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4

알라딘: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1,2

알라딘: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 약속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 약속 - 해병대에서 신학원까지  |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1  
김경일 (지은이)쇠뜨기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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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81쪽

목차
프롤로그

1부_____나의 해병대 시절

1. 안경을 껴도 해병대 13
2. 변비는 젓가락으로 17
3. 특수부대에 안경은 안 돼 21
4. 제대 말년 병장의 탈선 23
5. 드럼통처럼 구르다 진해훈련소 수료 26
6. 너희는 잔칫날 돼지 29
7. 곡괭이 자루는 마술몽둥이 31
8. 이별 앞에 소녀처럼 우는 소대장 35
9. 졸보기는 서러워 38
10. 산천초목도 떠는 해병대 예비역 41
11. 대못은 손으로 박아야 제 맛 46
12. 기독교인이 되어야겠다 50
13. 졸병부터 선착순 55
14. 포크로 파리를 잡냐? 60
15. 하극상에 배빠따 67
16. 일곱 번 기절하고 돌아온 소대장 74
17. 작전참모 약혼녀를 즐겁게 하라 78
18. 졸하사, 제 머리를 돌로 치다 81
19. 해병대의 가을 체육대회 84
20. 나 살고 싶어 87
21. 쌍둥이 가수의 위기탈출방법 91
22. 연평도 겨울바다는 옴도 녹인다 95
23. 적함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나날 97
24. 소대에서의 마지막 식사 103
25. 분노조절장애 109
26. 해병대 트라우마 115
27. 도피처가 된 연극반 121
28. 수상 관상 사주 124
29. 위험한 술집 순례 127
30. 성경구절이 춤을 춘다 130
31. 총장 사퇴 주역 134
32. 긴급조치 복학생 백남기 141
33. 성공회 전국청년연합회 회장당선 156
34. 하느님이 날 데려갈 모양이다 163

2부 교회 개혁 이야기

35. 대한성공회 신학대학원 입학 181
36. 신학원 동기 이춘기 189
37. 서대문 경찰서 탐방 197
38. 함석헌 선생님을 만나다 210
39. 콘트랄데이타 사건 224
40. 일본에서-1 233
41 일본에서 ?2 245
42. 일본에서-3 254
43. 주교님의 조찬기도회 참석을 막아라 266
44. 어차피 지는 싸움 278
45. 동생 경희의 신학교 입학 288
46. 사제들의 교회개혁운동 가담 293
47. 몸도 마음도 지치고 306
48. 주님의 음성 315
49. 고해성사는 예수원에서 320
50. 이현주 목사님의 공존모임 329
51. 책도둑놈 337
52. 마지막 인사 351
53.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떠나간 친구 360

에필로그 372
추천사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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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프롤로그

2016년 3월 28일 해군참모총장에게서 전자우편으로 법원에서 우리 교회로 소장이 날아왔다. 많은 평화운동가들과 시민운동단체들과 함께 말이다. 당시 ‘생명평화결사’의 임원을 맡고 있던 나와 내가 속한 단체에 대해서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1970년대 하반기에 해병대 졸병으로 제대한 나에게 해군참모총장이 소송의 원고로서 법적으로 말을 걸어온 셈이다. 생명평화운동조직이 ‘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선동하고 방조한 혐의로 피고가 되었다.
이런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자 해군과는 이상하게 악인연이라는 생각이 들며 내 몸 어딘가에서 부터 활화산의 용암처럼 뜨거운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군대 트라우마의 악몽 때문에 청춘의 기억에서 지우려고 몸부림쳤던 해병대 시절의 40여 년 전 과거가 다시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다. 해군참모총장의 손해배상소송으로 말미암아 입대 명령을 받고 입영한 신병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라고나 할까.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다시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갇힌 셈이 되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당시의 끔찍한 상황에 다시 처하게 되는 모험을 치루더라도 정면돌파의 방식으로 시도 때도 없이 일상생활 속에 출몰하는 고질병인 군대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 치유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당시의 일을 글로 써서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도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의 한 방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8개월에 불과했던 해병대생활을 페이스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느낀 놀라운 사실은 까맣게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옛날의 기억들이 여전히 나를 뿌리에서부터 지배하고 있었고 나는 아직까지도 군대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억의 감옥에 갇혀 자유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국가로부터 제대명령은 받았으나 여전히 재입대 명령의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 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핑계라고 하겠지만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폭력적인 언행과 행동 생활패턴은 상당부분 군대생활에 기인한 것이다.

