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3

김시천 제8강 『노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

 http://artnstudy.com/PLecture/scKim02/lecture/08_01.htm

제8강 『노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



◆ 하상공의 노자 해석 : 치자의 덕목


▲ 치자의 청정무위淸靜無爲

여기까지는 백성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는 방식의 이야기인데 번역을 하신 분이 그러면이라고 말을 붙였던 것처럼. 여기에서 목소리와 톤이 즉 화자의 대상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일이 없고(雖有舟輿, 無所乘之;)

보통 우리가 이 부분을 해석할 때는 문명의 이기들이 있더라도 밖에 나다닐 일이 없으니까 할 일이 없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뭐라고 해석이 나왔냐면.

맑고 고요히 무위하고, 번잡하고 화려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들고나며 놀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淸靜無爲, 不作煩華, 不好出入遊娛也.)

누가. 노는 것 싫어하는 사람 봤습니까. 그런데 놀지 않아야 될 사람이 있어요. 치자. 왜그러냐하냐를 따져보죠.

원문을 보세요. 淸靜無爲 청정무위라고 하는 말이 나오죠. 청정무위라고 하는 것은 한나라초기의 이념. 황로학의 이념을 표현한 네글자입니다. 이 말은 현재 백과사전에도 실려 있는 용어에요. 거기에 뭐라고 되어있느냐면 백성들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치자가 간섭하지 않음이라고 되어있어요. 대한화사전이라든가 보면 일반적으로 나오고 지금도 쓰이고 있는 용어입니다.

왜 이 얘기가 나왔느냐. 저는 이런 것들 때문에 바로 하상공 주석이 한 초의 이념을 상당히 보존하고 있는 텍스트라고 저는 이제 보는 입장에 있는데. 대다수분들이 대개 후한쪽으로 많이 봐요. 특히 최근에 국내에서 연구하신 분들은 후한시대의 문헌이다라고 보는데. 저는 이제 이것이 구전 전통이 나중에 문자로 정착된 것은 후한이지만 일부 상당 부분은 한초의 맥락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특히 이런 것들이 증거라고 보는데.

어느 쪽이 옳다 라고 확실하게 결판 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용어가 황로학의 이념을 대표하는 용어라는 건 분명해요.

즉 백성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한다, 이것이 아니라.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즉 농사철을 어기지 않고 제대로 해야지만 자식을 낳고, 먹일 수 있고 하는 방식의 그런 기본적인 생계조건을 마련해주는 그런 정치적 행위방식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에 不作煩華부작번화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쉽게 말하면 앞쪽에도 나와있죠. 법명이 많으면 간섭이 많은 거예요 기본적으로. 지금은 워낙 다양한 방식의 범죄들이 일어나니까 그런 것들을 잡아내기 위해서 법을 입법하거나 아니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복지차원에서 입법하는 것. 크게 두 가지이지 않습니까.

하나는 무엇이냐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법이라면 하나는 안좋은 것을 제어하는 방식, 규제가. 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죠.

그런데 여기에서 법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것이 많으면 안좋다. 이 얘기는 무엇이냐면. 한나라가 실제로 법대로 없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유방이 한나라를 세웠죠. 한나라는 반진. 요즘에 말하는 ABC 그다음에 ABR 하고 비슷한. 흔히 요즘 언론에서 표현되는 용어죠. ABC는 anything but Clinton은 ABR은 anything but Rho. 참여정부의 그것하고는 다른 기조의 이런 방식으로 한 것처럼. 당시의 한나라는 무조건 진나라가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선포하면서 했어요.

특히 함양성에 입궁하기 전에. 유방이 먼저 도착했죠. 나중에 항우에 필적할만한 나름대로의 세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 근처에서 진 치고서 기다렸단 말이에요. 그랬다가 항우가 들어간 다음에 갑니다. 이 때 유방이 가만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주변에 있던 장로들을 만나요. 진나라의 가혹한 학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세 개조만 법명을 남기고 나머지는 싹 없애겠다는 약속을, 기록에 따르면 거기에서 했다라고 해요. 그래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냈다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러나 진나라의 법률전문가들을 그대로 살려냈고. 간다는 말이에요. 특히 이 때 한고조 그 다음에 효해제. 그 다음에 들어서는게 문제. 그래서 文景之治문경지치 라고 하는 표현. 한나라때면 나오죠. 가장 성세라고 표현하는 시대 중에 하나가 이 때에요. 그 다음에 정관지치니 이런 몇 군데가 있지 않습니까.

문경지치라고 하는 것은 문제와 경제 시대에 황제의 다스림. 그러니까 지치의 시대라고도 하고 아주 안정된 상태라고 얘기를 하죠. 이 때 문제가 있을 때 아주 유명한 고사에요. 문제가 왜 문제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느냐. 무일 경우에는 무를 앞세워서 정복한 그래서 주나라에도 무왕이 있고 다 있잖아요. 한 대에도 무제가 있고. 군사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다 무가 있단 말이에요.

보통 태종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다 그와 비슷한 방식의 일들을 했죠. 왜냐하면 안정시키기 위해서.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한나라 때 법명이 정말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전이가 됐어요. 초창기에만 잠깐. 왜냐하면 할 수 있을 만한 능력도 안됐고. 그렇잖아요.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권력이 필요한데. 공권력을 준다라고 하는 것은 치세가 안정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조세제도 등등의 갖가지 것들이 완비되어야지만 가능한 건데. 할 수 없으니까 못한 거에요. 사실은 청정무위는. 기본적으로.

군현제가 아니라 군국제로 회귀했다는 거거든요. 귀족들의 특권을 다시 인정해주고. 결국은 하나하나씩 죽였지 않습니까. 이성 異性. 류씨가 아닌 사람들부터 하나하나. 한신의 몰락이 대표적으로 그런 경우고.

그런데 문제는 사기, 편작창공열전이라는. 유명한 의사 두 명이죠. 이 창공이라고 하는 사람이 유명한 의사였는데 굉장히 치료를 잘했어요. 치료를 잘안해줘서 원성을 샀어요. 많은 사람들한테. 그래서 이 사람이 뭐에 연루가 돼서 올라가요. 압송을 당해서 사형을 받으러.

