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3

김시천 제5강 『노자』와 페미니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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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노자』와 페미니즘 1

◆ 노자와 페미니즘 ①


▲ 노자는 과연 페미니스트인가?

오늘은 조금 쉬운 걸로. 지난 주와는 달리 현대적인 논의의 대표적인 사례죠. 제목이 나와있는 것처럼 곡신불사(谷神不死). 이 한마디 말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자는 과연 페미니스트인가?

이런 해석을 보다보면, 한편으론 아이러니하면서도 한편으론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희한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가. 사실 노자가 페미니즘적인 사회경향을 가졌다고 우리 나라에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이 처음이라고 기억해요.

그것도 우리나라 자체에서 나온 목소리라기보다는 외국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죠. 그와 같은 논의의 반영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힌 논문이 김종미라는 분이 쓴 내용인데. 글 자체는 굉장히 재밌고 문학을 하신 분이라 그런지 흡입력 있었죠. 번역도 탁월합니다. 우리들에게 알려진 소문의 대표적인 진원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으니까.

큰 나라는 강의 하류
천하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곳은 여성의 공간
여성은 항상 고요함으로 남성을 이기고
고요함으로 낮은 곳으로 흐른다.(『노자』 61장)

61장에 나온 내용을 이렇게 번역했어요. 이렇게 보면 페미니즘적이 아니라고 대꾸할 사람이 없습니다. 다음을 보죠. 더 유명한 구절이죠.

계곡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리.
그것은 신비의 여성(玄牝)
여성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
끊길 듯 이어질 듯 존재하는 듯 않는 듯
써도 써도 다함이 없으리라.(『노자』 6장)

굉장한 찬양이죠. 말하자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손오공이 놀았듯이 천하의 모든 움직임이 여성적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것이고 그 힘도 무한하다. 이와같은 찬사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곤혹스러운 건 동아시아에도 페미니즘 사상이 있었다고 말하기 좋은데 한자의 원문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거리가 있는 번역이죠. 이건 의역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많은 시각 플러스 나름대로의 창조 주석까지 들어간 해석이에요. 문학을 하신 분이니 해석자의 시각이 상당히 반영된 건데. 그럼 오역이라고 할 수 있느냐? 오역이라고 말하는 건 참 애매하죠.

본래의 맥락 자체가 뭐라 규정할 수 없는데, 물론 각 텍스트마다 주석적 시각은 분명히 있지만 이렇게 노자의 원문을 떼어놓고 이것이 백프로 맞다 틀리다로 토론하는 건 무의미한 논쟁이라고 말씀드렸죠.

다만, 저는 이런 해석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냐면. 비빌 곳이 노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 노자가 대단한 말을 했다, 2500년 전에 누군가가 있어서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들이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를 드러내주는 번역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말이죠.

다만 이런 얘길 함에 있어서, 이건 창조적 재해석이죠. 다만 노자가 2500년 전에 페미니즘이었다는 방식의 도발적인 주장으로 이어가는 것만 아니라면 이건 전략적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따라서 해석 상 틀렸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고전을 통해서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꾸어야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평가가 훨씬 더 의미 있는 토론이 될 수 있다.

내가 노자 원전을 다 뒤져봤는데 이게 틀렸다, 그럼 이 글 속에는 분명히 이와 같은 얘길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노자가 페미니즘이다, 아니라는 흑백논리식 토론은 무의미하고 도대체 우리가 노자를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더 나아가서 그럼 노자가 정말 페미니즘적인 얘길 하기에 안성맞춤인 텍스트인가 까지 나아가야지만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토론인데, 아쉽게도 거끼가지는 안 나가는 것 같아요. 그게 아쉽다는 거죠.

그래서 생산성 있는 논의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자와 페미니즘을 같이 걸쳐놨을 때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는가 하는 정도의 선에서 우리의 논의를 정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오늘 이야기의 주제입니다.


▲ 하나의 노자 텍스트에 대한 다른 해석

같은 부분에 대해서, 백서본 노자를 이석명이라는 분이 번역을 했는데 번역도 쉬워요. 다시 한번 읽어보죠.

