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8

알라딘: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이끄는 입보리행론

알라딘: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이끄는 입보리행론
산티데바 (지은이),하도겸 (엮은이)시간여행2020-04-30


기본정보
256쪽


책소개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불보살님이 산티데바를 통해 주신 지친 삶을 위한 지침서다. 이 생에서 고통을 받다가 죽으면 그런 고통이 끝나기 때문에 좋아해야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늘 윤회 전생하면서 끝없는 고통의 바다를 겪게 된다고 하신다. 지옥은 물론 설사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행복의 끝에 고통이 딱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말만 부드럽지 내용만을 보면 불교 경전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에게 보낸 ‘고통 예고장’ 아니, ‘독촉장’과 같다. 정말 어렵게 받은 ‘사람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나아가 우리네 인생을 정말 똑바로 살라고 보내는 매우 강력한 경고장이다.





목차
프롤로그 :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1. 공덕을 찬탄하라
2. 악업을 참회하라
3. 온전히 잘 지녀라
4. 까불며 놀지 마라
5. 계율을 잘 지켜라
6. 잘 참고 용서하라
7. 열심히 정진하라
8. 선정을 잘 닦아라
9. 지혜를 성취하라
10. 여법히 회향하라
에필로그: 인터스텔라를 벗어난 산티데바



책속에서

01. 공덕을 찬탄하라

이 법문은 스스로가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여 선업(善業)을 닦기 위한 것일 따름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기나긴 안목에서 보면 어쩌면 찰나와도 같이 짧은 시간이지만,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법문을 함께 하는 동안에, 좋은 인연이 닿아 제 믿음과 깨달음도 함께 잘 자라기를 희망해 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보다 더 뛰어난 인연 공덕을 지으셨을 여러분도 이 법문을 통해서 더 많은 성취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윤회하는 우리가 인간의 몸을 얻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겨우 인간으로 태어나서 비로소 부처가 되는 수행을 할 수 있는 온전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 고귀하고 완전한 기회를 이번에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고통받는 중생을 안락으로 이끌어 주신 대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지혜로 깊이 사유해서 찾아내신 고귀한 보석이 바로 이 보리심입니다. 따라서 윤회하는 중생들이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이 고귀한 보석인 보리심만은 언제나 제대로 굳건하게 잘 지켜야 합니다. 접기

02. 악업을 참회하라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 이래의 윤회 속에서 이번 생과 또 다른 모든 생에서 제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연기법(緣起法)을 모르고 지은 허물과 남까지 시켜서 짓게 한 악업, 그리고 나중에 자신을 뒤엎고 짓누를 무명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허물을 보고도 오히려 기뻐한 것들에 이제야 비로소 눈을 뜨고 마주 보게 됩니다. 진심으로 보호자이신 불보살님께 깊이 참회합니다.
다만, 제가 지은 죄악을 제대로 참회하여 씻어내기도 전에 먼저 죽음이 찾아오면 상상도 못 할 고통의 바다인 윤회에 다시 빠져 버릴 것입니다. 부디 바로 당장 지금 어떻게든 여기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속히 저를 보호하고 구원해 주소서. 접기

03. 온전히 잘 지녀라
지옥 등의 삼악도(三惡道)에 빠진 중생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선업을 짓는 길[선도(善道)]을 걸어야 하는 것뿐입니다. 선업을 닦는 길을 걸어야 행복과 안락(安樂)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보리(菩提)]의 씨앗[인(因)]이 있어야만, 이로 말미암아 공덕도 지을 수 있습니다.
제 몸은 물론 삼세에 쌓아 올린 모든 선업의 공덕까지도 중생의 행복과 성취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모두 다 보시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보시함으로써 고통을 넘어 열반을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저도 모든 것을 보시하여 열반에 이르고자 합니다. 중생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보시입니다. 접기

04. 까불며 놀지 마라
보살들이 일으킨 보리심을 확고하게 지니고서[정념(正念)] 항상 흔들림이 없이 방일(放逸)하지 말고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수행에 힘써야 합니다.
이런 연유로 석가세존께서는 넓고 큰 바다 위를 떠다니는 나무토막 구멍으로 눈먼 거북이가 목을 내미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몸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접기

