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종교*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개벽종교를 중심으로-
조성환**⋅허남진***45)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책임연구원/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연구교수
1. 서론: 지구화의 대두
2. 지구화(Globalization)와 지구학 (Global Studies)
3. 지구인문학의 모색과 한국종교의 재해석
4. 결론
국문요약
1990년 이래로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새로운 상이 출 함에 따라, 서양학 계에서는 지구화의 정치⋅경제⋅사회 상을 분석하는 지구학(Global Studies)이라 는 학문분야가 두되었다. ‘ 로벌 사회학’(global sociology)이나 ‘ 로벌 역사’
(global history)와 같이 ‘ 로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학문 명칭이 그것이다. 그
에서도 특히 인간 심주의를 극복하고 지구 심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토마스 베리 나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와 같은 학문 경향을 이 에서는 ‘지구인문학’(Global Humanities, Globalogy)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지향은 조선후기 의 홍 용의 의산문답과 개벽종교에서도 발견된다. 홍 용은 지구구형설을 바탕으 로 국은 물론 지구조차도 우주의 일부에 불과하고, 인간 존재 역시 지구 에 서 보면 만물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최시형도 지구에 존재하는 만물을 공경 하라는 지구도덕론을 설 하 는데, 최시형의 지구인문학은 이후에 천도교 사상가 이돈화의 한울의 우주론과 인간 으로 이어졌다. 원불교에서도 일원의 우주론과 사 은의 윤리학을 통해, 마치 지구화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듯이, 우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라는 지구인문학을 주창하 다. 한편 로 오
*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9 S1A5B8099758). 이 글은 2020년 8월 28일에 원광대학교 교책연구소 연합포럼에서 발표한 「코 로나 시대의 지구인문학」의 일부를 보완한 것이다.
** 공동 제1저자
*** 공동 제1저자 및 교신저자
면 1994년에 김 이 만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지구민주주의’(Global Democracy) 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2003년에 인도의 반다나 시바가 주창한 ‘Earth Democracy’와 상통하고 있다. 주제어: 지구인문학, 홍대용, 동학, 천도교, 원불교
1. 서론: 지구화의 대두
1990년대부터 서구학계에서는 새로운 학문용어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지 금은 일상어가 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 그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기술적으로는 교통과 통신(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세계가 하나 로 연결되는 “시공간의 압축”(time-space compression) )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
어진 용어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처음에는 ‘세계화’라는 번역어로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세계화’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경제적 지구화’(economical globalization)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의 세계 적 전파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번역용어는 시공간의 압축이나 지구적 문화 와 같은 현상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전한 개념으로 인식되었다.2)
‘지구화’라는 번역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아마도 독일의 사회
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의 Was ist Globalisierung? (1997)의 번역서부터일 것이다. 영어로는 “What is globalization?”이라는 제목의 이 책 은 우리말로는 지구화의 길 (2000)로 번역되었다. ) ‘세계화’가 아닌 ‘지구 화’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 번역어는 당시 서구의 ‘globalization’담론에 대한 울리히 벡의 비판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울리히 벡은 globalization을
⋅허남진 |
경제적인 세계화로만 이해하는 것은 globalization의 전체적인 측면을 놓치는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globalization은 정보⋅문화⋅생산⋅생태 등의 영역에서 전 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위험의 globalization’(globalization of risk)에 대해서는 이미 1986년에 쓴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부터 강조
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은 위험이 지역이나 국가를 넘어서 지구적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Was ist Globalisierung?”의 번역어로 ‘세계
화’가 아닌 ‘지구화’를 택한 것은 울리히 벡의 이러한 비판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지구화의 길에서는 ‘지구화’를 비롯하여 지구성(globality), 지구주의(globalism), ‘성찰적 근대성’(reflexive modernity)과 같이 당시 서구학 계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개념들을 상세히 논하고 있다. ) 이 점은 지 구화로 인해 ‘지구성’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 그것이 근대성과 의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쉬(Bruce Mazlish. 1923∼2016)는 지구
화를 프랑스혁명에 비유하면서 ‘지구화혁명’이라고 표현하였다. 그에 의하면, 프랑스혁명과 지구화혁명은 비록 수단 상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기존의 권력체제를 전복하여 새로운 힘과 주권을 위한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기존 의 장벽을 허물고 색다른 방식으로 정체성과 경계를 초월하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화는 프랑스혁명보다 더 큰 영향력과 심 도를 지니고 있으며, 그 효과 역시 전 지구적이다. ) 그 만큼 지구화가 발휘 하는 힘과 파장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90년대 이래로 지구화에 대한 논의는 경제학, 국제관계학, 정치학,
역사학, 지리학, 종교학 분야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종교학에서는 종교사회학자들의 주도로 ‘지구화와 종교’라는 주제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크로아티아 출신의 미국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
(Miroslav Volf)는 지구화시대의 종교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그는 지구화는 양 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구화를 그 그림자에서 구해 내려면 종교가 필요하 다고 역설한다. 지구화는 생태적 재난과 같은 영향에 맞설 도덕적 자원이 부 족한데, 이 부분에서 종교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 최근에는 “지구종 교”(Global Religion)라는 용어로 세계종교를 지구적인 맥락에서 재서술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 또한 사회학 분야에서도 ‘글로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회학 서적들이 출판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로빈 코헨과 폴 케네디 의 Global Sociology다. 2000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로 2013년에 3판까지 나 와 있다. 우리말로는 글로벌 사회학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 글로벌을 한 자로 바꾸면 ‘지구사회학’이 될 것이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1990년대부터 지구사회학(Global Sociology), 지구종교학
(Global Religious Studies), ) 지구사(Global History) 등 각 분야에서 ‘글로벌(지 구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연구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 한 새로운 학문적 경향을 ‘지구학’ 또는 ‘지구인문학’이라는 틀로 명명하고, 동일한 문제의식을 한국종교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해석학 적 작업은 오늘날 인류가 부딪히고 있는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상 적 실마리를 한국사상 안에서 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의 순서는 먼저 ‘지구화’와 관련된 서양의 논쟁의 흐름을 살펴보고, 지구 화를 주요한 테제로 삼고 있는 ‘지구학(Global Studies)’의 연구경향을 고찰한 다. 이어서 사회과학 중심의 ‘지구학’과는 다른 ‘지구인문학’이라는 독립된 학 문분야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마지막으로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최한기의 지 구전요, 그리고 동학과 원불교와 같은 조선말기 이래의 한국종교에 나타난 사상을 지구인문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허남진| 2. 지구화(Globalization)와 지구학(Global Studies)
2.1. ‘지구화’(Globalization)란 무엇인가?