큰 나라는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하네.
그래야 천하의 ‘암컷’이 되고
천하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네.
암컷은 항상 고요함으로써 수컷을 이기니
고요함을 행하기에 마땅히 자신을 낮추네.(『노자』 61장)

계곡의 작용은 그침이 없으니
이것을 ‘현묘한 암컷’이라 하네.
현묘한 암컷의 문,
이것은 천지 만물의 근원이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네.(『노자』 6장)

상당히 비교가 되죠. 오른쪽 것도 상당히 냄새를 피우지만 왼쪽의 것과는 상당히 뉘앙스가 다릅니다. 번역하신 분이 상당히 낭송하는 방식으로 노력을 많이 해서 왼쪽과 비슷하지만, 그냥 앞에 것을 읽고, 오른 쪽 해석을 봤을 때는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두 개를 별개로 두고 다른 시간에 읽으면, 이 두 개가 같은 부분에 대한 해석이라고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맥락이 그리고 우리에게 들려주는 방식이 상당히 다릅니다.

이와 같이, 동일한 텍스트를 두고서 번역이 달라지게된 까닭, 진원지는 어디에 있을까. 문제는 본래부터 2500년 전에 그 속에 무언가 메시지가 담겨 있었을 거라고 상정하는 데 문제가 있죠.

그러고 보면 번역이 대단한 힘을 갖는 것 같아요. 자료 3페이지로 넘어가시면 국내 여성학 내지 여성 철학계에서도 이와 같은 논의가 상당히 있었어요. 지금은 잠잠해 졌지만.

그 바탕 중 하나는, 초창기에는 외국에서 그와같은 방식의 관심이나 표현이 꽤 많이 있었고 국내에서도 여성학이 90년에 붐을 일기 시작하면서 상당한 요구들이 있었습니다. 도가 또는 노장을 전공하는 분들에게 초청을 해서 발표를 많이 의뢰를 했었어요. 저도 한 번 나간 적이 있는데.

그 분들이 쓴 글을 보면 어떤 느김이 드느냐면. 여성 철학계에서 초청을 했어요. 노자가 상당히 페미니즘과 친하다는 방식의 얘기로 말을 거는 거네요. 오히려 그 쪽 분들은 과연 그럴까, 하며 회의적인 눈치고.

대표적인 두 번역 방식을 본다면, 위의 것은 아까 같이 번역했던 김종미 선생님의 평가고, 뒤의 것은 김세서리아 선생님이라고, 동양학 하신 분 중에서 여성 철학 작업을 하시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분입니다. 동일한 노자에 대한 해석의 기조를 보시죠. 김종미님 것을 먼저 읽겠습니다.

[새로움은 낡은 것으로부터 온다. 동방과 서방은 서로를 비춘다. 노자와 페미니즘의 만남은 두 개의 문명의 만남의 극적인 예후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문명이라는 것을 빚어오던 끝에 동방의 첫 주춧돌 이른바 기축시대(基軸時代)의 한 축을 구성했던 노자와, 서방의 탈근대로 나아가는 한 창문에 비추어진 페미니즘이라는 그림이 서로 이천 오백년을 격하여 두 손을 마주잡는 장면을 목도하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논문이 거의 시 같아요. 글이 굉장히 아름답고 좋은데. 여기에 대해서 김세서리아 분은 약간 회의의 눈초리로 평가합니다.

[“노자철학이 생명 생산의 측면에서 여성 역할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으며, 여성적 원리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은 가부장제에 비판적 의미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노자철학을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평가할 때, 이러한 주장이 항상 적합하거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음, 자연, 고요함의 의미로 살아온 여성에게 이러한 찬사들이 힘을 지닌 어떤 전략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입니다. 노자 철학 속에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동아시아 여성의 삶 속에서 실천적 힘을 준 적이 있는가 하는 부분은 반드시 반추할 부분이고, 있다 었다고 하는 부분보다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두 분이 갖는 전제가 상당히 재미난 게, 김세서리아 분은 원래 전공은 유가예요. 유학을 전공하신 분이고 김종미 선생님은 문학을 전공한 분이에요. 문학적 창조성과 철학적 냉철함이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구절이 동서문명의 만남이라고 하는 커다란 패러다임에서 이뤄진다고 하는 것 이전에 지금 이 속에 숨쉬고 있는 배면의 논리는, 이것이 바로 동아시아와 서구를 만나게 하는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예요. 90년대부터.