05. 계율을 잘 지켜라
수행자가 배운 계율을 잘 지키려면 오롯이 집중해서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 마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계율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수승한 법의 근본 핵심인 이 마음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면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얻으려 해도 안 되고 그저 그렇게 의미 없이 윤회세계를 떠돌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붙잡아 확실하게 제대로 다스리고 바르게 지켜야 합니다.
언제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마음이 기둥을 떠나 ‘어디로 향하려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꼼꼼히 관찰하고 살펴야 합니다. 이처럼 항상 모든 번뇌와 쓸데없이 부질없는 일을 좇는 마음을 대하게 되면 바로 살피면서 적절하게 대응하며 다스리며[대치(對治)]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야 합니다. 접기

06. 잘 참고 용서하라
수천 겁 동안 지어 온 보시와 부처님께 올린 공양 등 그 모든 선행과 공덕도 단 한순간의 분노로 다 사라집니다. 분노보다 더한 악업은 없고 인욕보다 더 어려운 고행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인욕 수행을 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덕을 칭찬할 때는 다른 사람도 함께 기뻐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덕을 칭찬할 때는 자기는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이건 전혀 옳지 않습니다. 일체중생의 행복을 위해 깨달으려 한다고 하면서도 중생이 스스로 행복을 잘 구하고 있는데 기뻐해 주지는 못할망정 왜 시기하고 질투를 합니까? 접기

07. 열심히 정진하라
정진이란 선행을 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게으름과 나태로 악행에 빠지면, 자신에게 실망하고 나아가 하찮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는 게을러 그냥 편안하게만 지내려고 합니다. 잠에 취해 계속 자면서도 윤회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아 염리심조차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떠한 수행을 하든지 간에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미리미리 사전에 모든 것에 대한 준비를 해둬야 합니다. 늘 불방일(不放逸)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기꺼이 자연스럽게 하게 해야 합니다. 접기

08. 선정을 잘 닦아라
정진을 한 다음에는 마음이 삼매에 편안하게 머무는 선정(禪定)을 닦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이 산란하게 되면 번뇌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면 더 어떤 산란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세속을 떠나 망상과 분별심을 완전히 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남이 잘못을 했어도 나 자신의 허물로 받아들이고 제게 작은 잘못만 있어도 여러분들에게 밝혀야 합니다. 남의 명성은 널리 칭찬하고 나의 명성은 조용히 감추며 나는 미천한 종처럼 여겨 모두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본래 허물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며, 공덕이 조금 있어도 칭찬하지 말고 공덕이 있더라도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접기

09. 지혜를 성취하라
모든 수행의 방편들은 석가모니께서 공성의 지혜를 얻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모든 고통을 소멸시키려면 먼저 지혜를 일으켜야 합니다.
존재하는 것도 없으며 소멸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중생은 태어남도 없으며 죽음도 없습니다. 중생은 꿈속의 존재와 같아서 관찰하면 속이 텅 빈 파초와 같이 공허할 따름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니, 열반이나 윤회 역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허공과 같다는 것을 함께 깨달아서 윤회를 끊고 깨달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접기