해병대 이야기의 페이스북 연재를 끝내고 나는 자연스럽게 1982년 3월에 신학원에서 만난 내 친구 ‘이춘기’를 기억에서 다시 불러내게 되었다. 같이 살 때는 잘 몰랐지만 그 역시 군대트라우마에 갇힌 채 그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춘기는 광주 상무대에서 병으로 군대생활을 하면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총을 들고 시민들과 대치하면서 직접 몸으로 겪었다. 공수부대에 밀려 쫒긴 시민군들이 도망쳐 모여 있던 조선대 뒷산에서 총에 맞아 죽은 시민군들의 시체 나르는 일을 하며 그는 심한 정신적 내상을 입었다. 소속 군대도 달랐고 겪은 상황과 체험도 달랐지만 동병상련의 관계였던 것이다.
비록 40여 년 전의 옛이야기지만 신학원 동기로 함께 생활한 친구 이춘기와의 이야기를 해병대 이야기 다음으로 이어 쓰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나의 깊은 병의 실체를 만날 수 있었고 또 치유의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이 글은 나의 깊은 내면에 또아리 틀고 들어앉아서 매번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격려와 결단의 용기를 주고 있는 내 친구 춘기에게 바치는 글이다.  접기
에필로그

1984년 12월 17일.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맹렬하게 타는 불이면서 동시에 섬광이 번쩍이는 칼로 존재했던 춘기는 그렇게 거짓말처럼 이 세상을 떠버렸다. 헤어질 때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만나자’던 춘기가 시체로 누워 있는 그 방안! 춘기 부모님과 누나와 친구들이 모두 모여 황망함과 서러운 울음으로 가득 찬 그 공간에서 나는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춘기야. 너 같은 놈이 우리 곁에 살아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록해 이 세상에 남겨주마.’라고. 당시 그 누구도 나의 이 약속을 귀담아 듣지는 않았겠지만 이제 나는 그 약속을 4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지킨다.

진실하고 정직하고 올곧았던 춘기! 피칠갑을 한 민중들이 온몸으로 내지르는 비명과 울음 끔찍한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 일상으로 돌아온 춘기의 역사 앞에서의 몸부림은 우리마저도 뿌리 채 흔들어 놓았다. 자기 개인은 물론 그 어떤 것도 다 무시하고 오직 대의만 생각했던 춘기를 기억에서 도저히 지울 수 없었던 우리는 그의 교회갱신에 대한 불붙는 열정과 뜻을 기리고자 우리가 사제가 되기도 전 떠돌이 생활을 할 때부터 매년 추모미사를 드려왔다. 생때같은 녀석이 한이 맺혀 죽은 탓인지 이상하게도 춘기의 기일에 모이기만 하면 우리는 악령에 휘둘리듯 매번 크게 싸웠다. 20주기가 되었을 때 추모미사를 더 이상 드리지 말자고 어려운 결정을 하기도 했다. 10년을 쉬었다. 그러다 30주기부터 다시 모여 추모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교단내부에 사회의 지탄을 받는 큰 부정이 연이어 터지면서 서울교구 주교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직무정지를 당해 중도하차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왔다. 사제들과 교우들은 교회의 자정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사제와 평신도들이 좀 더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교 탓만 할 게 아니었다. 결국 문제가 된 주교도 우리 교회 안에 있던 우리가 배출한 우리들 중의 하나다. ‘주교의 교회’에서 주교가 주교노릇을 잘 해 낼 수 있도록 주교를 잘 모시고 넘어지지 않게 지탱하는 존재도 실은 사제와 평신도들이다. 교회가 이렇게 어려워진 책임은 사제인 나에게도 있다. 좀 더 잘못되기 전에 직언도 하고 저항도 할 만큼 했어야 했다. 정의감이 가장 강한 나이의 피 끓는 젊은 신학생들과 신학원생들 조차 성명서 하나 발표하지 못하는 이 답답한 현실이 나이 먹은 우리 세대의 책임임을 부인할 순 없다. 무엇보다 평신도들은 이미 교회는 희망이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린 건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그래서 그 옛날 80년대 초 신학원 시절의 ‘이춘기’란 존재를 다시 역사 앞에 불러내게 되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 글은 80년 대 폭압적인 전두환 정권하에서 교회가 민주화와 사회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20대 교회젊은이들에 관한 기록이자 교회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많이 소멸된 이 시대를 향해 길게 쓴 성명서이자 사죄문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간이 갈수록 기록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누구든지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역사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지금 교회의 전반적 현실을 보면 사회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가기는커녕 한국사회에서 지탄을 받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기독교의 본질을 뿌리 채 잃어버리고 민중의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작금의 현실을 기록으로 꼭 남겨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래야 역사에서 또 다시 같은 시행착오를 범하는 우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이 후세를 위해서, 또한 아직 미련이 남은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이라고 믿는다.