‘지구학’의 핵심주제는 ‘지구화’이다. 지구화는 “전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 어 간다(化)”는 의미이고, ‘지구화시대’(global age)는 이와 같은 “지구화가 전 개되는 시대”를 말한다. ‘지구화’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이다. 전 세계에서 쉽게 목격되는 맥도널드, 스타벅스, 그리고 WHO, WTO와 같은 초국가적(transnational) 기구들은 지구화 현상을 말해주는 대표적 인 사례들이다. 현대사회는 시간이 갈수록 상호 관계가 긴밀해지고 서로간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지구화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포착하는 개념 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지구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다양한 해석
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경제적 과정이 지구화의 핵심이라고 인식하는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정치나 문화 혹은 이 념을 지구화의 본질로 본다. 이에 대해 가장 대표적인 지구화 연구자인 맨프 레드 스테거(Manfred B. Steger)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들면서, 이러 한 관점들은 지구화 현상의 중요한 측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는 있지만, 지 구화라는 복잡한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구화란 “지구적 차원의 상호연결성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간결하게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상호연결성의 글로벌화, 즉 개인, 집단, 사회가 하나의 지구 안 에서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이 지구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 점에서 그는 최근에 개정판이 나온 지구화 입문서에서 지구화에 대한 설명을 지구사적(Global History) 이해를 시작으로 하여 경제적⋅정치적⋅문화적⋅생 태적⋅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
한편 지구화가 좋은가 나쁜가를 둘러싼 논쟁도 진행 중이다. 지구화는 위
험성과 가능성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구적으로 확산시켜 더욱 발전시키고 공 유하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경제적 불평등이나 혐오 또는 기후위기와 “위험 의 지구화”(울리히 벡)는 지구화의 어두운 측면에 해당한다.
그래서 인도 출신의 지구사 연구자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
는 지구화와 지구온난화의 동시발생에 주목하였다. ) 지구화는 지구온난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초연결사회가 가져온 재앙으로, ‘질병의 지구화’에 속한다. 그래서 혹자는 ‘탈 지구화’를 논하기도 하고, 지구적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지구화에 대 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2.2. 지구화를 다루는 지구학(Global Studies) - ‘지구사’를 중심으로
울리히 벡의 지적처럼 지구화는 지난 30여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진행되어 왔다. 이와 같은 지구화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각 학문 분야에서도 지구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지구화를 연구하는 얀 네데르베인 피 테르서(Jan Nederveen Pieterse)는 지구화에 관한 연구주제를 각 분야별로 다음 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표
1> 각 학문분과에서의 지구화 연구 경향
분과학문 |
행위자, 영역 |
키워드 |
경제학 |
다국적기업, 은행, 기술 |
글로벌 기업, 세계 생산, 글로벌 자본주의,
신경제 |
문화학 |
매스미디어, 정보통신, 광고, 소비 |
글로벌 빌리지, CNN World, 맥도널드화, 디즈니화, 혼종 |
정치학 국제관계학 |
국가의 국제화, 사회운동, 국제 비정부기구 |
국가들의 경제, 포스트 국제정치학,
글로벌 시민 사회 |
사회학 |
근대성 |
자본주의, 국민국가, 산업화 |
철학 |
지구적 성찰성(global reflexity) |
지구윤리, 보편적 도덕성 |
정치경계학 |
자본주의 |
세계시장 |
역사학, 인류학, 종교학 |
문화 간 교역, 기술,
진화, 세계종교 |
지구적 흐름, 지구적
에큐메네(ecumene) 기업의 대규모화, 종교적 지구화, 지구사, 탈유럽중심주의, 탈중심화, 다양한 근대성(multiple modernities), 지구적 근대성(global Modernity) |
생태학 |
지구생태학, 생태계의 통합 |
우주선 지구(spaceship earth), 지구적 위기 |
* 출처: 얀 네데르베인 피테르서, 지구화와 문화, 조관연⋅손선애 옮김 (서울: 에코리브르, 2017),
p.30. (표는 인용자가 일부 수정함)
⋅허남진 |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서구에서는 지구화에 관한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각 학문분야에서 전문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것들을 종합적으로 연구 하는 분야를 ‘지구학’(Global Studies)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국내 역시 지구학 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다소 제한적인 느낌이 든다. 여러 대학에서 ‘Global Studies’를 표방하고는 있는데, 대부분 국제관계나 지역연구, 또는 국제통상과 같은 기존의 프로그램을 ‘지구학 프로그램’으로 확대 재편하여 설계하고 있 기 때문이다.
한편 각 학문 분과에서 지구화 현상을 다룰 경우에는, 앞에서도 소개했듯
이, ‘global’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이고 있다. 사회학의 ‘global sociology’와 역사학의 ‘global history’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global sociology’는 우리말로 ‘글로벌 사회학’이라고 번역되고 있지만, ‘global history’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는 ‘지구사’라고 소개되고 있고, 중국에서도 ‘전구사(全球史)’로 통용되고 있다.
