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와 지구인문학 : 천도교회월보 를 중심으로
박길수 (원광대학교 불교학과 박사과정)
1. 들어가는 말
‘지구인문학 은’ 현재의 ‘세계 지구공동체 가- ’
도달한 실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학문적 방법론 또는 관점과 태도로서 제안된 것이다. 최근
들어 조성환 허남진은․ 이러한 새로운 학문 경향을 한국적 맥락의 특수성을 반 영하여 ‘지구인문학 이라는’ 틀로 명명하고 학문적 도전을 전개하고 있다.1)
지구인문학이 이러한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에서 지구화가 가 시화되는 시기에 이를
포착하고 그에, 따른 근본적인 변화를 읽어낸 다음 궁극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은 동학 (東學)으로부터 시작되는 ‘개벽종교 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서학에 대한 동학 이라는’ 시각을 탈피하고,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을’ 보편학으로서의 개벽학2)으로
읽어낸 바탕에서 지구인문학이라는 발상이 가능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글은 동학이 ‘천도교(天道敎)’라는 근대종교로 개신(1905)한 이후 창간된 기관지(機關誌)인 천도교회월 보 의 초기 텍스트(1910-1922)에 나타난 지구인문학적 비전과 전망에 관한 기본적인 고찰을 한다. 이를 통 해 동학 천도교가- 지구인문학의 원천이자 원형이며, 보고라는 점을 소명하고, 향후 본격적인 연구의 출발점 으로 삼고자
한다.
2. 연구의 배경과 범위
1)
동학에서 천도교로의 개신 동학은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侍天主], 만물의 관계에 대한 이해[同歸一體], 지구를 포함한 전 우주적 차원에서의 삶의 태도[三敬-敬天 敬人 敬物․ ․ ], 천지인만물의 비전[人與物開闢] 등 여러 방면에서, 그
창도기 에 이미 새로운 지구인문학적 이념을 골간으로 제시하면서 출발하였다. 동학시대(1860-1904)에 형성 된 지구인문학적인 비전은 천도교시대(1905-현재) 이후 서구사회와의 교류 접촉면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전개 양상을 띤다. 천도교시대를 연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1861-1922)는
1900년 초부터 동학의 체 제를 개편하고 자주적 근대화를 위한 정치 사회 문화․ ․ 방면의
노력(민회운동, 혁신운동)을
기울이던 중,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포하고, ‘근대적 제도종교 로’ 탈바꿈시
킨다. 1905년 이후 천도교는 교단 제도를 정비하고, 근대적
교육기관, 언론 출판- 기관을 설립 지원 경영․ ․
1) 조성환 허남진․ , 「지구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종교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개벽종교를 중심으로」, 신종교연구 제43집, 2002, 92~94쪽 참조.
2) cf.
김용휘,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 책세상, 2007.; 조성환, 한국근대의 탄생 개화에서- 개벽으로 , 모시는사 람들, 2018.11; 조성환 이병한․ , 개벽파 선언
, 모시는사람들, 2019.9.
을 하면서 한국사회에 전면에 등장한다.
2)
1900년대 천도교 교리의 재해석 이러한 제도적
정치적․ 운동과 더불어 동학시대의 교리를 재해석하는 작업도 전개된다.
1900년부터 1922년까지는 이러한 ‘교리
재해석’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작업은
각종 교서(敎書) 의 간행,
기관지(機關紙와 機關誌) 발행, 교육기관 운영 등을 통해 전개된다. 이 중에서도 1910년에 창 간된 천도교회월보 는 ‘천도교 교리 형성기 를’ 주도적으로 견인한 기관지(機關誌)이다.
