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지구여성학의 모색 페미니즘과- 원불교의 만남 이주연1

 [한국종교분과 7발표]

지구여성학의 모색 페미니즘과- 원불교의 만남

이주연1)

-순서-

Ⅰ. 머리말

Ⅱ. 페미니즘, 경계의 해체

Ⅲ. ‘에코소피 로서의’ 원불교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이 연구는 지구여성학의 기초적 바탕을 마련하고자 하는 일환으로서 페미니즘에, 원불교적 관점을 보완하 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온 여성의 주체 성을 되찾으려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인간중심주의나 자연을 바라보 는 관점들과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페미니즘은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 그 예로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Chandra Talpade Mohanty)가 ‘경계 없는 페미니즘 을’ 통해 서구중심적 페미니즘을 비판한 것은 전 세계 에 실재하는 국경, 인종, 성 정체성, 종교와 문화 등의 경계들이 각자 단 하나의 색깔을 띠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이고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에코페미니즘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원론적 관점을 비판함으로써 우리가 직면한 바이러스 확산 상 황에도 많은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데, 그러나 인간과 자연 간의 조화와 화합을 추구하면서도 다시금 여성 성을 강조함으로 인해 환원론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점에서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경계의 해체를 통 해 이 환원론적 특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전망되는 반면 인간의, 사이보그화는 인간성을 부정할 수 있다는 비 판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이 생기적 물질성에 단지 ‘참여 하고’ 있다고 본다면 사이보그의, 기계성이 인간성을 부정한다기보다 인간과 기계의 연대의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진화해가는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보완적 관점으로서 원불교 의 은(恩)사상에 주목한다 은사상은. 우주만유가 한 기운으로 맺어진 한 가족으로서 서로 은혜로운 관계를 맺 고 있다고 본다. 이때 은혜는 상대적 은혜가 아닌, 우주만유의 존재양태로서 절대적 은혜를 말한다. 서로를 절대적 은혜로 바라보는 관점은 타자에 대한 불공(佛供)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타자를 공경의 대상으로 정의 한다. 이 점에서 사이보그는 인간성을 부정하는 존재로서가 아닌 공경의 대상인 사이보그로 자리매김할 수

 

1)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있으리라 전망된다.

Ⅱ. 페미니즘, 경계의 해체

1. 에코페미니즘 조화와- 화합의 은유로서 여성

여성과 자연이 서구의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지배당하고 착취되어온 점을 지적하고 나선 에코페미니스트들은 한 마디로 ‘남성적 생태주의 를’ 극복하고자 한다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로 경계 뛰 어넘기를 할 수 있지만 이 세상은 인간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바로. 하늘과 땅 그리고, 공기를 비롯한 ‘자 연 이’ 있어 우리는 삶을 영위해간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이 주목하는 점이 여기에 있다. 언제까지고 인간 중심 적 사고로 자연을 파괴할 수 없다는 반성, 이 곳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여겨야 한다는 새로운 사유가 그것 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정당 화한다. 이러한 명제와 더불어 한동안 많은 인류는 사유 가능한 인간의 ‘존재함 이’ 비인간적 존재들의 ‘존재 함 과’ 다르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성과 합리, 인간은 우위에 있는 반면 자연이나 예측 불가능성 같은 것들은 그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다 바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해도 된다는 자연은, 그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인간 을 위해 존재할 뿐이라는 인간중심적 사고이다.