부언. 첫째, 해군참모총장의 제소에 의해 제기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손해배상재판은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의 조정으로 별 문제 없이 해결되었다.
둘째, 나의 해병대 이야기에 등장하는 계급이 대령이었던 연평도 부대장은 결국 비리가 드러나서 별을 달지 못하고 이병으로 불명예제대를 했다고 들었다. 아무 반찬 없이 간장에 밥을 비벼먹으면 밥이 목구멍을 타고 도로 넘어온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해 준 그 부대장이다. 10년 전 동창모임에서 만난 법대 동기가 내가 제대한 직후 해병대 장교로 연평도에 들어가 근무하면서 그 사실을 목격했다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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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복절도하도록 배꼽 잡는 웃음과 흘려도 흘려도 마르지 않을 눈물과 하늘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삿대질을 하는 분노의 폭발과 땅을 치며 한스러워하는 삶 속에서 특정한 틀에 매일 수 없는 자유혼이 우리에 갇혀 몸부림치는 퓨마의 절규처럼 쏟아내는 진실을 나는 이 책에서 보았다. - 김조년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씨알의 소리’ 편집주간) 
돈이 만능인 시대에 올곧은 종교인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김경일 신부는 기독교계의 ‘이단아’이다. 그가 가진 신앙관이나 성서의 지식이 이단이라서가 아니라 가난과 복음의 삶을 살았던 예수의 길을 외면하는 기성교단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이 낯설어 보이기 때문이다. 닟설다는 것은 은연중 우리 모두가 기득권의 일탈을 묵인 또는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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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마디를 더 하고 싶다. 남자치고 군대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고 나 또한 군대라면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철책선에서 육군 졸병으로 근무하였기에 할 얘기도 많다. 그러나 저자의 해병대 경험에는 전연 비할 수가 없다. 놀라운 기억력에 탄복한다. 글을 읽다 약속시간을 어겨버렸다. 내가 언제 이렇게 남의 글에 흠뻑 빠져본 적이 있었던가? 귀를 흘리는 말솜씨가 좋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심금을 울리는 글 솜씨 또한 탁월하다. - 조헌정 
여기 이 기록들은 정암이 온몸으로 쓴 젊은 날의 어두운 시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자 그것들에 맨몸으로 맞서 부서지고 깨어지면서도 용케도 버텨내고 살아온 한 사내의 처절한 서사의 단편이다.
무엇이 작고 여린 이 사내를 그렇게 맞서게 하고 또 버텨오게 한 것일까. 어떻게 그런 사내가 또 사제의 길을 택하여 여태까지 걸어올 수 있었을까.
불의한 것들에 온몸으로 부딪쳐 깨어지는 그것이 그의 삶을 지탱해온 신앙이자 사제의 길을 이어가는 신비인지도 모른다.
정암, 작은 체구의 큰 사내가 걸어온 옹골차고 치열한 지난 삶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남은 사제의 길에 더 깊은 평화가 함께 하기를 마음 모은다. - 이병철 (시인, 생태귀농학교장) 
어거스틴 경일 신부가 두툼한 원고뭉치를 건네며, 이번에 자서전을 내게 되었는데 읽어보고 한 마디 소감을 써달란다. 대강 읽어본다. 자기 말대로, 본인도 이해되지 않는 이른바 과격한 언사와 행동들이 젊은 날의 그와 그의 주변에서 숨 가쁘게 펼쳐지고 있다.

한님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시는 방법이 참으로 가지각색이구나,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실감할 것이다.

거두절미,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 곧 그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바울로의 고백이 경일 신부의 참회록에서 입증되고 있음을 축하한다.