3)
천도교회월보 의 역사적 의의 이 글은 ‘천도교시대
의’ 교리 담론의 폭발적인 성장과 확장을 주도한 천도교회월보 를 통해
1910년에 서 1922년까지 사이에 천도교시대에 지구인문학적인 비전이 어떻게 발전하고
성숙해 갔는지 고찰한다. 1910년은 천도교회월보 가 창간된 해이며,
1922년은 천도교 교주인 의암 손병희가 환원(1922.5.19) 한 해이다. 이 시기(1910-1922)는 천도교 시대 초기(1900-1909)의 교리화 성과를 계승하면서, 천도 교회월보 를
통해 그 내용을 심화시켜 가는 시기이다. ‘천도교시대 의’ 최초의
근대적 언론매체로는 ≪만 세보≫(1906.6.17 창간-1907.6.29)에 이어 창간한 매체가 ‘隆熙4年’(1910) 8월 15일
창간호를 발행한 이래 1937년까지 28년 동안 통권 296호까지 발행한 월간 기관지(機關誌)가 천도교회월보 이다. 천도 교회월보 는 천도교의 기관지였지만, 천도교시대에 걸맞은 교리의 재천명뿐만 아니라 당대의 대중계몽 과 문명개화 등의 시세(時勢)를 반영한 언론매체이기도 하다.3)
그동안 천도교회월보 를 통한 ‘천도교 이해 는’ 극히
한정된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천도교회월보 는 ‘천도교의
언론출판운동, 문명화 촉진과 근대 계몽 이라는’ 차원에서
주로 언급되었다.
4)
선행연구 검토 김응조는 교단사적인 차원에서 천도교회월보 의 창간에서 폐간에 이르기까지 편집진과
편집 방향, 일 제 당국의 탄압 상황 등을 소개하였다. 김정인은
천도교회월보 가 1911년 6월호(통권11호)부터 설치 한 “‘언문부 에’ 실린 논설, 기사, 잡보, 휘보 등을 통해 1910년대
민중의 삶과 그 변화의 단편을 추적” 하여 “민중들이 국망(國亡) 이후 천도교로 집결하여 가족공동체 중심의 종교활동을 영위하면서 근대 적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
을” 구명하였다. 박상란과 우수영과 김정희는
각각 천도교회월보 내의 ‘영 적담(靈蹟談)’과 ‘소설’ 및 ‘천덕송 의’ 수록 현황과 특징을 분석하였다.4) 또 고건호는 천도교회월보 에 게재된 기사와 이돈화의 단행본들 분석하여 이돈화의 ‘신종교론 을’ 논구하면서, 이돈화가 ‘종교 로서의’ 천도교의 위상을 정립하고, 종교적 진리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며, 종국에는 천도교를 중심으로
3)
김정인, 「1910년대
天道敎會月報 를 통해서 본 민중의 삶」, 韓國文化 제30권, 서울대학교한국문화연 구소, 2002.12.
4)
김응조, 「천도교의 기관지 <천도교회월보 와> <신인간>」, 『신인간』
통권438호, 1996.4(4월호), 100-120
쪽.( 개벽과
동학혼 (下),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20.3, 45-72쪽 재수록).
김정인, 「1910년대 天道敎會月報 를 통해서 본 민중의 삶」, 韓國文化 제30권, 서울대학교한국문화연
구소, 2002.12.
박상란, 「근대전환기 영적담(靈蹟談)의 양상과 의의 - 『천도교회월보』 소재 ‘영적실기(靈蹟實記)’를
중심으
로」, 한민족문화연구 제52호, 한민족문화학회, 2015.
우수영,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수록 소설의 담론 전개」, 현대소설연구 제64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16.12. 김정희, 「 천도교회월보 에 나타난 일제강점기 천덕송」, 공연문화연구 35권, 한국공연문화학회,
2017.8.
종교와 철학, 과학을 통일하여 ‘사회개조운동의 구심 에’ 세우고자 하였다고 주장하였다.[1]) 그
밖에도 1900년대 천도교 연구에서 천도교회월보 내의 기사들이 단편적으로 인용, 언급되고 있다.
