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8

[알라딘서재]좌우도 없다 -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은이)

[알라딘서재]좌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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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one l 2015-04-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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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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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위아래를 무지하게 따진다. 민주주의사회는 아직 멀었다.

민주주의는 정치영역에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전반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아직 멀었다.

 

한국에 좌우는 있는가? 있다고 착각한 채로 한국사회는 뒤죽박죽이다.

좌우라는 것은 맑스가 제시한 역사철학의 잣대로 구분한 것인데, 원래의 뜻은 좌는 기존체제를 부정하는 입장,

우는 고수하려는 입장이다. 한국의 경우 사회주의 쪽으로 가면 좌, 자본주의 쪽으로 가면 우이다.

맑스의 잣대로 보면 좌는 진보고 우는 보수가 된다. 이는 맑스의 잣대다. 지금 한국은 사회주의를

싫어하는 자들도 맑스의 잣대로 자기가 우라고 우긴다. 그리고 좌를 빨갱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맑스의 역사시대구분은 역사를 보는 시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잣대를 계속 사용해야 할까?

 

이 잣대로 보더라도 지금 가령 새정치당이 진보인가? 절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모두 시장경제를

주장했는데 어떻게 이들이, 이들의 후배들이 진보가 되는가? 어김없는 우파다. 보수다.

한국에 진보는 없다.

진보 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맑스에 의하면 사회주의 방향으로 역사가 발전해야 한다는 지향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게 좋다고 보기에 진보다. 만약 사회주의를 발전기준으로

보지 않는 역사관을 가진 자에겐 사회주의지향은 진보일 수가 없다. 진보 라는 개념 속에 발전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진영이라고 하면 사회주의 방향이 발전방향임을 인정한 것이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자들에게는 사회주의는 진보가 아니다. 이들에겐 자본주의가 진보다.

 

한국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라면 지금 진보다 보수다 붙이는 이름이 유용할 수 있으나

아니라면 이런 개념을 쓰면 안 된다. 시장경제를, 또는 자본주의체제를 인정하는, 수정주의를 택하더라도,

입장이라면 한국사회에서 좌를 무조건 진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자본주의자들에겐 자본주의 지향이 진보다.

 

그런데 맑스의 잣대로 본다고 가정하고 말하더라도 과연 진정한 진보가 있느냐는 것이다. 제일 야당이

진보가, 좌파가 아니라면 한국에서 아직도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극소수자들을 빼면 좌파도 진보도 없다.

대개 평등을 지향하면 좌파라고 아는데 이 평등이라는 이념이 과연 한국이 추구해야 할 이념일까?

평등을 추구하는 국가는 동독을 시작으로 현재 다 망했다. 아직도 정신못차리는 철없는 북한 같은 나라 빼고

현재 사회주의를 실제로 추구하는 국가는 없다. 중국도 겉만 사회주의지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이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를 진보라고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가야하는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극소수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 진정한 좌파는 거의 없는 셈이다. 새정치당은 진보도 아니고

평등을 추구하는 좌파라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럼 그 반대로 맑스의 잣대로 진정한 보수가 있는가? 한국에. 나는 별로 없다고 본다. 새누리를 보수당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글세?

보수주의라면 일단 그 나라에서 국수주의는 아니더라도 민죽주의 냄새를 내야 하는데, 별로....

그런 점에서 조중동 같은 언론를 보수주의라고 할 수도 없다.

 

한국엔 진정한 좌도 우도 없다. 꼭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좌우, 진보보수 라는 개념을 쓰면 쓸수록 유리한 건 새누리고 불리한 건 새정치다. 새정치가 앞으로 유리한

국면을 창출하려면 이런 개념들을 쓰면 안된다.

 

한국에서 지금 필요한 개념은 좌우가 아니다. 필요한 건 정의 다.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유행한 적도 있듯이 한국엔 정의와 불의의 문제만 있다.

민주세력은 진보 보수 라는 말을 쓸 것이 아니라 정의 불의 라는 말을 써야 한다.

한국사회가 지금 정체되어있는 이유는 평등을 지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의 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뇌물이 일반화되어있는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는 어떤 발전도 진보도 없다.

불의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언론은 자꾸 좌우 진보보수 라는 말을 씀으로써 정의라는 이념을 은폐하고 있다.

