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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13 환경사회학 필기 – Words and things

2016/9/13 환경사회학 필기 – Words and things

CLASSNOTES · 환경사회학
2016/9/13 환경사회학 필기
2016년 10월 13일godaye

인류학 참여관찰 동안에는 현지인들처럼 살면서 이들과 평생 라포(Rapport)를 쌓는다. 하지만 완전한 참여자나 관찰자가 될 수는 없다. 해당 조직에 있는 것처럼 이들과 그리고 이들 중 informants와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숲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저자 에두라르 콘은 에콰도르인으로 아마존에서 참여관찰 연구를 거의 20년간 했다. 현지에 살았던 것은 5년이다. 인류학자는 informants의 삶을 담보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도 더 계속 관계를 맺는 것이다. 사람 말을 잘 듣는 연습도 인류학자에게도 중요한데, 이것이 가장 잘 트레이닝 된 것이 정신과의사다. (ㅋㅋ) 정말 진심으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삶의 리듬에 맞춰주고 그 사람이 먼저 궁금해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삶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에두아르 콘은 68년생 에콰도르 이민 3세로 92년도부터 아마존을 연구했다. 콘은 이탈리아 출신 유대계와 에콰도르인의 혼혈이다. 대부분의 종족 명은 그 나라 말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야노마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서구인들이 와서 일종의 타자화가 된 것이다. 에두아르 콘이 참여관찰 했던 ‘루나’ 족도 사람이라는 뜻이다. 에두아르 콘은 20년 동안 논문 한 편을 썼다. 모리스 보들리에는 뉴기니에서 7년간 살고 나와서 『선물의 수수께끼』를 썼다. 이 책 한 권으로 사람들을 놀래 켰다. 그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beyond human), 포스트-휴머니즘 인류학을 논한다. 인류가 비인간, 동식물, 사이보그, 인공지능들을 인간의 도구가 아닌 인간과 공존해야 할 타자들로서 이들과의 공존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최근 10년간의 흐름이다. 그 이전은 휴머니즘이었는데 어느 순간 포스트-휴머니즘이 확 다가온 것이다. AI만 해도 어쩌면 창발적(emergence)인, 인간보다 더 똑똑한 사고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알파고는 고도의 사고회로로 스스로 사고해서 바둑을 뒀다. 계속 진화하고 있는 알파고를 뭐라고 봐야 할까? think라는 개념을 재고해야 한다.

 

  • 퍼스의 기호학

 