90년대를 넘어서면서 동양학 분야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가운데 하나가 특히, 노자철학이 주도를 해왔는데, 그 중에 아주 특이한 건 아주 오랜 옛날에 그 무언가가 탈근대와 만나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라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20세기 전반기 내내 동양학은 근대인 척, 내가 근대가 되어야겠다는 작업을 계속 해왔어요. 그런데 80년대를 지나면서 역전됐죠. 우리 사회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들어온 물결이라고 그걸 얘기하는데.

포스트모던이 들어오면서 노장 철학 쪽이 탈근대, 서양이 근대를 비판하는 담론들이 봇물 터지듯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근대와의 만남을 주도했던 건 유학이 주류였다고 말할 수 있죠.

그럼, 이게 다냐? 아니라는 겁니다. 왜 문제가 되느냐. 노장은 다 만났어요. 근대에서 탈근대로 넘어가니까 탈근대와 친한 척해요. 그리고 근대와 만날 때는 종교와 과학과 만나는 중요한 틀이었어요.

노장은 만병통치약이라는 거죠. 만날 수 없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오래 못 가요. 그게 문제라는 거죠. 지속성 있는 담론으로 이어지면서 생산성 있는 논쟁을 벌여본 적이 있는가? 없다는 것이 한계라는 거죠.

정말 그것이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우리 삶에 연속될 수 있는 혹은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하는 장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야기로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하고. 한 때 푸코가 유행할 때는 장자와 푸코가 비교되고, 데리다가 들어오니까 노자와 데리다가 만나요. 19세기에는 기독교랑 만났어요. 20세기 내내, 그리고 중국에서는 특히 민족주의, 중화주의의 부활과 긴밀히 연관 있습니다.

이런 점을 따져보았을 때, 제가 노장 담론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장이라는 담론이 뭔가 생산적인 의미를 찾는 데는 크게 효율적이지 못 했다는 반성적인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 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럼 노자 철학은 아무것도 아니냐? 상당히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거죠. 왜냐하면 적어도 탈권위주의적인 방식의 행보는 노자는 보여줘 왔고 지난 2500년 동안 예술 혹은 종교 혹은 서민적 삶의 공간에서 에너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특히 혁명적 에너지는 불교와 도교 쪽 관련해서 많이 나왔죠. 첫 번째 봇물 터진 게 황걸 운동. 한나라가 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죠. 도교의 가장 중요한 흐름 가운데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가 바로 태평도가 있고 또 하나가 오두미도예요.

그런데 한나라가, 삼형제가 혁명을 철저히 준비했었는데 혁명을 이루기 석 달 전엔가 미리 정보가 새어 나갔어요. 그래서 한나라 조정에 알려졌고, 아뿔싸 하면서 들고 있어났었고. 그래도 상당히 오래 갔었죠.

그런데 정권 차원에서, 니들은 역도들이고 향후 이 세력을 그대로 두었을 때 계속해서 반역의 세력으로 고착될 수 있다면서 철저하게 도려냈고 그 나무지 일부를 조조가 흡수했죠. 자기의 휘하 군사세력으로.

오두미도 같은 경우는 조조에게 항복했죠. 유비가 사천성 쪽을 장악해서 촉을 세울 때, 장로가 조조에 투항해서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고스란히 보존했습니다. 따라서 체제순응적인 도교로 거듭났죠. 이쪽으로부터 그 후에 천사도나 도교의 기본적인 흐름이 갈라진다고 도교사학자들은 얘기하네요.

그런 것을 본다면, 분명히 노장철학이 지금 현대 학계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처럼 내면의 숨결을 갖고 있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노장 철학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크게 흘러 들어갔던 도가 철학과 도교의 연속성을 한국 학계는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연속성을 부정해요. 왜냐. 도가는 철학이고 도교는 종교이기 때문에 다르다. 그래서 앞전에 살펴봤던 하상공과 왕필의 노자 주는 같이 비교되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 그건 오교 교단에서 많이 읽혔었고.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지금 그렇다는 겁니다.

상당히 종교적인 내용들이 가미돼 있기 때문에 도교 텍스트로 읽혀요. 그러니까 두 개가 전혀 다른 학자 집단에 의해 연구돼 왔다는 거죠.

