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9

알라딘:1미터 개인의 간격 -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홍대선

알라딘: [전자책] 1미터 개인의 간격:

1미터 개인의 간격 -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epub 
홍대선 (지은이)추수밭(청림출판)2020-09-24 

종이책 페이지수 244쪽,

책소개

《1미터 개인의 간격》은 가장 개인다운 개인이었던 스피노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날 개인으로 사는 기술에 대해 풀어낸 결과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미터라는 단위를 상징으로 삼아 나다움의 범위와 행복 그리고 타인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카르트의 주체가 세상의 중심에 ‘나’를 위치시킨 존재라면, 스피노자의 개인은 타인도 나와 같음을 인정한 존재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지만 적어도 지구상에서는 이와 같은 우주들이 70억 개가 넘게 존재한다. 그래서 개인이 개인으로 존중받고 또 존중하며 살기 위해서는 편리하면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1미터라는 경계의 안팎을 절묘하게 넘나들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목차

들어가기 전에 1미터로의 초대
들어가는 글 행복은 1미터의 기술이다

1장 가깝고도 먼 1미터
인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결혼에 실패한 철학자/사랑에는 도덕을 적용할 수 없다/도덕은 자기애를 감춰주는 포장지다/사랑은 현대인의 종교다/사랑의 정체는 타인을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사랑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사랑은 인생의 주인이 아니다/사랑의 실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사랑의 본질은 행복의 거래다

2장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1미터
누가 내 몫의 피와 땀을 훔쳐 갔을까?/나의 좋음과 세상의 옳음은 다르다/인간은 다른 인간의 보상이 아니다/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선언하지 않는다/타인의 범위에 정신이 팔리면 나의 영역을 잃는다/세상은 노력을 보상으로 계산해주지 않는다/능력이라는 말의 함정/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 이해하고 내려놓기

3장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1미터
바라고 탐하니까 인간이다/욕망을 위해 욕망을 버리기에 인간은 인간다워진다/복잡한 인간, 단순한 인생의 원리/단순함에서 출발해 다시 단순함으로/단순하기에 강력한 도구, 사랑/인간에게 가장 탐스러운 대상은 인간이다/인생은 만남으로 채워져 있다/만남은 물들임이 아니라 마주침이다

4장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1미터
인간은 강제로 태어나 멋대로 불리고 교육당한다/살아가는 한 억압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우리는 저항군이 아니라 행복의 기술자다/세상으로부터 개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내가 나일 수 있다면 기꺼이 미움받겠다/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의 1미터/행복을 위해 기꺼이 고독해지겠다/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자유는 단단하다

5장 세상에서 가장 쉬운 1미터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나는 평범하면서 비범한 나일 뿐이다/불행은 이렇게 습관이 된다/행복이란 나의 1미터 내부에 집중하는 것이다/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물들지도, 물들이려고도 하지 마라/자신을 조건으로 소개하는 사람은 무례하다/내 욕망의 바닥과 만나고 화해하기/행복이 당연한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방식/개인이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식/구체적으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6장 세상에서 가장 먼 1미터
미워하는 마음은 허물이 아니라 비효율일 뿐이다/부풀려진 증오는 고통도 부풀린다/당연한 존재 혹은 존재의 당연함/모두가 인생은 처음이기에 무기가 필요하다/폭력의 기원/백 년을 천 년처럼 살아야 했던 공간/폭행당하는 자아/지금 여기를 사는 데 대한 원금과 이자/1미터의 반경을 지키기 위해 1미터의 간격을 유지한다

