보배로이 지닌다. 첫째는 사랑, 둘째는 수수함, 셋째는 감히 천하에 앞장 못섬이다. 그저 사랑하므로 날랠 수 있고, 덜 쓰므로 넓을 수 있고, 감히 천하에 앞장서지 않으므로 그릇의 어른 될 수 있다. 이제 그 사랑은 버리고 날래려만 하고, 덜 씀은 버리고 넓으려만 하며, 뒤 서기는 버리고 앞서기만 하면 죽는다. 그저 사랑은 가지고 싸우면 이기고, 가지고 지키면 굳는다. 하늘이 건져주려 할 때는 사랑으로 돌려준다.
 
지금같이 살림이 곧 정치, 정치가 곧 전쟁이 돼버려 죽음의 문명이 돼버린 때에 한번 깊이 귀를 기울여볼 말 아닐까?
 

하늘 땅 바른 숨 있어 (1982, 삼민사)
저작집30; 24-31
전집20;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