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이상화의 시 세계와 생명 회복의 공간으로서의 '조선’ 유신지(경북대학교)

 이상화의 시 세계와 생명 회복의 공간으로서의 '조선’

유신지(경북대학교) 

1. 들어가며

이상화가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 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식민지 조선의 문인으로서 생활 했던 1920년대는 근대적 자아의 각성이라는 측면에서의 ‘내면 영혼 에= ’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 던 시기였다. 근대적 주체가 각자의 내면으로부터 발견하기를 요구받았던 ‘영혼 은’ “‘자연 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우주를 일치시키려는 표현적 통일에의 요구, 곧 낭만적 자아의 열망” )의 표상으로 오랜 기간 해 석되어왔으며, 동시에 이러한 경향이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다이쇼 생명주의(大正生命主義)’의 영향이라는 평가 아래 이상화의 시에서 드러나는 ‘생명 에’ 관한 관심 역시 ‘일본식 생명주의 의’ 연장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특히 유병관은 이상화의 문학 작품에서 빈출되는 ‘새 생명 을’ 그가 추구했던 핵심적인 가치로 보면서 이것이 일본에서 유행했던 ‘생명주의 사상’, 특히 ‘오스기 사사에(大杉榮)의 영향을 받은 것 으로’ 분석한 바 있다. ) 이는 기존의 이상화 시에 대한 ‘다양한 독법’ ) 중에서도 그가 주로 사용했던 ‘생명 과’ 관련된 단어들에 주목하여 이상화 문학이 베르그송의 생명주의 사상 내지 오스기의 아나키즘의 논리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이상화가 지향하는 ‘생명 이’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한편 새로움을 낳기 위 한 파괴의 일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해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 는 서구 유럽을 거쳐 일본에서 형성된 ‘생명주의 의’ 공식으로 이상화의 시를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한계 가 있다. 그러나 이상화의 시나 산문에서 드러나는 생명 지향의 사유가 ‘이식된 사조 의’ 틀로 분석할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의 여지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서구 유럽과 일본이 마련한 틀에 의해 그 정체성을 강요받은 바 있다. 일찍이 일본이 ‘만국공법’ )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내세운 ‘문명 반개- (半開)-야만 의’ 구도를 바탕

 

으로 조선을 ‘야만 으로’ 규정했을 때, 모든 ‘조선적인 것 은’ 일시에 거세되고 오롯이 식민자의 시선에 맞 추어 그들이 내세우는 ‘문명 이라는’ 우월함을 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상대적으로 일본에 비해 ‘야만’ 의 상태에 가까운 조선으로서는 보다 발전된 일본의 근대적 지식에 따라 법과 문학, 심지어는 생활 전 반에 걸쳐 타자의 시선을 빌려야만 ‘미개인 이라는’ 껍데기를 벗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비 교적 최근의 논의는 이상화 문학의 근간을 한국의 자생적 철학인 동학적 사유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 서 유의미하다. 이들 논의는 이상화의 시에서 사용되는 ‘어둠’ 속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 언젠가는 조선 에 빛이 도래할 것이라는 ‘후천개벽사상 을’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을 밝히고 있거나5) 그의 문학 작품을 동학의 핵심적 사유로 해석하면서 이상화 시에 나타난 서정성이 주체와 개체 간의 합일의 양상을 띠는 ‘상호주체적 서정성 의’ 양상을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6) 이러한 논의는 서구 문예사조나 여타의 종교로는 채 해명되지 못했던 이상화 문학의 주요한 지점들을 한국 고유의 철학을 근간으로 삼아 이를 보다 구 체적으로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 역시 이상화의 몇몇 작품들만을 분 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거나 혹은 그가 시나 산문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생명’ 과 관련된 단어들을 바탕으로 하여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고는 이상화의 시나 평론을 통해 드러나는 시인의 세계 인식이 동학의 ‘후천개벽 과’ 닿아 있음을 밝히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아, 이를 통해 그가 시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공간, 예컨 대 “새 세계”, “나라”, “청량 세계” 등에서 드러나는 ‘생명 지향 의’ 사유가 곧 이상화가 소망했던 ‘조선의 생명력 의’ 회복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그가 살아가던 일제강점기 ‘조선 이’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죽음의 상태에서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새 생명 의’ 상태로 거듭나기를 지향하는 시인의 사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사실을 해명해볼 계획이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이상화가 활동 하던 시기에 문단에서 사용되던 생명 담론이 국외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었으며, 이것이 당대 조선 문단에서는 어떠한 의미로 수용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이것이 이상화의 문학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과 어떤 차별점을 갖는지를 검토해 볼 것이다. 나아가 3장에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상 화의 시나 산문을 대상으로 하여 이상화가 지향하는 ‘생명 회복 의’ 양상이 동학의 핵심 사유와 어떤 관 련을 맺는지를 구체적으로 짚는 작업을 통해 그가 그리던 ‘조선 이라는’ 공간의 특이성에 대해 들여다보 는 것으로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이상화가 바라본 조선의 ‘생명’