7장 그리고 나가는 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1미터
세상에서 가장 쉽고 짧은 윤리학/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이라는 지옥을 견뎌라 /인간은 태어나지만 시민은 만들어진다/애국심이란 등을 맞댄 동료와의 우정이다/시민의 소양은 가치가 아니라 도구다/가장 나쁜 욕망은 욕망을 통제하려는 욕망이다/행복해져라, 그러면 저절로 성숙해질 것이다/필요한 만큼만 견디는 기술/이해를 이해한다는 것/비극 속에서 살아남기/외부를 사랑하는 내부/다시, 행복은 기술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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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연애는 1미터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행위다.
타인은 주문제작품이 아니다. 타인의 특징을 없애야 할 단점으로 인식하면 그를 가전제품처럼 고쳐 쓰려고 한다. 이때 인간은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기만한다. … 현대인은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나머지 나를 포함해 누군가와 사랑하는 법은 잊어버렸다.
_‘도덕은 자기애를 감춰주는 포장지다’ 중에서
누군가를 비난할 때 흔히 ‘쓸모없는 놈’ 따위의 말을 한다. 이런 비난에 가슴이 아팠던 분이 있다면 서러움을 내려놓기 바란다. 당신은 태생적으로 쓸모없을 권리를 타고났다. 누군가의 한심함을 보고 ‘저런 인간이 세상에 있어 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은 한 번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그는 당신의 기분을 위해 존재할 의무가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남의 기분을 위해 존재할 필요가 없다.
_‘사랑은 인생의 주인이 아니다’ 중에서  접기
그에게 사랑의 대상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사랑이 일 대 일의 마주 보는 거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상대를 거래의 주체로 대하지 못하고 자기애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 삶 앞에 사랑을 놓을 때 인간은 사랑의 종이 된다. 자신을 희생하기 싫으면 타인을 희생시킨다. 반경 1미터의 경계가 정확하지 못한 사람은 상대를 침공하거나 또는 침략 당한다.
_‘사랑의 실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중에서  접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착각이 삶의 태도인 사람은 쉽게 분노한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느라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좋은 직장에 취직한 사람들은 수험의 보상이어야 할 직장생활이 더 불행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학교는 돈을 내고 다니고, 직장은 돈을 받고 다닌다. 이 차이를 생각해보면 무엇이 더 힘들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신의 1미터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둘째, 노력이 보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우주적 질서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의 질서는 물리학적이지 인격적이지 않다.
_‘누가 내 몫의 피와 땀을 훔쳐 갔을까?’ 중에서  접기
노력하고 또 인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이들은 힐링을 통해 위로라는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괜찮아’라고 긍정해주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사람은 괜찮다고 되뇔 필요가 없다. 자기 삶의 방식에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선언하는 사람은 사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지금 행복하면 된다”는 말에는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잠재적 행복 간의 관계를 ‘이거 아니면 저거’ 식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착각이 숨어 있다. 즉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 현재가 불행해진다는 기계적인 사고다.
_‘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선언하지 않는다’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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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홍대선 (지은이) 

한국 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한때 만화 시나리오를 썼으며 이후 《딴지일보》에 입사, 기획 특집을 다수 연재했다. 그 가운데 〈테무진 to the 칸〉은 《딴지일보》 기사들 가운데 역대 최고 조회 수를 기록했다. 라디오와 종이 매체들에서 축구 평론가로도 활동했고 인문교양 팟캐스트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남 얘기〉를 오랫동안 진행했다. 지은 책으로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테무진 to the 칸》, 《축구는 문화다》, 《태양의 해적》 등이 있다.
인문은 인간이라는 필연과 개인이라는 우연의 만남에 대한 사유라고 믿는다. 그 사유 속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잃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1미터 개인의 간격>,<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테무진 to the 칸> … 총 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개인의 삶’에 천착한 일상의 철학자 홍대선의 신작. 2018년 전작에서 철학자 6인의 삶을 통해 개인의 ‘발명’과 그 의의를 소개했다면, 《1미터 개인의 간격》에서는 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지금 여기에서 절실한 삶의 태도를 1미터라는 단위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사람이 소음처럼 느껴지고 내가 지겨워지는 시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터넷 뉴스나 SNS를 보면 악다구니가 들리는 것 같아 숨이 막힌다.”
“텔레비전에 특정 연예인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까닭 없이 화가 치민다.”
“내 주변 젊은 사람들은 생각이 없고 늙은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세상은 불합리하고, 타인은 지옥인 사람들에게 보내는 덤덤한 조언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냉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이 소음 같을 때 쓸 만한 간단한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나의 1미터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팔이 닿는 1미터라는 고유한 영역을 확인하고 지켜나가는 것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1미터로 유지할 것
그리고 딱 1미터만큼만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관조해볼 것