그 집 셋째딸. 딸을 잘 둬야 되요 그래서. 아들은 소용이 없어요. 맨날 자기가 아들이 없어서 이럴 때 제대로 도움을 못받는다라고 하니까. 막내딸, 셋째딸이 가서 내가 아버지 대신 죄를 받겠다 하고 탄원을 해서 왕이 그것을 윤허해서 사면을 해줘요. 그리고 나서 창공한테 네가 여태까지 했던 어떻게 의술을 닦았는지 그 다음에 너의 임상기록들을 보고를 해라라고 해서 편작창공열전 뒷 후반부가 임상에 관한. 이른 바 공식문서화된 의서로써는 최초로 나옵니다.

그 이전의 것들은 다 출토된 문헌이거나 하는 방식인데 비해서. 그것은 실제로 창공이라는 사람한테 요구를 해서 정부에서. 그래서 이 사람이 조정에 바치는 보고서가 거의 그대로 삽입되어서 나와 있는 기록이에요. 그래서 황제내경보다도 의료사적으로 앞서있는 문헌이거든요.

그것이 그렇게 나오는데. 이 사람이 더 유명한 것이 바로 그것 때문에 더 유명해요. 치도곤을 당해서 죽을 뻔했는데 딸 때문에 살았어요. 문제가 그것을 사면해준. 그래서 문제. 가혹한 형벌을 낮추었다는거죠.

특히 나중에 무제 시대에 들어가면 중국법률사에서 특히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원심정죄原心定罪라고 해서 동중서가 여기에 동의를 했다고 해서 상당히 논란이 많았던 부분인데. 원심정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본래 중국 진나라 형법 제도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증거주의 이미 채택되어 있었고. 그리고 법률체계, 형벌체계가 상당히 합리적으로 되어 있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진나라의 법제가 그렇게 끔찍하지 않습니다.

한나라 때, 진나라에 대한 엄청난 비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안그렇다고 그래요. 실제로 한나라는 진나라의 제도를 거의. 오히려 그것을 더 관철시키고 싶었지 할 수 없으니까 못한 것 뿐이에요. 모든 치자들의 욕심이 그랬던 것처럼.

이 원심정죄라고 하는 것이 뭐냐면 바로 반란 세력을 초토화시키는데 잘 동원했던 것인데 원래 죄라고 하는 것은 사실에 입각한, 증거에 입각해서 처벌하게 되어있는거에요. 그런데 이것은 뭐냐하면 그 마음을 따져봐서도 죄를 정할 수 있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실제로 물증에 의해서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너 역심을 품었지?해서 죽일 수 있는 방식의 법원리에 당시에 제출된 거에요. 무제 때 실질적으로 말 안듣는 사람들 재산 몰수하고 전쟁동원하기 위해서 그 물자들 조달하기 위해서. 그런 일들 많이 했을 때. 가장 쉬운 것이 너 반역하려고 했지? 하면서 구족을 멸하고 환수하고.

그러니까 합리적인 사회체제가 있지 않을 때에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그러면 귀족 지배층들이 그렇게 당했으면 그 밑에 사람들은 어땠겠어요. 더 가혹하게 당할 수도 있는거죠.

그래서 사실은 전한시대의 절정기는 무제때이지만 그 절정기가 바로 몰락의. 그래서 늘 클라이막스는 몰락의 시작이라고 하는 표현이. 똑같습니다.

여기에 나와있는 내용은 ‘번잡하고 화려함을 일으키지 않으며’는 초창기의 맥락들을 반영한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불호출입유오不好出入遊娛 라고 하는 것은 娛오 자는 오락할 때 오자에요. 즉 논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황제가 지금처럼 집안에서 TV보고 영화관 딱 홈세트 설치해서 보고 이게 아니에요. 뭐하고 놀았겠어요. 사냥 한 번 가죠. 그 다음에 연회 한 번 베풀죠. 그럼 동원되는 사람이. 황제가 한 번 사냥을 할 때는 수만명이 동원이 되는 것 아시죠. 동산전체를 병사들로 쫙 둘러가지고 못 도망가게.

그리고 그 안에서 사슴들이 풀어놓기도 하고 돌아다니는 것 잡는거에요. 가봐야 못가요. 그것이 황제가 사냥하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 무협TV같은 데 보면 삼국지에서도 그렇고 보면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금촉이 달린 화살 해서 빵 쏘고 조조가. 현제랑 막 하면서. 그런 것도 나오고.

그러니까 한 번 논다. 이것이 어마어마한 물자가 동원이 되는 것이죠. 인력이 동원되고. 백성들에게는 무지무지하게 피곤한거에요. 앞뒤 맥락이 딱딱 맞죠. 그러니까 하지 말고 청정무위해라. 황제가 자주 나다니는 것은. 보통 황제가 나다닌다고 할 때 밤에 월담하는 경우는 있죠. 성종이 참 많이 했고. 그래서 자식이 몇 명인지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이른 바 민정을 살피기 위해서 다녔던 것. 강희제, 용정제 그 황제들(청나라)이 그랬죠. 이 당시에는 못나가요. 나갔다가는 칼 맞아 죽기 십상이죠. 안정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나갑니까.

나간다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동원이 있는 것이고 지난번에도 한 번 얘기를 했지만 홍루몽이라고 하는 소설의 첫 배경이 그 집안의 딸이 황후의 후궁 가운데 한 사람이 됐어요. 그 후궁이 친정나들이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와서 잔치하고 가면 되잖아요. 대관헌이라고 하는 엄청난 공사를 지어서. 한 번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서.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후궁이 그러할진대.

황제가 자주 들락날락 거린다. 아주 아주 곤란하죠. 이화원을 한 번 가보시면 그런 걸 쉽게 느낄 거예요. 이화원이라고 하는 데가 맨땅을 파서 호수를 만들고 판 땅 흙을 가져다가 산을 만들어서 그 위에다 세운 것이지 않습니까. 올라가보면 사방이 다 뚫려 있기 때문에 다 보여요. 지금은 고층건물들이 꽤 있어서 안 그렇지만. 대단한 일이라는 거죠.