마침 우연찮게 인도의 어머니(The Mother)가 자식들에게 주는 말씀을 읽었는데 그대로 전해주어야겠다. (경일아, 그분이 꼭 너 들으라고 이 말씀을 하신 것 같구나.)

―네가 시방 그 몸으로 이 땅에서 사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단다. 할 수 있는 대로 깨어서 네 몸을 한님의 온전한 도구로 쓰이게 하는 거지. 그분은 너한테서 무엇을 이루시려고 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요소들과 주변 환경을 고루 갖추어주셨어. “아, 끔찍한 내 인생!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가 멍청한 당나귀다! 누구나 자기를 완벽히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생명이 있고, 자기를 완벽히 발전시키는 데 도움 되는 경험들이 있으며, 자기를 완벽히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온갖 어려움들이 있는 법이다.
너 자신을 자세히 보렴. 너만의 것인 특별한 목적과 특별한 사명이 있고, 그것들을 완벽히 실현하도록 돕는 데 없으면 안 되는 온갖 어려움들이 네 속에 있는 걸 보게 될 거다. 네 속에 빛과 그늘이 똑같이 있고, 좋은 힘과 안 좋은 힘이 함께 있는 것도 보게 될 거야. 네 속 어디에선가 커다란 어둠이 보이거든 거기 어딘가에 커다란 빛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드물긴 하다만, 이거야말로 세상에서 으뜸으로 중요한 진실이란다. 네가 너를 자세히 보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래서 우리가, 예를 들어, 가장 큰 도둑이 가장 착실한 사람이고 가장 큰 거짓말이 가장 정직한 말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도둑이 되라는 말은 아니라는 거, 너도 알지?) 그러니 네 안에서 큰 약점이 보이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라. 그게 가장 신성한 힘이 네 안에 있다는 증거일 수 있거든. “난 본디 그런 놈이야. 어쩔 수 없어!” 이런 말도 하지 마라. 그렇지 않아. 네가 ‘그런 놈’인 건 정확하게 ‘안 그런 놈’으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겪는 온갖 어려움들도 그것들을, 그것들 속에 감춰놓은 진실로 바꾸는 법을 배우기 위한 거야.
한번 이 진실을 깨친 사람은 수많은 염려들이 사라지면서 아주, 아주 행복해지지. 자기 안에서 커다란 그늘이 보이면 “내가 꽤 환해지겠군!” 하고, 자기 안에서 깊은 구렁이 보이면 “내가 아주 높이 기어오르겠군!” 하는 거라. 그런 사람을 누가 실망시킬 수 있겠니? - 이현주 (목사) 
저자 및 역자소개
김경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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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부산출생. 중앙대 법대 졸. 중앙대 신문학과 대학원 수료. 성공회 신학원을 졸업하고 10년 만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광주에서 13년간 사목하고 2019년 10월 12일 정년 은퇴했다. 자서전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_약속’을 2019년 3월 20일 출간했다.
최근작 :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2 : 소명>,<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 약속>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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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2 : 소명 - 지하철 노가다에서 부제서품까지  |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2  
김경일 (지은이)쇠뜨기2020-07-30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2 :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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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43쪽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2 : 소명 - 지하철 노가다에서 부제서품까지

목차
프롤로그 9

1부 민중이 되어서 민중으로 살자

1. 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가야 17
2. 상사병 31
3. 경찰서장에게 차를 부탁하게 42
4. 보고 또 보고 51
5. 산 넘어 산 61
6. 임을 위한 행진곡 70
7. 철없는 신랑 79
8. 성직고시 89
9. 과거가 좋았던 사람들 98
10. 망미동 성자 107
11. 왕의 얼굴 신미장 116
12. 다시 예수원행 128
13. 출판 사역 141
14. ‘더불어 함께’ 창간호 발행 150
15. 천국놀이 162
16. 새로운 공동체를 향해 170
17. 농민이 되자 178
18. 파국 187
19. 당신 꼭 실성한 사람 같아 196
20. 돈벌이에 나서다 206
21.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216
22. 자해 공갈 227
23. 빵쟁이 성직자 236

2부 교회 복귀

24. 청주성당 시보전도사 247
25. 초평교회 전도사 발령 272
26. 새 성전 건립 278
27. 초상집 순례 287
28. 억울한 누명 296
29. 억지 화해 -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304
30. 죽음 각인 317