왜 개인인가?
“어느 날 벼락 맞은 것처럼 개인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거리 두기’가 강조되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새삼스럽다. 타인과 나를 구분 짓고 경계를 마련해 선을 긋는 행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나 ‘혼자’라는 구호는 유행을 지나 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근래 우리가 ‘거리’에 대해 민감해진 까닭은 간단하다. 점점 파편화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타인에게 침범당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단절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있어왔던 것처럼 이야기되는 ‘개인’은 사실 가까운 과거에 탄생한 인위적인 발명품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개인주의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러하듯 길어봐야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날 너무 갑자기 개인이 되었고, 그래서 개인으로 살 수 있을지 불안하고 개인으로 살아도 되는지 불안하다.
《1미터 개인의 간격》은 가장 개인다운 개인이었던 스피노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날 개인으로 사는 기술에 대해 풀어낸 결과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미터라는 단위를 상징으로 삼아 나다움의 범위와 행복 그리고 타인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카르트의 주체가 세상의 중심에 ‘나’를 위치시킨 존재라면, 스피노자의 개인은 타인도 나와 같음을 인정한 존재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지만 적어도 지구상에서는 이와 같은 우주들이 70억 개가 넘게 존재한다. 그래서 개인이 개인으로 존중받고 또 존중하며 살기 위해서는 편리하면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1미터라는 경계의 안팎을 절묘하게 넘나들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왜 1미터인가?
“냉담한 이기주의자가 아닌 상냥한 개인주의자로 사는 기술”
영화 〈GO〉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복싱을 배운다.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한 팔을 뻗은 채 몸을 돌려 원을 그리게 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이 원 안에 아무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싶지 않니?”
반경 1미터는 힘껏 팔을 뻗었을 때의 범위로 근대 이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된 고유한 영역이자 최소한의 범위다. 인격, 자존, 자유의지 모두가 이 1미터 안에 있다. 개인에게는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1미터를 지켜야 하는 순간들과 만난다. 바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욕망을 따르는 법, 다른 존재의 침략과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법, 그럼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법이다.
그리고 팔을 뻗었을 때 닿을락 말락한 1미터는 상대와 소통할 때의 거리이자 누군가와 싸우기 전에 확보해야 하는 간격이기도 하다. 그보다 멀어지면 고립되고, 그보다 밭아지면 타인과 겹쳐지면서 나를 잃거나 반대로 타인의 범위를 잡아먹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1미터를 유지해야 하며 이 간격을 잃은 사람을 가리켜 외로워 보인다거나 또는 무례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1미터는 나와 거울 사이의 거리다. 우리는 스스로의 1미터를 지키는 데 집착한 나머지 그 안에 갇혀 자신을 잃게 되거나 또는 1미터보다 멀찍이 떨어진 채 스스로를 왜곡하기도 한다. 이 1미터를 넘어서는 법은 먼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뤄진 자기객관화, 스스로와 거리두기는 타인에게 다가서는 첫 관문이다. 나를 이해해야 남을 이해할 수 있고, 나와 화해해야 타인과 타협할 수 있다. 모두 ‘내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이란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을 견디며 살아가는 자세를 의미한다. 1미터는 바로 사회적으로 살기 위해 확인해야 하는 범위이자 넘어서야 할 거리다.