10. 여법히 회향하라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인 이 『입보리행론』으로 인해 작은 선업의 공덕이라도 만약 있다면, 이로 인해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는 보리 행에 들어가게 하소서. 모든 세상의 중생이 몸과 마음의 병에서 벗어나 이 작은 복덕으로 인해 기쁨과 행복의 바다에 이르게 하소서. 이들이 윤회 되는 동안에도 행복이 영원히 줄지 않게 하시고 중생 모두가 위 없는 보살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지옥 중생까지도 모두 서방정토인 극락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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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가능성이지만, 불가능의 영역이고. 보살은 덜 완성이라 해도 가능의 영역입니다. 더 낮은 데, 더 가까운 데 있으니 우리 범인들과 더불어 존재하면서 깨우쳐주고 이끌어 줍니다. 더 가치 있고 보람있는, 의미까지 있는 존재이니. 차라리 보살을 지향하고, 보살행 할 수 있도록 수행하는 일이 어떠할지.
선(禪)도 교(敎)도 아닌데 모두가 선지식(善知識)처럼 모두가 지자(知者)처럼, 구업(口業) 짓고 행업(行業) 짓고 심업(心業) 짓는 오염된 세상에 홀로라도 본분으로 회향하려는 보살들의 나타남을 목 빼고 고대하는 데….
그 바쁜 보살행 와중에 짬 내어 뭇 사람들을 편하게 이끌 또 다른 초록 연등 1개, 낡은 배 1척 같은 『입보리행론』을 펼쳤습니다. 하도겸 박사의 작은 보살행에 작은 고마움 느끼며 보살들의 길고 긴 행렬을 함께 만들어감이 어떠할지…. - 윤명철 (역사학자, 뗏목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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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바로 돌아 이 길로 쭉 가면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마음 닦아 가는데 붓다의 자리 없겠는가? 로드맵을 따라 찬찬히 쉬지 않고 가면 니르바나에 반드시 이르게 되어있습니다. 니르바나에 꼭 이른다는 굳센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가는 보디삿트바 행동(菩薩行)을 살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붓다의 길(道)을 돕는 가르침(助敎) 곧 조도(助道)입니다.
계·정 2학 또는 계·정·혜 3학의 길이 37 보리분법(조도품)으로, 10 바라밀 또는 6 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곳으로 돌리(廻向)든 갈 곳으로 돌리(敎化)든 돌리는 것 또한 중요한 조도이거나 본도(本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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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보리심을 일깨우는 수행에서는, 『입보리행론』보다 좋은 지침서는 없을 것입니다. 보리심은 대승도의 관문이자 붓다의 깨달음을 이루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대승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논서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인도와 티벳의 불교전통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되고 사랑받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도겸 대표가 새로 풀어쓴 이 위대한 적천보살의 가르침이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박은정 (사단법인 나란다불교학술원)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겁니다. 이 무상의 세계에 보리 행은 불자들의 지남입니다. 산티데바, 용수 등의 가르침은 대승불교 문학의 정수로 꼽힙니다. 하도겸 박사가 이 집단지성에 큰 보탬을 했습니다. 통찰이 번뜩이는 『입보리행론』 해제가 우리에게 불교의 핵심인 지혜로 다가옵니다. - 이석만 (불교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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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데바 (Shantideva)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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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는 무량한 지혜를 갖춘 승자이신 부처님의 아들
속명은 산티바르마(Santi-varma)이며, 8세기 경 인도 날란다(Nālandā) 승원에서 나가르주나의 대승불교 가운데 중관학을 선양한 학자이며 승려이다. 남인도 사우라아슈트라 국의 왕자로 왕위에 오르기 하루 전 꿈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출가수행의 길을 걸었다. 문수보살로부터 목검을 하나 받고 여덟 가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밀교 금강승의 무상요가 탄트라(anuttarayoga tantra) 수행을 하여 놀라운 신통력을 얻었다. 이 책의 제9장 “모든 것은 허공과 같다”는 곳에 이르자 갑자기 하늘 높이 솟아올라 모습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아 암송을 끝까지 계속했다고 전한다.
저서로는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 『제요경집』(諸要經集)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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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하도겸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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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나마스떼코리아 대표로 노후에 네팔 히말라야 산골 오지마을 선생님을 꿈꾸는 철모르는 어린왕자(Big Baby)이다. 지유명차 성북점의 자원봉사자로 차를 우리는 팽주를 하며 차담을 나누면서 관(觀)이나 꿈 명상(잠 수행)을 이야기한다. 언제나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처럼, 해야 할 것 가운데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오래된 미래”를 실현하는데 관심이 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시사위크 논설위원,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겸임교수 및 전시 개발자(Exhibition Developer)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행복한 돼지』, 『세대를 넘어-수제화장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나마스떼 네팔어 회화첫걸음』(이하 공저), 『일본 신사에 모셔진 한국의 신』, 『동아시아의 종교와 문화』, 『동아시아 제 관계사』등이 있다.
<올해의 재가불자상>, <올해의 불교활동가상>, <여성가족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 www.facebook.com/hadogyeomcolumn 접기
최근작 :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지금 봐야 할 우리 고대사, 삼국유사전>,<나마스떼 네팔어 회화 첫걸음> … 총 5종 (모두보기)
SNS : //facebook.com/hadogyeom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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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우리 옆집에 사이코패스가 산다>,<마음을 담다, 참 괜찮은 말>,<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등 총 79종
대표분야 : 로맨스소설 41위 (브랜드 지수 4,90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생은 다시 얻기 어렵다.

요즘 새삼 느끼는 것은 인생이 생각보다 길지 않고 매우 짧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빠르고 늦음의 차이가 있을 뿐,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죽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책,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불보살님이 산티데바를 통해 주신 지친 삶을 위한 지침서입니다.
이 생에서 고통을 받다가 죽으면 그런 고통이 끝나기 때문에 좋아해야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늘 윤회 전생하면서 끝없는 고통의 바다를 겪게 된다고 하십니다. 지옥은 물론 설사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행복의 끝에 고통이 딱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말만 부드럽지 내용만을 보면 불교 경전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에게 보낸 ‘고통 예고장’ 아니, ‘독촉장’과 같습니다. 정말 어렵게 받은 ‘사람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나아가 우리네 인생을 정말 똑바로 살라고 보내는 매우 강력한 경고장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석가모니부처님이 그랬듯이, 불교 수행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이런 질문이나 생각을 한 번쯤은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참선이나 명상 수행을 하다 보면 온갖 망상이 일어나서 대체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고, ‘하다가 막히면 그다음은 어쩌지?’ 하는 그런 수련이나 수행 과정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는 다른 경전에서 찾기 힘든 특별한 해결책으로서의 기준으로 ‘보리행’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라한을 찾아간 보디사뜨바