지구사(global history)는 지구학 중에서도 특히 최근에 연구가 활발한 분야
이다. 지구사는 크게 두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빅히스토리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별로 지구화 과정을 다루는 분야이다.12) 빅히스토리로서의 지구 사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 을 거시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한편 대표적인 지구사 연구자인 매즐리쉬는 지구사를 “지구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성찰”과 “지역이나 국가의 층위가 아 닌 지구적 층위에서의 연구”로 정의하고 있는데, 지구사의 고유한 영역은 전 자에 있다고 보고 있다.13)
한편 서양에서 지구사가 대두되게 된 주된 원인은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 심주의,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일찍이 울리히 벡이 근대 사회 과학은 국가를 단위로 하는 학문이었다고 지적했듯이14), 근대 학문은 국가 중심의 학문이었다. ‘국사’나 ‘국문학’과 같이 국가 단위로 학문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세계사’(World history)는 이러한 ‘국사’들의 집합체이다. 그런
12) 가령 국내에 번역된 연구서로는, 오드 아르네 베스타, 냉전의 지구사, 옥창준 외 옮김 (서울: 에코리브르, 2020); 헬렌 세이버리, 차의 지구사, 이지운 옮김 (서울: 에코리브르, 2010) 등이 있다. 차의 지구사 이외에도 치즈, 빵, 위스키, 향신료 등을 주제로 한 지구사 시리즈도 번역 되었다.
13) 조지형, 「새로운 세계사와 지구사」, 역사학보 173 (2002), pp.348-349. 14) 울리히 벡, 지구화의 길, p.49, p.54.
데 이 때 세계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유럽’이었다. 그 이유는 ‘근대화’의 시작 이 유럽에서부터라고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쓴 세계사는 서양에서 시작된 근대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갔다고 하는 ‘서구 근대 사의 지구적 적용’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최근에 등장한 ‘지구사’는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고
있다. 대표적인 지구사 연구자인 독일의 세바스티안 콘라드(Sebastian Conrad) 는 2016년에 출판한 What is Global History?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구사’는 그동안 역사가들이 과거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해 왔던 도 구들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확신에서 탄생하였다. (…) 특히 근대 사회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개의 ‘태생적 결함들’이 우리로 하여금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정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 이 결함들의 기원은 19세기 유럽에서의 근대 학문의 형성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첫 번째 결함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탄생이 (국민) 국가에 얽매여 있 었다는 것이다. (…) 역사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국사(國史)에 한정되어 있 었다. 두 번째 결함은 근대 학문분야가 지극히 유럽중심적이었다는 것이
다. (…) 국가, 혁명, 사회, 진보와 같은 분석적 개념들은 구체적인 유럽의 경험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고 하는 (보편적인) 언어의 이론으로 전 환시켰다. (…) 지구사는 근대 학문의 두 개의 불행한 반점(=태생적 결함) 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15)
여기에서 콘라드는 근대의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은 19세기 유럽에서 탄생 하였는데, ‘국민국가의 탄생’과 같은 유럽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 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에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지구사는 국가 중심과 유럽 중심이라는 두 가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시도 되고 있는 새로운 역사서술 방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사 연구 자들이 ‘세계(world)’라는 말 대신에 ‘지구(globe)’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이유 는 ‘세계’와는 달리 ‘지구’는 서구중심주의에 오염되지 않았고, 국제적
(international)이나 초국가적(trans-national)에서와 같은 ‘국가’를 전제로 하지 않
15) Sebastian Conrad, What is Global Histor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2016), p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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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때문이다.16)
한국의 대표적인 지구사 연구자인 조지형도 지구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 문제를 “유럽중심주의 극복”으로 설정하고 지구사는 유럽중심주의, 중화주의, 자민족중심주의, 국가(일국)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각과 방법론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특히 지구사는 20세기 후반의 지 구화 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았다고 한다. ) 뿐만 아니라 지구사는 상호관계성과 상호의존성의 관점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들에 얽혀 있는 인간의 경험을 살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도 특히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균형 즉 공생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반면에 종래의 세계사에는 이러한 상호관계성의 역사적 안목과 의식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지 못 하고, 특정 집단⋅지역⋅국가를 중심으로 인간의 인지적 경험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 새로운 학문분야로 부상하고 있는 지구사는 세계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전 지구적 포괄성, 상호연관성, 보편성, 탈유럽중심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인류사 전체에 대해 객관적이고 탈중심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적 차원에서 역사를 이해하는 ‘글로벌 히스토리’(지구사) 분야
를 ‘지구역사학’이라고 부른다면, ‘글로벌 사회학’도 ‘지구사회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구종교학’, ‘지구정치학’과 같은 명명도 가능 할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지구학’(Global Studies)은 이런 학문들을 총칭 하는 개념이다. 마치 조선후기에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흐름이 생겨났듯 이, 서구학계에서도 1990년대부터 ‘지구학’이라고 불릴만한 새로운 학문조류 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지구학’이라는 명칭이 본 격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해외에서도 ‘글로벌’이라는 수식어는 붙고 있지만 지구사를 제외하고는 주로 사회과학과 같은 일부 분야에서만 사용되 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지구학의 태생이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상호 연결 성을 이해하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히 논의되는 주제도 지구화로 인해 대두된 ‘지구적 이슈’(global
issue)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령 일리노이대학의 지구학 센터장을 역임했던 에드워드 콜로드지(Edward Kolodziej)는 지구학의 연구와 실천에 적합한 지구 적 이슈로 인권과 생태적 재앙, 바이러스 감염,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을 지적 한다. ) 또한 최근에 들어서는 지구학 학회나 연구소의 주된 관심이 코로나 19와 같은 팬데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서양의 지구학 연구는 지구 온 난화나 생태문제와 같이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논의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3. 지구인문학의 모색과 한국종교의 재해석
3.1. ‘지구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지구사 연구자인 콘라드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밀고 나가면, 종래
의 사회과학 중심의 ‘지구학’도 여전히 인간중심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기에서 논의되는 지구성(Globality) 개념에는 비인간 존재들은 배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크라바르티는 지구화 이야기가 본질적으로 인 간중심적이라고 지적하면서, ) 지구시스템이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 닫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주의적(Homocentric, anthropocentrism) 사고에서 생명중 심적(Zoecentric, non-anthropocentrism)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1) 여 기에서 차크라바르티가 말하는 ‘생명중심적 사고’는 비인간 존재들까지도 지 구시스템의 일원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적 사고’(global thinking) 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과 국가 중심의 근대적 인문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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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인문학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최근에 제안된 개념이 ‘지구인문학’이 다. ) 지구인문학은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고, 인간 이외의 존재들 도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간주하여 인문학의 대상으로 삼는 학문분야를 말한다.
