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은이),이현주 (대담)삼인2003-11-25초판출간 2003년
양장본730쪽
책소개
이 책은 장일순 선생이 삶의 말년에 노자의 <도덕경>을 가운데 두고 이아무개(이현주) 목사와 나눈 대화를 풀어쓴 것으로, <노자 이야기>의 개정판이다.
책은 <도덕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꼼꼼히 읽고 해석하는 형식으로 짜여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노자에 대한 해설서나 주석서가 아니라, 노자 사상을 화두 삼아 우리 시대에 바람직한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에 그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노자의 사상뿐 아니라 기독교, 불교, 유교, 동학, 마르크스주의 등 동서양 종교와 철학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며 지혜와 통찰을 구하고 있다.
목차
개정판 머리말
초판 머리말
일러두기
1장 일컬어 道라 하느니라
2장 머물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
3장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우며
4장 빛을 감추어 먼지와 하나로 되고
5장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6장 아무리 써도 힘겹지 않다
7장 천지가 영원한 까닭은
8장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9장 차라리 그만두어라
10장 하늘 문을 드나들되
11장 비어 있어서 쓸모가 있다
12장 배를 위하되 그 눈을 위하지 않는다
13장 큰 병통을 제 몸처럼 귀하게 여기니
14장 모양 없는 모양
15장 낡지도 않고 새것을 이루지도 않고
16장 저마다 제 뿌리로 돌아오는구나
17장 백성이 말하기를 저절로 그리 되었다고 한다
18장 큰 道가 무너져 인과 의가 생겨나고
19장 분별을 끊고 지식을 버리면
20장 나 홀로 세상 사람과 달라서
21장 큰 德의 모습은 오직 道를 좇는다
22장 굽으면 온전하다
23장 잃은 자하고는 잃은 것으로 어울린다
24장 까치발로는 오래 서지 못한다
25장 사람은 땅을 본받고
26장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원
27장 잘 행하는 것은 자취를 남기지 않고
28장 영화로움을 알면서 욕됨을 지키면
29장 억지로 하는 자는 실패하고
30장 군사를 일을켰던 곳에는 가시덤불이 자라고
31장 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연장이어서
32장 道의 실재는 이름이 없으니
33장 죽어도 죽지 않는 자
34장 큰 道는 크고 넓어서
35장 큰 형상을 잡고 세상에 나아가니
36장 거두어들이고자 하면 베풀어야 하고
37장 고요하여 의도하는 바가 없으면
38장 높은 德을 지닌 사람은
39장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40장 돌아감이 道의 움직임이요
41장 뛰어난 재질을 지닌 사람은
42장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43장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부리고
44장 이름과 몸, 어느 것이 나에게 가까운가
45장 크게 이룸은 모자라는 것과 같으나
46장 만족을 모르는 것만큼 큰 화가 없다
47장 문 밖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안다
48장 道를 닦으면 날마다 덜어지거니와
49장 착하지 않은 사람을 또한 착하게 대하니
50장 나오면 살고 들어가면 죽거니와
51장 道가 낳고 德이 기르고
52장 아들을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지키면
53장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54장 몸으로 몸을 보고 천하로 천하를 보고
55장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56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57장 법이 밝아지면 도적이 많아진다
58장 어수룩하게 다스리면 백성이 순하고
59장 하늘 섬기는 데 아낌만한 것이 없으니
60장 작은 물고기 조리듯이
61장 큰 나라가 마땅히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62장 道는 만물의 아랫목
63장 어려운 일을 그 쉬운 데서 꾀하고
64장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라
65장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림은 나라의 적이다
66장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임금인 것은
67장 세 가지 보물
68장 잘 이기는 자는 적과 맞붙지 아니하고
69장 적을 가볍게 여기는 것보다 더 큰 화가 없으니
70장 내 말은 매우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우나
71장 병을 병으로 알면 병을 앓지 않는다
72장 사람들이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73장 하늘 그물은 성기어도 빠뜨리는 게 없다
74장 백성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데
75장 백성이 굶는 것은 세금을 많이 걷기 때문이다
76장 사람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다가
77장 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채운다
78장 바른 말은 거꾸로 하는 말처럼 들린다
79장 큰 원망을 풀어준다 해도
80장 작은 나라 적은 백성
81장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장일순 선생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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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장일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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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미학과에서 수학하던 중 6·25 동란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40여년 간 원주를 떠나지 않고 지역 사회 운동가로 살아왔다. 원주대성학원을 설립하고, 밝음신용협동조합의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한살림운동을 주창하였다. 1994년 5월 22일 6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최근작 : <나락 한알 속의 우주>,<나락 한알 속의 우주>,<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 총 8종 (모두보기)
이현주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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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틱낫한 명상》 등이 있다.