이상화가 태어난 20세기 초엽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이상화의 탄생 11년 전 야마가타 아리토 모(山縣有朋, 1838-1922)는 ‘제 회1 제국의회(1890)’에서 “조선 반도야말로 ‘대일본제국 의’ ‘생명선’”7)이 라고 주창했고, 그로부터 4년 뒤에는 청일전쟁‘ (1894-1895)’이, 1904년에는 러일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 어 ‘한일병합에 관한 조약(1910.8.22.)’이 체결되었다.8) 이처럼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했던 시기 에 태어나 성장하였던 상화에게 ‘문학 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을까. 그가 1922년에 문단에 등

 

로니얼 , 삼인, 2012, 28-35쪽 참조.

5) 최호영, 「1920년대 초기 한국시에서의 숭고시학과 생명공동체의 이념」,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2. 6) 유신지 여상임· , 「이상화 문학에 나타난 시적 상상력의 근원 연구」, 어문논총 74호, 한국문학언어학회,

2017.12.31., 301-329쪽; 유신지, 앞의 논문.

7) 고모리 요이치, 송태욱 역, 앞의 책, 62쪽.

8)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 창비, 2007, 14-28쪽.

장하면서부터 줄곧 사용한 ‘영혼 이나’ ‘부활’, ‘신령’, ‘생명 과’ 같은 어휘는 무엇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그가 사용하고 있는 이와 같은 어휘들은 표면적으로는 20세기 초에 동아시아 전역에서 유 행하던 일본의 ‘다이쇼 생명주의 를’ 떠올리게 한다. ‘다이쇼 생명주의 는’ 일본의 문단에서 시인들이 “상 징주의를 비롯한 전대의 ‘전통 과’ 단절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담보” )하기 위해 도입한 ‘생명’ 개념을 핵심 으로 삼고 있는 담론으로 1910년대 후반 무렵부터 조선 문단에서 표출되는 ‘근대적 자아 성찰’, ‘종교적 신앙체험을 연상시키는 에피파니의 형상화 로’ 표상되는 낭만적 자아 담론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 다. ) 이때 일본의 생명주의의 핵심은 ‘국가 공동체 로’ 포섭되었던 제약에서 벗어나 인간 개개인의 내면 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자아를 각성케 한다는 데 있었다. 이상의 맥락에서 이상화 문학에서의 ‘생명 이’ ‘새로운 생을 창조하기 위한 파괴이자 동시에 낡은 것에 대한 반역 이며’ 동시에 ‘참 생명을 담지하는 신성한 자연 으로서’ 민족주의와도 결합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최근의 논의  )는 이상화 문학을 당대에 일본에서 유입되어 조선에서 유행했던 ‘생명주의 사상 의’ 측면에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 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의 시 세계를 분석하는 것이 과연 가장 적합한 독법일까. 이상화가 도일하여 그곳 에서 한때 수학했고, 그가 사용하는 어휘들 역시 서구를 거쳐 일본에 유입된 ‘생명주의 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나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다이쇼 생명주의 가’ 이상화 문학 의 전반을 해명하기에 적합한가, ‘일본 체험’ 이전 유년 시절의 교육 환경은 그의 시 세계를 형성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이상화의 교유 관계 를 살필 때, 눈에 띄는 인사는 1927년 천도교의 핵심 인사였던 ‘홍주일 이다’ . 그는 일찍이 상화의 백부 인 소남 이일우 선생과 함께 ‘달성친목회 의’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이일우가 1904년에 설립한 근대식 교 육기관인 ‘우현서루 가’ 폐쇄되고 그 자리에 들어선 ‘강의원 의’ 운영을 맡기도 했다. 이때 이 강의원이 1915년에 상화가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유년 시절 교육의 전반을 담당했던 집안의 ‘사숙(私塾)’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홍주일의 사망 직전까지도 이상화와 교류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홍 주일이 상화에게 끼친 영향력은 매우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12)