이러한 의미의 지구인문학에 가장 걸맞은 대표적인 학자는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1914∼2009)이다. 자신을 ‘지구학자’(Geologian 또는 Earth Scholar)라고 자
칭한 그는 지금까지의 학문들은 모두 인간이 지구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구되어 왔다고 비판하면서, 지구의 목적을 위해 지구를 연구할 때가 왔다 고 제창하였다. 아울러 지구를 착취의 대상이 아닌 사귀어야 할 주체로 인식 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생태대(Ecozoic Era)’라는 새로운 시대 개념을 제안 하였다. )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일부로, 지구라는 우주선(우주선지구) 안에 서 다른 존재들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런 맥락에서 그는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지구공동체는 인격⋅비인 격, 생명⋅무생명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지하의 ‘우주적 공동주체’ 개 념과도 일맥상통한다. )
또한 토마스 베리는 지구공동체 개념에 입각하여 인간 이외의 존재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지구법’(Earth Jurisprudence)을 제창하였는데, 이 제안은 최근에 현실화되었다. 뉴질랜드에서는 2017년 3월에 전 세계 최초로 ‘강’에다 인간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였다. 왕거누이 강의 오염을 우려한 뉴질 랜드 의회와 원주민 마오리족이 합작해서 지구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 이러 한 흐름을 반영하여 최근에 한국에서도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을 중심으로 지 구를 위한 법학 :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지구중심주의로가 출간되었다. )
뿐만 아니라 인류학 분야에서도 종래의 인간 중심의 인류학을 넘어서(beyond)
지구적 차원의 인류학이 시도되고 있다. 2013년에 출간된 에두아르도 콘
(Eduardo Kohn)의 숲은 생각한다28)가 그것이다. 원제는 “How Forests Think: Toward an Anthropology Beyond the Human”인데, 부제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인간 이외의 존재들에서도 ‘사유’능력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중심 의 인류학을 넘어서는(beyond)’ 지구적 차원의 인류학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 한 차원의 인류학은 지구학이나 지구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인류 학’(Global Anthropology)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 학문에서는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지구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지구인문학도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하는 ‘지구살림학’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단지 ‘문사철’의 영역에만 한정 되지 않으며, 지구법학이나 지구인류학 또는 지구정치학이나 지구종교학, 지 구평화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 영역이 들어올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지구적 위기는
인간이 지구시스템을 교란시킨 결과이다.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구 적 전환(Global Transformation)이 필요하고, 지구적 연대, 즉 지구공치(地球共治, Global Governance)가 요청된다. 아울러 인간 중심의 ‘인간세’ 또는 ‘인류 세’에서 지구 중심의 ‘지구세’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지구인문학은 이러한 시 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학문이다.
3.2. 지구인문학적 관점으로 본 홍대용
흥미롭게도 토마스 베리와 같은 지구인문학적 관점은 한국철학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초기의 유학자 추만 정지운과 퇴계 이황은 중국의 「태 극도(太極圖)」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천명도(天命圖)」를 제작하였다. 「태극 도」가 태극에서 음양오행을 거쳐 만물이 분화되는 과정을 도식화한 일종의
‘만물생성도’라고 한다면, 「천명도」는 지구를 하나의 ‘원’으로 도상화하고,29)
문화원, 2020).
28) 에두아르도 콘, 치은정 역, 숲은 생각한다 (서울: 사월의책, 2018).
29) 이 점에 대해서는 퇴계학을 연구하는 이원진 선생으로부터 계발을 받았다. 조성환 정리, 「(한 국학포럼) 낙관적 우주와 역동적 초월 – 조선의 도상학과 한국의 민주화를 중심으로」, 《개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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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다 지구의 구성원인 인간과 만물을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토마 스 베리가 제창한 ‘지구공동체’를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유학자이니만큼 ‘도덕’을 기준으로 인간과 만물의 존재론적
위상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인간중심적이다. 그래서 ‘기’가 맑 은 인간은 「천명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기’가 탁한 동식물은 땅에 속 박된 주변적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추만과 퇴계에게는 아직 “땅은 구 형이다”고 하는 ‘지구(地球)’관념은 부재하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천원지방 (天圓地方)’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천지 모형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천지 관념이 깨진 것은 조선후기에 서양의 천문학적 지식을 흡수하면서부터이 다. 대표적인 인물이 북학파 실학자로 알려진 담헌 홍대용(1731∼1783)이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서양의 천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지구구형설과
지구자전설 등을 주장하며, “세계의 중심은 없다”고 하는 탈중화주의를 선언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론적 대칭을 주장하는 인물균(人物
均) 사상도 주장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홍대용의 철학을 지구인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 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2.1. 홍대용의 지구중심주의 일찍이 박희병이 지적하였듯이, 홍대용은 지구를 단순한 땅 덩어리가 아니 라 ‘활물(活物)’, 즉 ‘살아있는 유기체’로 본다.30)
실옹이 말하였다: “지구는 생명체이다.”31) 실옹이 말하였다: “대저 지구는 우주의 생명체이다. 흙은 지구의 피부 와 살이고, 물은 지구의 정액과 피이며, 비와 이슬은 지구의 눈물과 땀이 고, 바람과 불은 지구의 혼백과 혈기이다. 그래서 물과 흙이 안에서 빚고, 해와 햇볕이 바깥에서 구우며, 원기(元氣)가 모여서 여러 생물들이 무성
문》 74호, 2018. 5.
30) 박희병, 「한국의 전통적 생태사상과 평화주의: 홍대용의 경우」, 통일과 평화 4집 2호 (2012),
p. 7, “Ⅲ. 활물(活物)로서의 지구: 존물적(尊物的) 관점”
31) 地者活物也. (의산문답, p. 118) 이 글에서 인용하는 원문은 홍대용, 의산문답, 김태준⋅김 효민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에 의한다. 번역은 필요에 따라 일부 수정하였다.