에필로그 330
추천사 334

접기
책속에서
작년 3월에 출판한 자서전 1부는 해병대 시절부터 신학원 다니던 시절까지 썼다. 이번 책은 자서전 2부에 해당한다. 이 책은 신학원을 졸업하고 교회에서 말썽을 부리다 쫓겨나 사회 여기저기를 5년간 전전하다 다시 교회에 복귀하고 부제서품 받기까지 겪은 일을 기술한 책이다. 나는 신학원 학생 시절에 교회갱신운동을 하다 교회에서 쫓겨났다. 5년간 사회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교회로 복귀했다. 사회를 떠돌던 그 5년이 내 인생에는 반드시 필요한 세월이었다. 흔히 민중으로 불리는 그분들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교회 밖 그 노동의 현장에서 참으로 지혜롭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묵직하고 향기 넘치는 스승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당시의 내 삶도 그분들의 인품과 감화에 의해 그나마 건강했음을 확신한다. 종교의 세계로 돌아와 사제가 되어서는 오히려 그런 품격 있는 분들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민중들의 고된 삶에서 종교를 느꼈다. 사제 생활 25년 동안 실제로 경험한 종교계는 땀 흘려 일하는 민중들의 삶보다 아름답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성직 훈련 과정에서 부제서품을 받기까지 전도사로 일한 3년간 내가 겪은 일은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 중에서도 시보전도사로 1년간 지낸 하루하루가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해서 더욱 끔찍하다. 그 시기에 나 역시 인격과 품성이 함께 무너졌다. 시작부터 꺾이고 변질되어 출발했다. 종교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아가 죽어야한다는 기본적 명제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직훈련 기간 3년 동안 교회의 온갖 추악한 모습과 난맥상을 압축해서 체험하게 되었고, 이 체험 때문에 25년간의 사제 생활 내내 그런 구조적 모순과 싸울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처음 신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1982년 3월 전두환 군사독재 치하의 엄혹한 공포와 억압의 시절이었다. 아무 희망 없던 그 암흑의 시기에 교수님이 수업 중에 해주신 말씀은 이것이다. ‘사제가 된 뒤에 만약 재산이 늘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재물을 훔친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잊을 수 없어서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교회는 돈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말씀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교단은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평소에 존경하고 따랐던 원주의 장일순 선생님도 큰 뜻에서 별 차이 없는 가르침을 주셨다. 많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특히 다음과 같은 권면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아래로 기어라. 민중들을 끌어안고 함께 뒹굴며 살아라. 성직자의 생활은 중 이하라야 한다. 중 이상이면 가난한 이에게 갈 때 부끄러워진다. 하늘에 재물을 쌓으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함께 나누라는 뜻이다. 예수는 세상에서 깨어진 사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다. 기를 쓰고 자기가 정한 원칙을 일생동안 끝까지 밀고 가라.’

신학원에서는 제대로 가르쳐 주었고, 교회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들도 시퍼렇게 날이 서서 모본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왜 이런 사회 통념에 반하는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교회에 냉소적인 친구들은 사제들이 민중들처럼 단순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철이 안 든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내가 내린 결론은 사제들이 겉으로는 멀리 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돈 권력 명예를 집요하게 추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아예 완전히 더럽혀져 있는 교회라면 더 이상 말해 볼 것도 없다. 이 상태에서 열심히 닦아내기만 하면 그런 대로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와 희망이 남아있다고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하는 것이다. 부패구조의 정착이 가장 두렵다. 노골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문제지만 범죄를 용인하는 조직 분위기가 되어서는 더 문제다.