個性과 社會와 時代-말하자면 이 세상과 接流가 업시 살어볼려는 마음이 잇으면 그는 하로 일 즉 한울로나 물미테나 사람업는 곳으로 가야할 것이다. 웨그러냐 하면 사람이 된 個性이 엇지 살까하는 觀察이 업고 個性이 살 社會가 엇더한가 하는 觀察이 업고 社會가 선 時代가 엇더하 다는 觀察이 업시는 적어도 이러한 觀察을 해보려는 努力이 업시는 그의 모든 것에서 사람다운 것이라고는 한아도 볼 수 업기 문이다. 사람다움이은 사람의 良心에서 나온 것이니 사람이 아니고는 차질 수 업는 이러한 美를 사람이 살  우에 가저오게스리 애쓸랴는 觀察이 업시는 사람 作者 노릇은 커녕 노릇을 안켓다고 함이나 다르지 안키 문이다.13)

인용문은 이상화가 개벽 에 발표한 「문단측면관 의」 일부이다. 이 평론에서 그는 당대 문단의 한계와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상화가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그의 문학관을 알 수 있다. 평론에 따르면 이상화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문학가는 “시대 를” 바라보는 명확한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때 문학가는 반드시 시대를 ‘관찰하는 노력 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만 약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과 “접류(接流)”하지 않고, 즉 사회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려 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람이, 문학가가 갖춰야 하는 것은 “관찰을 해보려는 노력 이며” 이것은 곧 “사람다운 것 의” 필수조건이 된다. 부연하면 이 “관찰 은” “사람의 양심” 에서 나오는, “사람이 아니고는 차질 수 업는 미 를” 이 땅 위에 현현하게 하는 힘이자 작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작자 노릇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사람의 양심에서 나오는 미 라는’ 것은 무얼을 일 컫는 것인가.

生命다운 生命-내몸이 사는 맛을 못보든 그 자리서 일허 바렷든 내 生命을 내 몸으로 차저오 려는 그 때이다. 다시 말하면 남의 세상을 模倣한 量的 存在를 읇조리기보담 나의 세상을 창조 한 質的 生命을 부르지즐 다. 純眞한 藝術은 模倣性을 안가진 創造熱에서 난다든 말을 반성하 고 체험할 때다. (…) 朝鮮에도 生活이 잇고 言語가 잇는바에야 朝鮮의 追求熱과 朝鮮의 美化慾 곳 朝鮮의 生命을 表現할 만한 觀察을 가진 作者가 나올 만한 때이라 밋는다. 다시 말하면 오 늘의 朝鮮生命을 觀察한데서 새롭은 生活樣式을 構成할 곳 實感잇는 生命의 創造를 시험할 創作家가 나올 때라 밋는다.14)