하게 자라는 것이다. 초목은 지구의 털과 머리카락이고, 사람과 짐승은 지구의 벼룩과 이이다.” ) (밑줄은 인용자)
여기에서 실옹(實翁)은 홍대용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되고 있는데,
실용에 의하면 지구는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구체적으 로는 흙, 물, 비, 이슬, 바람, 불, 풀, 나무, 사람, 짐승을 각각 지구라는 신체 를 이루고 있는 피부, 살, 정액, 피, 눈물, 땀, 혼백, 혈기, 털, 머리카락, 벼룩, 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산천초목이나 지수화풍과 같은 자연물들은 지구라는 유기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이라는 것이다. 박희병이나 토마스 베리 의 표현을 빌리면, “지구공동체의 일원” )이자, “지구공동체의 구성원” )에 해당한다.
이러한 실옹의 관점은 허자(虛者)와 대비된다. 허자는 전통적인 유학자를
대변하는 가상적 인물인데, 사람과 사물(동식물)의 차이를 묻는 실옹의 질문 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실옹: 내가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의 몸이 사물과 다르다는 점에 대해
서는 반드시 어떤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허자: 사람의 바탕에 대해 말하면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이고 다리가
네모난 것은 땅입니다. 피부와 머리카락은 산과 풀이고, 정액과 피는 강 과 바다입니다. 두 눈은 해와 달이고, 호흡은 바람과 구름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신체는 소천지(小天地)라고 하는 것입니다. )
여기에서 허자는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머리, 다리, 피부, 머리카락, 정액,
피, 눈, 호흡을 각각 하늘, 땅, 산, 풀, 강, 바다, 해, 달, 바람, 구름에 비유하 고 있다. 즉 신체의 일부를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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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신체를 소우주[小天地]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것은 일견 앞에서 본 실옹의 비유와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방향은 정반대임 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을 기준으로 천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는 인간의 확장판이 된다. 즉 “사람의 신체가 소천지”라는 말을 뒤집으면 “천지는 거대한 인간의 신체”가 되는 것이다.
그 단서는 맨 첫머리에 나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 의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이고 다리가 네모난 것은 땅이다”는 말은 “땅은 구 형이다”고 하는 지구설(地球說)을 믿는 실옹의 입장에서는 인간중심적인 발상 이다. 즉 “인간의 머리가 둥글고 다리가 네모나다”는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하 늘과 땅에 적용한 결과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하늘과 땅의 구성요소들을 이해하고 있 다. 그래서 “사람의 신체는 소우주이다”는 말은 결국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다”, 또는 “인간이 우주의 척도이다”는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실옹은 정반대의 비유를 취하고 있었다. 즉 지구를 중심으로 인
간과 만물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과 동물은 지구의 ‘벼룩’과 ‘이’이다”라는 비유를 들고 있다. 지구는 인간의 확장판도 아니고, 인간은 지 구의 축소판도 아니다. 지구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이고, 그것에 부 수적인 요소로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허자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해서 ‘지구중심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다.
3.2.2. 홍대용의 지구적 관점 실옹의 지구중심주의에 의하면, 지구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하늘의 햇볕과
땅의 물 그리고 원기(元氣)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물과 흙이 안에서 빚 고, 해와 햇볕이 바깥에서 구우며, 원기(元氣)가 모여서 여러 생물들이 무성 하게 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만물은 하늘과 땅의 생성물에 다름 아니 다(“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천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이러한 생각은 일견 전통 유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주자학에서도 “천지가 만물 을 낳는다”(天地生物)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옹의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과 만물의 존재론 적 위계를 설정할 수 없다”고 보는 데에 있다. 즉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하나 같이 물과 흙과 해와 햇볕과 원기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의존적’ 존 재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앞의 인용문에서 사람 과 짐승을 지구의 ‘벼룩’과 ‘이’로 비유하고 있는 점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물평등론은 흔히 ‘인물균’(人物均) 사상이라고 불리는데, 주목할 만
한 점은 홍대용이 인물균의 근거를 ‘하늘’의 관점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오륜과 오사(五事)는 사람의 예의이고 무리지어 다니면서 서로 먹이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며, 수북하게 자라면서도 평안하고 느긋한 것은 초목 의 예의이다. 사람의 눈으로 사물을 보면 사람은 귀하고 사물은 천하며, 사물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사물은 귀하고 사람은 천하다. 하늘에서 보면 사람과 사물은 균등하다.37)
여기에서 ‘하늘에서 본다’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지구 위에서 내려다보
는 시선이라고 할 수 있고, 내용적으로는 인물균의 관점을 말한다. 그렇다면 하늘 또는 지구에서 바라보는 시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만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입장에서 만물을 이해하려는 관점을 말 한다.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의 예로 말하면, ‘인간’이 아닌 ‘숲’의 입장에서 숲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이런 관점을 지구인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지구적 관점’(global view)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적 관점’이란 지구 전체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 는 관점을 말한다. 지구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마찬가 지로 지구에서 태어나고 지구에서 자라는 지구공동체의 일원에 불과하다.38)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는 인간중심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홍대용은 이러한 ‘지구적 관점’을 근거로 종래의 인간중심주의뿐만 아니라 중화주의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차크라바르티 식으로 말하면 “중국과 유학을