나는 내가 직접 겪은 일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자체 정화 노력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그리고 교회의 자정능력이 아직 살아있음을 입증하려 한다. 그리고 양심을 지키며 사제의 본분을 다하려는 심지 깊은 사제들에게 떨쳐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고자 한다. 교회의 부패를 용인해서는 안 되며 교회가 잘못 가고 있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교회는 복음의 진리 안에서 똑바로 서 있어야만 그 존재 의미가 있다. (프롤로그)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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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이 있었다면 그는 죽었겠지,
하는 일이 잘 됐다면 기고만장했겠지
성공과 실패를 구별할 줄 알았다면
그렇게 삶을 되돌아
빈 손으로 가는 길을 몰랐겠지
결국
벗을래야 벗겨지지 않는
제십자가를 그렇게 지는 것을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죽어야 할 제 성질로만 알았지
그렇게 바쳐진 제물이었지
십자가인 줄도 모르고 - 김조년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씨알의 소리’ 편집주간) 
젊다는 것은 뜨거운 것이다.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시대의 질곡과 세상의 인연들로 인해 가슴이 끓고 있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높낮이를, 앞뒤를 재지 않고 계산 없이, 겁 없이 뛰어들고 만다는 것이다. 원고를 읽는 내내 이거 자서전이 아니라 신선한 소설이네. 그랬다. 어쩌자고 당신은 너덜너덜 낡아버리기에도 충분했을 옛날을 새삼 들춰 보는가. 그러나 그 불귀의 옛날로부터 젊은 날의 범람하는 강을 건너가는 한 사제의 부끄러운 고백성사 같은, 은산철벽과도 같은 권위와 기성세대의 장벽에 맞서며 물러서지 않는 곧은 기개를 읽는다. 내일은 어제를 되새김하며 오늘을 밀어 올리는 쓰러지지 않는 발걸음으로부터 오는 것, 온고지신이 다름 아니다. - 박남준 (시인) 
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제, 김경일 신부님.
그 곁에는 늘 그 보다 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신부님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편에서 더 낮은 자세로 그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얼마나 자존감이 높으면 저렇게 자존심을 다 내려놓을까?’ 거침없지만 겸허한 신부님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신부님은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질문을 툭 던졌다.

“신부님, 이 정보화 시대에 무슨 책을 내세요?”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밝혀야 하니까요.”
“그럼, 직접 겪은 일이겠군요.”
“네, 그들의 악행을 세상에 알리고 영원히 남겨야 되니까요. 내가 아니면 그 권위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종교적폐가 견고하게 지속될 테니까요.”
“그럼, 내부자들이군요.”

캐릭터가 분명하고, 날 것의 대화체 문장 그대로 살아있는 글을 읽었다. 르와르 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장면이 저절로 그려졌다.
행동하는 양심과 야성으로 살아가한 청년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사제가 되기 위해 성공회 교단으로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절대적인 권력으로 교단을 움직이는 종교조직 내부의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줄을 서지 않아서 겪게 되는 일들을 보면, 검찰 조직처럼 ‘비리로 엮인 단단한 죄의 연대’라는 종교권력의 민낯이 드러난다. 종교인이라는 성스러워 보이는 가면을 쓴 사악한 권력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단단한 성전 같은 것이었다.

성전은 아래서 벽돌 몇 개가 빠지면 무너지는 법이다.
이 글이 그런 힘을 갖고 있다. - 주홍 
무협지 같은 김 경 일 신부의 자서전 이야기
베드로는 닭고기를 먹었을까?

‘김경일 신부의 삶이야기_소명: 지하철노가다에서 부제서품까지’의 원고를 읽으며 떠오른 구절로 유안진 시인의 작품인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닭과 마주칠까 늘 가슴 조였을 테고/ 닭 소리 들을 때마다 경기에 시달렸을 테고/ 닭살이 자주 돋아 가려움에 시달렸을 테고/ 계란이란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에 시달렸을 테고/ 때 없이 닭 울음보다 깊고도 길게 울었을 테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기까지/ 닭고기는커녕 계란조차도 없이 살았을 게다/ 너무너무 가난해서.”

또 다른 영상(影像·映像)은 로빈 후드(Robin Hood)의 조력자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터크 수사(Friar Tuck)다. 좌충우돌, 좌불안석,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경일 신부의 우직한 언행이 이들을 떠 올리게 한다. 실수와 실패를 달고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바른길로 나아가게 하고, 그래서 항상 주변을 들뜨게 해 떠들썩하고 불안케 하지만 천진난만한 웃음과 해학으로 주변을 밝게 만드는 것이 이들과 닮았다는 생각이다.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듯한 인상은 자서전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언제나 주변인들의 믿음과 신뢰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당신,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듯 좀 더 절여져야 해요. 그래서 신앙의 향기가 자연히 배어 나와야 해요. 잘 갈아진 칼을 하느님이 쓰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사모님 말이다.

자서전은 모두 3권인데 ‘김경일 신부의 삶이야기_소명: 지하철노가다에서 부제서품까지’는 둘째 권으로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전도사와 부제를 거쳐 사제 서품을 받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참으로 힘들게 서품을 받는다. 나라도 이런 이에게 서품을 줘야 하는가? 묻게 된다. 그만큼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이들 교권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교권 안에서 이뤄지는 일 들이 세상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인간사의 문제로 비친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심하게 들 뿐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과 일반 신도들의 하나님은 다른 분이란 생각이 깊게 든다.
오죽하면 사제 서품식이 끝난 자리에서 경일 신부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당부(當付)를 하였겠는가!