최근작 : <부모 되기, 사람 되기>,<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대한민국 청소년에게> … 총 26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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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다툼과 같은 현실의 아수라장 속에서 붙잡은 튼실한 동앗줄 같은 책! 구매
익은수박 2010-03-02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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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다가 추천합니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이아무개 대담 정리 출판사 구매
kkm 2009-11-01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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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구절에 빗대어 삶의 의미를 음미한 명저... 재야 풀뿌리 사상가의 철학을 목사님 대담자가 정리 .. 구매
밭고랑 2014-01-1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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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도 쉽게 읽을수있는 노자이야기. 판단은
독자의 몫. 구매
Finley 2014-01-2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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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했다가회원들께 엄청 혼났어요. 일단 너무 두껍고, 진도가 너무 안나간다고. 그래도 내용은 굿!! 구매
솜다리 2014-03-2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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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름다운 책 새창으로 보기 구매
어느 날 하릴없이 노자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도덕경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 산 책은 해석이 없이 도덕경 원전만 있는 작은 책이었는데, 책을 읽고 난 뒤에 내게 남은 것은 당혹감뿐이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는 한국어이되 이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무식함을 탓하며 이번에는 해석서를 사 보게 되었다. 해석서를 사 본 뒤에도 당혹감은 여전했다. 해석본마다 해석이 틀린 데다 원문의 번역마저 완전히 다른 경우도 허다했다. 노자의 도덕경이 워낙에 애매한데다 워낙에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 사람마다 그 해석이 다르다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여러 권을 사서 비교하며 보게 되었는데, 무엇하나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이 책 바로 이전에 읽은 책은 외국에 사시는 분이 해석한 것으로, 꽤 유명한 출판사의 꽤 유명한 분이 쓰신 책인데도 불구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동양사상을 서양사상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있으니, 그나마 동양인인 내 입장에서도 이게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그분은 은연중에 ‘노자의 사상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뻔한 사실을 알고 싶어 도덕경을 읽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나는, 도덕경을 제대로 보려면 노자의 가르침을 진실로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산 사람의 해석본을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말 그대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어하며 거의 기대 없이 서점을 돌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장일순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강원도로 이사 와서 살게 된 뒤에야 들은 이름이다. TV에서도 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름이건만 원주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일을 하면 그게 부처의 삶이다’라는 신념으로 일생 원주를 떠나지 않은 분이라는 말을 들었다. 원주 사람들이 원주의 예수님이라고 불렀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처음에는 웃었다. 어디 살아있는 사람에게 감히 예수님이라는 낯부끄러운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그런 가당찮은 경우가 있나.
하지만 그 뒤로 듣게 된 그 분의 일화들은 모두 평범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원주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든가,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류가 이분에게서 비롯되었다든가, 하지만 한번도 이름을 내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든가. 무슨 일이든 이분에게 가면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해결이 되더라든가. 한번은 역에서 돈을 잃은 아주머니가 이분을 찾아와 울며 돈을 찾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이없는 일인데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장일순씨는 역에 나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역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근방의 소매치기들의 행동반경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람을 찾아내어 돈을 돌려주게 했다고 한다. 그 뒤에도 가끔 그를 찾아가 ‘내가 자네 밥벌이를 방해해서 미안하네.’하고 술을 사곤 했다고 한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화다.