에두아르 콘의 사고의 base는 찰스 퍼스(1800년대 pragmatism의 창시자)다. Pragmatism은 실용주의로 번역된다. 실용주의는 사실 pragmatism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Pragmatism은 실천과 원리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Pragmatism을 일본 사람이 실용주의로 번역했다. 일본인들은 서구의 이론을 바로 바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실용주의의 ‘용’은 한국에서는 도구적으로 해석하고 일본에서는 활용된다는 뜻으로 쓰인다. 요즘은 아예 pragmatism을 그냥 프래그머티즘이라고 한다. 구조주의도 구조주의 자체가 진화를 해간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니까 이론 자체도 변하는 것이다. affect를 원래 정동이라고 해석했는데, 이 또한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것이다. 들뢰즈가 의미화, 개념화한 affect의 경우에도 그냥 affect로 쓰기 시작했다. 부르디외의 distinction을 구별짓기라고 번역했었는데, 지금은 디스팅그시옹이라고도 쓴다. 일반적인 용어로서의 사용과 다르기 때문이다. 찰스 퍼스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거부하고 자신만의 사고체계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서 진보적 흐름이 동부 쪽에서 만들어지고 있었고, 퍼스는 미국만의 독립적인 학문을 만들고자 프래그머티즘을 창시하였다. 프래그머티즘에서 그는 기호학을 만들었다. 그는 평생 측량기사로 살았다. 퍼스는 책은 한 권도 안 썼지만 친구들이 만든 잡지에 기고한 것을 모아서 전집으로 만들었다. 퍼스는 노숙인으로 죽었고 평생 강연회도 안 하고 살아서 그의 이론은 묻혔다. 그런데 1930년대에 이게 발굴되었다. 그래서 60~70년대에 퍼스의 기호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다. 리차드 로티가 기호학의 3세대다. 흥미롭게도 수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철학을 고민한다. 이런 사람들이 새롭게 발굴하고 재평가한 사람이 퍼스다. 150년 전 사람인데 말이다. 학문은 뿌리가 깊으면 잘 안 흔들린다.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에서 소쉬르의 언어학(기표와 기의)까지 생각해보자.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의 연결이 자의적이라고 보았다. 기의 때문에 기표가 뜻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기표는 언어의 체계 안에서 그 언어가 갖는 위치, 다른 언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뜻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 혹은 언어체계는 어떻게 보면 세계와 무관하게 사고체계 안에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퍼스의 기호학은 이와 전혀 다르다. 현재까지 우리가 배운 것들은 소쉬르의 언어학에 기반한 것이다. 마치 사물이 없어도 생각할 수 있다는 식이다. 데카르트도 내가 생각하니까 존재하는 것이지 세계가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근대의 사고방식은 다 인간의 사고방식과 인식 내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겨서 인식론적이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아니라, 인식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연구하는 존재론적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ontological turn이다. 퍼스의 기호학은 그러한 흐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퍼스는 인간과 비인간의 언어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기호가 말을 거는 것이라고 본다. 해석체(interpretent)가 기호매체를 통해 또 다른 interpretent에게 전달하면 또 이 interpretent가 기호매체를 통해 전달한다. 기호매체는 끊임없이 interpretent에 의해 해석된다. 퍼스에 의하면 interpretent도 기호다. 기호매체는 음향, 이미지, 소리, 행동일 수도 있다. 퍼스에서 이런 기호매체에는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구분이 없다. 심지어는 박테리아도 interpretent가 된다. 이런 기호를 다 해석, 전달하면 다 사고를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박테리아도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기호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아이콘(icon), 인덱스(index), 상징(symbol)이다. 퍼스를 가장 잘 써먹는 분야가 설치미술이다. 이러한 미술가들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언어가 아닌 무언가로 전달해준다. 아이콘은 유사성(similarity)의 원리에 의한 기호다. 인덱스는 지시(pointing)의 원리다. 상징은 표상(representation)의 원리다. 유사성의 원리는 이를 테면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의 이모티콘처럼 실제 웃는 사람, 우는 사람과의 유사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퍼스에 의하면 유사성의 원리는 사실 차이를 소멸시키는 원리이지, 비슷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다. 차이를 무자각할 때 유사성의 원리가 발휘된다. 나중에 『기억의 천재 쿠네스』를 읽어보라. 이 책에서 주인공이 낙마한 후에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나무에 있는 결 하나 하나도 다 기억한다. 그랬더니 사고를 못한다. 기억을 한다는 것은 망각을 한다는 것이다. 다 기억하면 기억이 아니다. 사고가 아니다. 사고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망각하는 것이다. 차이를 망각하고 못 볼 때 유사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우리는 화장실 표시에서도 남자 아이콘을 보고 남자의 실루엣을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 그 둘 간의 차이를 다 없애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덱스, 지시원이 있다. 이는 두 가지 이상의 실재를 연결하는 것이다. 퍼스의 실재(reality)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다. 실재는 visible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는데 퍼스가 말하는 real은 invisible해도 실재하는 것이다. 기호로 나타낼 수 있다면 실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기호로 표시해도 그것 또한 실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은 자, 정령에 대해 말할 때 이를 기호화할 수 있다면 이는 사고할 수 있는 것이고 실재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해 말할 때도 우리는 생명이 죽으면 실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테면 워킹 스틱이라는 벌레가 있다. 이 벌레는 자신의 보호색으로 변한다. 이 벌레의 조상 중에서는 보호색을 잘 못하는 애들이 죽고 보호색을 잘 발휘하는 애들만 살아남은 것일 것이다. 이 또한 일종의 기호다. 자신을 보이지 않게끔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기호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까지 잘 보여서 죽은 조상 워킹 스틱 또한 지금 현재 살아있는 워킹 스틱의 잘 보이지 않는 그 기호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조상 워킹 스틱도 실재하는 것이다. 생명이란 다 그런 것이라는 것이다. 죽으면 끝이 아니다. 개미핥기도 주둥이가 개미집 모양에 맞춰 진화해왔다. 개미핥기가 되기까지도 전부 기호인 것이다. 개미핥기의 혀 등이 개미를 잘 속이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현재의 개미핥기의 기호 속에 조상에 덜 진화된 개미핥기 속에서 실재하는 것이다. 이 개미핥기 속에 미래의 개미핥기도 존재하는 것이다. 인덱스는 일종의 지시이다. 개미핥기의 주둥이도 일종의 인덱스다. 어떤 기호를 통해 해석체에 의해 그 다음 실재에 대한 메시지를 보여주는 기호가 인덱스다. 앞으로 일어날 실재에 대해 기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 비가 올 것 같고, 그러면 먹구름이 인덱스가 된다. 세상 모두가, 심지어 우리도 기호다. 퍼스는 잠시 지금 이 시간에 존재할 뿐인 기호라고 본다.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기호에 의해서, 나의 기호를 해석하는 해석체에 의해서 내가 없더라도 내가 전달한 기호를 실재하게 되고 그래서 모든 생명들이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상징은 언어고, 대상과 분리된다. 기호매체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구성할 때 상징이 된다. 언어는 딱 상징적인 성격만 가진 것은 아니고 아이콘, 인덱스적인 특성도 갖고 있다. 의성어, 의태어는 아이콘이다. 상징표상은 언어 그 자체, 그 기표만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의성어, 의태어는 언어체계가 없어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쯔푸라는 표현이 있는데 물이 띄워두는 어떤 물체의 모양을 가리키는 루나 족의 말로, 이는 문법적인 변화를 하지 않는다. 이는 언어체게, 상징체계 내부에 뜻을 가진 게 아니라 아이콘적인 기능(물에 빠지는 것과 유사함- 풍덩과 물에 빠지는 소리가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기호로 인지하듯이)과 인덱스적인 기능(쭈푸, 풍덩하면 이는 물에 빠지는 어떤 실재를 가리키게 된다)을 모두 가진다. 우리는 상징적인 것에만 사고의 특권적인 것을 부여해왔는데, 아이콘과 인덱스 또한 think다. 박테리아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다 사고하는 것이다.