도대체 내가 한 번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백만명 단위의 규모가 가서 삽질한다. 불도저가 아니라. 그런 걸 한 번 생각해보시라는거죠.

불호출입유오不好出入遊娛 이것은 백성들이 박수치는 일이에요.


▲ 우민화 정치

비록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雖有甲兵, 無所陳之.)
㈜ 천하에 원한이나 미워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無怨惡於天下.)

이것은 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천하 백성들에게 원한 사거나 미움 당하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은.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주체가 치자, 황제, 제왕에게 몰려 있어요. 백성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수레타고 다니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것은. 왜. 내가 한 번 행차하면 피곤하니까.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노끈을 묶어 사용하게 하라.(使民復結繩而用之)

이 주석이 굉장히 어떤 소박주의 뭐 그런 것들로 해석되는데.

㈜ 겉꾸밈을 버리고 질박함으로 돌아가니, 신뢰가 있어 속임이 없다.(去文反質, 信無欺也.)

여기서 문자의 사용을 폐기하라 이렇게 해석을 하면 곤란합니다. 그건 안되는거에요. 왜. 행정은 문자 없이는 안되요. 기록 없는 국가, 정부는 있을 수가 없죠. 기록의 누적은 기본적으로 국가로부터 파생되니까.

여기에서 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백성들에 대해서. 즉 기본적으로 우민정치에 대한 얘기죠.

대한민국이 시민의식이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문맹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현실하고 분명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라고 하는 것은 내용이잖아요. 그러니까 교과서를 가지고 서로 개정하겠다고 서로 다투고 하는 일들이 왜 일어나겠어요.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 그 문자를 통해서 얻는 지식의 취득뿐만 아니라 거기에 온갖 문화적인 행동양식들이 집약되어있기 때문에.

그래서 요즘 인문학 서적이 안팔린다라고 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인문학이 미래가 없다라고 하는 것과 맞물린 커다란 사건이에요. 저도 이제. 책 얼마 쓰지도 않았고. 주로 남들이 잘 안 읽는 논문들만 써서 그렇긴 하지만.

저는 우리 사회에서 제일 빨리 없어져야할 병폐 중에 하나가 대중서하고 학술서를 구분하는 관행이 빨리 사라지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리고 학술서를 교재로 쓰고 일반 비전공자들에게 읽히도록 강요하는 문화. 과거에 그렇게 수업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들은 권위주의 방식이 아닌가.

물론 학술 세미나나 강연, 강의 자체가 서비스업이라고. 저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분류가 되요. 그것은 동아시아 정서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거죠. 하지만 그렇다라고 하더라도 학자가 학자인 까닭은 자신이 고생해서 얻은 걸 너도 똑같이 한 번 고생해서 읽어봐 !하면 곤란하잖아요. 학자가 있는 까닭은 소화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자인데. 그렇잖아요.

학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쓴다. 물론 철학이든 문학이든 단계가 높아져서 자신이 생각한 창조적인 사고를 정치학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엄밀한 표현들을 요구되는 경우가 많아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책들이라든지 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나온 것들이죠.

우리 스스로가 독자들이 〈순수이성비판〉왜 옛날에 철학과 다니는 선배들이 꼭 그런 장난을 쳤다라고 하더라고요. 버스 타고 지하철 탈 때는 꼭 독일어판 원전 칸트 순수이성비판을 딱 들고 다니고. 그 다음에 미대나 이런 데 예술대 다니는 여학생들 특히. 한글책 안갖고 다녀요. 꼭 외국그림책도 반드시 원서로 갖고 다니더라고요. 큰 책.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꼭 그렇게 봐야되나. 한국 사람이 쓴 책. 조금 아쉬운 것은 한국의 독자들이 아직도 외국 책들 번역한 책들에 대해서 더 권위를 부여하고 선호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우리 학문을 망치는 것일뿐더러 우리 학문자체가 학자들 이전에 우리 사회의 교양이라는 것 상식 자체가 식민화된다라고 하는 현실하고 그대로.

소고기 수입하고 뭐 수입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죠. 외국책을 번역해서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계속 현실을 진단하는 방식으로 읽는다라고 하는 것은 학자든 누구나 다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그네들의 눈으로. 물론 우호적인 사람있고 좋은 사람있어요. 하지만 진보니 보수니를 떠나서 외국책에 대한 선호는 기본적으로 근본적인 식민주의, 식민주의학문의 뿌리가 만연되어 있다라고 보는 징조라고 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 학자가 쓴 글이 모자라잖아요. 하 우리나라 학자는 이래서 안되. 이것이 아니라 좋은 부분은 인정해주고 모자란 부분은 비판해야죠. 하다보면 비판을 먹으면 다음번에는 쪽 안당하려고 잘 쓰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쪽팔리다. 그것만큼 학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없거든요.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는거에요. 사실. 저도 강의 준비해오는 것이 뭐냐면은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 혹시나 어려운 질문 나오면 어떻게 피해갈까 작전까지 짜서 오죠.

대표적인 장난 중에 하나가 예전에 한자를 쓰다보면 예전에는 다 손으로 원고를 쓰니까 상관없었는데 지금은 다 워드로 해서 고르잖아요. 안쓰니까 손에서 기억이 빠져나가고 눈으로만 구별이 되요. 되게 쉬운 글자도 안되요.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여러 선생님들이 모여서 경합을 벌인거에요. 자기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그래서 막 쓰다가 하나가 생각이 안나니까 갑자기. 아주 유명한 선생님이에요. 딱 이렇게 하더니 F9. 키보드에서 F9누르면 한자가 뜨잖아요.

이런 일들이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래서 어떤 어학을 갖고 승부하는 그런 시대 아니고.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 차원이 학자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모든 차원에서 마찬가지로 조금 통용되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하상공 주석은 철저하게 그 당시의 현실문제와 씨름하는 방식으로 주석이 이루어졌다. 왕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것은 훨씬 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안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것뿐이죠.