장일순이라는 이름에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이 아무개’라는 저자 이름에는 또 의아해했다. 대체 누가 필명을 이따구로 짓는단 말인가. 이 아무개라는 필명을 누가 기억할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몇 장 넘기다가 ‘이 아무개’가 이현주씨라는 것을 또 놀라고 말았다. 왜 이 유명하신 분이 이런 필명을 쓰시나 싶었다. 이런 이름이면 사람들이 책을 들었다가도 ‘뭐야, 이름도 없는 사람 꺼잖아.’하고 도로 내려놓아버리지 않겠는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이것이 참으로 도덕경에 어울리는 필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장일순씨다. 이렇게 도덕경을 아무 어려움 없이 앉은 자리에서 문장 하나하나를 해석해주실 줄 아는 분이, 이 책이 세상에 나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상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것은 하나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처럼.
이 책은 장일순씨과 이현주 목사님, 두 분이 노자의 도덕경을 두고 나눈 대담을 이현주씨가 기록한 책이다. 두 분이 노자를 두고 몇 달인지 몇 년인지 알 수 없는 시간동안 나누는 이야기들의 기록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술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 분은 개신교인이고 한 분은 천주교인이라 간간히 성서 해석도 등장하는데, 그 역시 놀랍기 그지없다. 만약 모든 크리스챤이 이런 종교관을 갖고 살아간다면 종교분쟁 따위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장일순씨가 책이 완성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후반부는 이현주 목사님이 ‘자신의 안에 있는 장일순씨와’ 대담하여 썼다. 장일순씨는 ‘네가 쓰는 것이 내가 쓰는 것이다’라며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러라고 하셨다고 한다. 피아의 구분이 없으신 분들, 참으로 노자스러운 두 분이 아닌가.
노자를 공부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공연히 저 멀리 중국 분이나 저 옛날에 살던 분들의 해석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셨던, 그리고 살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진심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책이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내가 감히 뭐라 토를 달기도 부끄러운 책이다.
잊혀지지 않는 장일순씨의 말씀 한 토막 올려놓겠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라는 건 말야, 뭐냐 하면, 그게 전 우주적인 사건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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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ida 2006-01-16 공감(7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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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과 이아무개의 대화로 푼 노자... 새창으로 보기
(평점:)
글샘(mail) 2005-08-09 01:30
무위당 장일순. 무위당이 뭔가. 이름에. 이름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현주 목사님. 필명이 이아무개다. 그야말로 명가명 비상명 名可名 非常名이다. 이름은 그가 아님을 역설하기 위해 이름을 아무렇게나 아무개로 지었다.
이 아무것도 아닌 두 사람이 만났다. 그래서 노자를 풀이한다.
원래 무위당 선생님과 이아무개님이 노자를 읽고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것을 녹음이라도 해서 나중에 이아무개가 정리를 한 것이 이 책일 것이다.
이 책은 원래 세 권이던 책을 한 권으로 합본하여 만들었다.
고등학생들이 보는 정석만큼 묵직한 책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술술 읽힌다.
내가 얼마 전에 이경숙씨의 노자를 웃긴 남자와 그의 도덕경을 읽었기 때문에 더 쉽게 읽히는지도 모르지만, 노자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목사였던 이아무개님의 탁월한 해석은 성경과 노자의 공통점을, 도와 하느님의 무위의 길을 멋지게 빗대어 놓는다. 가히 이십세기 최고의 절창이라 할 만하다.
우리 나라 인문학의 황폐함을 이런 책들을 보면서 깨닫는다. 아, 우리 나라에도 인문학이 아직 살아 있구나. 그러나 그 맥이 점점 끊어져 가는구나... 왜냐면 이런 책들은 대개가 도서관에서 봐도 깨끗하고, 알라딘 같은 데 보면 절판이라 나와있으니...
이 책은 노자의 풀이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다.
무위당 선생님이 푼 것을 이아무개님이 정리하는 것으로 노자에서 벗어나 버린다. 그리고는 도와 관련된 대화들을 자유스럽게 풀어 나간다. 마치 장자가 갖가지 고사와 비유로 노자를 풀었듯이...