37) (實翁曰) 五倫五事, 人之禮義也. 羣行呴哺, 禽獸之禮義也. 叢苞條暢, 草木之禮義也. 以人視物, 人貴而物賤. 以物視人, 物貴而人賤. 自天而視之, 人與物均也. (의산문답, pp.35-36)
38) 人物之生, 本於天地. (같은 책, p.39) 여기에서 ‘천지’는 엄밀하게는 ‘지구’(地)와 ‘우주’(天)를 의 미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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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화”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술수학자들의 지리멸렬함과 허망함은 (하늘을 12개로 구획하는) 분야 설(分野說)에서 극에 달했다. 무릇 지구는 우주에 비하면 작은 티끌에 지 나지 않으며, 중국은 지구에 비하면 십몇 분의 일에 불과하다. 전 지구를 별자리에 배속시키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중국의 구주(九州)를 무리하 게 별들에 대응시켜 견강부회하여 길흉을 살피는 것은 망령되고 망령됨 이 말할 것이 못 된다.39)
여기에서 홍대용은 중국 전역을 천문(天文)에 대응시키는 ‘분야설’을 예로 들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중국 중심적 우주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구 전체를 천문에 대응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지구의 한 ‘지방’에 불과한 중국을 천문 전체에 대응시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종래의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도 성립하지 않는다. 허자는 전통적인 화이관을 따르는 인물로, “공자가 춘추를 지어서 중국을 안으로 여기고 오랑캐를 밖으로 삼아서, 중화와 오랑캐를 엄격하게 구분했 다”고 생각하고 있다.40) 이에 대해 실옹은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하늘이 낳고 땅이 기르는 것은 모두 혈기를 가지고 있고 똑같이 사람 이다. 무리 중에 뛰어나서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는 똑같이 군왕이다. 문 을 겹겹이 세우고 해자를 깊이 파서 국경을 굳게 지키는 것은 똑같이 나 라이다. (중국에서) 장보나 위모를 쓰는 것이나 (오랑캐에서) 문신을 새기 고 이마에 그림을 새기는 것은 똑같이 습속이다. 하늘에서 보면 어찌 안 과 밖의 구분이 있겠는가! 각자 자기 사람을 친히 여기고, 각자 자기 임 금을 존중하며, 각자 자기 나라는 지키고, 각자 자기 풍속을 편안히 여기 는 것은 중화나 오랑캐나 마찬가지이다.41)
39) 轉作術家之欛柄, 支離乖妄, 極於分野. 夫地界之於太虛, 不啻微塵爾. 中國之於地界, 十數分之一爾. 以周地之界, 分屬宿度, 猶或有說. 以九州之偏, 硬配衆界, 分合傅會, 窺覘灾瑞, 妄而又妄, 不足道也. (의산문답, p.81)
40) 虛子曰: 孔子作春秋, 內中國而外四夷. 夫華夷之分, 如是其嚴. (의산문답, p.147)
41) 實翁曰: 天之所生, 地之所養, 凡有血氣, 均是人也. 出類拔華, 制治一方, 均是君王也. 重門深濠, 謹守封疆, 均是邦國也. 章甫委貌, 文身雕題, 均是習俗也. 自天視之, 豈有內外之分哉! 是以各親其
人, 各尊其君, 各守其國, 各安其俗, 華夷一也. (의산문답, p.149)
여기에서 실옹은, 앞에서 만물의 관점을 바탕으로 인물균을 주장했듯이,
만국의 관점에서 ‘화이균’(華夷均)을 말하고 있다. 각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중화니 오랑캐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중화와 오랑캐라는 종래의 개념은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양자를 가치적으 로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은 지구인문학적으로 말하면 일
종의 ‘지구사’(global history)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화주의적 세계사’가 아니라 ‘만국주의적 지구사’인 것이다. 홍대용은 중국을 지방화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구조차도 여
러 별 중의 하나로 지방화하고 있다.
“별들의 세계에서 보면 지구 또한 별일뿐이다. 무수한 별들의 세계가 우주에 흩어져 있는데, 유독 지구만이 중심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뭇 별들은) 모두 세계가 아닌 것이 없고, 모두 회전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별들이 보는 것은 지구에서 보는 것과 같다. 각자 모든 별들과 각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칠정(七政)이 지구 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지구에서 보면 과연 그렇다. 그래서 지구가 칠 정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구가 뭇 별들의 중심 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견해이다.”42)
여기에서 홍대용은 각 별들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중심이다”고 하는 일 종의 ‘전(全)중심주의’(omnicentrism)43)를 전개하고 있다. 이것은 ‘지구적 관점’ 에 대해서 ‘우주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홍대용의 사유에서 두드 러지는 점은 중심과 주변의 도식이 아니라 전체(一)와 부분(多)의 도식이다. 여기에서 전체는 지구나 우주를 말한다. 지구라는 전체에서 보면 인간과 만 물은 부분일 뿐이고, 우주라는 전체에서 보면 지구 역시 부분일 뿐이다. 그래 서 홍대용에게는 중심적 사고보다는 지구적 사고, 나아가서는 우주적 관점이
42) 自星界觀之, 地界亦星也. 無量之界, 散處空界, 惟此地界, 巧居正中, 無有是理. 是以無非界也, 無非轉也. 衆界之觀, 同於地觀, 各自謂中, 各星衆界. 若七政包地, 地測固然. 以地謂七政之中則可, 謂之衆星之正中則坐井之見也. (의산문답, pp.60-61). 여기에서 ‘칠정’은 “해, 달, 화성, 수성, 목 성, 금성, 토성”을 말한다.
43) 이 개념에 대해서는 Brook Ziporyn의 Evil and/or/as the Good: Omnicentrism, Intersubjectivity, and Value Paradox in Tiantai Buddhist Thought(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에서 빌 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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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러지게 된다.
한편 홍대용에 이어서 기학자(氣學者)로 알려져 있는 최한기도 기학(氣學) (1857)이나 지구전요(地球典要) (1857)에서 사유의 중심을 중국에서 지구로 전환하고 있다. 가령 지구전요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저 사람이 지구에서 공생하면서 회전에 의지하고 기화(氣化)를 타고 서 평생을 지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夫人共生於地球之面, 資旋轉而乘氣化, 以度平生, 古今無異.) )
여기에서 최한기는, 마치 홍대용이 “사람은 천지에 뿌리를 두고 산다”(人物
之生, 本於天地)고 했듯이, “사람은 지구에서 함께 산다”고 하는 ‘지구공생’을 말하고 있다. 사유의 지평이 전통유학의 중화나 천하에서 ‘지구’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한기의 기학(氣學)은 ‘지구기학’내지는 ‘지구유 학’이라고 명명될 수 있다.