이러한 인간중심적 사고는 생태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어왔다. 토마스 베리(Thomas Berry)의 경우 ‘자연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감수성이 가져다준 아주 멋진 일 중 하나는 지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 재 발견한 것 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중심주의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생물 종으로 생각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 에 초래한 결과라고 본다 우리. 자신은 다른 여러 생물 종과 함께 하나의 종이라는 것이다.2)

인간은 다른 종의 우위에서 그 종들을 도구 삼는 존재가 아니라 지구라는, 유기체에서 다른 종들과 더불어 살아갈 뿐이다 베리는. ‘지구 공동체 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는, 지구가 모든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 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구 공동체는 어느 종이 다른 종의 도구가 되는 세상이 아닌, 서로의 단독성을 존 중하며 같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생명은. 기성제품과는 다르다 저. 강아지와 이 강아지는 다르고, 각각이 독특하며 특이하다 그래서, . 생명존중의 시작은 생명의 유일무이성 즉, 단독성을 승인하는 것에 있다.3)

에코페미니즘은 지구 공동체로의 전환을 꿈꾸는 성찰, ‘생태 를’ 향한 이 사유가 여성과 자연의 근접성을 바 탕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그간의 인간중심적 사고가 사실상 남성중심적이었다고 말한 다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와 마리아 미즈(Maria Mies)에 따르면 서구의, 남성중심적 가부장제로 인 해서 여성은 타자화되고 생물다양성은 파괴되어 왔다 생물다양성은. 나무 · 작물 · 가축의 공존과 상호의존을 의미한다. 이 다양성의 상실은 단일문화, 획일성, 동질성을 향해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는 가부장적 진보 모델 이 치른 대가를 의미한다.4)

생물다양성의 상실은 유전공학과 재생산기술, 이른바 ‘하이테크 에’ 의해 가속화되어 왔다. 시바와 미즈는 유전공학과 재생산기술에 의해 여성의 인간적 존엄성이 무시된다고 본다 이런. 과학 기술들은 인간의 욕구와 사랑의 욕망에 따라 자유로이 생식을 조절하는 것과 다르다. ‘재생산 을’ 위해 바람직한 요소를 선택하고 바람

 

2) 토마스 베리, 『지구의 꿈』, 맹영선 역, 대화문화아카데미, 2013, 45-49쪽.

3) 신승철, 『철학, 생태에 눈뜨다』, 새문사, 2015, 39쪽.

4) 반다나 시바 · 마리아 미즈, 『에코페미니즘』, 손덕수 · 이난아 역, 창비, 2020, 284-294쪽.

직하지 않은 요소는 제거하기 때문이다.5)

인간중심적 사고로 인해 자연만이 배제되어 온 것이 아니라 여성은 특히( 제3세계), 그리고 비(非)백인은, 노동자는 도구화되고, 그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해왔다 에코페미니즘은. 이중에서 여성과 자연이 같은 방식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대지의 여신’, ‘어머니 지구’, ‘어머니 대자연 과’ 같은 표현들은 자연과 여 성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에코페미니즘이 여성과 자연을 서구의 이원론적 등식에 의해 ‘동일 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여성과. 자연이 똑같이 비과학적이어서 남성이나 문명보다 뒤떨어진다고 본 다면 이는, 에코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여성과 자연의 관계가 아니다.

1970년대에 인도에서 일어났던 칩코 운동(Chipko movement)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환경보호운동이었 다. 나무가 베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고페쉬와르(Gopeshwar) 마을의 여성들이 나무들을 하나씩 껴안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성공했고, 칩코 운동과 유사한 벌목 대항 시위가 곳곳에 이어졌다. 그런데 칩코 운동 에 여성들이 참여했다고 해서 ‘자연보호 여성의= 할 일 이라는’ 공식이 성립됨을 의미하진 않는다. 여성의 본능 적 여성성이 –모성을 기반으로- 당연히 자연을 지켜내려 한다고 여긴다면 이는,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여성, 또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자연이라는 서구의 남성적 가부장제에 근거한 시각일 뿐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양육하고 살려내는 특성의 여성성, 즉 본질적 여성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대신 칩코 운동 과 같이 비폭력적으로 전 지구적 존재들을 배려하고자 하는 여성성을 지향한다 남성과. 여성 · 인간과 자연 · 노동자와 고용자 등을 단선적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여성성, 나아가 조화와 화합을 이뤄내려는 여성성을 추구한다.