왕필도 마찬가지로 철학적 사상적 맥락 속에서는 당시의 용어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백성은’하고 주어를 밝혀줬습니다. 번역이 참 좋아요. 이석명 선생님이 번역한 책인데 〈노자도덕경하상공장구(동양편)〉이것이 두 세가지가 나와있는데 이것이 번역이 상당히 좋으니까 이것을 참조하시면 크게 사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거에요, 거의.

(그러면 백성은) 자신의 밥을 달게 여기고(甘其食)

저는 여기는 다른 방식의 뉘앙스를 달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큰 문제가 없으니까 그대로 나갑니다.

㈜ 자신의 나물밥을 달게 여기고, 다른 백성의 음식을 빼앗아 먹지 않는다.(甘其蔬食, 不漁食百姓也.)

자신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美其服)
㈜ 자신의 나쁜 옷을 아름답게 여기고, (남의) 화려한 옷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美其惡衣, 不貴五色.)

자신의 거처를 편안히 여기고(安其居)
㈜ 초라한 오두막을 편안히 여기고 화려하게 꾸민 집을 좋아하지 않는다.(安其茅茨, 不好文飾之屋.)

자기네 풍속을 즐기게 된다.(樂其俗)
㈜ (자기 동네의) 질박한 풍속을 즐기고, (딴 곳으로) 옮겨가지 않는다.(樂其質朴之俗, 不轉移也.)

이 구절들은 사실은 별 얘기가 아니에요. 뭐냐하면 안보여주면 몰라요. 20세기 자본주의 사회 꽃을 광고라고 하죠. 그러면서 광고가 20세기 자본의 꽃이라고 다 얘기를 해요. 그러면서 비판적인 소비자연대 이런 데 가면 광고를 믿지마라 광고는 뭐 안하고.

그래서 요즘 나오는 얘기가 스타들의 신체를 우리가 소비하는 것이다. 연예인의 무엇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프랑스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관한 많은 비판 담론들을 성숙시켜놓지 않았습니까.

모르면 못사요. 그렇죠. 달리 말하면 이 속에는 상당한 정도의 우민화정치가 들어있는건데 사실은 우민화라고 하는 말이 우리가 볼 때는 아주 안좋은 말처럼 생각되지만 이 당시에는 사실은 정치적 필요이기도 하고 중립적인 면도 있습니다. 분명히.

물론 오늘날 우민정치 옹호한다. 그것은 곤란하죠. 그것은 당연히 말도 안되는 얘기라면 이 당시에 이런 방식의 표현들은 실질적으로 누구를 향한 것인가. 백성의 범주 속에 4계급까지 포함시킬 것인가 아닐 것인가. 이런 방식의 것들을 고민하며 생각한다는 것은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어요.


▲ 소국과민의 낭만적 해석의 한계

(그 결과)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소리 개소리 서로 들려도
㈜ 서로의 거리가 가깝다는 말이다.(相去近也)

백성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고가지 않는다.(民至老死不相往來.)
㈜ 백성에게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其無情欲)

라고 하면서 나온 얘기가 정욕입니다. 이 정욕이라고 하는 말은 여기에서 무슨 맥락이냐면 하상공 주에서는 정욕이라고 하는 표현이 기를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맑고 좋은 기를 받은 사람들은 현인이나 성인이 되고 혼탁한 기를 받은 사람들은 일반 서민, 백성들이 돼서 자기들의 정욕을 다스릴 줄 몰라요.

그래서 성현이 백성들을 다스려야 된다는 근거방식도 여기에서 그대로 나옵니다. 기氣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방식이 아니고 그런 방식에 있어서는 이것은 정치적인 용어가 되는 것이죠.

달리 말하면 현실적인 신분체계를 자연학적으로 근거지어 준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이것은 이정호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가치존재론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존재론이라고 하는 것이 형이상학적이고 자연철학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철학은 상당수가 이것이 왔다갔다 합니다. 특히 기가 이기론과 붙어서 이야기할 때는 기질변화론 같은 것 얘기할 때 안 된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러한 도덕적인 담론이 과학화로 성공한 특이한 아주 특이한 사례가 바로 사상의학같은. 전세계에 없습니다. 그와 비슷한 건 있다라고 하지만 그건 말도 안되는 얘기고. 사상의학은 굉장히 이상한 방식의 과학이에요. 철학이기도 하고. 실효적인 효과를 보니까요 실제로.

그래서 최근에 보건복지부에서 입안한 정책 중에 하나가 사상에 의한 기질. 팔상으로 나누는 분들도 있죠. 팔체질. 그것을 유전적으로 DNA 연구. 유전자 연구를 통해서 기질적인 차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연구하겠다 라는 게 나와서 상당히 2,000억 규모까지도 얘기가 됐다가 지금 실효가 됐는지 모르겠는데. 10년 단위로 해서. 실제로 의학하시는 분들이 말도 안되는 얘기다. 기하고 유전자를 연결시키겠다.

어쨌든 그와 같은 방식으로 뭔가가 이루어질 정도로 사상의학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아직 설을 풀 수 있는, 현대적으로 용어를 표현하거나 체득하지 못해서 거기까지는 이야기를 못하겠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이웃나라가 서로 보이는데도 안간다 못간다 늙어죽을 때까지. 그러면 아주 쉽게 생각하세요. 갈 필요가 있는데도 못가거나, 아니면 아예 못가게 해서 못가거나. 두 가지예요.

단순한 것은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거든요. 그러면 뒤엣것은 이상적인 것일 수도 있겠고. 그런데 적어도 표현이 인국인데 이 때 국이 얼마나 작길래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요. 이것은 마을 단위를 얘기하는 것이겠죠. 기본적으로.

그럼 앞에 것이랑 뒤엣것이랑 잘 안 맞는 말인데 사실은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어요. 접경지대에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행정적인 분계선, 한계선. 가려면 통행증이 필요한 그런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본다면 이 구절은 아주 쉽게 이해가 되죠.

이렇게 보건대 하상공 주석에서 이야기하는 소국과민의 세계는 좋은 나라에요 나쁜 나라에요? 행정적인 발전의 단계로 본다면 좋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시각은 당시의 역사적 필요 특히 치자의 복무하는 담론이고 철저하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분석되고 있다라고 하는 점.