왜 기술인가?
“행복은 노력 끝에 닿는 보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축적하는 기술이다.”
이 책에서는 행복을 복잡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행복은 기술’이라는 것이며, 앞에서 설명한 1미터는 그 기술의 방법론이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언젠가 도달해야 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행복이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처럼 조금씩 정진해 한 번 닿으면 다시 내려갈 필요 없는 어떤 이상에 가까운 것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친다는 얘기가 된다. 아무리 삶에서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익숙해진다고 하더라도 행복을 그리워할 뿐인 환상이라고 한다면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행복은 차라리 평생 곁에 두고 다듬어야 하는 일상에 더 가깝다. 마치 반복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반대로 잠시 손을 놓으면 조금씩 무뎌지는 일상적인 흐름에 속하는 ‘기술’처럼 말이다. 어딘가 모호한 이야기 같지만 행복을 1미터의 기술로 파악한 다음 마스터한 사람이 인류 역사상 실제로 존재했다. 바로 바뤼흐 스피노자다.

왜 행복인가?
“내 차가우면서 따뜻한 친구 스피노자가 알려주는 나답게 산다는 것”
스피노자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교를 거부해 동포들에게 온갖 저주를 받았으며, 자신의 세계관을 끝까지 지켰다는 이유에서 전 유럽 사람들에게 갖은 멸시와 비난을 당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가업을 포기하고 기꺼이 가난해졌으며, 렌즈 세공이라는 노동의 기쁨을 누리다 폐질환으로 요절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는 평생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비장한 각오로 투쟁하듯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무리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느라 누군가를 불행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평생 자신이 설정한 1미터 내부를 사랑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또 다른 1미터인 타인을 존중했으며, 1미터 밖의 세상을 소음으로 치부하고 벽을 치는 대신 그 자체로 인정하며 살아갔다. 그에게 행복이란 평생 쉬엄쉬엄 그러나 결코 놓치지 않고 꾸준하게 반복하는 기술이었다.
스피노자는 나무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꽃을 피우지 않듯이 인간 또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비루하지만, 그렇게 존재해도 괜찮다.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개인은 ‘이 자체로 괜찮은 나’다. 냉담한 이기주의자가 아닌 상냥한 개인주의자로 살고 싶은 지금 여기 많은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삶의 태도다.

언젠가부터 세상을 악의에 가득 찬 소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당연해졌다. 스스로를 지켜나갈 자신이 없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가장 멀면서 또 가장 가까운 나를 이해하고 행복해지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1미터 개인의 간격》이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는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접기

평점분포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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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를 바탕으로 하지만 스피노자의 비중은 크지 않다. 철학을 표방하지만 에세이에 가깝다. 글은 드라이하면서 섹시하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여러 의미로 가장 흥미로웠다.  구매
만권 2020-09-14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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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책을 읽는데 , 이 책은 나를 수없이 벌떡 일으켜 지금까지의 인생을 생각하게 만든다.  구매
ji1004woo 2020-10-17 공감 (1) 댓글 (0)

     
상대방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순간 집착이 되고 고통이 되고 상처가 되는 듯합니다. 애인, 가족, 친구, 인터넷 누군가 등. 이 시국에 거리는 1미터가 아닌 2미터는 돼야 안전하겠지만..^^ 거리는 멀되 마음은 가까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사회가 되기를...  구매
AlbGre 2020-09-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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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어느 선까진 인정하지만 인정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행복찾기는 불교와 공통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데 말입니다..  구매
bachian 2020-11-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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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에 좋은 책을 만났네요.
인생책!입니다^^  구매
- 2020-10-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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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개인의 간격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데에는 '1미터 개인의 간격'이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이 주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나타낸다는 데에 동의했다. "행복은 보상이 아니라 기술이다"라는 띠지의 글도 내 마음을 잡아 끌었으니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더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그대로 이 책 『1미터 개인의 간격』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홍대선. 칼럼니스트이며, 축구 평론가로도 활동했고 인문교양 팟캐스트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남 얘기>를 오랫동안 진행했다. 인문은 인간이라는 필연과 개인이라는 우연의 만남에 대한 사유라고 믿는다. 그 사유 속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잃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의 내용은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삶과 사상을 글쓴이가 연구하고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낸 결과입니다. 저는 스피노자를 반경 1미터 안팎의 세계로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이 프롤로그는 초청장입니다. 1미터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모십니다. 스피노자도 1미터도 영 생소하지만 이미 독서는 시작되었으니, 우리는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도록 합시다. (7쪽)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들어가기 전에 '1미터로의 초대'와 들어가는 글 '행복은 1미터의 기술이다'를 시작으로, 1장 '가깝고도 먼 1미터', 2장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1미터', 3장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1미터', 4장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1미터', 5장 '세상에서 가장 쉬운 1미터', 6장 '세상에서 가장 먼 1미터', 7장 그리고 나가는 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1미터'로 이어진다. 