전통 사회에서도 그랬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송나라 이전까지, 특히 노자를 사랑했던 제왕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양귀비와 염문을 뿌렸던 당 현종이에요.

당 현종은 자기가 직접 어줍은 노자를 만들기도 했고 그때 채택된 판본은 하상공 본이에요. 그때 대량으로 찍어서 집안마다 하나씩 비치하도록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뿌렸다는 거죠.

사실은 성대 이전 그 후에도 커다랗게 이어지는 전통에서 본다면, 하상공 식의 주석 전통 시각이 훨씬 주류였어요. 그랬다가 성대 학자들이 왕필 주가 훨씬 합리적이라고 해서 받아 들였고 그게 이어져서 특히 조선은 그와 같은 방식의 해석 시각이 강하게 들어있는 쪽 계통의 논의들이 조선조 유학자들에게 읽혔습니다.

이른바 도학파에서 편찬한 책들이 조선조로 들어갔고 그것이 노자나 장자를 읽는 틀이었다는 거죠. 따라서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노자를 읽고 비판할 때, 상당히 역설적인 부분도 있는데, 지금 우리가 객관적인 철학사에서 얘기하는 노자 철학과 공자의 철학이 부비대고 싸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철학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할 것이 문헌학사를 말해야 하고, 해석사를 이야기해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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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nstudy.com/PLecture/scKim02/lecture/05_02.htm

◆ 노자와 페미니즘 ②


▲ 서구 사회의 노자

이것이 오늘 할 얘기의 다예요. 허무하죠? 그럼 재미가 없으니까 이제 이야기를 하죠. 대체 이와 같은 이야기의 방식이 무익한 것이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조금 조사를 해보니까 이와 같은 방식의 논의가 어디로부터 비롯돼 나왔는가. 어떤 부분에서 상당히 추측적인 얘기도 나중에 나오게 될 겁니다.

노자와 페미니즘과의 관련성 논의가 대략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첫 번째는, 희한하게도. 이 책은 굉장히 유명한 책이라서 잘 알고 계시죠. 우리사회에서 페미니즘과 노장 넓게는 노장보다는 Taoism이 맞아요. 우리 식의 표현은 애매한데, 서구 사회에서 타오이즘이라는 용어는, 정확하게 제가 기억은 못 하는데, 19세기 중반 조금 넘어가면서 쓰였어요.

특히 사서, 시경, 서경, 역경 등 중국의 중요한 고전을 거의 다 번역해 낸 제임스 레게라고 하는 사람이 노자와 장자도 번역합니다. 그 서문에서 노자와 장자로 대변되는, 이 사람은 개신교 선교사예요, 따라서 종교적인 시각으로 보는 거죠, 그래서 타오이즘이라고 조어를 붙이는데 그 사람이 처음 쓴 건 아니라고 해요. 그런데 의미의 맥락을 붙인 건 제임스 레게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고 하고.

그가 번역한 이 책이, 당시 새롭게 부상하는 종교학이 19세기 말부터 성립되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때 막스 밀러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새롭게 부흥되기 시작한 종교학, 종교학은 우리가 보기에 종교 일반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서구에는 기독교의 유일신인 하느님을 제외한 잡신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죠. 출발을 따진다면. 신학과 종교학이 분리돼 있으니까.

인류학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게 종교학인 것 같아요. 굉장히 서구문명에 충실한 틀에서 생산한 담론이지만 오히려 서구식의 근대성 자체를 회의하는 역할을 한 게 종교학이나 인류학이었던 것 같아요.

바로 그러한 틀 속에서 노자와 장자가 번역되고, Taoism이라는 말이 서방세계에도 많이 알려지게 됐어요. 그런데 서구 사회에서의 노자, 장자에 대한 연구는 우리 동아시아에서의 연구와는 좀 다릅니다. 특히 뭐가 다르냐.

이 사람들은 특별히 두 가지를 가지고 접근했는데, 하나는 필드워크로 접근했어요. 특히 운난성 지역에 있는 소수 민족, 그 다음에 도교적인 유습, 그 다음에 대만 쪽에 있는 유물을 상당히 많이 갖고 갔단 말이에요.

대륙 쪽으로 갈 수 없으니까 나중에 마오정부수립이후에는 대만엘 가서 연구를 하고 온 사람들이 많아요. 개방된 다음부터는 중국 대륙에도 많이 가지만.