이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현대 서양의 지구인문학이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지구적 차원의 관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홍대용이나 최한 기의 기학은 중화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지구만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3.3. 지구인문학적 관점으로 본 개벽종교
혜강 최한기(1803∼1879)의 뒤를 이어 수운 최제우(1824∼1864)는 1860년에 ‘동학’을 창도(唱道)하였다. 수운은 종래의 가치체계를 “새로 정한다”(更定)는 의미에서 ‘다시개벽’을 제창하였는데, 수운의 개벽사상은 그 뒤로 해월 최시 형(1827∼1898)의 ‘물질개벽-인심개벽’으로 계승되고, 의암 손병희(1861∼1922) 시대에 이르러서는 1920년 개벽이라는 사상지가 창간되었다. 동학⋅천도교 의 개벽사상은 이후에 원불교로 이어지는데, 원불교의 특징은 “물질이 개벽 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에 나타나 있듯이,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의 조화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동학⋅천도교와 원불교는 하나같이 ‘개 벽’을 슬로건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벽종교’라고도 불리는데, 이하에서 는 동학⋅천도교에 보이는 지구인문학적 요소를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해월 최시형은 수운 최제우의 개벽사상을 이어받아 종래의 ‘도덕’개 념을 ‘윤리도덕’에서 ‘생태도덕’으로 전환시켰다. 여기에서 ‘윤리도덕’이란 신 분제도와 혈연주의에 바탕을 둔 인의예지의 사회적 질서를 말한다. 반면에 ‘생태도덕’은 만물이 생태적으로 얽혀 있다는 존재론적 원리에 입각한 상호 존중과 만물평등의 윤리를 말한다. 그래서 최시형의 생태도덕에서는 신분과 혈연의 차등이 부정되고 인간과 사물의 위계가 사라진다.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사상이 최시형의 “천지부모-만물동포”와 기화론 (氣化論)이다. ) 최시형은 인간과 만물의 존재론적 근거를 천지, 즉 지구에 두 면서, 모든 존재는 지구라는 ‘포태’안에서 살고 있는 자식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과 만물은 존재론적 위계가 없고, 모두가 지구의 자식이라는 점에 서 동포에 다름 아니며, 인간은 물론이고 사물까지도 하늘처럼 존중해야 한다 는 경인(敬人)과 경물(敬物)의 윤리를 설파하였다. 이것은 지구를 하나의 ‘공동 체’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상호의존성에 주목하여 지구적 차원의 ‘지구윤리’를 제창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인문학이라고 할 만 하다.
한편 일제강점기의 천도교 이론가인 야뢰 이돈화(1884∼1950)는 동학의 ‘하늘’에 담긴 공동체적 성격을 강조하여 ‘한울’로 재해석하였다. ) 여기에서 ‘한울’이란 우주 전체가 ‘하나의 울타리’라는 의미로, 일종의 ‘우주공동체론’ 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돈화에게 있어 한울은 우주 전체의 명칭이자 동시에 우주 안에 내장된 ‘생명적 활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 이유는 우주가 한울 이라는 생명력에 의해서 유기적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인데, 더 근본적으로는 최제우나 최시형의 ‘하늘’개념에 ‘천지(天地)’와 더불어 ‘원기 (元氣)’, 즉 생명력이라는 함축이 동시에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한울의 우주론에 의하면 만물은 한울의 ‘표현’이며, ) 인간은 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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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진화된 생명체이기는 하지만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따라서 우주 (지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48) 반면에 인간은 한울이라는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한울과 떼려야 뗄 수 없 고, 그런 의미에서 대아(大我)이자 무궁아(無窮我)이자 ‘한울아’라고 하였다.
이처럼 이돈화는 인간 존재를 문화공동체나 국가공동체보다는 지구공동체 의 일원으로 규정하면서 ‘지구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울러 지구가 인 간과 만물에게 차지하는 생태적 의미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최시형의 경물 도덕을 발전시켜 지구인으로서의 지켜야 할 지구윤리까지 제안하고 있다.49) 그런 의미에서 이돈화의 ‘신인철학’은 최시형의 지구인문학을 계승 발전시키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천도교에 이어서 원불교(1916∼)에 이르면 ‘일원(一圓)의 우주론’이 전개되 는데, 일원은 우주만물이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신념의 표현이다. 이러한 생 각은 흔히 회통이나 융통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원불교에서 특히 강조하는 회통은 지구상의 모든 종교가 근원적으로 하나로 통한다는 종교회통이다. 예 를 들면 다음과 같다.
세계의 모든 종교도 그 근본되는 원리는 본래 하나이나, 교문을 별립 하여 오랫동안 제도와 방편을 달리하여 온 만큼 교파들 사이에 서로 융 통을 보지 못한 일이 없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다 모든 종교와 종파의 근 본 원리를 알지 못하는 소치라 이 어찌 제불 제성의 본의시리요. (정전, 제1 총서편, 제2장 교법의 총설(敎法-總說)
이러한 ‘종교융통론’ 또는 ‘종교회통론’은 이미 1912년에 나온 이능화의 백
교회통(百敎會通)에서부터 보이고 있는데, 동아시아의 유불도 삼교(三敎)의 범위를 넘어서 지구상의 모든 종교(百敎)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것
우주는 분산적 기계적인 상호운동이 아니오, 연쇄적 유기적인 본체 자율의 조화이다. 한울이라 는 대자연의 유기적 진화운동이다.” 이돈화, 신인철학 (서울: 천도교중앙총부, 1968), pp.30-31.
48) “나는 대우주의 무한한 시간 중의 이 현재, 무한한 공간 중의 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대우주 대생명(즉 한울)의 가장 고도로 발전된 일부분적 생명이다. 이 우주, 즉 한울을 떠나서 생겨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나는 (…).” 김병제⋅이돈화, 천도교의 정치이념 (서울: 모시는사람 들, 2015), p.269.
49) “이 우주, 즉 한울을 떠나서 생겨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나는 마땅히 우주 만물을 사랑하 고 아끼고 잘 기르고 잘 발전⋅향상시킬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책, p.269)
들 사이의 차이와 갈등을 뛰어 넘어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는 점에서 일종의 ‘지구종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능화나 원불교의 회통과 융통 개념을 사용하면 동학⋅천도교는 생명회 통론을 설파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일기(一氣)나 원기(元氣) 또는 지기(至氣)나 한울과 같은 우주적 생명력으로 서로 연 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만물의 상호연결성이 확보되는데, 이 것은 마치 지구화시대에 과학기술로 인해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한편 원불교의 경우에는 이러한 상호연결성의 의존적 측면을 강조 하여 사은(四恩)을 말하고 있다. 사은이란 모든 존재는 천지와 부모, 동포와 법률이라는 네 가지 은혜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사상으로, 일원과 더불어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의 핵심사상이다.