이상의 연구들에서는 ‘교리 정립기 에’ 천도교회월보 에 반영된 교리 사상적․ 특징, 그중에서도 천도교의 개벽사상의 근대적 표현인 ‘지구인문학적’ 관점이 어떻게 조형되고 발전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전무하다. 따라서
천도교 교리 정립기인 1910년대의 천도교회월보 기사를 전반적으로 분석하여 그 특질을 구명 하는 작업은
이제 막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3. 천도교회월보 와 지구인문학적 사고
1)
천지인물(天地人物) 일원의 개벽적 전망 천도교회월보 창간호의 「천도교회월보취지문」[2])은 천도교회월보 발행 취지를 천도교의 역사적, 교리․ 사상적 맥락에서 밝히고 있다; “(1)천도교의 진리는 이 세상에
난 지 3세(世)에
걸쳐 고난 속에서 이어져 왔으 나 육대주의, 인류를 두루 이롭게 할 것이다. (2)전 지구적인 차원 그리고 전 인류적인 차원에서 영성의 새로 운 광채(光彩)를 더하고[靈性之新光彩], 학술의
새로운 지식을 더하며[學術之新知識], 제도의 새로운 의피(衣被)가 될 것이다[制度之新衣被]. (3)하늘이 새로워지고 도(道)가
새로워졌으므로 지구상 인류 또한 새로워질 것임을 세계 등족(等族=모든
민족 인류 이) 알게 할 것이다. (4)나아가서 비잠동식(飛潛動植)이 더불어 새워질 것이며
(5)이 모든 것은 ‘같은 뿌리 에서’ 나온
존재임을 믿고 어짊과, 자비 사랑과, 천인합일에 이르게 할
것이 다 필자( 요약).”
(1)은 천도교 진리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 문명을 이롭게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2)에서 ‘영성 은’ 종
교적 정신적, 측면을, ‘학술 은’ 사상적 철학적, 측면을, ‘제도
는’ 정치적 사회적, 측면을 대표하는 것이다. 한마 디로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새로운 사상[光彩]과 지식(知識)과 문화[衣被]를 창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3)과 (4)에서는 천도교회월보 의 관심 범위가 ‘천(天, 한울)-도(道, 진리)-교(敎, 교단 와)’ 세계
인류는 물론이고, 비잠동식(飛潛動植)의 동식물과 사물에 두루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그 이후 지속적으로 관 심의 대상이 된다.[3]) ‘천
지 인 이- - ’ 새로워진다는 것은 천도교의 개벽사상의 기본 목표인
“새 하늘 새 땅에 사 람과 만물이 또한 새로워질 것”8)이라는 구절의
의연인바, 천도교회월보 가 곧 ‘개벽 사상을’ 그 기본 출발점 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에서는 좀더
포괄적으로 첫째, 만물의 유기적 연결성, 둘째, 당대의 유력한 동서종교의 기본 이념을 포함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좀더 정치(精緻)하게 ‘불이설 로도’ 표현되는데 김중건은,
신리기형(神理氣形)의 사천(四天)과 공산법 리(公産法利)의 사지(四地), 초궁삼(峭穹三)의 삼족(三族), 유불선(儒佛仙)의 삼교(三敎) 등이 모두 ‘한
하늘의 소산 이라’ 하였고, 사람의 생사(生死), 만물의 유무(有無), 천지인(天地人)의 일이삼삼이일(一而三三而一)로서 물(物)로서 보면 불일(不一)이나
천(天)으로 보면 불이(不二)하다고 하였다.[4]) 그
밖에도 다수의 필자들이 불이 설을 설파하는바 삶과, 죽음이 하나요 천지만유는, 본래 한 한울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요 이, 세상 만물이 모 두 천도(天道)와 지도(地道)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이며 나와, 한울이 하나요 도, (道)가 본래 하나로서 그로부터 비롯하는 천인 만물이- 모두 하나이며 천덕(天德)과