이 책이 다른 책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바로 다음 글에서였다. 

우리 각자는 그 누구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우주가 우리에게 존재의 이유를 애써 부여해줄 정도로 우리는 대단하지 않다.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로 약속한 적은 없다. 존재에는 이유가 없다. 존재 자체만 있을 뿐이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이렇게 힘든 삶을 꼭 이어나가야 하나?"

"나는 너무나 불행한데, 삶이 뭐기에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나?"

미안하지만 이 책은 힐링 상품이 아니다. 살든지 죽든지 마음대로 하시라. 보통 저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위로해주길 바란다. 정말로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유서를 쓴다. 적당히 위로해줘도 소용없다. 질문자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올 때까지 추궁하기까지 한다. (36쪽)

따뜻한 말보다는 그냥 눈치 보지 않는 솔직한 돌직구를 날린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좋다. 위로가 필요할 때는 그런 말을 담은 책을 골라 읽고, 돌직구 발언으로 정신을 차리고 싶을 때에는 또한 그에 걸맞은 책을 읽으면 된다. 책에 호감을 갖게 되는 부분을 만나면 그 이후에는 속도를 붙여 읽어나가게 된다. 

​이 책은 삶에 대한 회의가 생존본능마저 앞지르는 정도까진 아닌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37쪽

​정말 힘든 때에 나는 나에게 수시로 '괜찮아'라며 주문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냐고 물어보아도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 말이다. 지나고 나서보니 너무나 힘든 기간이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정말 힘들고 세상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볼 때 나는 정말 괜찮아보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에는 묘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들이 눈에 띈다. 읽다보면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노력하고 또 인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이들은 이와 같은 유행에 편승하는 조언을 들으며 위로라는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괜찮아'라고 긍정해주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사람은 괜찮다고 되뇔 필요가 없다. 자기 삶의 방식에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여러 번 선언하는 사람은 사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63쪽)

우주의 섭리는 노력하는 자의 땀과 눈물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에 의해 부, 지위, 명예, 인기와 같은 열매를 얻기도 하지만 의도되지 않은 현상에 의해 세상에 흐르는 돈과 관심이 특정한 지점에 깊게 고이는 모습도 목격한다. 여기서도 행복의 기술은 간단하다. 1미터 밖에서 일어난 타인의 성공은, 나에 대한 세상의 배신행위가 아니라 풍경이다. 풍경은 반경 1미터 안의 사정과는 무관하다. 보고 싶으면 보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눈을 돌리면 된다. (66쪽)

읽어나가다 보면 전혀 위로의 말이 아닌데, 묘하게 위로되는 문장들이 있다. '아,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겠네.'라며 마음에 담아 본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실 원래 없었던 듯 가벼운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며 행복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공허한 긍정주의보다 현실적인 기술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행복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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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2020-09-18 공감(8) 댓글(0)

     
1미터 개인의 간격


나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현명한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내 마음 속의 사랑과 미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 과연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6-)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고, 남에게 사랑받을 수 도 없다. 1미터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거리다. (-9-)


'즐겁다'는 것은 즐거움이 반경 1 미터 안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괴롭다'는 것은 괴로움이 반경 1미터 안에 들어왔다느 뜻이다. (-44-)


가치중립적인 세계는 '그렇다'와 '아니다'로 이루어진다.
가치판단적인 세계는 '옳다'와 '그르다'로 이루어진다. (-57-)