상화는 해당 평론에서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명 다운 생명”, 곧 잃어버렸던 “내 생명 을” 찾아 “내 몸 으로” 가져오는 때가 바로 작가가 추구해야 마땅할 ‘생명 을’ 획득하는 순간이라고. 그리고 이때의 생명은 “남의 세상을 모방한 양적 존재 가” 아니라 “나의 세상을 창조한 질적 생명 이며” 이를 작품에 구 현하기 위해 작가는 조선의 ‘생활 과’ ‘언어 를’ 가지고 “조선의 생명을 표현 하기” 위한 관찰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상화가 판단했을 때 진솔한 문학이 목표로 해야 할 바는 다른 나라의 이론이나 내 용의 모방을 제거한, 순전한 ‘조선의 생명 에의’ 창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순진한 예술 의” 실현을 위 해 작가는 그의 창조력에서 “모방성 만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데, 이때의 ‘모방 의’ 대상은 “남의 세 상 이다” . 이를 통해 볼 때 이상화는 문학에서 다른 나라 문학의 내용이나 형식을 차용하는 것을 지양하 고 오롯한 ‘조선의 생명 을’ 표현해야 하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문학관을 가진 그였기에 두 달 뒤에 발표한 평론들에서 ‘근본적 의미에서 창작을 쓸 사람은 그 자신이 선지(先知)와 가튼 충분한 관찰’ 을 가지고 “‘새 세상을 보이거나’ ‘새 사리 를’ 보여야 할 것”15)이라고 비평하며 나아가 ‘시 에’ 대해서는 “가장 산듯한 생명의 발자국”16)이라 명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는 곧 생명의 자취 라는’ 선언. 여기에 서 상화의 명확한 시인관 역시 확인된다. 이를 요약하자면 시인이란 ‘다른 나라의 모방을 지양하고 자신 이 살아가는 세계의 생명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자 이다’ . 선구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시인 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 ‘조선의 생명 이’ 강인하게 분출되는 “새 세상 을” 창조해야 하는 사명을 갖는 존재라는 표현 으로 미루어 볼 때 이상화가 문학을 통해 나타내려 애를 썼던 ‘조선의 생명 을’ 적어도 외래에서 유입된

 

13) 이상화, 「문단측면관 창작- 의의 결핍에 대한 고찰과 기대」, 개벽 58호, 1925.4.1., 34-35쪽.

14) 이상화, 앞의 글, 앞의 책, 38-39쪽.

15) 이상화, 「지난 달 시와 소설」, 개벽 60호, 1925.6.1., 121쪽.

16) 이상화, 앞의 글, 앞의 책, 125쪽.

사상이나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새 세상 의’ 창조나 이 과정에서 추구해야 하는 “생명의 본질” ), 나아가 이 본질이 다시 사람이면서 자연의 한 성분”, “개체가 모든 개체들과 관계 있는 전부 이면서” 동시에 “개성을 소멸 시켜” “소아에서 대아” )로 나아가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했을 때 이러한 측면은 오히려 이상화가 성장 과정이나 자라서까 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동학사상을 상기시킨다.

3. 생명의 회복과 ‘새 세계 로서의’ 공간 지향성

수운 최제우는 동양의 전통과 서구의 근대성과의 접점에서 이 둘을 모두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동학 을 창도했다. 즉 외세 침략과 이로 인한 동양적인 질서의 붕괴 등의 국내외적인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주적 근대성 의’ 발로가 바로 동학이었다. ) 동학의 ‘천인관(天人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하늘 과 인간 사이의 상호협력” )인데, 이때 인간과 대상의 상호 교류의 양상이 두 대상 간의 평등한 관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인간 내면에 깃든 ‘생명 에’ 그 초점을 맞추기 는 하나 그 순간 이루어지는 ‘화합 은’ 일본의 ‘생명주의 와’ 같이 인간의 ‘생명 을’ 밖으로, 즉 ‘자연 이라는’ 외연으로 확장시켜 “자아에 절대적인 권능을 부여”   )함으로써 형성되는 낭만주의적 인식론과는 다른 층 위에 있다. 즉 이 시기에 유행했던 ‘다이쇼 생명주의 가’ 갖는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개인’ 지향성은 동학 적 사유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던 것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이상화의 시 세계 전반에 드러나고 있는 데, 이 장에서는 아직 제대로 해명되지 못한 이상화의 시나 산문을 통해 그가 인식하던 ‘조선의 생명 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회복하고자 했던 ‘새 세계 라는’ 공간의 성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 을 것이다.