이런 점을 본다면 낭만적인 해석, 이른 바 특히 니담 등으로 이해서 하는 원시적 농경 공동체 이런 방식의 이야기는 나오기 힘들어요. 그리고 왕필의 주석에서도 구체적인 마을의 모습에 대해서는 사실 알기가 힘들었죠.

그런데 왜 이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됐느냐. 바로 그것은 노자가 유행했던 방식하고 사실은 이것과 매칭된 것이 무엇과 연결되어있냐면 노자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유행했던 시기하고 현학이 정치적 담론에서 그와 같은 문화적 담론으로 바뀌는 시기하고.

또 하나는 남쪽지역 강남이 개발하던 쪽하고 급하게 매칭이 되고. 또 한가지는 지식인 사회가 분열되기 시작하면서 은일자들이 대거 출연합니다. 위신시대에. 그 대표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가 시인 도연명이에요. 그래서 지금 여러 분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소국과민의 이미지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들어있는 이미지를 갖다가 중첩시킨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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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화원기와 노자 해석의 가능성


▲ 도연명과 도화원기

도연명이라고하는 사람은 376년에서 396년 4세기를 살았던 사람이에요. 왕필로부터도 이미 100년이 훨씬 멀어져 있습니다. 249년에 왕필이 죽었으니까. 그 때는 언제냐 동진시대에서 넘어가는 때이고.

이 동진이라고 하는 시대는 특히 신화학을 하는 분들한테는 굉장히 기억에 남는. 왜냐면 신화에 관한 자세한 기록들이 담긴 문헌들이 대거 출현하는 시대가 이때예요. 東晋 이 시대가.

그런데 문제는.〈도화원기〉에서 진나라도 나오고 하는데. 秦 진시황의 진자죠. 이 진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동진시대라고 하는 것은 남북조시대라고 하죠. 또 한 편으로는 5호16국시대니 뭐니 해서 북쪽은 그 이민족들이 왕조를 수도 없이 번갈아가며 세웠던 데고 남쪽은. 중원지역에 있던 지식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남쪽을 장악해요.

그 첫 발판을 만든 게 누구냐면 삼국시대 오나라에요. 오나라가 건강에 자리를 잡죠. 건강이 어디입니까 지금의 남경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오나라가 북쪽의 위나라나 서쪽의 촉나라보다도 약했었는데 약할 수밖에 없는 게 이민정권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통치기반을 거의 마련을 못했어요. 이것은 계속 이어집니다.

위나라를 무너뜨리고 진나라가 섰다가 진나라가 이민족에 의해서 밀려나면서 강남쪽으로 내려온 것이 동진이죠. 이 시대에는 동진을 이민정권이라고도 하고. 강북의 권문세족, 사대부 이런 사람들이 내려와서 그 쪽에 있었던 남쪽 본래 있었던 토착 지식인 세력, 사대부 세력들과 공조를 해요. 그래서 세운 정권들이 이런 정권들인데.

차츰차츰 토착 세력들을 몰아내고 본래 북방 출신의 권문세족들이 다 요직을 장악하고 구품관인법 같은 것 얘기했죠. 이 당시에 관리 등용법이 그것이니까. 자신들의 귀족 서열들을 매겨놓고. 이 때 귀족들의 세력이라는 것은 대단합니다. 황제가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자기 나름대로의 세력도 있었고.

이 당시 경제적인 방식은 장원제도에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장원들을 소유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런 걸 바탕으로 해서 엄청난 사치를 했고 축첩을 하고. 어떤 사람은 한 끼 식사를 할 때마다 만전을 들였다고 해요. 만전. 그리고 가장 많은 축첩을 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첩이 몇 명이냐면 3,000명. 이 당시 첩 개념은 그 집에서 잡역을 하는 일꾼들 노비들 다 포함해서 첩의 개념에 소속되요.

그래서 이 사람이 밤에 지나가던 어여쁜 자기네 집안 여인과 자식을 낳잖아요. 그래서 재상이 된 사람이 꽤 있거든요. 재상집 방문했다가 어미가 음식 수발을 들고 했다가 욕을 먹었다가. 그러면 내 어머니인데, 네가 내 어머니를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느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당시에 아주 독특한 기풍이 있어요.

그것을 표현하는 말이 죽림칠현인데. 죽림칠현은 이상하게 실제내용하고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최근에 나온 책들 보시면 아시겠지만 죽림칠현들이 왜 서럽게 울다 죽고 했는지가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라고 하는 것을 밝혀낸 책들이 있는데.

도연명도 마찬가지로 원래는 이 집안이 강남의 토착 귀족 가운데 하나에요. 건국공신 가운데 하나에요. 북벌 세력들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면서 남쪽 출신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몰락해가는 귀족이 되는거죠. 그러다보니까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데.

이 사람은 귀거래사 등등 귀원전거 이런 식의 한 150수 정도를 남겼다고 하는데. 시인으로 굉장히 유명하죠. 아주 유명한 시인인데. 이 사람이 쓴 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시들 몇 개가. 시를 제외하고 산문 쪽에 가까운 것이 〈도화원기〉하고 〈오류선생전〉. 자기네 집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 심어놓고 살던. 그 다음에 현대 중국 철학자 가운데 풍우란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 집 앞에 북경대학교 내부에 숙소 앞에 소나무 세 그루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양반의 전집 제목이 삼송당전집이에요. 그런 것들이 다 옛날 문인들의 전통이거든요.

이 사람이 도화원기라고 하는 내용을 썼는데. 이것은 조금 길더라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맥락들을 잘 염두에 두면서 보세요.

진(晉) 나라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376-396) 연간에 무릉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무릉이 도화원 혹은 세외도원, 무릉도원 있었던 곳이냐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무릉 사람이죠. 이 사람 출신이 본래 무릉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은 무릉이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무릉도원이 있는 곳이 어디냐를 놓고 서로서로 싸운다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요즘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있죠. 張家界. 그 다음에 여산계곡에 있는 康王谷강왕곡. 이것이 대표적으로.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은데. 박한재 선생님이 이 시대를 전공한 분이에요. 역사기행이라고 해서 실제로 가서 1,2,3권으로 나와 있는데. 2권이 강남의 낭만과 비극이고 네 번째 챕터가 도연명을 다루고 있어요. 제가 장가계의 풍광을 보여드리려고 갖고 왔는데. 비경이죠.