1미터 밖에서 일어난 타인의 성고은, 나에 대한 세상의 배신행위가 아니라 풍경이다. 풍경은 반경 1미터 안의 사정과는 무관하다. 보고 싶으면 보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눈을 돌리면 된다. (-66-)


"누군가에게 책을 헌정해야 한다면,나는 내 책을 오직 진리 그 자체에만 헌정하겠습니다." (-133-)


내 부모님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처음 가정을 꾸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어머니는 자신이 특별히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이때 우리는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고 한다. (-162-)


증오가 많은 사람은 불행하다. 현명한 사람은 증오하는 대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인간이 살면서 미움을 가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나 또한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들을 생각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을 용서하거나 잊을 생각도 없다. (-179-)


가령 나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독립국에 살고, 민주화 투쟁을 하지 않았음에도 민주주의 사회에 산다. 당대의 노동자들을 처참한 나락에 떨어뜨린 영국 산업혁명의 도움도 받고 산다. 우리는 지난 세대와 역사의 결과물 위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환경이자 조건이지 옳고 그름이 아니다. (-202-)


쾌락이 있다.욕망과 욕구가 충족되는 상태다.
불쾌가 있다. 욕망과 욕구가 좌절되는 상태다. 
선은 모든 종류의 쾌락, 그리고 쾌락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다.
악은 모든 종류의 고통, 그리고 고통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다. (-212-)


이해는 이해할 수 있는 대상에 쓰기에는적합하지 않은 모순적인 말이다. 다 이해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냥 안다고 한다.
이해의 노력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해라는 말의 올바른 용례는 '이해했다'가 아니라 '이해한다'다. (-233-)


홍대선의 <1미터 개인의 간격>의 느낌은 배신감읻가. 여기서 배신감이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이다. 그건 나 자신의 고정관념,나의 현재의 생각과 관점,생각과 행동 패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되고,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그 문제의 근원이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무언가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을 옳고 그르다로 판단한다.그래서 우리는 행복은 옳고 , 불행은 그르다고 생각하고 있다.누군가가 나 가까운 곳에 다가와 공격적인 말을 토할 때,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불쾌하다. 그럴 때,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즉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의 약점을 잡고 물어 뜯을 때, 내가 할 수 잇느 방법은 두가지이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1미터 이내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상대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응징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지만, 나또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그럴 때,이 책에 나오는 간격의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즉 우리는 누군가 내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 위협을 할 거라고 생각할 때,1미터 이내에 누군가 들어올 때,나스스로 1미터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이다. 즉 상황과 조건에 다라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거나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나를 상처와 아픔,발목잡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상대방에게 불쾌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나를 지키는 법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앞에 놓여진 억울한 상황이 만들어질 때 ,그 억울함에 대해서 누군가의 잘잘못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그럴 때, 상대바의 잘못이 아닌 나의 잘못으로 보면서,상황과 조건을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즉 스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지키고,상황과 조건이 나에게 불리하다고 느껴질 때, 최대한 자기 스스로 벗어나는 요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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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20-11-07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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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미터 개인의 간격

우리 모두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코로나로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2020년의 우리 일상은 마스크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한 일상의 불안감으로 더더욱 행복에 궁핍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다.
이제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찾아 지금의 사회적 불안감과 바이러스의 공포를 떨치고 다시 행복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인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내안의 질문을 고민하고 있을 즈음 <1미터 개인의 간격>이라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행복은 보상이 아니라 기술이다.> 라는 조금은 낯선 문장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 기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기술은 나의 1미터를 확인하는게 그 기술의 전부라니......