그런데 훼이리 리는 에코페미니즘이 강조하는 여성성이 또 다른 환원주의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 어 시바는 ‘자연은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가 없고 단지 서구 남성 과학에 의해 통제되고 착취될 뿐이며 여성 과 비서구 민족들 역시 아무런 가치를 갖지도 생산하지도 못한다.’6)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발 전이 과연 남성적 특징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겠다.

여성과 자연의 관계를 횡문화적(cross-cultural)으로 볼 수는 없다 즉. ‘여성이 본래 고유의 생태적 감수성 을 지니고 있는 반면 남성은, 자연 파괴적인 충동을 타고났다는 증거는 없다.’7). 서구 과학문명을 그저 남성적 이라고 개념화하고 비폭력 · 조화 · 화합들은 여성적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을까?

2. 사이보그 페미니즘-경계 해체하기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에코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여성의 동일시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기술과학의 잠재력을 이용하고 있는 현재 세계를 철저히 분석하고 여성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한 다고 주장한다.8) 사이보그 페미니즘을 주창한 그는 현대에 등장한 SF를 통해 사이보그라는 새로운 피조물에 착안한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가 ‘여성 경험 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바꾼다고 말한다.9)

그는 서구 전통에서 특정 이원론들이 유지되어 온 점을 비판한다. 이원론은 남성과 여성, 주체와 타자, 신 과 인간 자연과, 문명 등을 끊임없이 나누어왔으며 각, 요소들 사이의 연속성이나 연결 관계 따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사이보그라는 새로운 정체성은 이원론이 만들어낸 경계를 벗어나며, 주체가 되어야 한

 

5) 반다나 시바 · 마리아 미즈, 앞의 책, 301쪽.

6) 반다나 시바, 『살아남기』, 강수영 역, 솔출판사, 1998, 327쪽.

7) 훼이리 리, 「에코페미니즘에 관한 횡문화적 비평」, 『자연, 여성, 환경』, 이소영 역, 한신문화사, 2000,

270-1286쪽.

8) 이지언, 『도나 해러웨이』,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101쪽.

9)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역, 책세상, 2019, 18쪽.

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권유한다.

이원론은 어디까지나 둘 중 더 나은 무언가를 설정하길 원한다. 남성과 여성 중 남성이 더 우월하다고, 자 연과 문명 중 문명이 더 유리하다고 주체와, 타자 중 주체가 되어야 권력을 쥘 수 있다고 여기게끔 한다. 그러 나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런 주체됨이 곧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타자됨은 다양해지는 것, 분명 한 경계가 없는 것 너덜너덜해지는, 것 실체가, 사라지는 것’10)이다 즉. 이원론적 유토피아는 허구다. 대신 경 계가 사라지고, 혼종화되고, 그 모습이 희미해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게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입장이 다.

타자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은 순수함, 완벽함을 향한 동경을 저버림을 의미한다. 사이버 공간과 사 이보그가 자연스러워진 지금 여성은, 더 이상 재생산 기능을 담당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이보그는 ‘여성이냐, 남성이냐 는’ 방식의 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은 흔히 ‘포스트 휴먼시대 라고’ 불린다. 해러웨이가 강조한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인간과 비인간 여성과, 남성 자연과, 문화에 대한 이원론적 담론과 경계를 벗어난다.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함에 따라 나타난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그러나, 첨단 기술이나 유전공학을 이용할 수 있는 부가 극히 소수에게만 허용된 현 상태에서 사이보그를 찬양하는 것은 나이브한 자세라는 비판을 받는 다 또한.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생성과 소멸을 해야 하는 인간의 육체성 나아가, 인간성 자체를 ‘극복되어야 하 는 것 으로’ 보는데 인간성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관점은 결국 다시금 전체주의적일 뿐 아니라 여성을 육체 와 동일시하고 혐오하는 가부장적 관점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11)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 중에는 사이보그 페미 니즘이 에코페미니즘의 보완점을 지녔다는 점도 있다 해러웨이가. 언급했던 유전자 변형동물 앙코마우스TM 이나 여성인간Ⓒ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만 설명되던 젠더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이들. 사이보그는 이전에 여성 이 전통적 방식으로 출산하던 존재가 아닌 기계와, 인간 자연과, 문화의 융합으로서 젠더에 대한 우리의 기존 의 관념을 허물어뜨린다.