실제 도교적인 풍습이라든가 종교적인 습속과 텍스트가 같이 결합된 방식을 연구했어요. 특히 이런 방식을 주도했던 쪽이 프랑스죠. 사회학 계열에서 마스패로라든가, 오늘 몸이 멍해서 그런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그 쪽 계열에 있는 사람이 연구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이건 종교입니다.

특히 신비주의라고 타이틀이 붙어서 많이 얘기됐었고, 그래서 우리와는 많이 달라요. 노장은 철학이고 도교는 종교, 엄격하게 분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사실 덜했던 게 무엇이냐면 사실은 철학적 전통으로써의 도가는 한나라 때
생명을 거의 다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도가 철학이라는 사유의 흐름은 말할 수 있지만,철학적으로 정책석의 학파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중국의 학문은 전부다 유학자들이 한 거예요. 유학자들이 주석을 쓰고, 물론 도사들이 하긴 했지만 그들이 생산한 텍스트는 도가철학으로 분류되지 않고 도교 쪽으로, 특히 종교 교단과 관련돼 있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바깥에 있었던 것이 역대 황제들이 노자를 주석하고 읽던 텍스트입니다. 그건 최근 들어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대한 택스트 역시 최근에야 출간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종교적으로 해석해요. 그래서 여기에 들어가기가 참 이상할 것 같죠 그런데 니담이라고 하는 사람 옆에는 왕링이라고 하는, 거의 작업을 같이 했어요. 그래서 니담이 엄청나게 많은 저술을 냈지만 저술의 상당부분은 왕링의 기여라고도 해석하는데. 7쪽을 보세요. 노자와 페미니즘을 같이 연결지었던 가장 빠른 언급, 물론 다른 텍스트들 속에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이후에 한국에서 생산된 노자와 페미니즘 관련된 논의의 대부분이 여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두 번째는 모계사회라고 하는, 특히 사적 유물론에 의하면 역사가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로 가죠.

그러면서 고대 사회의 틀을 이야기하면서, 모계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모전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특히 노자와 페미니즘을 연결시키려는 모전을 꽤 많이 쓰는 듯해요.

그래서 양보다는 음을 강조한다. 이건 원시공산제 사회 때 엄마만 알고 아버지는 모르던 시절에, 그런 분들이 노자가 바로 그와 같은 원시적 사유 혹은 유습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거예요.


▲ 노자를 페미니즘으로 보는 오해

노자 속에 왜 그런 얘기들이 들어갈 수 있었느냐. 그런데 다 여기까지 하고 그 다음에 도교 쪽을 보면, 여성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계보들이 풍부하게 나옵니다. 그런 것들을 다 연결시키면서 노자 계통이 페미니즘 요소가 상당히 있었고 역사적으로 증거할 만한 게 풍성하다고 하면서, 어떤 분들은 노자가 친페미니즘적이라고 한다면 어떤 분들은 아주 강하게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기까지 했어요, 누군가는.

그런데 희한한 건, 이 책은 노자를 해석하면서 객관적 관찰이라는 말을 해요. 7쪽을 보죠. 약간 길지만 이 부분은 확인을 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물과 여성성, 「물의 상징과 여성적 상징」이라고 하는 소제목 하에서 나오는 글입니다.

[물과 여성적 상징은 철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가적 혹은 법가적 통솔 개념 대신에 우리는 안으로부터의 도가적 통솔(leadership) 원칙에 이르는 것이다. (...) 유가와 법가의 사회 윤리적 사상 복합은 남성적이고 관리적이며 견고하고 제압적이며 공격적이요 합리적이며 직수적이었다―도가는 여성적, 관용적, 유약적, 비강제적, 철수적, 신비적이며 더구나 수용적인 모든 것을 강조함으로써 근본적이고 완전하게 유가와 법가사상을 부수어 버렸다. 그들이 ‘계곡의 정령’을 찬양함은 유가에 대한 모욕이었다. 왜냐하면 『논어』에서 말하기를, “뛰어난 남자는 낮은 장소에서 사는 것을 싫어한다. 낮은 곳에서는 세상의 모든 악이 그에게로 흘러들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도가들이 그들의 자연의 관찰로부터 보이려 했던 여성적 수용성은 인간의 사회적 여러 관계에서 현저히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던 여성적인 순종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봉건 사회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순종은 봉건 사회와 양립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참다운 의미의 시적 표현에 있어서의 순종은 협동적 집산주의 사회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한 사회가 일찍이 한번 존재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청동기 시대의 원시 봉건제에서 군주와 제사와 용사의 완전한 분화가 생기기 이전 촌락의 원시적 집산주의 속에 존재했었다. 그것은 아마도 도가 사상이 발생하기 직전의 수세기에 걸친 중국 문화의 외곽 지역에 오히려 존재했었을 것이다.]