인덕(人德)이 또한 하나이고, 하늘이 육신을 품고 성령이 천지를 품어 그 안에 천지만물이 모두 살아가는 이치는 하나이며 한울과, 사람의 조화가 하나이고, 천지와 도 덕과 생사와 선악과 애증(愛憎)이 불이(不二)이고(李昌薰), 사해일가
천포형제(四海一家 天胞兄弟)로서 하나라 고 하여 만물일원의
관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10)
2)
전 지구적 전망 천도교회월보 1주년에 이종린은
「본보 1주년 기념에 대한 감상 에서」 (1) “한 방울의
물이 크나큰 시련을 딛고 흐르고 흘러 바다를 이루고 한, 줌의 흙이 쌓이고 또 쌓이기를 거듭하여 6대주를 이루는 것”처럼 (2) “천
도교는 이 세상을 건지기 위해 태어나고, 천도교회월보 는 천하의 태평한 세월을 향해 열어젖힌 지 1년에 불과하여 세상에 다 펴지지 못하였고 세계의, 주역이 되지 못하였으며
아직, 안목이 충분하지 못하지만 먼 장 래를 생각하며 기념하 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다.11)
2주년 기념호 기념사에서는
천도교회월보 가 “벽항궁촌에 들어앉아서도 능히 세계 만국 형편과 좋은 의 견을 들을 수 있게 하고 … 능히 세계일을 듣게 하고 … 능히 천하만국 형편을 보게 하는 큰
기관”이라고 하였 다.12) 3주년 기념호
기념사에서는 천도교회월보 발행 취지를 (1) “무극대도의 진리를 발포(發布)하고, 한울 과 사람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원칙을 밝혀서 세계 억억중생을
건지 고” (2) 세계를 풍동(風動)하여 우리 도의 목적을 만국에 광포(廣布)하는 것이라고 하였다.13)
이러한 ‘각오 와’ ‘포부
를’ 반영하여 각종 교설(敎說)들 또한 전 지구적 우주적( ) 전망 하에 전개되었다. 야뢰 이돈화는 「우주설(宇宙說)」에서
이 우주는 절대공(絶代空)으로부터 상대세계[萬殊一理]로 화생하여, 자연의
순환[循環之理]로 운행하고,
순환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운명(運命)이 생겨나며, 이 운명을 깨달은 자가 곧 달 인으로서의 수운 선생이고 그, 가르침을
이 세상에 펼치는 천도교는 “만종교(萬宗敎) 만철학(萬哲學)을 포함하
여 진보시대의 최후종교로 후천오만년을 지도해 나갈 것이라고 하였다.”14) 김중건은 “‘시방세계와 억억인생’ 을 한 방의 한 가족으로 여길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15)
3)
근대 과학을 통한 인지혁명
천도교회월보 창간호부터 천도교
교리를 천명하는 ‘교리부(敎理部)’ 외에 학술부(學術部), 기예부(技藝部詞藻; 詩文) 외에
물가부(物價部)까지 포함하여 폭넓은 기사를 게재하였다 특히. 학술부는 물리학, 화학, 지리
학 경제학, 등 ‘서학 서구학문 인- ’ 신학문(新學文)의
각 부문의 포괄하여 독자들의, 민지(民智) 계발을 추구하였 다.
창간호에 오늘날 천문학(天文學)에 해당하는 「지문학(地文學)의
정의(定意)」를 소개한 데 이어 1910년대 내내 이러한 ‘학술부 기사는’ 매호 게재되었다.16) 「지문학의
정의 에서는」 “일월성숙(日月星宿)을 우러러 관찰
10) 오상준(吳尚俊), 「생사불이설(生死不二說)」, 천도교회월보 통권9호, 1911.4.15, 9-11쪽 外 11) 이종린(李鍾麟), 「본보 1주년
기념에 대한 감상」, 천도교회월보 통권13호, 1911.8.15, 1-5쪽.
12) 중고산인(李鍾一), 「월보기념에 대하여」(언문부), 천도교회월보 통권25호, 1912.8.15, 48-50쪽.
13) 중고산인(李鍾一), 「월보 발행하는 취지에 대하여」, 천도교회월보 통권37호, 1913.8.15, 1-5쪽.
14) 이돈화(李敦化), 「우주설(宇宙說)」, 천도교회월보 통권21호, 1912.4.15, 9-12쪽.