 

성완종리스트의 문제도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정의 불의의 문제일 뿐이다.
====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은이)한겨레출판2002-06-21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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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00쪽152*223mm (A5신)467gISBN : 97889843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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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박노자가 두 번째 책을 펴냈다. 이번 책에서는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에서 동양사를 가르치며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풀어낸 것이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권위와 체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의 평등한 인간 관계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이다. 처음 노르웨이의 대학을 방문하였을 때 교수와 학생을 구별할 수 없어 당황했던 기억은 저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전히 상하의 질서와 복종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

그러나 박노자는 북유럽 사회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외견상 선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 인종주의와 극우 민족주의 발호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또한 타성에 젖은 북유럽의 평화로운 일상보다는,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세계사와 한국사를 꿰뚫는 해박한 식견과 날카로운 논리는 여전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그 바탕에 있음은 물론이다.
목차
서론 : 노르웨이의 첫인상 - 일상적인 '진보'와 어두운 그늘

1부 또 다른 세계, 북유럽

- 북유럽을 가다
노르웨이 대학 '무질서의 질서'
'체통'이 없는 사람들
'영어 실력'은 평등의 산물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꿰뚫다

-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가 없다
한푼한푼 아끼는 쾌감!
일상적인 데모, 교육적인 데모
'진보는 우리 동네 부터'
공산당 기관지에 보조금까지...
불법을 저지른 외국인이라도...
감옥이 그립습니다?

2부 과연 그들은 건강한가

- 유럽사회의 이면
'탐험 낭만주의'의 허와 실
유럽은 약탈적인 오랑캐였다
'변방'이라는 열등의식

- 제3세계에 대한 이중잣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쉘의 피비린내나는 기름
아프간 난민은 특종 화물?
노벨 평화상에 대한 그들의 시각

- 인종차별과 민족주의
왕가의 권위가 유지되는 이유
노르웨이, 인종차별 정말 없나?
온건한 민족주의, 파시즘을 낳다
민족은 '핏줄'만이 아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각, 그러나...
다른 문화로 가는 가시밭길

3부 반폭력, 평화를 위하여

- 악의 씨앗, 폭력에 반대한다
스카우트, 그 악의 씨앗
"포르노를 불살라버려라"
사냥, 인간이 할 짓인가
동물원, 무죄의 종신형
두들겨 패야 잘한다?
정글에서 숨죽인 아이들
'살육 거부'의 역사를 쓰자

- 테러리즘을 보는 또 다른 시각
이슬람의 이광수, 루시디
노르웨이, 이건 아니다
전쟁? 바밍 캠페인?
미국에 대한 응징은 정당하다?
진짜 깡패왕국, 사우디
테러와 복수의 '적대적 공생'

- 양심의 권리가 더 신성하다
군복무, 합법화된 폭력
시베리아를 넘어, 체첸을 넘어...
'군대 해체'를 상상하자

- 폭력을 거부하는 마음은 인간의 동심이자 본심이다
"당신도 당해봐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고함
비폭력의 삶을 실현하는 길
동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연어의 꿈'과 작은 출발
꿈에서 깨어나와 진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보론 : 좌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단상 - 노르웨이, 유럽,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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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교수와 학생이 서로 대화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과 버스 운전기사들이 승객과 여유 있게 담소하는 장면을 매일 지켜보면서, 나는 한 가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그 행복의 대가를 누가 어떻게 치르는지 알게 되면, 바깥세상에 대한 그들의 의식과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제3세계의 외채탕감 운동이나 제1세계의 부를 좀더 정의롭게 지구적으로 재분배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현대자동차를 살 때 그 자동차를 만든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접기
내 경험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근면성과 인내력, 한국 소장파 학자들의 학구열과 열성은 ㅠ럽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그러면 지금까지도 한국이 많은 분야에서 낙후성과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심리적인 측면에서 비판과 토론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지배층의 그릇된 식민지적 '체통'의식 때문이다.-37쪽 - 피트초이
p.19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의 정글`과 달리, 노르웨이에서는 운전기사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매우 귀중하게 여긴다. 기사 자신들도 승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책임감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잔업이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월급도 대학교수나 정부 공무원과 대충 비슷하거나 약간 많다. 어렵고 위험한 노동의 가치를 사회가 그만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이러한 인정에 기사는 예절과 자기 직업에 충실한 직업정신으로 보답한다.  접기 - 참교육의함성...
저자 및 역자소개
박노자 (Vladimir Tikhonov)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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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한국 고대사와 불교사 등을 연구했고 지금은 근대사, 특히 공산주의 운동사에 몰입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들의 대한민국』(1·2) 『우승열패의 신화』 『주식회사 대한민국』 등이 있다.
최근작 : <전환의 시대>,<한국지성과의 통일대담>,<러시아 혁명사 강의 (리커버 에디션)> … 총 87종 (모두보기)
인터뷰 : 이중의 타자, 박노자 교수와의 e-만남 - 20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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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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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풍요중독사회>,<아주 오래된 유죄>,<세 여자 (어나더커버 특별판, 양장 합본)>등 총 414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1위 (브랜드 지수 282,257점), 에세이 9위 (브랜드 지수 544,705점),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9위 (브랜드 지수 322,22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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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박노자 씨의 글을 접했을때는, 그 글에서 느껴지는 약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 아주 연륜이 깊은 중후한 50대인줄 알았습니다. 그의 수염 덥수룩한 얼굴을 보고는 더더욱 나이를 가늠할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제나이 삼십 중반인가 일때 그는 이십대 후반이더군요. 이런, 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위아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 더보기
폭설 2006-07-21 공감 (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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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특이하다.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념의 차이는 있어도 무조건적인 수직 관계는 없다는 뜻일게다. 박노자가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노르웨이에 살면서 느낀 것을 박식한 한국관련 지식과 관련지어 글을 썼다. 전편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전편이 주로 한국의 역사적 맥락, 외국인의... 더보기
고민고민 2006-06-26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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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6개월은 된 것 같다. 그렇게 오래 끌다니 너무 심했지. 그게 처음에는 밤에 잠 안 올 때 읽기 시작하다가, 그 다음에는 외출할 때 전철 안에서 읽기로 한 탓에 그렇다. 요 6개월 사이에 전철 타고 외출할 일이 한 달에 서너 번이나 될까 말까 하다 보니, 이 책이 가방 속에서 그냥 잠자는 날이 많았다.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이라... 더보기
숨은아이 2005-11-02 공감 (8)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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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훨씬 날카롭고 섬세한 그의 감각이 부럽다..  구매
삐약삐약 2009-10-1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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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박노자이기에 납득되는 시선  구매
책읽개 2015-02-1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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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객관적인 한국인의 시각일거 같네요.  구매
모모 2013-10-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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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부끄럽게 만드는 책 새창으로 보기 구매
 