“이제라도 부처가 되고 싶다면!”
이 책은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 아라한 아니, 우리는 부처 아니라 보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 대통령이 아니고, 아버지라고 해서 다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아버지 모두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인정을 받고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통해서 불보살이 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볼까요? 아니 스스로 어떻게 인가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고통을 여읜 불보살처럼 오로지 보리심을 가지고 실천한다면 그가 바로 보살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책은 ‘보살되기’ 어쩌면 ‘보살 따라하기’의 매뉴얼[지침서]입니다. 이 삶이 연극무대와 같다면 이 책은 삶의 주연이자 조연으로서 주인공인 우리가 읽어야 할 ‘연기 교본’입니다. 이 책대로 완벽히 소화한다면 우리는 다름 아닌 이미 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이제라도 깨우친 사람으로서의 아라한을 넘어, 고통에서 벗어나 보살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그래서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예비 수행의 필독서로 정했나 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보살은 그냥 자기 혼자만 고통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가진 후에는 그 깨달음을 나누는 보시와 회향을 하며 중생구제를 하는 분입니다.
즉, 우리가 고통을 만났을 때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수호자이자 도우미 같은 존재입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거꾸로 가장 낮은 곳, 아니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 오셔서 우리를 치료하고 치유하는 자리가 바로 보살입니다. 여기서 당장 남들의 고통을 함께 하는 분이 바로 보살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여러분은 보살인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정보의 바다에서 누구나 부처님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처님이나 보살이 아니며 하물며 깨달은 아라한이나 선지식도 아닙니다. 요즘 깨쳤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입만 보살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깨친 이의 실체는 그의 말이 아니라 행동, 나아가 일상의 실천이라는 습관에서 다 증명됩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삶이 이타행(利他行) 나아가 보리행이신 분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수십 년 암자에 틀어박혀서 공부하고 깨쳤다고 하는 못난 분보다 더 불보살 같은 자비로운 분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불교도 인가 여부를 떠나서 사실 여부가 증명이 안 되는 엘리트주의를 깨고, 재가불자를 포함하여 비구니는 물론 여신도 모두 삼보 가운데 하나인 승보가 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깨달은 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런데 정말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하셨습니까? 대통령이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되고 나서 어떻게 할 건지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나 그중에 높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처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적멸에 들어가 해탈 열반하면 되나요?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이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해야겠지만 정말 해탈은 있는지, 있더라도 그 열반에 우리가 갈 수 있는지 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도 있습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열반에 든 부처님보다는 우리와 함께 하는 보살이 더 반갑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알게 됩니다. 아라한을 찾아간 산티데바는 용수보살과 마찬가지로 보디사트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이유를 이 책에서 꼭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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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절대자를 믿고 숭배하고 받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행하고 깨우쳐서 도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삶의 목적을 찾고, 고뇌를 벗어던지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불릴 정도로 깨달음이란 말을 많이 한다. 깨달음이란 말은 열반, 해탈, 성불, 득도 등의 다른 표현으로도 사용되는데 불교의 교리는 열반에 든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으며, 참다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주된 불교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성불하고 해탈할 수 있는가를 공부하는 것으로 믿음이라기보단 자아성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불교에선 깨달음을 중요시 하는데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보리심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대승불교의 본질이며 불도의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으로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을 가르킨다. 보살은 보리심을 길러야만 성불할 수 있다. 보리심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책에서는 보리심을 강조한다. 보리심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보리심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마음인 원보리심이고 다른 하나는 보리심을 행하는 마음인 행보리심이다. 말하자면 보리심은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자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깨어 있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을 원보리심이라고 하고, 그런 마음을 기반으로 깨달음을 스스로 깨우쳐 실천하는 것이 행보리심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행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과 유사한 내용이다.