저는 이 부분을 쓴 게 니담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왕링이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특히 논어에 나온 구절을 의역적으로 설명하면서 거기에 대한 조소로 끌어들이는 것도 그렇고.

이걸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이, 노자를 읽기 전에 이 구절을 읽고 노자란 텍스트를 읽게 되면 굉장히 친여성주의적으로 읽게 되기가 쉬워요. 그래서 노자를 읽을 때 문제가, 그냥 노자를 읽고 생각하면 좋은데 그 이전에 다른 책을 먼저 본다는 거죠. 그리고 그 시각으로 보게 되니까 굉장히 끌려가는 방식으로 독해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 담론이 계속 재생산 됩니다.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갖는 허점은, 특히 73년도와 93년도에 노자의 두 판본이 발견됐다고 했죠. 그럼, 만약에 여기서 주장하는 것처럼 혹은 이쪽과 연결시키는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 이전의 사회적 유습이라고 한다면, 곽점본에서도 그와 비슷한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성립되잖아요.

그런데 많은 분들은 어떤 방식으로 노자를 해석하느냐면, 노자에 나오는 ‘곡신구사’라는 부분을 딱 전제해놓고 그 이후에 도교적 전통 자료를 가지고 해석하면서 앞에서부터 있었다고 거꾸로 결론을 내린단 말이죠.

그래서 제가 초간본 노자를 비교해 봤어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다른 학자 논의를 검토해 보니까 희한한 결론이 나오더라. 그게 바로 9쪽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9쪽을 보면, 곽점본 노자에서 이야기하는 골짜기가 나오는데 그 것을 한 번 읽어 보지요.

[강과 바다가 수많은 골짜기를 거느리는 왕이 되는 까닭은 그가 능히 수많은 골짜기의 아래가 되기 때문이니, 따라서 능히 수많은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이다. 성인이 백성의 앞에 있는 것은 몸을 뒤로 물리기 때문이다. 그가 백성의 위에 있는 것은 그들에게 말을 낮추기 때문이다. 그가 백성 위에 있지만 백성들은 그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자 이것은 똑같은 골짜기. 강과 바다. 이것이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물과 여성적인 이미지가 만나는 중요한 구절중 하나입니다. 이 부분이 우리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적인 담론과는 완전히 딴판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주인공은 왕과 성인입니다. 남자라는 말이지요. 달리 말하면 이것은 그동안 이야기해왔던 천하를 다스리는 지도자 혹은 통치자를 위한 조언. 처세적 조언에 가까운 방식이 분명히 들어나지요.

자 그 다음에 10쪽을 보시지요. 여기에는 모(母)라고 하는 굉장히 여성적인 표현(여성을지칭하는)이 나와요. 그런데 그 맥락이 이렇습니다.

[나라를 차지하고서 그 근본(母)을 가질 수 있다면, 장구할 수가 있다. 장구한 것을, ‘깊은 뿌리·굳은 토대’라고 말한다. 깊은 뿌리 굳은 토대야말로 오랫동안 존립하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도이다]

여기서 번역은 그냥 근본이라고 했어요. 달리 말하면, 여기서 말하는 모가 여성적인 이미지로서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근본, 토대, 중요한 것, 원천과 같은 의미가 더 강하다고 이 분이 해석했다는 거죠.

