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2018년 09월호성경 속 ‘희년’이 무엇이고,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까요?글 신상목
지난 3월 26일 청와대가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는 이른바 ‘토지 공개념’이 포함됐습니다. 문구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써.’ 여기서 토지의 공공성은 토지 공개념을 말합니다.
토지 공개념이란 토지의 개인적 소유권은 인정하되, 이용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자는 것으로 토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현행 헌법 제23조 제3항 및 제122조 등에서도 토지 공개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원래 토지 공개념은 성경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레위기 25장 23절 말씀인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헨리 조지가 이를 설파했고 국내에서는 예수원 설립자인 대천덕 신부가 이를 확산시켰습니다.
그런데 토지 공개념 안에는 희년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희년이란 50년마다 빚이 탕감되고, 팔렸던 자신의 땅과 집과 몸을 회복하게 되는 해를 의미합니다. 레위기에서는 토지의 영구 매매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매매를 할 수 있는데 최장 50년이 지나면, 즉 희년이 되면 토지를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돼 있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레 25:23)라는 구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희년 제도
희년은 오늘의 사회 경제 원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토피아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 하나님 나라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 전체를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희년은 히브리어로 ‘요벨’인데, ‘뿔 나팔 소리’란 뜻입니다. 나팔을 불어 자유의 기쁨을 선포하는 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방의 해로서, 모든 노예가 자유를 얻고, 모든 소유가 원주인에게로 되돌려지며 모든 땅은 휴경하게 됩니다(레 25:10). 현대 영어에서 ‘환희’, ‘축제’를 뜻하는 ‘주빌리(jubilee)’란 말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희년은 안식년(7년)이 7번 행해지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50번째 해입니다. 다른 말로는 ‘대안식년’이라고도 부릅니다. 안식일이 7일을 의미하는 것처럼 7은 하나님의 완전수입니다. 7년씩 7번이 지나고 나면 그다음에 희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희년은 쉽게 말해 ‘리셋(Reset)’, 즉 모든 소유의 원상 복귀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희년 제도가 실제로 지켜졌을까요. 여기엔 논쟁이 있습니다. 성경에 준수했다는 기록이 없어서 희년은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측과 희년의 정신에 따라 지켜진 증거들이 있다고 보는 주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다만 솔로몬 이후 왕정시대에는 확실히 희년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 견해입니다. 왕이 백성들의 땅을 장악하게 되면서 초기의 땅 분배 개념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21장의 나봇 이야기는 군주가 자신의 땅을 넓히려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전문가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희년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뜻은 구약시대 사람들이 희년을 준수했든 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실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태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희년의 현대적 적용
그러면 현대에서는 희년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빚 탕감 운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경제의 글로벌화, 시장 경제화가 촉진되면서 양극화 현상은 극심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10년 이상 채무국의 채무를 삭감해 주자는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의 NGO들이 ‘주빌리 2000’이라는 연합체입니다.
이들은 세계 160개국에서 받은 1700만 명 이상의 서명을 1999년 6월 18일 독일 쾰른에서 개최된 제25회 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각국 정상에게 전달하고, 남북문제와 빈곤국의 채무 문제에 관한 심포지엄 등을 개최했습니다. 이들은 정상회담의 폐회 성명에서 중채무국의 채무 총액 1300억 달러를 절반 이하로 감소시킬 것을 제안한, 이른바 쾰른채무이니셔티브를 채택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세계 최빈국의 부채를 탕감하고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자는 국제 연대운동인 주빌리 2000은 바로 희년에 기원을 둡니다. 이 운동은 1990년 아프리카 교회위원회가 아프리카의 빚을 탕감해 줄 것을 촉구하면서 발단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는 1996년 각국 NGO와 종교, 인권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국제적인 연대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주빌리 2000은 해외 협력을 통하거나 각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각국 정부의 정책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빚 탕감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2015년 출범한 주빌리 은행은 장기 연체 중인 부실 채권을 매입해 소각해 왔습니다. 소각한 개인부실채권을 싼값에 사들여 채무자들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주빌리은행은 부실채권을 소각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눈앞에서 빚을 날려버리는 행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희년 정신을 이어받은 만큼 교회에서도 빚 탕감 운동에 참여해 부실채권을 구입하는 데 기부하기도 합니다.
통일의 염원으로 이어지는 희년 정신
통일 운동에도 희년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분단된 남북이 희년을 선포하며 하나 되자는 염원입니다.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기도회를 열고 있는 주빌리 통일 구국기도회가 그것입니다. 지난 2004년 3월 5일부터 매주 목요일 기도회를 열었고 지난 7월 5일엔 700회를 돌파했습니다.
주빌리 기도회는 원래 ‘(한국교회) 부흥을 위한 연합기도운동’이 그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으면서 북한을 향한 기도에 힘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유산이 북한교회로부터 전수됐고 북한의 회복은 한국교회 갱신의 열쇠가 된다는 깨달음에서였습니다.
이듬해 기도회는 ‘주빌리 연합기도운동’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빌리’라는 이름처럼 희년을 꿈꾸며 북녘 동포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주빌리 통일구국기도회는 2011년 3월 3일 31개 통일선교단체가 교단과 교파를 뛰어넘어 마음을 모아 재출범한 것입니다. 당시 기도회에서는 “통일은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천명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탄원과 경외가 깔려 있습니다.
분단 70년을 맞은 올해 통일을 위한 기도의 열기는 더욱 높았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만에 귀환 명령이 떨어져 무너진 성전 벽을 재건한 것처럼 한국 민족도 70년 만에 통일을 이루어 무너진 나라의 성벽, 무너진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자는 심정이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일까요. 올해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 정세는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제50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희년이 등장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주제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조찬기도회 역사 50주년을 언급하며 ‘희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는 “약자는 속박으로부터, 강자는 탐욕으로부터 해방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성경 속 희년”이라며 “포용과 화합의 정신이 희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대북특사단의 평양 방문으로 비롯된 화해 분위기 속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희년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최근 신학계에서는 공공신학, 복음의 공공성 등의 주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복음은 개인 구원에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 사회와 공적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희년 정신은 복음의 공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희년을 선포할 거리는 없는지 찾아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