이 책이 뛰어난 점은 노자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두 분이 끈질기게 늘어 놓는 데 있다. 그래서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인데도, 마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스릴러물을 읽듯이 단숨에 읽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느릿느릿하게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역시 더운 여름을 나는 데는, 화끈하지만 금세 꺼져버리는 모닥불같은 추리소설 종류보다는, 뭉근하지만 오래오래 온기를 느끼게 하는 생각하는 책들이 어울린다.
잡스런 세상의 번사를 잊는데는 역시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큼직한 활자에 갇혀있으면서도 결코 갇히지 않는 노자의 수염을 스치는 맛도 일품이다.
몇 권 만나지 않은 노자지만, 이 책에 와서 그 의미의 확장을 맛볼 수 있었다.
내 부족한 능력을 늘 잊지 않으시고, 다음 책에로 이끄시는 그분, 바로 하느님이시고, 내안의 부처님이시고, 모든 아상을 잊게 하시는 그 도道에 늘 감사를 드린다.(평소에 아상我相에 사로잡혀 인상人相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라 하는 이들을 비웃었는데, 무어라 부르든 그 하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니 이젠 상관 않는다.)
다음 번 도서관에 가면 나를 어떤 책에로 이끄실지 늘 가슴 설레며 책을 접는 내 마음이 이렇게 뿌듯한 적도 드물다. 지난 번 금강경 이야기 읽은 후로, 정말 오랜만에 오래 남을 책을 만났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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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8-09 공감(39)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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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채운다.<노자도덕경> 새창으로 보기 구매
20살의 봄이었다.<노자 도덕경>을 처음 만났다.어제 밤에 퍼부어 댔던 최루탄의 잔향을 맡으며 빈 강의실을 찾았다.햇살이 반쯤 드는 빈 강의실에서는 언제나 '학교냄새'가 났다.노자를 읽었던 건 고전에 대한 애정이자 약간의 의무감같은 것이었다.한자는 대략 운만 따라 가고고 한글로 풀이된 내용만 읽었다.알 듯 말 듯 했다.
당시 선배들과 주로 하던 사회과학 세미나에서 노자는 비판의 대상이었다.세미나는 유물론에 대한 이해를 주목적으로 했던 것들이었다.그 곳에서 노자나 석가의 가르침은 주관적 관념론으로 분류되었다. 그들의 가르침은 허무주의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어 왜곡된 현실을 변혁하기 보단 순응하는 반동적 철학으로 읽히곤 했다.고전이 주는 아우라에 대해 비판해보지 않았던 대학 신입생이었던 내게 신선한 시각이었다.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꼇을 뿐 고전 자체에 대해 내가 두고 있던 무게감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도 종교가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한다.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을 보면 나는 대개 그 내용에 동의한다.하지만 종교가 가진 심리적,문화적 기능 역시 인정한다. 혐오감이 가고 미신 같아 보이던 무속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결과적으로 나는 ' 종교로서의 종교를 부정'하고 사회,문화 현상으로서 종교를 바라보는 입장에 서 있다.
장일순 선생과 이현주 목사 역시 <노자 이야기> 에서 인류의 큰 가르침으로써 노자,석가,예수를 이야기한다.책은 기본적으로 <노자 도덕경>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대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노자의 해석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노자를 이해하기 위해 아니 절대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불교도 기독교도 전부 인용된다.특히 이현주 목사는 전공을 살려 도덕경의 내용과 성경의 내용 중 동일한 말씀을 잘 찾아 내어 들려준다.책 전체에 수시로 등장하는 예들이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이런 비유가 있다.
도덕경 4장에 보면 유명한 '화기광하여 동기진하라'는 말씀이 있다.풀이하면 '그 빛을 감추어 먼지와 하나가 된다' 는 것이다.먼지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물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만물이 같은 뿌리를 두고 있으니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예수가 가난한 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그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라고 한 말 역시 이와 같은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여기서 예수가 말한 나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다.먼지이며 하늘이고 땅이며 우주이다.석가모니가 태어나면서 '천상천아 유아독존'이라고 했을 때 그 '아'에 해당하는 존재이다.물론 이 '아'라는 것 역시 우리가 말하는 self 와 다른 것이다.'아상'을 없앤 '나'이다. '자기를 넘어선 자기,천지와 하나 되어 있는 자기'인 것이다.