퍼스의 기호학에서는 모든 경계들이 다 무너진다.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 강아지에게 지시하는 것도 다 인덱스다. 그래서 요즘 동물행태학에서는 상징 언어도 시도해보고 있다. 어떤 동물에게 포도를 주면 어떤 키를 누르도록 하는 식으로 40가지 키를 준다. 강아지는 300가지 인덱스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키들 간의 관계를 가르쳐줄 수도 있다. 포도 – A, 귤 – B라고 했을 때 배우다 보면 A, B, C, D를 익힌다는 것이다. 어린이들도 처음엔 다 인덱스로 언어를 배우다가 어느 순간 도약을 해서 의미 체계를 구성하고 상징을 배운다. 이 도약은 학습을 하면 고릴라도 할 수 있다. 퍼스의 기호학은 상징과 사고가 인간의 독점적인 권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냥 연속적으로 이를 활용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콘, 인덱스, 상징으로 모든 숲이나 생명체가 사고를 한다는 것을 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실재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꿈, 환상으로까지 확장된다. 꿈이 도대체 뭘까? 이를테면 근대적인 인간중심주의적인 꿈은 무의식적인 표상이라는 의미만 있었는데, 이제는 꿈이 skin-bound 개인을 넘어선다. 어떤 것은 해석체(기호를 받아들이는 대상)이기도 하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해석체가 기호매체가 되기도 하고 기호매체가 해석체도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된 차은정 교수님의 “환경사회학” 수업의 필기입니다. 여기서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