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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자유의 종교다.
조 성택 (고려대 철학과)
서양의 고전 『오디세이아』의 대주제는 ‘귀환’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오디세우스가 겪는 ‘어드벤처’는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양념일 뿐이다. 영원한 삶과 재물을 보장해주겠다는 칼립소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도,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오디세우스의 집념 때문이었다. 인류의 문명사를 보면 ‘집’은 늘 돌아갈 곳이었다. 삶을 여행에 비유하곤 하지만 그 여행의 목적은 집을 떠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데 있다.
『오디세이아』는 인류가 정주문화를 시작한 이래 집을 ‘떠남’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집을 잠시 떠나더라도, 또 장사를 하기 위해 집을 몇 해씩 떠나더라도 늘 인간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집’을 삶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고대 동아시아의 유교적 세계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그리고 치국治國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집’은 늘 세계의 중심이다. 군신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효와 충이 동일시 될 수 있는 것도 결국 ‘집’이 세계의 출발점이자 완성태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등장은 ‘집’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청년 싯다르타에게 ‘집’은 돌아갈 곳이 아니라 떠나야 할 곳이었다. 처자식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장애’였다. 집을 떠나고자 하였던 것은 싯다르타만이 아니었다. 당시 인도의 많은 젊은이들이 집을 떠났다. 그들을 사문沙門 즉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싯다르타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추구하였던 것은 진정한 자아의 실현이었다. 이를 위해 ‘집’을 떠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집’이란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
문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세기경』에는 ‘집’을 바라보는 불교적 입장의 문명관이 잘 드러나 있다. 이에 따르면
‘집’이란 개인의 욕망을 은폐하는 곳이자 재화를 축적하는 장소다.
요컨대 집은, 당시 사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 욕망의 ‘발전소’이자 욕망을 재생산하는 장소였다.
집 그리고 가족이란
- 자신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 동시에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고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게 되는 근거이기도 한 것이다.
- 나아가 타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참된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곳이기도 하다.
『성경』의 「마태복음」에서 “나보다 자기 부모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적합하지 않으며…”라고 하는 예수의 언급 또한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불교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불교의 경우는 보편적 사랑의 실천을 위한 ‘출가’를
정신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수행의 과정으로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집’을 ‘돌아가야 할 곳’으로 생각하는 문화와 ‘떠나야 할 곳’으로 생각하는 문화는 인류의 문명사를 통해 늘 일정한 대립관계를 유지해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귀환의 문화’가 늘 주류였고, ‘출가의 문화’는 늘 소수에 속하는 비주류의 문화였다.
‘집’이 신체적·정신적 쉼터의 역할을 지나쳐 욕망의 근거지이자 탐욕의 은신처가 될 때,
출가의 문화는 우리에게 자아실현의 진정한 의미를 각성하게 해주었다.
불교가 동아시아문화권에서 늘 불온시 되었던 것도 불교에 내재되어 있는 ‘출가’라고 하는 지향점 때문이었다.
흔히 인류의 문명을 유목민의 이주문화와 농경민의 정착문화로 나누고 있는데, 여기에 숨어 있는 문명적 코드가 바로 ‘출가의 문화’와 ‘귀환의 문화’다.
이주와 정착은 단지 생산 수단과 방법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자아실현의 장소로서 ‘집’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서로 다른 입장이 내포되어 있다.
청년 싯다르타의 출가, 수행, 깨달음 그리고 전법의 여정은 그대로 전통으로 계승되어 지금까지 불교의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출가제도’ 그 자체는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동아시아 근대불교의 과정에서 출가제도를 폐기하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들이 산발적으로 있었지만 세계불교 전체를 보면 출가제도는 흔들림 없는 불교 전통으로 유지되고 있다.
출가라는 제도가 현대불교에서도 유효하며 부처님의 정법을 이어가는 바람직한 전통이냐 아니냐의 논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가톨릭의 예를 들어 종국에는 ‘독신주의’의 종교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하면서 불교의 출가제도 또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독신주의와 불교의 출가제도는 그 기원이나 성격에 있어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교의 출가제도는 교조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을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 것으로, 수행의 일부이자 불교적 정체성 그 자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출가자의 역할 특히 재가와의 관계 등에 관해서는 시대에 따라 새롭게 변혁이 되어야 할 것이지만, 불교전통이 유지되는 한 출가제도 또한 함께 존속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출가의 의미에 대해서는 새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초기불교 이래 지금까지 ‘출가’는 세간을 벗어나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 출가는 ‘집’을 중심으로 한 혈연적 관계는 물론 사회에서의 일상적 의무와 권리 또한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야말로 출가란 몸과 마음이 다 함께 세간사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모든 시간과 노력은 오로지 ‘해탈’을 위한 수행에 집중되었다.
실제로 모든 출가수행승이 그러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론적’으로나 세간의 일반적 기대는 그러하여 왔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이 등장하면서 초기불교의 ‘출가중심주의’가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출가에 대해 세간을 떠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여전하였다. 이 점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더욱 더 강조되었다. 세간사회의 질서를 유교가 담당하는 가운데 불교가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은 세간의 ‘바깥’으로 한정되었다.
이제 우리는 청년 싯다르타의 ‘출가’에 내재되어 있는 또 다른 문명의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유’라고 하는 코드다. ‘출가’를 단지 세간을 떠나는 것으로만 이해하였던 것은 사회를 세간과 초세간으로 이분하여 나누었던 고대인도의 종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싯다르타의 출가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하나는 ‘집’ 혹은 가족으로 표상되는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며,
- 다른 하나는 전통과 관습이라고 하는 사회적·제도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탄생게로 잘 알려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당시 브라흐마니즘(Brahmanism, 바라문교)이 제공하였던 신神중심적 세계관과 사제司祭중심의 사회적 질서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나’를 선언한 것이다. 나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신이거나 사제가 아니다. 내 삶은 나의 것이라고 하는 소위 ‘인본주의’의 선언이었다. 이는 곧 종교, 관습 그리고 전통이라는 이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정신적 자유의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싯다르타에게 있어 출가는 ‘나’의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는 ‘자유’의 첫걸음이었다. 혈연적 관계는 본능과 욕망을 정당화하거나 당연시하는 근거이며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더구나 싯다르타는 ‘집’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재생산되며 탐욕이 은폐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집’을 벗어난다는 것은 욕망과 탐욕의 한 근거를 없애는 일이었다. 또한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애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생명에 대한 보편적 사랑의 실천은 가능하지 않았다. 싯다르타의 깨달음이 ‘뭇 생명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보편적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혈연’이라는 이름의 생물학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도적 종교로서 불교를 생각할 때 ‘출가제도’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출가를 생각할 때 출가에 내재되어 있는 자유의 정신과 실천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불교는 보편적 사랑의 실천을 위한 ‘자유’를 추구하는 종교다. 출가는 자유의 첫 걸음이며, 깨달음 그리고 ‘뭇 생명의 안녕과 행복’은 바로 그 자유의 완성이자 실천이다.
최근 새로운 문명의 코드로 등장하고 있는 ‘노마디즘(Nomadism, 유목주의)’은 어쩌면 지금 21세기 인류의 문화가 ‘출가의 문화’로 바뀌고 있는 징표는 아닐까? 그러고 보면 지난 2천여 년간 인류는 너무 오래 동안 ‘집’에만 안주해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