제목이 특이하다.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념의 차이는 있어도 무조건적인 수직 관계는 없다는 뜻일게다. 박노자가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노르웨이에 살면서 느낀 것을 박식한 한국관련 지식과 관련지어 글을 썼다. 전편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전편이 주로 한국의 역사적 맥락,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 책은 한국인의 눈으로 본 노르웨이와 비폭력에 관한 생각에 해당한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보니, 노르웨이가 일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약 4만달러, 인구는 430만)란다. 우리가 약1만 5천달러 수준이니까, 단순히 비교하면 약 3배 차이다. 물론 여기에서 경제적인 풍요를 중점적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돈을 강조하는 우리 나라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노르웨이가 훨씬 더 잘 산다는 말이다. 효율만을 따지더라도 우리 나라의 편가르기식 사고방식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면 조금 억지스러운 주장일 것이다. 하물며 경제적인 것을 제외한, 삶의 질이나 만족도까지 포함한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물론 노르웨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좋은 천국은 아니다. 그 부유함의 근원이 제3세계에 대한 자원과 노동력의 착취라는 점을 항상 박노자는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사회를 실제로 보는 느낌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무척 부럽다. 언제 이렇게 당연한 일들이 정말 당연한 사회에서 살 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우리 사회를 후진적이라고 매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솔직히 살면 살수록 별로 정이 가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박노자의 글솜씨다. 물론 가끔씩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내가 영어로 글을 쓰면, 내 글을 영어권의 사람들이 아무 불편없이 읽어줄까?

 

무엇보다 읽으면서 난 부끄러웠다. 솔직히 점점 좌우보다는 점점 더 위아래를 생각하는 것 같은 내 자신이 떠올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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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고민 2006-06-26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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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식인, 세계인의 힐문. 새창으로 보기 구매
박노자가 우리 나라 사람이 되어 바라본 우리 나라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군대문화였나 보다.그가 만났던 많은 남학생들이 군대에서 배운 폭력적 언행을 일삼았고, 적대적 여성관을 가졌으며, 사회에서 폭압적 사용자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는 많은 선진국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나도 대학교 시절, 성남의 문무대라는 곳에 가서 1주간 훈련을 받았다.그 때는 총 쏘는 법과 분해법을 배운 게 참 신통했는데,내가 쏜 총에 맞아 죽는 것은 토끼나 멧돼지가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의 무리 외계인도 아니라,세계를 지배하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어메리컨도 아니라,바로 우리 동포의 나의 핏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양심적 병역 거부와 병역 대치의 효율성을 정말 우리 나라에서 깊숙히 생각해야 할 때임을 절실히 깨달았다.외국인이기에 남의 문제를 쉽게 얘기할 수도 잇었겠다.뜨거운 감자이지만, 소파 개정의 문제도 나왔으니군사 축소와 병역 대체의 길도 아울러 논의될 수 있는 열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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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3-02-04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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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식인 열 부럽잖은 신 한국인 새창으로 보기
처음 박노자 씨의 글을 접했을때는, 그 글에서 느껴지는  약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

아주 연륜이 깊은 중후한 50대인줄 알았습니다.