15) 김중기(金重基), 「사해붕우도일신(四海朋友都一身)」, 천도교회월보 통권24호, 1912.7.15일,
26-27쪽.
16) 1920년대 이후 학술부 기사는
거의 사라지고, 천도교 내의 교리적 담론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는
1920년 6 월 창간된 개벽 잡지를 통해 이러한 방면의
학문을 소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고[5][仰察] 밝히는 학문을 천문학이라 하고 화기수토, (火氣水土)의 실제 이치를 굽어 관찰하고[俯察] 연구하는 학문을 지리학이라”
한다고 하면서 “천문과 지리의 관계를 발췌하여 서술함으로써 한 과학을 더하는 학문을 지문학(地文學)이라고” 하는데, 천도교회월보 는 “천문지리와 자연지리로부터 정치지리에 이르기까지
대략” 을 밝혀 나가겠다고 한다.17)
제 호부터는2 「무기화학」
연재로서 물질과 에너지,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 화학과
물리학의 관계, 화 학의 효용 등을 언급하여 물리학의 거시 세계에 대비되는 미시 세계에 관한 안목을
제시한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천도교회월보 에서는 ‘우주관’ ‘우주설 과’ 같은 근대 이후의-
세계관으로 이어지는 논설들을 게재 하기에 이른다.[6]) 또한
제 호4 (1910.11)부터는 「각국종교내력 을」 8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세계 종교사를 개 관하였고, 그 밖에 임산학, 화학, 의학(서양의학, 한의학), 위생학, 부인학, 교육학, 법률학, 경제학(治産學
포 함), 경영학(事務學 포함), 농사학, 양돈학, 사회학, 위생학, 논리학, 심리학
등의 거의 전 부문에 걸쳐 지속적 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천도교회월보 의 기자(記者)들은 물론이고 독자들은 하늘 인간의- 수직적 관계로부터 하늘과 인간과
만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기후, 지리,
인문(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서로 협력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인지혁명을 이루어 낸다.
4) 과학혁명
너머의 종교혁명 - 미래의 종교 이 시기 천도교회월보 가 일관되게 주창하는 중요한 논점은 ‘후천의 신종교 천도교 이다’ . 천도교는 선천 (先天) 시대 종교의 한계와 적폐를 극복한 신종교라는 것이다 그리고. 곧 후천종교로서의 천도교의 시대가 도 래한다는 것이다.[7])
그러나 ‘천도교 의’ 강조는 호교론(護敎論)에 머물지 않고, 근대
이후의 세계와 인류를 구 원할 핵심이 바로 ‘(신 종교 임을) ’ 주장하는
데 있다. 이는 근대 세계가 ‘과학 에’ 의해 수립되었으며, 이것이 근 대의 문명을 나은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또한, 과학이 초래한 문제점이 극명하므로 근대, 이후의
새 세계는 ‘종교 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갈 것임을 천명하는
것이다.[8])
이러한 논리는 종국에서 ‘종교통일론 으로’ 귀결된
다. 종교통일은 첫째는 전통적인 유불선합일론에 대한 심화로부터 출발한다.[9])
이는 ‘장래의 종교 가’ 하나로 귀일[歸一, 統一]되는바, 이것은 단지 현재의 종교만이 아니라 종교와 과학,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는 미래의 종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 가’ 과학과 철학을 포월하 여 세계일가(世界一家), 만족일원(萬族一員), 만물일체(萬物一體)의 새 세상을 구현하는 지도이념이 된다는 데 있다. 이때의 종교는 이미 전통적인 의미의 종교를 넘어선 ‘종교 너머 의’ 종교, ‘이후 종교 로서’ 탈 (脫)종교적 인 종교이다.[10][11])
그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종교가 전망하는 새로운 종교이기도 하다.23)
5) 영성적 세계관
천도교회월보 를 통해 천도교의 지구인문학적 전망을 조형해 나간 당시 천도교 지식인들은 세계의 위력 을 가능케 하는 과학에 대하여 반(反)과학주의를 취하지 않으며 오히려,