윤회하면서 고통받는 중생의 불행을 모두 없애고 행복해지고 공덕을 얻으려면 보리심이 필요하다. 혹은 보리심만 있으면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남을 도우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보다 더 큰 공덕이라고 말해지는데 보리행을 통해 불행의 수렁 속에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행복하게 하려는 노력은 더 큰 공덕을 쌓게 되는 행동인 것이다. 악이를 품거나 나쁜 생각을 내지 말고,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선의를 베풀고 보리행을 행한다면 죄업은 일어나지 않고, 선업만 늘어나서 깨달음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불교인들의 최상의 목적은 결국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깨우치고 고통에서 벗어난 보살은 부처보다 덜 완성된 존재지만 우리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가능의 영역이므로 차라리 부처가 아니라 보살을 지향하여 범은들을 깨우쳐주고 이끌면서 보리행을 행하며, 선행을 쌓는 것이 더 가치있고, 보람있고, 의미있는 것이라고 새로운 시각과 목표를 제시한다. 책에는 보리행을 행하고 보살이 되기 위한 10가지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공덕을 쌓고, 악업을 행하지 않는 지혜와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범인과 함께 하는 보살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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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osoda 2020-05-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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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서평] 새창으로 보기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1300년 전 남인도의 한 승려가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설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그 승려의 이름은 바로 산티데바, 한자로는 적천(寂天, 고요한 하늘)이고 이 책의 원제는 그 유명한 <입보리행론>이다. <입보리행론>은 엄밀하게는 산티데바가 쓴 책이 아니라 그가 한 법문을 들은 대중들이 후에 모여 결집한 것이고 구전된 것이기에 다른 초기경전들처럼 운문체이지만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에서는 번역할 때 산문체로 바꾸었다. 이유인 즉슨, 운율이라는 것이 언어적 특성에 기인하기에 번역하면 본래의 느낌을 살리기가 어렵다. 거기다 시구들은 그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 10장 971송으로 된 원전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난해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요기들이 많이 보는 힌두 경전 <바가바드 기타>도 운문체의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보더라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입보리행론>을 번역한 하도겸 역자는 문체와 같은 부분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바꾸었기에 단순히 '옮김'이 아니라 '편저'라고 했다.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책의 원전인 <입보리행론>의 제목부터 생소할 것이다. 한자를 직역하면 '보리행에 입문하는 방법을 논한 책'이라는 뜻이다. 역자는 보리행에 대해 '대승의 깨달음을 구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육바라밀'이라 했다. 육바라밀이란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는 6가지 방법이라는 뜻으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가지 수행법을 뜻한다. 혹, 생소한 종교적 용어에 너무 머리 아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본질은 어려운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보리행을 하는 사람이 곧 보살인데, 그래서 역자는 이 책을 '보살 따라하기 지침서'라고 했다. 금강경에 보살의 정의가 나오는데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자 마음 낸 선(善) 남자, 선 여인'라고 했다. 보살이라는 말은 대승불교에서 나오는 개념으로, 소승불교가 자신의 해탈, 열반이 최우선인 것에 비해 대승의 보살에게는 자신의 해탈, 열반 못지않게 중생의 해탈, 열반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소승, 대승이라는 용어도 나만 탈 수 있는 작은 배(小乘),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타는 큰 배(大乘)라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대승의 지장보살은 당장 해탈열반을 할 수 있는 경지임에도 지옥중생을 내버려두고서 자신만 괴로움의 바다를 건널 수 없다며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나서 제일 마지막으로 해탈열반하겠다 서원한 보살로 대승의 사상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불교서적이기에 불교용어나 윤회 같은 종교적 세계관, 개념들이 나온다. 불교서적이라 불교도들에게만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나는 이 책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역자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보라 했다. 1300년 전 인도에서 쓰여진 이 책은 현대 문화와 인식의 잣대로 보면 불편하거나 허황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부처님과 보살들에 대한 신격화된 표현이나 남성수행자 중심으로 언급된 부분을 예로 들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도, 신화를 읽을 때도 우리는 가려서 읽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문헌에는 비유와 은유가 많이 사용되어 있고 그 시대의 문학적 표현들이 담겨있기에 곧이 곧대로 믿거나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고 있는 유익한 지혜를 잘 찾아내야 한다. 이 책을 읽을 때에도 그런 관점으로 읽는다면 얻어가는 것이 많을 것이다.