그의 수염 덥수룩한 얼굴을 보고는 더더욱 나이를 가늠할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제나이 삼십 중반인가 일때 그는 이십대 후반이더군요.

이런,

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위아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탐구하면 그렇게

이십대의 나이에 그리 될수 있는 것이더군요.

그 누구에게도 걸림없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기하는 우리사회의 모순들, 공감가는 부분 많았습니다.

제목도 지적하듯이 '위 아래' 이것이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것 같습니다.

 

요즘은 너무 이상적이라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가 제기한 우리사회의 모순들은 다 변화를 시도해야 마땅한 부분들이란 생각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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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2006-07-21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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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는 독서, 이제는 읽는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어느 날 문득, 깨달아버렸다. 언젠가부터 나는 책을 읽는 대신 사들이고만 있다는 것을. 관심 있는 저자의 글들은 매체를 통해 접하며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책을 소장하는 것으로 구체적 이해를 대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겨레에 게재되는 글들을 통해 처음 그를 알았고, 그가 내는 거의 모든 책을 재빨리 사들이며 나는 시의적절하게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해왔나보다. 이런 참... 난 너무 바빠, 라고 말하고 넘기기에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5월 초, 나는 밀린 숙제를 뒤로 하고 정식으로(?) 그의 책을 읽기로 했다.

 감성적으로 나는 북유럽보다는 동유럽에 훨씬 경도되어 있는 편이지만,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마침 북유럽에 대한 약간의 선망과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터였다. 자일리톨의 나라 핀란드보다도 멀게만 느껴졌던 노르웨이 사회를 통해 그가 읽어내는 세계와 진보의 이면과 전망은, 여전히 뒤죽박죽인 우리 사회와 너무나도 판이해 더 멀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국경 혹은 경계의 허약함(?)을 삶으로 보여주는 저자 덕분에 생동감을 얻은 것 같다. 또한 집필 시기를 생각하면 만 3년 이상이 훌쩍 지났음에도, 참 많은 이야기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서글픈 생동감을 더해주기도 했다.

 그가 체험을 통해 전해준 노르웨이의 사회의 모습들 - 역사 속에서 건져올린 시민사회의 빛나는 가치들, 수평적이고 연대적인 학문 공동체로 기능하는 학교, 감시와 처벌이 아닌 부적응자에 대한 사회화를 돕는 감옥,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판과 실천으로 승부하는 정치, 인권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국민정서 - 은 실로 부럽고도 놀라운 것이었다. 더불어 그가 지적한 종으로서의 인류에 원죄처럼 잔존해있는 야만성의 부활에 대한 우려, 나와 우리를 넘어 그들에게로까지 가닿는 공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저자가 가진 비판적 이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이 묻어나 더욱 감동적이었다.