중국 사람들이 치는 산 중에 천하명산이라고 하는 것이 경치를 치면 황산을 쳐요. 그래서 황산을 가봤거든요. 조선족 안내인이 자랑을 하길래 이런 산이 한국에도 있느냐. 그랬더니 설악산보다 못한데. 그랬더니 기분 상해하더라고요. 자존심을 건드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실제로 가보니까 좋지만 설악산도 좋고 금강산은 제가 못가봤어요. 하여튼 경치가 이 장가게라고 하는 주장도 있고.

강왕곡은 강왕곡 사진은 안나와있고 다른 것이 나오는데. 이 책을 보시면 그런 얘기들이 잘 나와요. 제갈공명도 태어났던 곳하고 어디하고 해서 서로 유적지를 뺏어가려고 싸우고 도연명도 태어난 곳하고 생활했던 곳하고 무덤 있는 곳이 달라요. 구강현 하고 시상현이 기념관을 서로 가지려고 싸우고. 결국 구강현이 경제력이 좀 앞선데요. 그래서 이겨서 기념관이 그 옆에 있답니다. 가보면 실제로 알 수가 없는 일들이 많은데.

도화원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는 물길을 따라 갔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를 무렵 홀연히 복숭아꽃 숲이 눈 앞에 나타났다. 양쪽 강을 끼고 수백 보의 거리에 온통 복숭아나무뿐이고 다른 잡목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향기로운 풀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자랐고, 복숭아 꽃잎이 바람에 날려 펄펄 떨어지고 있었다.

복숭아나무 꽃이 즐비한 풍광 보신 분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벚꽃보다 아름다워요. 제가 군생활 할 때 사택같은 데서 한동안 근무를 했었는데 그 앞에 복숭아 과수원이었거든요. 진짜 풍광이 끝내줬어요.

숲은 강 상류에서 끝났는데, 그 곳에 산이 있었으며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속으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즉시 배에서 내려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처음에는 몹시 좁아 간신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십 보를 더 나가자 갑자기 탁 트이고 넓어졌다.

이 얘기가 왜 가능하냐. 여기가 어디냐면 양자강 하류에서 조금 올라가면. 삼국지 보시면 자주 나오는 파양호 라고 힜죠. 특히 오나라 군대가 수중훈련을 했던 곳이 파양호거든요. 파양호가 있으면 바로 옆쪽에 지역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도현명이 주로 생활했던 시상현이 있고 구강현은 이 위쪽에 있고. 북경쪽으로 가는 열차가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고. 그 지역이에요. 달리 말하면 이곳은 습지라는 얘기에요. 곳곳이 습지가 많고.

그래서 우임금이라든가 순임금과 관련된 이른 바 치수사업 설화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에요.

이곳은 정치적으로도 격변기였었고 아직까지 실제 백성들에 대한 정치적 통제나 이런 것들이 거의 없던 시대였고 그리고 산이 많고 물이 많다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숨기 좋다는 뜻입니다.

양산박같은 경우에도 숨을 수 있었던 것이 물로 막혀져있고 요지에서 방어하니까 천의요새니까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와 같은 방식의 지리적 조건들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들어가니까, 동굴을 지나니까.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서도 꽤 나오는 이야기죠. 특히 무협만화 보면 특별한 수련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숨는 데가 폭포수 뚫고 들어가니까 거기 천해의 비경이 있고 그런 것 많이 나오잖아요. 청학동에도 그와 비슷한 것들이 있고요.

토지는 평평하고 넓었으며 집들이 정연하게 들어서 있었고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사방으로 길이 트였고 닭과 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어디서 따온 표현이에요.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는 노자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만든거라는거죠.

이 마을에서 왔다갔다하며 농사를 짓는 남녀의 옷차림은 다른 고장 사람들과 똑같았으며,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다들 즐거운 듯 안락하게 보였다. 어부를 보자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부가 자세히 대답하자, 그들은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을 내고 닭을 잡아서 대접을 하였다. 마을 사람들도 어부가 왔다는 말을 듣고 모두 와서 저마다 물었다.

여러분들의 눈에는 이것이 하염없는 산문인 것처럼 보이죠. 박한재 선생님의 글 속에도 나와있지만. 얼마전에 진인각 선생에 대한 평전이 나왔어요. 이 분이 이것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후에 다양한 논쟁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의하면 이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들어있는데.


▲ 도화원기의 유래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라는 주장하고 하나는 당시에 돌고 있던 설화를 채록한것이다라는 두 가지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은 뭐냐 하면.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이런 식의 마을들이 당시 실제로 있었다는 거예요. 즉 전쟁의 풍화를 벗어나기 위해서 집안 식구들을 다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아니면 조세를 피해서. 세금을 더 이상 낼 게 없으니까. 당시 장원조세제도는 엄청나게 참혹했거든요. 이중삼중으로 내고 했으니까.

그 다음에 또 한 가지는 병역을 피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두 양반의 해석에서 병역이냐 아니면 부역을 피한 것이냐 어떻게 분석을 하냐면.

여기에 보면 남녀의 옷차림이 같았고.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다들 즐거운 듯 안락하게 보였다, 이런 구절을 갖고 분석에 들어가요. 왜냐. 만약에 병역을 피해서 들어간 거라면 이것은 당시의 신분제도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들어갔기 때문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고스란히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분에 대한 차별제도가 여기에도 온전되어있을텐데.

그것이 아니다. 따라서 부역을 피해서 간 동일 신분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해석을 해요.

상당히 설득력이 있죠. 이런 사람들을 보통 월이라고 얘기를 하고 월족에 해당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숨어들어가서 아마도 도연명이 진짜 떠돌다가 지나가다가 봤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이것이 장가계냐 강왕곡이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박한재 선생님은 강왕곡이 최근에 가장 실효성이 높은,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얘기가된다고 소개해주고 계시십니다. 여산 쪽에 있는 명산이죠.