그렇게 보면 초간 노자에서 여성성, 혹은 여성적 이미지와 연결시킬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희미해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여성적 이미지와 친한 맥락으로 나오는 부분들이 굉장히 정치적 맥락으로 본래의 맥락이 있다는 거죠. 그럼, 이건 분명히 변조되었을 가능성을 우리는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상해본다면, 사실 여기와 관련된 논의는 다른 텍스트에서도 많이 논의가 됐어요. 11쪽에, Rakita Goldin이라고 하는 사람이 시경을 연구하면서, 나름대로 우리에게 경고성 있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학계에서도 노자 번역서를 통해서 그와 같은 논의를 상당히 많이 한 상태였거든요. Rakita Goldin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주의해야만 하는 것은, 암컷(the Female)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는 언급이 마치 『노자』의 저자가 여자들(women)를 높이 평가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수컷과 암컷은 우주의 상보적인 두 측면을 조명하기 위해 고안된 예시적 모티프일 뿐이다. 그것들이 실제의 여성이나 남성을 가리키는 것일 필요는 없다. 『노자』 텍스트 자체는 아마도 오로지 남자들만을,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남성 통치자들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노자』에서 여성성이 강조되는 텍스트의) 주된 논점은, 성인이 남성성만큼이나 여성성의 가치 또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 여성성이 남성성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무슨 얘기냐. 12쪽을 보시면, 가장 유명한 구절이죠.
“수컷을 알면서도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이것이 마치 곡신무사와 연결되어서 어떤 여성주의적인 언급의 대표적인 노자의 구절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이것만 볼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도 같이 봐야해요. 같은 장에 위치해 있으니까요.

[천하의 계곡이 되면 언제나 덕이 떠나지 않는다
덕이 떠나지 않으면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
깨끗한 것을 알면서도 더러운 것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언제나 덕이 족하다
덕이 족하면 통나무로 돌아간다
흰 것을 알면서도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모범이 된다
천하의 모범이 되면 언제나 덕이 어그러지지 않는다
덕이 어그러지지 않으면 무극으로 돌아간다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되고 성인이 쓰이면 군왕이 된다
무릇 큰 제도는 갈라짐이 없다(노자 28장)]

이렇게 다시 원래의 맥락 속에서 이 부분을 읽어 보면, 이 구절을 딱 떼어와서 이야기할 때와는 상이한 맥락에 놓이게 되죠. 특히 수컷과 암컷과 뒤에서는 흰 것과 검은 것. 흰 것과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에 모범이 된다는 말은 누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상당히 흉물스런 표현같지 않습니까.

명명백백한 것을 알되, 검은 것, 어두운 것,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두운 냄새가 저는 들어있다고 보거든요. 말하자면, 낮의 정치와 밤의 정치가 다르듯이. 이 당시가 암살 등등의 사건들이 무지 많이 일어날 때였으니까요.

희한한 건, 여성성에 대한 강조라는 것이 역사 속에서 증거를 확인해보면 적어도 춘추시대까지, 귀족사회만 해도 여성의 힘이 작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공자를 2500년 동안 상당히 부담스럽게 만들었던 위나라 영공의 부인. 그 사건은 역사적인 클린턴의 염문과 비견되는 큰 사건이었던 것 같아요. 유학자들에게 가장 말하기 거북한 사건이었는데.

사실,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그와같은 방식의 일들은 아주 흔했습니다. 결혼이라고 하는 족쇄, 남자와 여자를 규정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연애가 1920,30년대에 개화하기 시작하잖습니까. 오히려 고대로 들어가면 그 부분에서 더 자유롭지 않나요. 사실 숙종 때까지만 하더라도, 숙종 이후 조선사회가 성적으로 둔탁하죠.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첨단으로 발전시키면서 한편으론 욕망 자체를 끝없이 억압하는 안 좋은 성 문화 시스템을 갖는 것이 자본주의인 것 같은데.

유학자들에게는 객관성이라는 단어가 없어요. 하지 말아야 될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 아시겠지만, 하지 말아야 된다,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다 보여줘요. 그리고나서 자막에 이 프로그램은 15세 이하 어린이가 보기엔 부적절하므로, 부모님께서. 그럼 왜 틉니까?

도대체 우리가 뭘 보여줘야 한다는 말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고서 먹지마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는 거죠. 도대체 학교에서는 도덕 교과서로 시험 보게 만들고, 이 모든 사회의 살아있는 생생한 교육 프로그램은 인간으로 하여금 욕망으로 미쳐 날뛰게 만드는 방식의.

이런 방식의 구절이 노자에게는 꽤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말 달리면 미친다고.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오늘따라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얘기가 딱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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