도덕경 16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모든 것을 품음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왕이요 왕이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도요 도가 곧 영원함이니 몸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도의 불생불멸을 이야기하고 있다.이현주 목사는 여기서 '부활'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즉 부활이라는 것이 죽었던 사람이 다시 멀쩡하게 살아서 밥먹고 여행다니고 대소변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부활이라는 것은 썩을 육신의 옷을 벗고 영원히 썩지 않는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범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노자의 이야기로 수렴한다.여기에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은 다 하나다.모두 공이요 무다.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존재 하지 않는 존재이다.인간의 가치로 재단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며 도 자체이다.이러한 범신론적 유연함은 종교적 편벽함이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 신선함과 깊이로 큰 울림을 갖는다.
노자의 철학을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그럴 능력도 못되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몇가지 키워드로 노자의 철학을 정리하는 것 정도로 머물러야 겠다.
無爲 ...無常...反...樸... 根 ...德 ....道
시각을 조금 현재로 끌어 올려 노자를 보게 된다.노자의 말씀은 여전히 지금 사회에도 유의미한 구석이 많다.특히 '강함'에 대한 이야기는 지구촌 유일의 패권국가에 대한 비판으로 적절하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라는 말이 도덕경 76장에 나온다.단단하고 강한 것을 무력에 기대 힘의 외교를 추구하는 강대국에 빗댈 수 있다.노자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죽음의 무리다.노자는 정치에서도 무위를 강조했으며 큰 나라의 역할을 요구했다.61장에 보면 '큰 나라는 하류라 천하가 모이는 자리요 천하의 암컷이다....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큰 나라를 얻는다.' 하지만 현존하는 패권국가에게 이런 이상적인 상황을 기대하기란 무리다.칼로 일어선 자가 칼로 망한다는 말을 듣고 부여잡은 무기나 좀 내려놨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그나마 도덕경에서도 '도가 아니면 오래가지 못한다'라는 말로 패권국가의 몰락에 대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있어서 더운 여름에 위안이된다.
노자를 읽다가 보면 편협한 기독교적 해석에 대한 비판이 종종 나온다.그와 함께 노자나 도에 대한 과소비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든다.노자의 철학은 근본적인 인간과 세상의 변화를 겨누고 있다.절대적 진리를 말하는 논점에서 지극히 당연하다.하지만 노자의 철학 역시 현실의 모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도덕경 후반부에 이상주의적이긴 하지만 노자의 정치철학이 상당부분 담겨있다.하지만 노자나 도,선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노자의 현실 적합성은 뒤로 두는 경우가 많다.그들은 성인들의 말씀을 지극히 소아적으로 해석하여 마음의 평화만을 쫓는데 쓰고 만다.사회적 비겁함이나 무관심을 내적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가려는 듯 보인다.이 책의 저자인 장일순 선생은 그 대척점에 있다.실제로 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생활에서의 실천이 있었다.또 내면의 수양만큼이나 현실의 불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대응했다.장일순 선생은 그러한 현실적 정의가 무용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중요한 것은 옳바른 일을 하고 거기에 머문다거나 어떤 사심을 가지고 그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그런데 선이나 도를 마음깊이 믿는 다는 사람들 중에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노자가 말하는 '무위'라는 것을 철저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면서 선시를 즐기고 화두를 나눈다.도에 대해 말하고 여운을 즐긴다....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행위들은 '도'를 소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서구가 zen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선문화를 상품화해낸 것 처럼 ...이현주 목사도 지적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기만'이다.한산의 시나 고승들의 게를 소비하면서 마치 '도'에 이르는 도정에 있다고 믿는 것일 뿐이다.그냥 그런 여백을 좋아하고 즐긴다고 하는게 솔직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앎을 실천하는지 빈방에서 홀로 벽을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어 볼 일이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힘든 날이 이어진고 있다.중동에서는 무지비한 폭격으로 무고한 아이들이 쓰러지고 있다.지난 폭우로 인한 수재민들은 제대로 정비도 못한 상태에서 폭염을 맞아 복구가 더욱 힘들다.추운 겨울도 가난한 이들에게는 힘들지만 더운 여름도 마찬가지이다.. 노자는 말한다.