집주인이 말했다.
“우리 선조가 진(秦) 나라 때의 난을 피해 처자와 사람을 이끌고 이 절경으로 와 다시 나가지 않았으므로 결국 바깥 세상 사람들과 단절되었습니다.”

이것이 400몇 년대이니까 5세기에요. 그럼 진나라는 기원전 3세기죠. 800년동안. 그게 아니라 그 앞에 있었던 전진 前秦 이다. 여기에 들어섰던 나라들이 송나라 있고 진나라 있고 제나라 있고 여러 가지 많았던 나라 중에서 秦 나라가 있었는데 秦나라가 가리키는 곳이 여기다라고. 몇백년이 아니라는 거죠. 사실은.

그래서 진인각 선생이 이것이 역사적인, 문학자체가 역사적인 자료로 해석을 하면서 그런 방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해요.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때냐고 묻는 것을 보니 그들이 한 나라가 있었다는 것은 물론 그 뒤로 위(魏) 나라, 진(晉)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하였다.

이 얘기는 이제 이 부분이 강하게 바뀌어서 각색을 한 거라는 얘기죠.

어부가 지난 역사를 하나 하나 이야기해 주자 모두들 놀라며 감탄했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어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술과 밥을 대접하였다. 어부는 며칠을 묶은 후 작별하고 떠났다. 그 마을 사람이 말했다.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마십시오.”

말 하라는 얘기죠. 꼭 얘기가 나와요. 말하지 마십시오 하면 말을 한다는 말이죠.

어부는 마을을 벗어나 배를 얻어 타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군데 표식을 했다. 읍에 이르자 태수를 찾아 그대로 보고했다. 태수는 사람을 파견하여 어부가 표식한 곳을 찾아가게 했으나 결국 길을 잃고 도화원으로 토하는 길을 찾지 못했다. 남양의 유자기는 고결한 은사였다. 그 소리를 듣고 기꺼이 몸소 나섰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그 후로는 다시 뱃길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왜 유자기라는 사람이 나오 냐면. 이것은 중국만의 수사죠. 그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 같은 것과 동일한 방식인데 된 사람만 찾아요. 아무나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사람이 못 찾았다라고 하는 얘기는 아무도 못 찾았다는 얘기가 포인트에요, 사실은.

여기 보시면 이 속에는 상당히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들어가 있는데. 이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소국과민에 대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랑 거의 일치할겁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방식의 논의가. 다른 제가 그 학자 이름을 까먹었는데, 그 학자가 진인각 선생의 설을 비판하면서 이것이 도원명이 지어낸 것이라기보다는 당시에 돌고 있던 민간 설화를 각색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태평광기나 태평어람같은 다른 몇몇 책에도 이와 같은 비슷한 전설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훨씬 더 각색이 덜 된 상태로 나오는 것을 보면. 도연명판 기록, 구전설화에 대한 기록으로 보는 것이 훨씬 합당하다. 이와같은 방식의 비판도 있었다 라고 하는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요는 무엇이냐면 이 속에는 위신시대 지식인의 꿈이라고 하는 제목을 박한재 선생이 붙였던 것처럼. 이것은 이른바 은일적인 정서고.

여기에서 말하는 소국과민의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 한나라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동진시대 이후, 삼국시대 이후부터 계속 이어지는 전란의 시대에 이른 바 충분하게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한 혹은 은인의 길을 선택한 어떤 지식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아르카디아적 이상향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이죠. 아르카디어적인 것은 전원적인 것을 뜻합니다.

토마스 모어가 말하는 유토피아라는 말은 합리적인 제도와 기획,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낙관 그리고 현실을 점차 개선함으로써 미래에 도달하게 될 이상향을 보통 유토피아라고 불러요. 이것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르카디아라고 하는 것은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서사시에 처음 나오는데 이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과거로의 복귀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아까 노자할 때. 동아시아 이상향들의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고를 이야기하지만 그 고가 어떤 경우에는 유토피아적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아르카디아 적일수도 있어요. 이와같은 모습이 노자에 보태어짐으로써. 즉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자라고 하는 책이 단순히 한나라때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하상공 주석과는 다른 방식의 전유가 왕필이란 사람에 의해서 발생이 되고 또 거기에 도연명의 이야기들이 보태어지는 이런 중첩된 이미지들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가 생각하는 노자에 관한 상 이런 것들이 만들어진 하나의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하상공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갖고 도화원기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까. 거의 불가능하죠. 오히려 조지오웰의 〈1984〉를 상상하는 것이 훨씬 현대적으로 맞는 모습일거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이것은 우리들의 상식이죠.

달리 말해서 2000년의 무게를 걷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죠. 더군다나 특히 과학이라든가 페미니즘같은 것에 관해서 지난번에 살펴봤던 것처럼. 최근의 중첩, 보태어짐까지 있단 말이죠.


▲ 노자 텍스트의 다양한 context화 가능성

그렇다고 해서 제가 노자 사상은 이것이다. 그런 방식의 애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될까 하는 것에 대해서만큼만은 달리 봐야될 부분들이 있다라고 하는것이죠. 현실의 문제를 과거의 텍스트에 적용해서 읽으려 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마음.

그리고 그것이 당시에 이러이러하니까 하면서 때때로 어떤 글들을 보면. 과거에 이랬기 때문에 하면서 찬양하는 방식이 반시민적이고 반민주적인 가치까지도 옹호하는 방식의 담론인 경우가 많아요. 특히 동양학 담론이 그 부분에 있어서는 권위주의적인 담론을 탈피하지 못해서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는 측면도 상당히 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도가의 논의는 오히려 굉장히 폭력적이고 바람직한 방식으로 생각되지 않는 언급마저도 다른 것들과 같이 뭉뚱그려져서 좋은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다고 노자를 이렇게 저렇게 혹은 나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마구잡이는 아니었을지언정 자기들의 시각에 따라서 텍스트를 편집했다.

특히 조선조에 율곡선생이 순언이라고 하는 노자주석서를 낼 때 편집했단 말이에요. 마음에 안드는 권모술수적인 내용들은 빼고 형이상학적이고, 유가 성리학적인 것과 맞는 부분들을 엮었단 말이에요.