보리심은 깨달음의 지혜(Bodhi)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산티데바는 보리심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보리심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마음(원보리심)과 다른 하나는 보리심을 실천하는 마음(행보리심)이다. 신라시대 원효와 더불어 최고의 승려고 꼽히는 의상조사가 방대한 화엄경을 짧은 시구로 압축해서 표현한 법성게에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보리행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는 그 첫 마음(초발심)만 내도 부처의 깨달음(정각)을 이룬 것이라 했다. 결론적으로는 실천이 중요하겠지만 그 실천은 근본적으로 마음을 먹어야 가능하기에, 원보리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방식에서 조금 독특한 점은 의문문이 많다는 것이다. 심할 때는 페이지 문장의 반은 마침표고 반은 물음표로 끝나기도 한다. 대부분 수사의문문의 형식으로 '이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는 물음인데, 서술이 진행될 만하면 연이어 나오는 질문공세에 처음에는 살짝 어색하기도 했는데 간화선이 떠올랐다. 스승에게 받은 화두로 자나 깨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간화선의 수행자처럼 독자들에게 계속 질문과 의심을 던져 스스로 참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책에서도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도 없다'라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연기사상은 불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사상이다. 연기란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모든 현상에는 다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앞부분을 공간에 대한 연기라면 뒷부분은 시간에 대한 연기로 말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연기는 결국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 즉 '모든 것은 하나'라는 동체대비의 개념으로 연결되어 불교의 이타심과 자비심의 뿌리가 된다. 그리고 나와 당신이,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생각은 나라할 것이 없는 무아(無我)와 공(空)사상과도 연관된다. 시간에 대한 연기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고 결과가 있다면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인연과보(因緣果報)와 이어지고 나쁜 원인을 차단하여 해로운 결과를 막는 계율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공간적 연기의 자비심과 시간적 연기의 인연과보는 불교사상의 근간이며 보살 수행법에 녹아들어 있다.




"모기나 쇠파리 등 해충에 물리거나, 굶주리거나 목마르거나, 옴 같은 가려운 피부병이 걸리는 등을 인내의 기회로 보지 못하고, 아무 의미 없는 하찮은 고통으로만 여긴단 말입니까?" 굶고 목마르고 아픈 것은 분명 큰 고통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피하고 싶은 기피 대상이 아니라 나의 인내를 키울 기회로 볼 것을 제안한다. 불교의 묘미는 저런데 있는 것이 아닐까. 부처님과 이름있는 보살님들에게 나를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고통스러운 일들 속에서도 나에게 이로운 점을 찾아 삶의 기회로 삼아버리는 '관점의 전환'이 핵심인 것이다.




이런 관점은 다음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염리심(厭離心)'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행복은 씨앗조차 좀처럼 쉽게 생기지 않지만, 고통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으면 세속이 싫어져 멀리하는 마음인 염리심도 생기지 않아 해탈할 수가 없게 됩니다." 건강할 때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잘 지켜나가면 제일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 작은 병이 찾아오면 그에 따른 고통과 불편으로 경각심을 느껴 더욱 건강에 힘쓰게 되고 큰 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염리심은 '싫어하여 떠나는 마음'인데, 이 책에서는 닥친 불행이 너무도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그 염리심을 고통이 아닌 오히려 해탈로 나아가는 변곡점으로 보면서 최악의 불행마저도 축복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관점 전환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








화에 대해서 재밌는 표현이 있었다. "우리는 몽둥이에 맞았더라도 몽둥이가 아닌 때린 사람에게 화를 냅니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분노에 휘둘린 것이니 분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몽둥이가 나를 때렸지만 그것은 사람이 휘둘렀기에 사람을 탓하는데 까지만 생각이 미친다. 하지만 산티데바는 '휘둘린' 몽둥이가 아닌 '휘두른' 사람에게 화내듯, '휘둘린' 사람이 아닌 '휘두른' 분노에게 화내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발상이 재밌지 않는가. 그리고 이 말은 뒤집어 보면 분노에 '휘둘린' 사람에게 화를 낸다면 사람에 '휘둘린' 몽둥이에 화를 낸 것과 같다는 말이되어 사람에게 화내면 몽둥이에게 화내고 있는 바보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산티데바의 재치를 엿볼수 있었다.