이책은 한국 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딴지일보>에서 '테무진 to the 칸'이라는 기사로 기사들 가운데 역대 최고 조회 수를 기록한 글을 쓴 홍대선 작가의 책이다.
도서출판 추수밭에서 출판하였다.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이해한 방식으로 개인의 반경 1미터 안팍의 세계로 정리하였다.
그 정리한 내용을 담아서 1미터 개인의 간격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행복은 목적이 아닌 기술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되도록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기에 행복해지기위한 기술을 익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삶에 목적으로 꼽는 그 무엇도 모두 그저 행복을 위한 도구일뿐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을 잘 사용하여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기술을 익히자는 것이다.
한 사람이 보유한 요소들은 반경 1미터 내부의 조건으로 내부의 조건을 사용해서 외부에 있는 행복의 조건을 많이 1미터 반경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돈,지위, 인기, 인정, 안전한 주거환경, 휴일의 여유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것들을 1미터 반경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노력으로 가능한 이 조건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만은 않다.
그렇다면 애초에 반경 1미터 안의 내용물은 욕망인 것인가?
저자는 1미터 안팍의 재료와 구성원리로 설명한다. 즉, 나의 구성원리와 세상의 구성원리...... 행복의 기술은 이 두가지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찌보면 스피노자의 사상을 저자의 방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철학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스피노자가 한 말들은 참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인 이라면 조금 거부감이 들 수 있겠다. 나역시 그랬다.
하지만, 한시대를 살다간 철학자 스피노자의 삶을 통해 그가 자유자재로 행복을 관리하려고 했으며 철학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고 행복을 향해 나아간 대단한 철학자임에는 분명했다. 행복의 토대는 받아들임으로 행복도 불행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처리하면 된다는 행복의 중급 기술.......나의 1미터 반경처럼 타인의 1미터 반경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안타깝게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그 고통의 모습을 지켜본 저자이기에 스피노자와 재회하고 비극 속에서 행복의 기술을 공부하면서 <1미터 개인의 간격>이라는 방법론이 발견되었고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어찌보면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상과 저자의 1미터 개인의 간격, 그리고, 종교가 모두 한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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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2020-09-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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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가 말하는 행복의 기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새창으로 보기
『1미터 개인의 간격』은 '욕망의 철학자'라고 불리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1632년) 스피노자의 행복 담론이다. 책 제목처럼 개인의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간격, 1미터 범주 안에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상처받거나 분노를 느끼는 것은 1미터 근접 거리에 있는 타인과 자신과 관심사가 같은 세상적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그 외의 것들은 무가치하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철학자 스피노자의 개인사를 엿보면 왜 행복에 관한 '1미터 간격'을 고민했는지 엿볼 수 있다. 스피노자의 가문은 에스파냐다. 선대때부터 에스파냐인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종교 재판의 마녀사냥이 한창일 때 할머니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다. 종교의 자유를 얻고자 이동한 곳이 네덜란드였다. '복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바뤼흐'라는 아명을 지닌 스피노자는 유대계 공동 거주지의 리더로 자라길 원하는 공동체의 뜻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 하지만, 주위의 기대와는 전혀 달리 선대 때부터 지녀온 종교(유대교)를 버린다. 종교관이 다른 네덜란드인에게도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더구나 부유한 재산마저 누이에게 양보를 하고 렌즈를 깍는 노동자의 삶을 선택한다. 낮에는 렌즈 세공업자로 밤에는 철학자로 살아가다 폐에 유리가루가 쌓여 40대 나이로 요절한다.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일수록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증오할 사람을 찾기 위해 반경 1미터의 자원을 모두 낭비한다. 억지 주장을 펼치거나 자신의 논리에 집착하여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그들의 삶은 무척 바쁘고 고단스럽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불행한 사람이다. 행복은 사람이 욕망으로 이루어졌음을 선선히 인정하는데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르다라고 가치 판단하는 일은 행복과 무관하다고 이야기한다. 스피노자 자신이 네덜란드 기독교인과 집안의 누이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취한 태도는 그들을 증오하기 보다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행복의 기술이 나온다. 행복은 사랑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요즘들어 젊은층들이 산업화 세대였던 60대 어른들을 비아냥거리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SNS상에 분노가 담긴 글을 남기기도 한다. 지금 '선진국'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젊은층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산업화 세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행복은 요원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스피노자의 행복론에 비춰보면.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위치한 한계령 위령비에 얽힌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전국에 강원도 우유를 보급하기 위한 방법으로 험준한 한계령 도로를 닦는 공사에 군장병들이 동원되었고 공사 중에 순직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웠다고 한다. 지금 세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아니, 우유 보급로를 위해 아까운 목숨을 잃게 했다고? 지금 개인이 누리는 행복은 누군가의 헌신(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단단한 개인이란, 자신이 어느 때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사람인지 남의 도움없이 판단하고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불행한 사람은 기술이 필요하다. 타인을 이해하는 기술말이다. 1미터 개인의 간격은 행복을 구분하는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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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1999 2020-09-10 공감(1) 댓글(0)