“첫 번째는 절대로 복수를 하지 말게.
두 번째는 서품을 받았다고 사람이 변해서는 안 되네.
세 번째는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의 세계로 들어가게.
이 세 가지를 꼭 명심하도록 당부하고 싶네.”

50km 넘는 거리를 걸어와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쓴 모습으로 서품을 받은 경일 신부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당부를 남기시고 선 자리에서 오신 길을 되짚어가신 이현주 목사님의 말씀이다. 다음과 같은 독백을 보면 경일 신부는 이날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은 것 같다.

“목사님을 뵙고 나니 구정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내가 보였다고나 할까. 도대체 사제의 그릇도 못 되는 놈이 서품은 왜 그렇게 받으려고 용을 썼는지. 무엇보다도 새 성전을 힘들게 짓고 한 판 축제를 벌여야 할 교회의 잔칫날이기도 했는데 사고뭉치인 나로 인해 마음고생만 호되게 치른 신자들에게 그저 죄송하고 미안한 하루가 되고 말았다.”

요란하게 사는 만큼 대단한 현자들 또한 만나고 깨우침을 받게도 되는가 보다. “~ ~ 사랑으로 승리하겠다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을 하느님의 도구로 봐라. 나를 악의로 대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나를 선으로 이끌고자 하는 하느님의 도구일 뿐. ~ ~”란 말씀을 듣고 꺼이꺼이 소리 내 울기도 한다.

1982년. 신학원 학생 시절.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정권수호를 위한 조찬기도회에 당시 서울교구 주교님을 참석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벌인 일을 계기로 교회 갱신운동을 벌였던 일이 이렇게 지속적인 수난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 일로 교단 내 계파 간 갈등을 일으킨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자서전은 재미가 있다. 무협 소설을 읽는 것 같다. 그만큼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나타나며 기절초풍을 할 광경과 사건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어쩜 그리도 다양한 사건들이 나타나는지 - - .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꺼이꺼이 울며 혼자 독백하는 것을 떠올리며 툭하면 울고 소리치며 머릴 주 뜯는 갱일 신부(경상도 사투리임)를 떠 올리게 된다. 뚱뚱한 몸으로 몽둥이 들고 숲을 지나는 사람 중 고관이나 교회 관계자들을 골탕 먹이며 그들로부터 갈취한 먹거리와 돈이나 금붙이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터크 수사의 허위허위 걸어가는 모습 또한 갱일이 신부를 떠 올리게 한다.

인성응천(人聲應天)이라, “사람의 소리가 가득 차면 하늘이 응답한다”고 했으니 결국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지만, 오늘도 쉼 없이 그 값 하느라 휘적거리며 뛰어다닌다. 그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닭 소리보다 거칠게 길고도 슬피 꺽꺽 울어 쌓고, 방 한 칸 변변한 것이 없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너무너무 가진 것 없어서.

‘김경일 신부의 삶이야기_소명: 지하철노가다에서 부제서품까지’를 읽어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새삼스레 내다뵈는 종교인들의 세상을 읽고 볼 수 있으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깊고도 넓게 뻗쳐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유함으로 우리가 무엇을 반성하고 고침을 위해 어떻게 수신하고 수련해야 하는지 새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자그마한 덩치의 신부님 가슴에 이렇게 큰 불덩이가 있을 줄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의 세계란 무엇인지? 어떻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묻게 된다.