정말 사이보그는 인간성을 부정하는가? 사이보그가 인간과 기계의 혼융체라고 해서 인간성을 부정하는 존 재라고 볼 수 있을까? 둘 중 하나를 부정하는 방식이 아닌, 사이보그 성 과‘ ’ 인간 성 이‘ ’ 함께 진화하는 길도 있 지 않을까? 제인 베넷(Jane Bennett)은 『생동하는 물질 에서』 ‘사물-권력’12)을 언급한다. ‘사물-권력 은’ 활기 없는 사물들의 기이한 능력을 말한다 베넷이. 물질의 생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비인격적인 생명 또는 비유기 적인 생명에도 ‘행위소 행위의( 원천 가)’ 있으며 따라서, 인간과 다른 물질성들 사이의 관계를 보다 수평적으로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권력도 ‘사물 권력 이다 비인간의- ’ . 권력도 ‘사물 권력 이다 인간은- ’ . ‘물질들이 특별히 풍부하고 복잡하게 모인 집합체 라는’ 점에서 그렇다. 베넷은 사람과 사물 사이에 존재론적 구별을 지양해야 한다고 보 며 인간이, 세균보다 특권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 관념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생기적 물질성에 인간은 단지 ‘참여 하고’ 있다고 말한다.

생동하는 물질성에 ‘참여 하는’ 인간은 비인간 존재와 함께 한다 무릎. 연골이 손상된 환자가 인공 이식물을 신체에 삽입함으로써 사이보그가 되고 다리가, 불완전한 사람은 로봇의족을 착용하여 사이보그가 된다. 이와 같은 사이보그들은 대중적이고 보편적이며, 생기적 물질성에 참여하는 인간이라고 해서 인간성을 부정당하 는 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인간이 인공 이식물이나 로봇의족과 새롭고 긴밀한 연결망을 형성함으로 인

 

10) 도나 해러웨이, 앞의 책, 77쪽.

11) 김영숙, 「사이버 페미니즘 다나( 해러웨이 과) 에코 페미니즘 김선희 의( ) 비교 분석」,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8-9, 한국콘텐츠학회, 2018, 73-74쪽.

12)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문성재 역, 현실문화, 2020, 46쪽.

해 ‘모든 신체가 관계들의 빽빽한 네트워크 속에서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는 점’ )을 증명한다 즉. 사이보그의 기계 성 이‘ ’ 인간성을 부정한다기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불가분한 연결 관계를 통해 각 생기적 물질성이 연대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Ⅲ. ‘에코소피’로서의 원불교

에코페미니즘은 기존의 페미니즘들에 비해 그 범주가 지구적이다.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고용자와 노 동자 백인과, 비백인 등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모든 존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길 바라는 에코페미 니즘은, 다만 여성성의 강조로 인해 남성과 여성을 또 다시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려 한다는 아쉬움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과 기계, 그리고 젠더의 규정을 허물어뜨리는 사이보그 페미니즘으로부터 이 아쉬움이 보 완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여기에도 물론 하나의 전제가 붙는다. 바로 사이보그로부터 창발 되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상이 다른 정체 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님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사이보그로서의 여성은 더 이상 자연 질서에 묶인 존재가 아니며, 정신과 물질, 유기체와 기계, 자연과 기술문명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 는 정치적 주체를 상징한다. )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에코페미니즘에서 만들어졌던 또 다른 경계들을 해체한 다 무언가를. 해체한다는 것은 구속과 억압에서 자유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해체를. 통해 그간 묶여있던 것들 이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폭력으로 이어지는 안정성, 그리고 여성과 자연,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들을 해체함으로써 우리는 우월 한 것과 열등한 것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데서 오는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폭력성 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해서 해체된 각자가 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미래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운명을 가진다. ) 누구나 긴밀하게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이원론에 의한 폭력성 대신 ‘우리가 공유하는 행성 차원의 집에서 잘 살아가는 길에 관한 학문으로서 에코소피(eco-sophy)’ )를 기반으로 할 필요가 있다.

