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4

希修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는, 말 한 마디의 힘

 希修

Favourites · 1d · 



<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는, 말 한 마디의 힘 >
.
.

1. 여성성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하면서 女性을 女神의 위치로 추대하는 듯 말하는 어느 여성학자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분은 자신이 말하는 여성성이란 반드시 생물학적 여성의 특징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나는 마치 외계어를 읽은 듯한 기분이었는데, 그 이유는..
.


1.1. 모든 이들의 인격이 동등히 존중되기를, 그러나 차이 역시 지워지거나 우열로 평가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틀린 것이었나?,
여성을 여신으로 만드는 것이 페미니즘인가?, 여성에게 그렇게 초월적 지위를 부여하면 평범한 인간에 대한 기대를 초월하는 온갖 의무도 당연히 함께 띠라올 텐데 그거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저항해 온, condescending한 여성억압의 교묘한 형태가 아니었던가? 싶어서.

1.2. 여성성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여성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여성다움'이라는 이미지를 말하는 것인지? Again, 그 '여성다움'이라는 이미지가 여성억압으로 작용하기에 저항하는 것 아닌지?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싶어서.
.

생각할수록 미로로 빨려들어가는 듯 어지러워져서 이해하기를 포기한 기억이 있다.
.
.

2. 한 번은 어떤 다른 페미니스트가 자신의 페북에서 전업주부"나같은 싱글/워킹맘들의 피눈물나는 투쟁에 무임승차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냥 지나친 적도 있다. 
스스로의 경제력으로 집을 마련할 때까지 거주와 식사는 친정 부모님의 집에서 했고 자신이 일하는 동안의 육아 역시 친정 부모님이 해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여건들이 충족되지 않아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던 많은 다른 여성들의 존재까지 기억하기엔 싱글/워킹맘으로서의 그녀의 아픔이 정말 컸나 보다, 그럴 수도 있지, 싶어서..
.
.

3.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나면, 특히나 전업주부가 되고 나면 그야말로 친정식구들까지 gang up 해서 온갖 가부장적 폭력을 내게 휘두르는데.. 예를 들면, 모유수유하는 동안은 글자 그대로 24/7/365 아기가 코알라처럼 내 몸의 분신으로 붙어서 지내며, 한밤중에도 아이가 원할 때마다 수유를 하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가 안고서 재우는 애착육아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운 내 경우 특히, 육아기간 내내 잠도 한 번에 2-3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기에, 화장실 사용 같은 아주 기본적 생명유지 활동마저 아이의 기분과 편리에 맞추어 해야 했기에 

(우는 아이 달래는 일보다 가급적 안 울리는 게 차라리 편하다는 것이, 소음에 워낙 예민하고 내 자식 우는 소리는 다른 어떤 소음보다 백만배 더 괴로운 내 입장에서의 주관적 판단이었음), 배달이라곤 도미노 피자밖에 없고 내 몸 아파도 도움 청할 곳 없기에 먹이고 안아 주고 놀아 주고 기저귀 갈고 밥까지 다 해 가면서 아파야 하는,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남편이 저녁식사 한 끼만이라도 맘 편히 따뜻한 밥 먹으라고 자신이 아이를 안고 있고 나 먼저 밥을 먹게 해 주곤 했었는데, 시댁 식구도 아닌 친정 식구들조차 이런 장면을 보면 나를 나쁜 아내, 세상 편한 어미, 남편은 불쌍한 아범 식으로 묘사하더라는.. 하~~~ (밥상 한 번도 안 엎은 난 정말 너무 순하지 말이다. -.,-)
.
.

4. 본인 자신 가부장적 문화의 폭력을 누구보다 심하게 겪었으면서 자신의 며느리는 군기를 잡으려 했었던 시어머님, 
당신의 아들들은 한국말도 못 하는 '미국놈들'이니 아들들로부터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한국식 효도를 며느리에게서 마음껏 받아 보고자 온갖 manipulation을 썼던 시아버님. 
'우리 조카 같은 남편을 둘 자격이 너에게 있는지 함 보자'는 듯한 시선으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던 시이모님 등등.. 
뭐 이런 자잘하고 유치한 투쟁들을 아무런 연대 없이 일대다로 홀로 해 내면서, 
어쨌든 결과적으론 내가 '이겼다'! 
(그 분들의 기대를 현실화해 드리고 서로 타협과 절충의 과정을 거친 후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화목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 
울남편은 한국문화도 모르고 한국말도 못 하고 무엇보다 눈치 코치 1도 없는 사람이라, 
집안 식구들 사이에 오가는 그 무수한 manipulation과 신경전을 알아차리지도 못 하더라는.)
.
.

암튼,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는 은하선 씨의 말에, 눈물이 나오려고 할 만큼, 아주 깊이 공감하게 된다.. 약간의 차이 때문에 함부로 적대부터 하고 들거나, 인간이라고 하는 복잡한 우주의 단 한 면만 보고서 낼름 딱지 붙여 자기 편할 대로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거나, 자신의 아픔만 알 뿐 남의 아픔은 알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나쳐 남의 아픔과 사정을 함부로 무시/폄하하거나 그러지 말고, 가능하면 말 한 마디라도 신중하게, 그러기 어려운 경우엔 때로 그냥 지나치기도 하는 자제력도 좀 있어야, 그래야 연대도 가능하지 않겠는지.. 그렇게 되었으면..
.

그나저나 1번은 제 머리로는 아직도 이해가 도무지 안 되니, 누가 좀 도와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

.

Hasun Eun
1d


모든 운동에 연대할 필요 없고 마음을 쓸 수도 없다.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우리가 현재를 겪으면서 해야할 일은 기록이다. 당장 무엇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촘촘한 아카이브일 수도 있다.

'연대는 요원하고 젠더 운동은 망했다'며 뒷짐지는 당신은 그래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한줌도 안되고 그래서 조용한 '쓰까'들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할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지?

숙대 앞에 가서 기자회견이라도 열어야 연대고 운동인가. 현실을 살아가는 것 또한 연대고 운동이다.

연대와 운동을 축소시켜서 얻어지는 게 무엇인지.




Yoonjin Kim 저도 1번에 동의할 수가 없어서 ㅎㅎ 아직 이해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1


希修 Yoonjin Kim 어멋, 다행! 제 머리를 탓하고 있었어요. ^^
1
· 1d

Sungsoo Hong 한 인간으로서 존경해요. 선생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