개조와 문명의 이름으로 과학에 대한 수용과 학습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과학 너머, 최후의 종교로서의 신종교 천도교 를( )’ 지향하는 만큼 영 성(靈性)에
대한 깊은 관심을 통해 과학을 포월(包越)하는 동력을 삼는다
영성이. 전체로서의 성령 즉, 한울님 의 영지(靈智)와 영능(靈能)을 가리킨다면 시천주, (侍天主),
내 몸에 모신 한울님의 영지영능은 ‘성령(性靈)으로 표현된다 인간은. 이 성령이 만물 가운데 최령(最靈)한 존재라는 점에서 만물, (萬物)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는
존재이기도 하다.24)
6) 세계
개조의 지향
20세기 초기 한국사회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단어 두 개를 들자면 ‘개조 와’ ‘청년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것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1910년의 국망(國亡) 이후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무능함을 타기(唾棄)하면서 청년들 이
구세대, 구시대, 구한국을 개조하여 새 사회, 새 시대, 새 한국 독립 을( )
이루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던 분위 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920년에 창간된 개벽
은 이러한 개조사상을 전면에 내세운 잡지이다. 그런데 천도교회월보 에서는 이미 1919년 12월부터 ‘개조
와’ ‘천도교 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여 1921년까지 지속적으로 논구해 나갔다. 이후 개벽 지에서 좀 더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되면서, ‘개조 에’ 대 한 언급의 빈도는
줄어가지만 이는, 다시 ‘개벽 을’ 키워드로 하는 논의로 전환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 상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천도교회월보 나 개벽 에서의 개조가 서구 근대 지향의 의미가 아니라 ‘개벽’ 을 지향하는 의미라는 점을 말해준다.25)
천도교회월보 에서 보여주는 개조의 (후천의
새로운) 종교가 근본 바탕을 제공하는 개조이며(李敦化), 천 도교의 정신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전개될 개조이며(玄波, 박래홍). (후천) 도덕
지향의 개조이고(源菴, 오지 영), 인내천 세계를 지향하는 개조이며(花岡, 박사직; 金明昊; 朴達成), 가정으로부터 세계에 이르는 전면적인 개조(獨嘯生; 姜仁澤)라고 할 수 있다.26)
4. 나가는 말 올해는
천도교회월보 가 창간된 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
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천도교회월보
를 통해 들여다보면 110년 전 동학 천도교의- 지식인들이
바라보았던 세계의 문제는 지금 여기의- 세계에 고스란히 더, 심화되고
확장된 형 태로 계승되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110년
전의 세계나 지금의 세계가 ‘서구 세계의 확장 으로서’ 의 ‘서구적 근대화 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 이후
를’ 전망하는 ‘개벽적 시선’ ‘천도교의 지구인문학적 전망 또한’ 1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다. 그 사이 천도교의 주체적인 역량(敎人數, 재정 규모, 당대 사회에서의 영향력 은) 비교할 수 없 을 만큼 위축되었으나, 외재적 환경, 다시 말해 ‘지구인문학 을’ 요청하는
세계의 요구는 당시에 비하여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되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천도교회월보
를 중심으로 근대 시기 천도교의 지구인문학적 관점과 태도를 고찰해 보았다.
24)
1910년 8월부터 1922년까지 ‘영성 과’ ‘성령
에’ 관한 글은 “박춘갑(朴春甲), 「성령수련과 육신보호는 오교(吾敎) 의 지반(地盤)」, 천도교회월보 통권2호,
1919.9.15, 26-28쪽.” 외에 20여
편에 이른다.