에코소피는 전 지구적 존재 가운데 서로가 잘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뜻한다. 인간과 기계가, 남성과 여성 이, 자연과 문명이 서로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에코소피는 가까이 한국의 토착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이천식천(以天食天)’, 즉 하늘로써 하늘을 먹는다, 다시 말해 하늘이 하늘을 먹여 살린다는 이 말은 성별이나 인간과 자연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적 구분을 초월해 모두가 하늘임을 의미 한다 하늘이. 하늘을 먹이니 서로에게 이로운 관계라는 것이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나 경물(敬物)사 상은 우리 모두가 하늘 아님이 없으므로 공경 받아야 마땅하다는 뜻을 지닌다.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이 제시한 ‘사은(四恩)’ 교의에서 모두가 ‘없어서는 살지 못할 관계 로서’ 은 혜로 만나진다고 밝힌 바 있다 원불교에서는. 이 세상에 은혜 아님이 없다고 보는 은혜의 사상 즉, 은(恩)사상 을 말하고 있으며 이, 은사상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밟아야 하는 요긴한 길을 말하는 ‘인생의 요도(要道)’ 에 해당된다. 은사상은 종래 유교에서 천(天)만을 중시하던 은관념을 ‘천지은 으로’ 전환시킨 데다 불교에서 부모은을 앞 세웠던 덕목 위에 천지은을 세운 점 그리고, ‘동포은 을’ 통해 하시(下視)되던 중생을 평등한 형제 정신으로 돌 린 점, ‘법률은 을’ 세움으로써 기존에 감정적인 사랑에만 흐르고 정의를 세우기 힘들었던 종래 윤리를 돌린 점 에서 그 의의가 깊다.17)

즉 하늘의 은혜만이 아닌 땅의 은혜를 알고 부모의, 은혜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닌 천지의 은혜도 알며, 모 든 존재들을 중생과 부처 가림 없이 한 태포 안의 한 형제로 보고 인도, 정의의 공정한 법칙으로 실질적인 안 녕과 질서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는 모든 인간과 천지자연이 동등하여 존중받을 권리를 가짐을 의미한다. 은사상이 에코소피의 하나로서 주목되어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을 포함한 천지 만물 에서 은혜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에코소피로서의 가치가 드러난다.

불교에서는 정신과 물질은 본래 그 근원이 같으며 서로 공존하는 상즉(相卽)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정신과 물질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므로 정신에만, 치우치거나 물질만을 생각한다면 이는 편견 이 된다는 입장이다.18) 그리고 생활불교를 표방한 원불교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라는’ 표어를 통해 종교의 문을 연 동기를 드러내고 있다.

원불교에서 강조하는 정신개벽은 현대사회의 물질적 요소들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만큼 이 물 질을 선용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이 중요하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불교에서 강조한 정신과 물질의 공 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을 적극적으로 선용함으로써 정신의 개벽을 도모하려는, 보다 적극적으로 물 질과 정신을 다루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예를. 들어 조성환과 이병한은 ‘일원주의 사상을 물질화하는 것이 바 로 공화제도’19)라고 말한다 단순히. 선거제나 민주제에 한정된 공화제가 아닌 ‘정신적 자각 이’ 동반되는 공화 제가 원불교가 추구하는 물질과 정신의 병행이자 물질의 선용을 동반하는 정신개벽인 것이다.