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용서의 가르침이 있듯 불교에서도 같은 내용이 있다. 모든 종교는 '사랑'을 강조하기에 그런 공통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으나 그 당위성을 말하는 논리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다. "원수를 통해서 제가 인욕을 성취했다면 인내의 결과를 원수에게 먼저 보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큰 분노를 통해 인욕(인내)를 기를 수 있으므로 인욕을 가르쳐 준 원수에게 복수가 아닌 보답을 하라는 것이다. 죽일 놈의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그는 나에게 인욕의 가르침을 준 스승이기에 용서할 것도 없고 오히려 내가 존경하고 감사해야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정법'과 동일하게 공양해야 마땅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산티데바는 '남에게 이것을 주면 무엇을 먹어야 하나?'라는 우리의 질문을 '내가 이것을 먹으면 남에게는 무엇을 주지?'라는 보살의 질문으로 바꾸라고 말했다. 그것은 나가 아닌 남을 위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인데, 얼핏 들으면 너무 손해보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 두려움, 고통은 모두 '나'라는 집착에서 오는 것인데, 나를 온전히 버리는 이타행을 통해서 괴로움, 두려움, 고통도 함께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 행복은 남에게 주고 남의 고통은 내가 받고" 라는 표현은 이타행의 끝을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는 보통 세상 살이의 상식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 같고 그런 것은 책에서나 가능한 소리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우리가 삶의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이런 것을 동떨어진 소리로 여기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그 병에 대한 약입니다" 하고 이미 약을 받아 손에 지녔음에도 먹지 않고 '누가 이런 약을 먹겠어' 하며 계속 병으로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는 몰라서 길을 못가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길을 안가서 못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영화 <두 교황>을 봤었다. 거기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인류적인 문제에 대해 기가막힌 대사를 날리는데, 너무도 인상적이라 따로 적어놓았었다.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면 그것은 모두의 책임입니다.(When no one is to blame, Everyone is to blame.)" 진리에 가까이 간 사람들은 그 과정과 경로만 다를 뿐 결국은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것일까. 한 종교의 최고 지도자가 했던 저 명언은 1300년 전의 다른 종교 수행자의 법문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그 고통이 누구의 것이라 할 수 없다면, 우리 모두의 고통과 다르지 않습니다." 산티데바는 자비심과 연민을 이야기하며 저런 명언을 남겼다. 앞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과 산테데바의 경구가 묘하게 서로 닮아있지 않은가. 진리에 가까이 간 사람들은 너와 내가 따로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진리에 이르는데 종교의 구분이란 그저 방법론의 차이에 지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종교적 배타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비종교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산티데바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금 해보자면 그의 삶은 부처님의 삶과 묘하게 닮아있다. 그도 부처님처럼 고대 인도의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다. 왕위에 오르기 전날 밤 꿈에서 문수보살을 만나고는 홀연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훌륭한 수행자가 된다. 산티데바의 어머니는 바즈라요기니로 소개되어 있는데. 바즈라는 한역하면 금강을 뜻하며 요기니는 요가수행자를 의미한다. 이 책의 중간에 요가나 요기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나오는데, 아무래도 불교든, 요가든 결국 인도 고대 철학인 베다의 사상적 풍토 위에서 탄생한 것이니 상호간 연관성이 있기에 책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인물사진, 풍경사진들이 담겨있는데 '나마스떼코리아'가 주최한 히말라야사진공모전 수상자들이 재능기부를 해준 것이라 한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의 장엄함과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이 담겨있어 책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사진 중에는 들판에서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는데, 이 책의 인세는 전액 NGO로 기부되어 네팔 안나푸르나 산골 오지마을 어린이들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하니, 이 책 자체가 보리행의 실천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나도 과거 네팔에 갔을 때 아이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열악하게 공부하고 있는지 직접 보았던 경험이 있어 역자의 기부가 더 따뜻하고 훌륭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제목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표현은 윤회사상과 무상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윤회론에서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려면 과거에 엄청나게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선업을 쌓아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게 전생의 인연으로 어렵게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괴로움의 윤회를 끊어버릴 지혜를 얻기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소중한 목숨을 함부로 여기고,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불행하게 살며 나와 남을 해치고 있지 않은가 하고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삶의 무상함을 통해서 늘 지금 여기서 만족하고 행복할 것을 가르쳐주려 하는 것 같다.




달라이라마도 이 책의 원전인 <입보리행론>에 대해 언급하길 "일체중생을 위해 깨닫겠다는 마음인 보리심에 대해 설한 책 중 이보다 더 뛰어난 논서는 없다"고 했다한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이끄는 1300년 전의 지혜 <입보리행론>의 우리말 번역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책의 내용도, 책으로 인한 수입도 보리행, 보살행으로 가득 차있는 이 책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보면 어떨까. 지혜로운 삶을 살고자 결심한 그 첫 마음만으로도 이미 부처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던 '초발심시변정각'을 다시한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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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부시향덕 2020-05-0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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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을 읽고 생전 안쓰던 책 후기를 쓰게 되었다. 최근 여러 일로 힘들어하던 내게 마음을 단단히 지키도록 이 책이 도와주었기에,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불자가 아닌 나에게도 책 내용은 감명 깊었고 마음에 와닿았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를. 힘들어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Cat.noir 2020-05-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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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을 발현하는 삶 새창으로 보기




어느 한구절 버릴 곳이 없었다.