2020년 5월 19일 - 이만방 
생이란 경험하기라는 생각이 세월에 더해 갈수록 깊어진다. 이 책은 정암이 사제의 길을 향해 걸어가면서 온몸으로 경험한 생의 고백이자 증언록이다. 그 속에는 사제의 길에 앞서 인간의 길에 충실하고자한 치열한 몸부림이 담겨있다. 그가 제도교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온몸으로 맞서며 싸울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이 한 사제의 자서전적 고백록을 넘어 한 시대의 증언록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은 그가 걸어온 경험의 깊이와 진솔함 때문이다.
- 이병철 (시인, 생태귀농학교장) 
강물처럼 시원하게 흐르지 못하고 반쯤 괴어있어야 하는, 그래서 반은 살고 반은 죽어있는, 한국교회 연못에서 하늘 섭리 좆아 때로는 몸부림치고 때로는 숨죽이다가 마침내 모가지 치켜들고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을 바라보는 이 즐거움, 이 고마움을 어디로 회향할지 모르겠구나....경일아!
- 이현주 (목사) 
김경일신부의 저서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2_약속’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소명’편을 거의 숨도 쉬지 않고 읽었다. 책 내용의 상당한 부분이 대화체로 되어있어 마치 무슨 드라마를 보는 듯 사건 사건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한 대화로 풀어내는 이야기에 상황에 따라 함께 울며 분노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를 향한 신의 위대한 섭리가 깨달아지기도 하였다.

김신부와 이야기해보면 그가 얼마나 온유한 사람인 줄 알 수 있다. 화가 날만한 어떠한 이야기를 들어도 허허 웃어넘기며 항상 긍정적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상대에게 필요한 덕담을 주곤 하지만 때때로 그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형형한 안광은 사람들로 하여금 작은 체구의 그를 엄청난 거인으로 착각하게 한다.

젊은 시절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겠다는 뜻을 품고 우여곡절 끝에 신학원에 들어간 후, 오랫동안 곪아 썩어 문드러진 교회의 상황을 보고 교회갱신운동에 투신했다가 교회 내 기득권 세력의 미운 털이 되어 사제 서품을 받기까지의 십 년의 세월은 그야말로 혹독한 연단의 기간이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시련을 거치면서 그는 점점 예수를 닮아간다.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은 채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어 옳다고 여겨지는 바를 곧이곧대로 실천에 옮기는 그를 그 어떤 강압이나 권위가 누를 수 있을까. 과부와 고아 그리고 창기 등 사회의 밑바닥 인생에게 한없는 연민을 가졌으나 불의한 권력으로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들을 무
섭게 질타했던 예수를 닮은 김신부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으로서 차마 견디기 힘든 고통과 모욕을 겪었던 갈릴리의 예수처럼, 예수를 따랐으나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인간 김경일은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혹독한 수련과정을 겪어야 했으며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를 발가벗겨 세상에 내보임으로 더 이상 스스로에게 허위와 가식을 허용하지 않을 중대한 선포를 한 것이 아닐까.
공식 사제의 신분에서 은퇴하였으나 그의 사역은 이제야 시작된 것이라고 본다. 불의한 재물과 부패한 권력이 하느님의 의를 참칭하는 이 시대에 그의 삶의 이야기와 그에 따르는 다짐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고집불통에 괴퍅하기까지 하지만 결코 거짓을 말하거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김신부의 남은 장도에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함께 하여 그의 삶이 하느님의 위대한 걸작이었음을 모두가 증언하는 결과이기를 바란다.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 송현상 (바리톤) 
민주화는 정권의 교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한 재벌체제, 사회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첨병역할을 하는 정치검찰과 수구언론, 부패사학 등 적폐세력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을 말하기에 이르다. 그런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종교와 진리를 가르쳐야할 대학마저 기득권에 취해 불의에 침묵하고 자본과 권력에 굴종한다면 세상에 희망이 있을까.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 2_소명: 지하철 노가다에서 부제서품까지>는 평생을 정의와 평화운동에 헌신하다 은퇴한 성공회 광주교회 김경일 신부가 기성 종교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부패기득권 세력에 맞서서 외롭게 저항해온 투쟁의 기록이다. 자서전 1권인 <김경일 신부의 삶 이야기_약속>은 김신부의 마음 깊숙이 자라잡고 있었던 해병대의 폭력과 평생 정직을 우선시 했던 신학원 시절의 벗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였다면, 이번에 출간하는 2권은 부제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증언하는 내용이다.
1권이나 이번에 나오는 2권의 일관된 질문은 왜 기성 교단이 힘없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하려고 애쓰는 사제를 격려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하면서 그들의 사제 진출을 막으려 하고, 올바른 길을 가는 사제들을 변절시키고 순치하려 했던가 하는 것이다. 김신부의 결론은 기성 교단이 말로는 신앙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돈과 권력과 허명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신부의 이러한 용기 있는 증언과 기록이 우리 종교계를 깨우치는 각성의 종소리가 되리라 믿는다. - 김영 (전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