사람은 한울을 떠날 수 없고 한울은 사람을 떠날 수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의 한 호흡, 한 동

정, 한 의식도 이는 서로 화하는 기틀이니라.22)

사람이 바로 한울이요 한울이 바로 사람이니, 사람 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 밖 사람이 없느 니라. (…) 한울과 마음은 본래 둘이 아닌 것이니 마음과 한울이 서로 화합해야 바로 시·정·지 (侍 定· ·知)라 이를 수 있으니, 마음과 한울이 서로 어기면 사람이 다 시천주(侍天主)라고 말할 지라도 나는 시천주라고 이르지 않으리라.23)

동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 과’ ‘한울 은’ 동체다. 이 둘은 본래부터 서로 나뉘지 않은 상태로 ‘화합’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한 호흡’, ‘한 동정’, ‘한 의식’ 마저도 융합의 기틀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화합을 통해서만 ‘시 정 지· · (侍 定· ·知)’에 이를 수 있는데, 이는 ‘한울님을 몸 안에 섬겨, 그 덕에 합하여 마음을 정하면서 동시에 그 도를 알아 지혜를 받는 것’ )이다. 이 과정이 온전해야만 인간에게 내재한 ‘신령 이’ 밖으로 옮겨가는 ‘이(移)’가 발생하지 않고, 그래야만 ‘시천주’, 즉 ‘신령과 인간 및 우주 자연 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유는 다시 「권학가 를」 통해서도 발견된 다.

쇠운(衰運)이 지극(至極)하면 성운(盛運)이 오지마는/ 현숙(賢淑)한 모든군자(君子) 동귀일체(同

歸一體) 하였던가/ (…) 각자위심(各自爲心) 하단말가 경천순천(敬天順天) 하여스라25)

위 인용문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단어는 ‘동귀일체(同歸一體)/각자위심(各自爲心)’이다. 동학에 따르 면 ‘각자위심’, 즉 자신만의 이기심으로 조화로운 “혼융체”26)에서 이탈하는 것을 지양하고 ‘동귀일체 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이 ‘동귀일체 는’ “하나의 같은 것으로 모두 돌아간다 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로 ‘모든 이들이 본성을 회복하여 군자 사람이 되어 후천의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룬다 의’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27) 앞서 ‘시천주 의’ 상태와 더불어 이 ‘동귀일체 를’ 이루어야 ‘하늘 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상서 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깨달음은 이상화의 시에서도 빈번하게 드러난다.

(가) 나는 남 보기에 미친 사람이란다/ 마는 내 알기엔 참된 사람이노라. (…) 사람아 미친 내 뒤를 따라만 오느라/ 나는 미친 흥에 겨워 죽음도 뵈줄테다.28)

(나) 사람아! 목숨과 행복이 모르는 새 나라에만 잇도다./ 세상은 罪惡을 늬우치는 마당이니/ 게서 어든 모 든- 것은 목숨과 함께 던져버려라./ 그때야, 우리를 기대리든 우리 목숨이

참으로 오리라.29)

(다) 산촌의 뼈만 남은 땅바닥 우에서/ 아즉도 사람은 수확을 바라고 잇다 (…) 농샤짓는 사람 의 목숨을 나는 본다. (…) 이 땅과 내 마음의 우울을 뿌술/ 동해에서 폭풍우나 소다저라-

빈다. 30)

(라) 내게로 오느라 사람아 내게로 오느라 (…) 눈물저즌 세상을 바리고 웃는 내게로 와서/ 아 생명이 변동에만 잇슴을 깨처 보아라.31)