원불교에서 천지 · 부모 · 동포 · 법률의 네 가지 은혜를 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은 (四恩)의 이 네 영역은 물질적 측면에 해당된다 이. 물질적 요소들이 전부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살지 못할 관 계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 은혜에 보은하되 배은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물질의 은혜로운 특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태산은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 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다 라고.’ 하여, 사은 은 곧 일원상(一圓相)이자, 이 우주의 모든 존재임을 설명한 바 있다. 이때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20) 에 해당한다 박길진에. 따르면 일원상은 절대적 진리 즉, 법신불(法身佛)을 최고 경지로 알아서 이를 「○」으로 상징한 것이다.21) 일원상에 천착했던 그의 견해 중 ‘일원상의 진리를 인간 개개인의 성품 가운데에서 찾아낼 수 있다 고.’ 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원상은 즉. , 사은은 나 자신이기도 하고 우주만유이기도 하며, 따라 서 나 자신이 곧 우주만유임을 함의한다. 내가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사은으로서의 은은 상대적인 관계로서의 은이 아니다.’22)

다시 말해 우주만유가 전부 절대적 은혜로 연관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이 우주만유와 하나로서 궁극의 긴밀성 아래 맺어져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 점에서 ‘사은 교의를’ 통해 우주만유의 존재 양태를 은혜 의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상대적인 은혜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며, 절대적 진리로서의 법신불이 물 질적으로 나타날 때 어떤 관계성을 지니는지, 그리고 어떤 관계로 발전되어야 할지를 절대적 은혜로 해석한

 

17) 한정원, 「恩으로 본 圓佛敎의 倫理觀」, 『교학연구』4, 원광대학교 교학연구회, 1970, 22쪽.

18) 오형근 · 강건기, 「佛敎에서 본 정신과 물질과의 관계」, 『철학』35, 한국철학회, 1990, 85쪽.

19) 조성환 · 이병한, 『개벽파선언』, 모시는사람들, 2019, 224쪽.

20) 『대종경』 교의품 3장.

21) 박길진, 「一圓相 硏究」, 『일원상과 인간의 관계』, 원광대학교 출판국, 1985, 79쪽.

22) 박상권, 「원불교 신앙론」, 『원불교 신앙론 연구』, 원불교사상연구원 편,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6, 68쪽.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근거하여 2대 종법사였던 정산 송규의 삼동윤리 중 둘째 강령 ‘동기연계(同氣連契)’를 살펴 보면, ‘동기연계 는’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 합하자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3대 종법사 대산 김대거는 ‘동생일원(同生一圓)’이라 하여 전 인류와 모든 생 령이 하나로 엮인 가족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원불교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전 지구적 존재는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로운 관계로 맺어 져 있으며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불공(佛供)의 대상 공경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인간과 기계의 혼융 체 사이보그도 –서로 동일하게 생동하는 물질인 인간이나- 기계를 부정하는 존재가 아닌 은(恩)적 존재, 서로 가 공경하고 공경 받아 마땅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사이보그가 인간성과 기계 성의 ‘이로운 융합 이’ 된다면,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을 모든 경계를 해체하는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경하고 공경 받는 사이보그’, ‘은(恩)적인 사이보그 와’ 같은 패러 다임으로 구체화해도 좋을 것이다.

Ⅳ. 맺음말

긴 세월 불평등의, 세상을 견뎌온 여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다양한 페미니즘들이 진화를 거듭해왔다. 물 론 페미니즘이 여성 외의 존재들이 겪는 불평등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불평등의 대표적 대상 으로서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며 민족과, 인종 계급, , 자연 등의 문제가 여기에 복합적으로 얽혀 있 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고자 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한 때는 경계를 뛰어넘어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려 했고, 이제는 경계를 허물어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인간 · 문명 · 남성이 자연 · 여성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을 해체하 고자 한다. 이제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서열의 설정으로 인해 생성되던 폭력과 억압을 공경과 은혜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여성이 겪는 불평등의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을 것이 다.

이 곳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관계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 관 계 속에 감돌던 답답한 공기를 밝고 맑은 공기로 전환시키는 것 이, 가운데 여성의 권리를 찾아가는 것, 바로 지구적 페미니즘의 갈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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