25)
1910년 8월부터 1922년까지 천도교회월보 에 게재된 ‘개벽 에’ 대한 주요한 글은 “김중건(金中建), 「후천개벽 설(後天開闢說)」, 천도교회월보 통권21호,
1912.4.15, 40-43쪽.” 외에 10여
편에 이른다. . 26) 1910년 8월부터 1922년까지 천도교회월보 에 게재된 개조에 관한 글은 “이돈화(李敦化), 「개조(改造)와 종교 」, 천도교회월보 통권112호, 1919.12.15, 4-8쪽.” 이에 10여 편에 이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접근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정도이다. 1910년부터 1922년 사이에 천도교회월보
에서 기본적인 조형(造形)을 마친 ‘천도교 지구인문학 은’ 1922년 손병희 사후에도 계속해서 천도교회월보
를 통 해 전개되는 한편으로 1920년 6월 창간된 개벽 , 1926년 창간된 신인간 등을 통해 좀 더 사회 속으로 깊 숙이 침투하면서 좀 더 본격적인 담론으로 전개되었고
이돈화, 등 천도교단 내 철학 사상가의․ 단행본[12])을 통 해 심화되어 나갔다. ‘천도교 지구인문학 은’ 이 글에서 살핀 1910년대의 담론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나 아가 이후의 제반 텍스트들을 함께 논의해야 비로소 그 실체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앞으로 좀 더 본격적이고, 깊이 있는 논구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일 뿐 임을 밝혀 둔다.
[1] ) 고건호, 「‘종교 되기
와- ’ ‘종교 넘어서기- ’: 이돈화의 신종교론」, 종교문화비평 7권, 한국종교학회, 2005(봄).
고건호, 「천도교
개신기 ‘종교 로서의’ 자기인식」, 종교연구 제38집,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05.
[2] ) 羅龍煥, 「天道敎會月報趣旨」, 天道敎會月報 創刊號, 1910년 8월호, 1910.8.15.
[3] ) 이종린(李種麟), 「이물관천즉천역물(以物觀天則天亦物) 이천관물즉물역천(以天觀物則物亦天)」, 천도교회월 보 통권33호, 1913.4.15, 5-7쪽.
윤형삼(尹衡三), 「천지만물이 활아심두(活我心頭)」, 천도교회월보 통권38호, 1913.9.15, 20-21쪽.
무기명, 「지구상인류만원기(地球上人類滿員期)」, 천도교회월보 통권44호, 1914.3.15, 33쪽.
8) 海月神師法說 「開闢運數」, “新乎天新乎地 人與物亦新乎矣.”
[4] ) 김중건(金中建), 「불이설(不二說)」, 천도교회월보 통권2호, 1910.9.15, 23-24쪽.
[5] ) 2호 이후에는 물리학, 지리학 등의 각 분과 학문별로 1~2쪽씩 3~5개의 분과에 대해 연재가 이루어진다.
[6] ) 이돈화(李敦化), 「우주설(宇宙說)」, 천도교회월보 통권21호, 1912.4.15, 9-12쪽. 外 多數.
[7] ) 1910년 8월부터 1922년 5월까지, ‘천도교 시대의 도래 의’
의의를 주장하는 글은 “박명선(朴明善), 「오교(吾敎) 는 인류생활의
원기(元氣)」, 천도교회월보
통권4호, 7-9쪽.” 외에 30여 편에 이른다.
[8] ) 1910년 8월부터 1922년 5월까지, ‘종교 시대의 도래 를’ 주장하는 글은 “이관(李瓘), 「초매(草昧)시대 종교와 문 명시대 종교설」, 천도교회월보 통권4호, 1910.11.15, 13-16쪽.” 외에 40여 편에 이른다.
[9] ) 박명선(朴明善), 「유불선합일해(儒佛仙合一解)」, 천도교회월보 통권6호, 1911.1.15, 14-17쪽. 외 2편.
[10] ) 앞의 고건호 「‘종교 되기 와- ’ ‘종교-넘어서기’: 이돈화의 신종교론」 참조.
[11] ) 1910년 8월부터 1922년까지
종교통일론과 종교와 과학, 철학과의 습합에 관한 글 “이관(李瓘), 「종교통일론」, 천도교회월보
통권10호, 1911.5.15, 1-5쪽.” 외에 20여 편에 이른다.
[12] ) 인내천요의 (1924), 수운심법강의 (1926), 천도교리독본 (1925), 신인철학 (1930), 자수대학강의 (편저,
1935), 동학지인생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