박중빈을 이은 정산 송규(1900∼1962)는 1961년에 삼동윤리(三同倫理)를 발 표하였는데, 삼동윤리란 동원도리(同源道理)⋅동기연계(同氣連契)⋅동척사업 (同拓事業)으로, 게송으로는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먼저 ‘한울’은, 이돈화 가 말한 ‘한울’과 상통하는 개념으로,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이다”는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비슷하게 삼동윤리에서 ‘동(同)’은 ‘하나’(一圓) 또는 ‘함께’를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 동원도리는 “세상의 모든 진리는 하나이다”는 뜻이 고, 동기연계는 “만물은 하나의 기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동척사업은 “하나 된 세계를 위해 함께 협력하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同)은 ‘회 통’의 다른 말로 볼 수 있고, 동원도리는 진리의 회통성을, 동기연계는 존재 의 회통성을, 동척사업은 윤리의 회통성을 각각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구상의 모든 진리와 존재와 윤리에 공통되는 원리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 서. 각각 지구진리론, 지구존재론, 지구윤리론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처럼 동학⋅천도교와 원불교는, 홍대용이나 최한기와 마찬가지로, 중국
중심의 우주론과 윤리학을 탈피하여 지구적 차원의 우주론과 윤리학을 지향 했다는 점에서 지구인문학으로 해석될 여지가 풍부하고, 유럽 중심의 서구적 근대화 일변도가 아니라 자생적 근대화도 모색했다는 점에서, 글로벌(지구성) 과 로컬(지역성)을 겸한 “글로컬 모더니티”(지구지역적 근대성)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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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론
지금까지 지구화라는 새로운 현상을 연구하는 서양의 지구학의 연구 동향 을 살펴보고, 그 안에는 ‘지구인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학문분야가 있음을 확 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종교, 대표적으로 조선후기의 유교와 조선말기의 개벽종교에서 지구인문학적 요소를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조선후기의 담헌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서양의 천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지구구형설과 지구자전설 등을 주장하면서, “세계의 중심은 없다”는 탈중화주의를 선언하였다. 그 뒤를 이은 혜강 최한기도 기학(氣學) (1857)과 지구전요(地球典要) (1857)에서 사유의 지평을 중국에서 지구로 확 장시키고 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은, 현대 서양의 지구인문학이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학문적 노력이었다고 한다면, 조선후기의 기학(氣學)은 중화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동학에서 시작하여 천도교, 원불교에 이르는 근대 한국의 개벽종교에서도 지
구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구적 상상(global imaginary)’이나 ‘지구적 의식’(global consciousness)과 같은 개념을 찾을 수 있다. 해월 최시형의 “천지부모 만물동 포” 사상, 소태산 박중빈의 ‘일원’과 ‘사은’, 정산 송규의 ‘한울안’과 ‘삼동윤 리’, 천도교와 원불교의 사해일가(四海一家)나 세계일가(世界一家) 등이 그것 이다. 이것들은 인간과 만물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토마스 베리의 ‘지구공동체’(Global Community) 개념과 상통하고 있다. 또한 1994년에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은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 「문화는 숙명인가?」(Is Culture Destiny?)에서 동학이나 불교와 같은 ‘아시 아적 가치’를 언급하면서 ‘지구민주주의’(global democracy)개념을 제창하였다. 그가 말하는 ‘지구민주주의’는 인간 이외의 존재들에게도 생존권을 보장해주 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동학사상가 해월 최시형(1927∼1898)이 제 시한 ‘경물(敬物)’개념을 연상시키고,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생태민주주의’ 나 ) ‘지구법’과도 상통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 종교나 철학 안에서도 지구인문학적 요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서양보다 더 풍부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자연과 인간의 분리라는 근대화 테제가 동아시아에서는 최근 100여 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천인합일이나 천인상생과 같 은, 토마스 베리 식으로 말하면 “지구와 인간이 상호 이익을 증진시키는” 천 인관(天人觀)이 지배적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동아시아와 한국의 전통종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 서구적인 ‘근대’ 개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 구위험시대에 요청되는 지구인문학적 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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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
A Study on Korean Religions from the Viewpoint of Globalogy
-Focused on Hong DaeYong(洪大容)’s Dialogue in the Eusan Mountain(醫山問答) and Gaebyeok Religions-
Sung-Hwan Jo⋅Nam-Jin Heo
Wonkwang University / Wonkwang University
Since the 1990s, a new phenomenon called globalization has emerged. This leads to the emergence of the academic field called Global Studies such as “global sociology” and “global history” which analyzes the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 phenomena of globalization. On the other hand, Thomas Berry and Dipesh Chakrabarty tried to overcome anthropocentrism and move toward globalism which we call “Global Humanities” or “Globalogy.” “Global Humanities” or “Globalogy” can also be found in Korean religions such as Hong DaeYong(洪大容) and the Gaebyeok religions in the lat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theory of the spherical Earth, Hong Dae-yong maintained that China and the Earth are only a part of the universe. In addition, he suggested that human beings are only a part of everything from a global perspective. Choi ShiHyung(崔時亨) also preached global morality to respect(敬) everything as Heaven. Choi ShiHyung’s “Globalogy” succeeded to Lee DonHwa(李敦化)’s Haneul(Oneness) cosmology and ontology. On the other hand, Won Buddhism also advocated the interconnected cosmology (一圓) and the interdependent ethics(四恩), as if all beings on earth were connected by globalization as one.
Key words: Globalogy, Hong Daeyong, Donghak(Eastern Learning), Cheondogyo(The way of Heavenly Way), Won Buddhism
◎ 투 고 일: 2020년 8월 31일
◎ 심 사 완 료 일: 2020년 10월 9일
◎ 게 재 확 정 일: 2020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