 어떤 성격의 글을 읽더라도 저자에 대한 인간적 관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이 책에서도 여전히 행간에서 풍겨나오는 인간 박노자의 향취에 매료되고 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나고 성장한 구소련과 남한은 어쩌면 전체주의의 광기가 횡행하고 인간에 대한 존엄이 극도로 훼손된 세계의 축소판과 같은 곳이건만, 오히려 그 속에서 세계에 대한 희망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오롯이 되새기며 국적과 국경을 넘어 진보의 이름으로 세계의 전진을 갈망하는 그의 순수함은 실로 놀라울 정도다. 제3세계의 빈곤을 딛고 선 북반구의 풍요에 대해, 유색인종에 대한 억압을 기반으로 한 백인종의 헤게모니에 대해, 좌절과 실패의 역사를 무덤 삼아 반대편으로 돌아선 구좌파에 대해, 그가 보이는 단호함과 실천적 진보에 대한 신념은 한낱 독자인 내게까지도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진보적인 글쓰기로 독자와 만나는 저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결코 어렵지 않은 언어로 우리 사회 우리 시대의 모순과 문제들을 예리하게 들춰보여주는 그들의 글은 일정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약간은 팬시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사회의 진보는 요원한 채로, 진보를 신념으로 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가벼운 시대가 너무 일찍 도래해버린 탓일까. 책을 읽으며 구구절절 동감, 감동하며 내가 느낀 점은 출간 이후 만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었을 터인데, 그 독서의 파장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개인적 독서의 경험이 집합적 실천으로 확인될 리는 없지만, 지면의 증가와 더불어 이런 귀한 글들의 희소성마저도 상실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주제넘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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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어릴때 2005-05-21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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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6개월은 된 것 같다. 그렇게 오래 끌다니 너무 심했지. 그게 처음에는 밤에 잠 안 올 때 읽기 시작하다가, 그 다음에는 외출할 때 전철 안에서 읽기로 한 탓에 그렇다. 요 6개월 사이에 전철 타고 외출할 일이 한 달에 서너 번이나 될까 말까 하다 보니, 이 책이 가방 속에서 그냥 잠자는 날이 많았다.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이라는 주제를 달고 있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제는 “비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북유럽 사회의 경향과 한국 사회, 그리고 세계적인 질서를 견주면서 끊임없이 “자아와 타인에 대한 비폭력”을 주장한다. 박노자 선생의 첫 책인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비판”이라면 이 책은 비판과 함께 대안 모색이랄까. 2002년에 나온 책인데, 3년이나 지난 지금도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는 되풀이되고 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라 뭐라 덧붙일 말도 없다.

앗, 한 가지 덧붙일 말이 있구나. 노르웨이에서 군대 해산을 주장하는 우파 정치인들은 “군대를 해산시키는 대신 나토 기부금을 늘려 안보 분야에서 나토에 의존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노르웨이군의 기존 전략이 어차피 ‘침공을 며칠 동안 저지하며 나토 구원군 도착을 대기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는 사실로 보면, 그렇게 놀라운 발상은 아니”라고 한다. 으허, 군의 전략이 나토군 도착을 기다리며 침공을 며칠 동안 저지하는 거라니? 혹시 한국군의 기본 전략도 ‘침공을 며칠 동안 저지하며 미군이나 유엔군의 도착을 대기’하는 거 아냐? 그렇거나 말거나, 그런 생각이 군대 해산의 기본 주장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국 젊은이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대신(군대라는 강제적 살인 기관 속에 몰아넣지 않는 대신), 돈을 내어 타국 젊은이들의 군대에 기대겠다는 것 아닌가? 좌파는 같은 군대 해산을 주장하면서도 이와 달리 “공동 스칸디나비아 병력의 창립과 구소련에 대한 적극적인 원조와 지원을 통한 전쟁발발 위험의 봉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의 끝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징역형을 받은 오태양 씨와 지은이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가 “데몰리션맨”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런데 어젯밤에 마침 케이블 TV에서 그 영화를 해주더군.) 실베스타 스탤론과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이 영화에서는 시대 배경이 2032년인데, 이 시대에는 누군가 욕을 하면 경고와 함께 벌금을 물리는 쪽지가 벽에서 튀어나오고, 악당들은 모두 냉동된 채 잠들어 있어 폭력 범죄라는 게 없다. 이 부자연스러운 사회를 실베스타 스탤론이 남성적인 박력으로 뒤흔든다. “비폭력”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이처럼 무식하게 드러낸 영화도 없지 않을까. 시민을 항상 감시하고 단지 욕만 못하게 하는 것이 어찌 비폭력이라 할 수 있을까. 범죄자에게 신체와 생활의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이 어찌 비폭력이라 할 수 있을까. 욕만이 언어폭력일까? 욕은 단 한 마디도 없이, 아주 점잖고 세련된 말만으로, 얼마든지 사람을 짓밟을 수 있다.

눈에 쏙쏙 들어오는 박노자 선생의 글을 읽다가, 이 사람은 어째 이렇게 읽기 좋게 글을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자살론]의 재미없는 번역을 읽던 참이라 더욱 비교되었다.) 그건 이 사람이 신문 기사처럼 글을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웬만한 번역서보다, 아니 초등학교 국어부터 다시 배웠으면 싶은 이른바 “전문가”들의 제멋에 겨운 글보다 훨씬 문장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심지어 토박이 작가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문장보다 그의 글이 더 이해하기 쉽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사투리와 국문학을 소홀히 하며 자란 탓에 토박이 우리말을 종횡무진 구사한 글은 외국어만큼이나 한 번에 읽어 내리기 어려운, 슬프고 부끄러운 사정이 있다. 그런데 딱 신문에 나오는 정도 어휘를 가지고 해야 할 말을 정확히 간결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그냥 술술 읽어 넘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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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1-02 공감(8)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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