인용문은 모두 이상화의 시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가 에서) 시적 주체가 보여주려고 하는 “죽음 은” 그 자체로 역설이다. 제목에서 추측하듯 시적 화자는 ‘선구자 의’ 옷을 입고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 는 자들에게 자기야말로 “참된 사람 이니” 먼저 열어가는 새 길을 따라오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그런 의 미에서 ‘죽음 은’ 부정이 아닌 긍정의 뜻으로 읽힌다. ‘죽음 이’ 단어 그대로 ‘생명의 정지 를’ 뜻한다고 했 을 때, 이는 (나 에서) 시적 화자가 대상의 ‘목숨 을’ 버리도록 종용하는 태도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며 이것은 (다 의) “뼈만 남은 땅” 위에 거주하는 사람의 “목숨 과도” 상통하는 단어일 것이다. 시적 화자는 (나 와) (다 에서) 아직 세상에 도래하지 않은 ‘새나라 에’ 진정한 ‘생명 이’ 있으며, 이는 부정되어야 할 ‘목

 

25) 천도교중앙총부 편, 「용담유사-권학가」, 앞의 책, 206-208쪽.

26) 이상화는 자신의 시나 산문에서 ‘융화 나’ ‘혼융 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다. 「금강송가」에서 그는 “金剛! 너는頑迷한物도虛幻한精도아닌―物과精의渾融體”라고 표현하면서 시적 주체와 객체 간에 ‘합일된 생명 을’ 노래한 바 있 다. 이는 기존의 주관주의적인 서정성의 개념을 보완하는 ‘상호주체적 서정성 으로도’ 해명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는 유신지, 앞의 논문, 2020을 참조. ‘상호주체적 서정성’ 이론은 박현수, 시론 , 울력, 2015, 312-318쪽을 참조.

27) 이에 대한 해석은 윤석산, 동경대전 , 동학사, 2009, 470쪽을 참조.

28) 이상화, 「선구자의 노래」, 개벽 59호, 1925.5.1., 39쪽.

29) 이상화, 「허무교도의 찬송가」, 개벽 54호, 1924.12.1., 13쪽.

30) 이상화,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개벽 57호, 1925.3.1., 53-54쪽.

31) 이상화, 「바다의 노래」, 앞의 책, 54쪽.

숨 이’ 져버린 후, ‘죽음 이’ 깃들고 ‘폭풍우 가’ 휘몰아친 후에야 열릴 새로운 하늘 아래에서 얻어지는 ‘참 생명 이라고’ 시적 화자는 믿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동학의 ‘후천개벽사상 과도’ 상통한다. ‘후천개벽 은’ “변화하는 것이며 변화시키는” ) ‘개벽’ 사상을 가리키는데, 일찍이 최제우가 ‘다시 개벽 이라는’ 말로 막 힌 조선의 기운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혁을 추구한 바 있다. 즉 이와 같은 맥락에서 ‘후천개벽 은’ 새로운 하늘이 열린 뒤에야 도래할 ‘새로운 세계 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눈물젖은 세상 에서’ 의 생명 대신 ‘변동 에’ 의해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 을’ 깨달아야만 ‘밤새도록 옵시사 빌었던 하늘의 꽃 밭’ )이 사람의 세상에도 펼쳐질 수 있으며, “자연과의 큰 조화에 나누이지 말아야만 비로소 내 생명을 가졌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비극은 이처럼 ‘하늘 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 동귀일체의 한 성분으로 조화 를 이룰 때라야 극복 가능한 것이며 그랬을 때 비로소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신음하는 조선의 생명은 회복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이는 시인이 궁극적으로 문학을 통해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생명 회 복 의’ 염원이라고 볼 수 있다. “한 편의 시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나허야 할 줄 깨칠 그 때”에 ‘우주에 다시 없을 너’ )로 존재할 수 있게 되며, 시인이 생명 회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조선의 땅이, 그리고 조선 사람의 ‘생명 이’ 다시금 옛 허물을 벗고 새로운 하늘 아래 가장 바람직한 동귀일체의 상태 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4. 나가며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