불교 신자만이 보고 느낄 책이 아닌

대다수에게 받아들여질 내용을 담고 있다.

보리심이란 자애.

그것으로써 전하려고 하는 

지혜의 확대와 발현을 

불교적 의미로써 풀이하는 책.

이런 책은 사실 서평이 불가능하다.

그냥 문장 하나하나가 물안개처럼

가슴과 뇌속에서 피어나고 스며드는데

이를 스토리처럼 전달한다는게 어려우니까.

불교의 윤회라는 말을 예전엔

그나마 단어적으로는 공감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냥 사전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러나, 이 말을 꺼내는 건, 윤회의 의미를

거짓이나 믿기 어렵단 의미로 꺼낸 건 아니다.

그저, 윤회란 단어마저도 자꾸 깊게 생각한다는 건

개인적으론 미련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뿐.

책이 나름 심도있게 불교적 지혜를 전하는 책이라

그냥 에세이처럼 읽히는 부분들만 있는건 아니지만,

그중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진중한 느낌으로 남는

그런 부분들을 소개해 보려한다.

선업과 악업.

선업을 쌓았다, 악업을 쌓았다.

그럼 이 둘은 어떤 발자국을 남길까.

선업은 쌓아도 그 발자국의 흔적을 지속시키기가 어렵다,

하지만, 악업은 잠깐의 일탈 정도일지라도

그 흔적을 오래 그리고 깊게 남긴다.

맥빠지는 얘기다, 좋은게 오래가고

나쁜게 쉬이 증발해야 희망적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 아쉬운 표현은 살다보니 

참으로 진리임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선업은 공기와 같다.

하지만 악업은 미세먼지와 같다.

공기는 그냥 마셔지고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존재감은 너무 미비하지만,

악업은 미세먼지처럼 오감을 자극하고

그 악영향이 치명적이고 할퀴듯 흔적을 남기는 거 같다.

그렇기에 책속 악업과 선업의 표현에 있어 

난 공감의 고개짓만 끄덕일 뿐.

현대적 감각으로 잘 풀이된 불교서적이라

전혀 불교적인 내적동의 없이도 

매우 잘 읽히는 신기함을 경험할 수 있을 책이다.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책 제목도

이미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어야 할지

이리 오라 손짓하고 있는 듯 하다.

지나가면 그만인 한 순간이니 현재를 탓하지 말고 

누군가와 어긋나지 않게 그 인연을

잘 누리라는 충고같은 글귀들.

글들을 읽으며 계속 생각이 정화되고 있다는 

구도적 편안함에 그 감사함을 지울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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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2020-05-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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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새창으로 보기


 

 

  입보리행론을 전에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하도겸 박사님의 번역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건국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이며 나마스떼코리아 대표이신 하도겸 박사님.



 입보리행론을 읽어본 바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이해하기 쉽고 핵심을 짚어 우리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적어두어

감명깊게 읽었다.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기가 아까워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불보살님이 산티데바를 통해 전해주시는 가르침이라고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다시 만나기가 어렵다는 입보리행론을 다시 번역한 책이라는 점에서 불교서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불교이기 이전에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에

대해서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인문학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10가지로 나누어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다 깊은 뜻이 있고 마음에 새겨두고 실천해야할 내용들이고 읽을수록 울림이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절을 하고 있는데 절을 마친 후에는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가난,질병, 전쟁 등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큰 깨달음을 얻어 만중생 다 구제하게 하소서. 하는 발원을 한다.

오래 전부터 하던 발원인데 이 책에서도 이런 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절하고 공양 올리고 참회하는 등의 모든 선행으로 지금까지 제가 쌓은 공덕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이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소서.

 이 세상의 병든 중생들 모두가 완치될 때까지 제가 약이 되고 의사가 되고 간병인이 되어 이들과 함께 하소서.

 (p. 56)



 요즘은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이 부분이 더 와닿았다.



 우리들은 번뇌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의 온갖 생각들.

내가 끌려다니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알아 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다짐해보았다.

마음이 해이해질 때

마음대로 먹고 입고 놀고 마음의 방황을 하게 될 때

항상 곁에 두고 읽고 쓰면서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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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네 2020-05-0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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