     
1미터 개인의 간격 새창으로 보기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제일 가깝고도 먼거리가 1미터라고 합니다.

1미터라고 하는 점은 너무 다가와도 불편하고 너무 멀어도 관계가 형성되기 힘들고 어려운 간격 인간관계를 하다보면 어떤 사람은 가까이 다가서려면 멀리 도망가고 어떤 사람들은 떨쳐버리고 관계를 끊으려고하면 다가서는 일이 살다보면 종종 있습니다.

1미터의 개인의 간격이라고하면 손을 펼치고 한바퀴도는 간격이라고 하는데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간격에 들어올수록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나 싫어하고 어려운 관계라고 한다면 이 간격에 들어오면 힘들고 무섭고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봅니다.

1미터의 개인의 간격은 가장 인간다운 개인적인 사적 공간이라고 하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라고 합니다.                               

베이비부머세대인 저로서는 처음 젊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을때 개인주의라고하여 무슨 뜻인지 모르고 너무나 자기만 아는구나 배려심과 나눔 사랑이 부족하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까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남들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내가 소유하고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과 생활영역에서 나의 삶을 마음껏 누릴수 있고 누려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라고 봅니다.

그 공간만큼은 다른 사람보다 내 자신의 자유와 책임이 우선시 하고 그 삶속에서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젊은 사람이라고하여 베풀어보고 대우해주고 하였으나 소리없는 아우성인것 같아 처음에는 제 나름대로 상처를 받았으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 자신도 그들과의 관계를 조금씩 변화시켰습니다.

너무나 사랑을 주지 말고 할수 있는 만큼만 하고 너무 깊게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책임과 의무로만 대하자하고 마음을 먹고 행동을 하다보니 내 삶이 많이 변화가 되고 편해졌습니다.                             

1미터의 간격이라고하면 너무나 단순하고 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가까울수록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사랑하고 인정을 해준다면 상대방도 그만큼 도리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짐승중에 고슴도치란 종이 있는데 고슴도치는 너무 가까이하면 가시에 찔리고 너무 멀면 추워서 얼어죽을까봐 너무 가까이 너무 멀리해서 안되는 종이 고슴도치라고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아니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사랑을 하고 평생 한 남자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람인지라 권태기가 오고 피곤하고 힘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럴때 그 사람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물어보고 의무를 다해야 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인간은 노동을 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일을 하기 싫고 놀고 여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기 원하는데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때로는 상처를 받고 때로는 상처를 주면서 본의 아니기에 타의든 자의든 실수를 하면서 반성을 하면서 사람들은 오늘도 아니 이 시간에 살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1미터의 간격을 잘 지켜 나간다면 상대방에게 관계를 형성할때 실수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기위해 살아가면서 내 뜻대로 되기 어렵고 힘들때 종교의 힘이 필요하고 때로는 기도하고 때로는 행동하면서 사랑하면서 노력하면서 살아갈려고 합니다.

또한 간단하고 쉽다는 1미터 때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자 있고 싶고 동굴에 들어가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동굴에 들어갈때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보는 1미터 특히 남성들은 일이 풀리지 않고 힘이 들때 동굴속에 들어가서 해답을 얻을때 나온다고 합니다.

동굴속에 들어갈때 단단한 1미터가 될때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인간관계라는 것을 알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단하고 먼 1미터 그런 1미터 간격을 잘 유지 할 수있는 대인관계가 진정한 성공하는 대인관계 처세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이 책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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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감자 2020-09-18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