'하늘의 도는 마치 활에 시위를 얹는 것과 같구나.높은 데는 누르고 낮은 데는 들어올리고 남은 것은 덜고 모자라는 것은 채운다.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채우나 사람의 도는 그와 같지 않아서 모자라는 것을 덜어 남는 것을 떠받든다.누가 능히 남는 것으로써 천하를 받들 것인가? '
모든게 같은 뿌리라면 가난하고 힘없는 자도 한 뿌리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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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8-08 공감(21)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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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처음 만나게 되는 아이의 태교삼아 이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
아침, 통유리 거실 문 앞에 앉아서 소리내어 조금씩 읽었다. 소리내어 읽을 때 책은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오는구나, 하고 느꼈다. 구어체의 문장들이라서, 소리내어 읽기에 더욱 좋았다. 두 분이 대화하는 걸 나 혼자 읽는 것이지만,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노자의 이야기는 토막토막 익숙하지만, 울림이 깊다.
태교를 잘 했나봐, 아기가 참 착하네, 라는 말을 들으면, 그건 아마 이 책 때문인 거라고 으쓱, 한다.
노자가 전 인생을 털어 들려주는 이야기에, 두 분의 어른들이 더하여 붙인 이야기가 참 좋다. 두 어른의 배경이 기독교 천주교라서 조금은 아쉽지만, 그런 종교적인 부분에 집중하시거나 하지는 않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사상가, 철학가로서의 노자를 우리 시대의 고민에 비추어 만나게 된다. 조금은 시대가 어긋나더라도, 그런 가르침은 다시 그 시대에 또 새로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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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07-03-23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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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살 한알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구매
망설이다가 추천합니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이아무개 대담 정리 출판사 삼인
장일순은 서울대 미학과 중태 그 부인은 서울사대 출신 -- 지식의 허영은 어느 정도 충족
학교 재단이사장, 진보당 국회의원 출마, 약간은 좌파 -- 조봉암과 김삼용에 대한 호의
김지하의 스승
지학순 주교와 원주의 대부이자 원주 천주교 평신도 회장
필명 이아무개는 개신교 목사 이현주님
유신시절에 한문과 붓글씨를 친구삼아 살다 보니 그 후 대통령된 사람들이 그의 붓글씨와 서화를 구매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호를 여러 개 갖고자 했는데
죽기 전에 좁쌀 한알 일속자가 그가 좋아한 호이었는데
그래도 사치 스러운 인간들은 노자라면 무위당 정도 되어야 한다고 크게 써 붙였다고 저는 짐작합니다.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 다음 입니다.
256쪽
성경에는 탕자는 처음엔ㄴ 아버지한테서 멀리 간단 말씀입니다. 원(遠)하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는(反) 행위의 한 부분이 아니겠나 싶은데요.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친구가 만일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면 '제 정신'을 차렸을 리도 없고 따라서 돌아올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맏아들이 바로 그랬지요.
257쪽
그래. 맏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떠나 있었던 거지.
예, 맞습니다. 그런데 탕자의 경우에는 멀리 갔기 때문에 돌아오거든요. 그러니까 멀리 가는 것이 곧 돌아오는 것이지. 가는 것 따로 있고 돌아오는 것 따로 있고 그렇게는 볼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요?
그런 거지. 그런 거야. 그런데 이제 결국은 여기서 말하려는 게 道 아닌가? 道란 이런 것이다 하고 여기서 말하려는 게 道 아닌가? 道란 이런 것이다 하고 여기서 설명을 하는 건데, 大니 逝니 遠이니 反이니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런 모든 말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뭔고 하니 道라는 게 상대적인 무엇으로 나눠질 수 없다는 그런 애기라고 봐야겠지.
지난 번에 道者는 同於道하고 德者는 同於德하고 失者는 同於失한다고 했을 때, 그게 다 도덕이 있느니 없느니 得이니 失이니 그런 분별이 道의 세계에는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바로 그런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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