그러면 노자를 원본을 추구하는 방식에 목 매달 필요 없이 우리 나름대로 노자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왜 못합니까. edition을, version을 가질 수 있죠.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전통들에 대해서 너무 함부로 해요. 중국 사람들은 중국 텍스트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찢어서 책 막 내요. 한국에서 그런 텍스트 작업을 하면 니가 뭔데. 한문을 참 잘 아나.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단 말이죠.

그런 것들이 바로 권위주의라고 하는 것이죠. 텍스트는 context. 텍스트를 묶어놓으면 콘텍스트 아닙니까. 그럼 그 때 context하고 내 context하고 같을 이유가 없죠. 안좋은 것 빼. 좋은 것을 끼워 넣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사실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의 요체는 왕필의 정신을 이어받는거에요. 노자가 하상공의 방식으로 읽을 때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나름대로의 처세술적인 요소도 있지만 왕필이 남겨놓은 유산은 그 이후에 다른 전통과도 연결되는 부분들도 많고. 문화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고.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사실은 유가적 권위주의를 살짝 빼면서 덧보탠다면 조금 더 나은 방식의 노자 텍스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저는 그래서 환치라고 하는 말을 쓰고 싶은데. 하상공 단구에서 말하는 제왕 대신에 저는 개인을 집어넣고 싶은 겁니다. 제가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이라고 하는 책을 쓸 때 군자, 소인을 약간 과하게 해석을 해서 바꾸기도 했지만 상당히 일상적인 거거든요. 그리고 저의 생각을 쓴거에요.

어떤 분이 어느 사이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서점 서평에다가 그래, 너나 소인처럼 살아라 라고 썼더라고요. 너나 소인처럼 살아라가 아니라 이미 소인이고, 소인처럼 살고 있어요. 소인이 된다라고 해서 억울할 것도 없는데 한 번 우리가 의심해볼 것은 그런 것이란 거죠.

우리가 누구나 다같이 논어를 읽을 때는 전부다 자기를 군자랑 동일시하잖아요. 그럼 노자를 읽을 때 나를 제왕과 동일시해서 읽자는 것이죠. 제왕이 움직이는 정치의 장이 청와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시민이라면 시민적 정체성으로 그와 같은 정치적 술수를 이용할 수도 있어야 되고. 속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른 바 바꿔치기 독해도. 그리고 그것은 아주 효과적인 텍스트를 읽는 전술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은 학자들에게 정말 과도한 개념적 해설, 논리적 정합성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은 어려운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이 사람이 과연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는 듣지 않고 앞에서 한 얘기랑 뒤에서 한 얘기랑 논리적으로 안 되네, 그 사람이 주장하고 크게 상관이 없는 논리적 모순관계를 지적하면서 그 사람의 학문자체를 누르는 방식의 것들이 너무나 많이 팽배해있어요.

정작 우리가 이야기할 것은, 도대체 저 학자가 우리들에게 나에게 심금이 닿는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 지금 여기에서 하상공의 이야기는 별로 저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왕필의 것은 상대적으로 많이 울린다는 거예요. 그러면 울리는 것을 갖고 와야지.

따라서 기존처럼 왕필이 천하명주이기 때문에 최고의 노자주석서이기 때문에 반드시 노자적으로, 그런 것과는 다른 방식의 것이죠. 그것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우리의 삶의 결과 만날 수 있는 삶의 결이 그들에게 있었는가를 맞추는 작업. 저는 그런 표현을 중첩이라고 표현을하고 싶은데.

나의 삶이 만나는 것. 저기의 삶이 만나는 것. 그런데 이 삶이 섞이지 않습니다. 지층이 왜곡되지만 산다는 것이 종이를 쌓아두면 어그러져도 뒤틀리거나 하는 일은 있지만 섞이지는 않거든요. 제가 다른 사람의 인생과 섞이는 것은 힘듭니다. 제가 아무리 제 집사람하고 30년 50년 해로한다고 해도 종이 두 장의 관계에요. 그것을 다시 물에 풀어서 펄프로 한 장으로 만들 수 있느냐 몸이 두 개인데 됩니까. 불가능하잖아요.

근대가 만들어낸 담론은 모든 인간에 대해서 펄프처럼 풀어서 만들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거에요. 아마도 그런 점들이 이른 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반대하는 건데 차이의 철학이지 않습니까.

그런 차이의 철학에 대한 자세가 사실은 유가전통에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이른 바 이와같은 도연명 같은 이런 방식의 담론들이 융성되면서 이것은 도교전통과 가깝죠. 도교전통하고 만났던 지점의 장에서의 담론들이 상당히 다채로운 방식의 해석들을 내어놓았거든요.

저는 그러한 방식의 전통들하고 연결시키는 새로운 개인 개념. 원자론적 개념도 아니고. 따라서 근대적인 인권. 특히 동아시아 담론을 얘기하면서 관계적 자아라고 하는 표현은 어떤 딜레마에 빠질 수 있냐면. 서구에서 인권을 보장하라 하고 중국에 대해서 북한에 대해서 강요하지 않습니까. 북한이나 중국이나 이 쪽 학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현실적 이유들을 얘기를 해요.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자체를 보장하라는 논의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것 자체도 문제입니다. 그러면 그와같은 것들을 해소할 일들은 바로 학자들에게 어떠한 개인을 이야기할 것인가.

적어도 제가 보기에 프랑스 철학에서 개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담론은 너무 어려워요. 철학공부를 하는 제 입장에서도 말을 들어보면 비슷한 것 같은데, 도무지 모르겠어요.

동아시아의 담론이 훨씬 더 쉽고 우리 전통과의 화해를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저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작업도. 오늘에서야 비로소 처음 얘기하지만 노자, 혼돈으로부터의 탈피라고 하는 말 속에 들어있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과거에 노자가 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좋은 얘기 나쁜 얘기를 고르겠다. 그리고 학문적 근거가 있는 것하고, 그것은 어디에 있고 하는 것들을 밝혀보겠다라는 뜻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시간 얘기를 하기로 했는데 할 시간이 안 되네요. 시간 얘기는 차후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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