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는 원칙을 정토회가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새로 지어지는 정토회 본부 건물은 주차장, 공연장, 소방시설, 승강기, 전기안전시설 등을 갖추고 있기에 대단히 많은 전문가들이 요구되는 큰 건물입니다. 자원봉사의 원칙을 지키며 이 큰 건물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현재의 3층짜리 법당을 유지해온 것과는 판이하게 상황이 달라질 것 같아요. 물론 스님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정토회는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만, 실제 운영을 생각하면 과연 가능할지 우려가 더 큽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과 단체가 전문 노동자를 고용해서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그러면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사찰을 어떻게 운영했을까요? 그 시대에는 하인을 데리고 사는 시스템이 있었어요. 즉, 사찰이 운영될 수 있게 하인을 국가가 공급해 주었습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순간 정토회는...
가령 신라시대에 국가에서 의상 조사를 화엄사 주지로 임명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국가는 화엄사 운영을 위해 땅 천 마지기와 그것을 운영할 하인 50명을 주었습니다. 그 하인들이 농사를 지었고, 그걸 기반으로 해서 사찰을 운영했습니다. 옛날에는 국가에서 주는 하사품이 주로 두 종류였습니다. 첫째는 소출이 나올 수 있는 땅이고, 둘째는 그것을 운영할 사람이었어요.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사찰이 땅 대신에 돈을 갖고 운영하고, 하인 대신에 노동자를 고용해서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큰 절은 물론이고 어느 절이든 다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그 사찰을 운영합니다. 절마다 농사짓는 사람도 고용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공양주도 고용하고, 청소하는 사람도 고용하고, 수위도 고용하고, 전기 문제를 담당하는 전문가도 고용합니다.
부처님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생활을 하지 않으셨어요. 출가하시기 전 속세에 사실 때는 말 모는 하인이 따로 있고, 잠자리 봐주는 하인이 따로 있는 등 여러 명의 하인을 항상 거느리고 있었지만, 출가를 하신 이후로는 하인을 전혀 두지 않았습니다. 늙어서 병이 들었을 때는 같은 수행자인 아난다가 역할 분담을 해서 좀 도와 드렸지만, 이것은 하인을 부리는 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어요. 부처님은 신분제 사회 속에서도 신분을 뛰어넘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붓다의 법을 그대로 지키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비록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산다는 미명하에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 붓다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고용을 하는 순간 사람 간의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와 질문자는 수행자와 수행자 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지금 만나고 있지만, 만약 월급을 주고 제가 질문자를 고용하는 순간 질문자는 저를 ‘스님’이라고 부르더라도 사실은 스님이 아니라 고용주가 됩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세속적 관계로 바뀌는 거예요. 이런 관계에서 만약 제가 월급을 지불하지 않으면 질문자는 굶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까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법적 투쟁까지 하게 되는 관계가 됩니다.
이것이 과연 수행 공동체에서 올바른 것일까요? 만약 부득이하게 회관을 운영하기 위해 이런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면, 정토회는 애초에 이런 건물을 짓지 않았어야 해요. 이렇게밖에 운영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건물을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지금까지는 정토회가 이런 원칙을 지켜냈습니다. 그래서 문경 수련원과 두북 수련원을 비롯해 그 어디에서도 운영이나 생활 면에서 사람을 절대 고용하지 않았어요. 건물 자체를 지을 때 전문가가 짓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운영을 위한 일체의 일들은 모두 정토회 회원 여러분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새로 건물을 짓게 됨으로 해서 사람을 따로 고용하지 않고는 운영을 할 수 없다는 난관에 부딪힌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면서까지 이 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
이 상황에서 저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부터 제가 이 점에 대해 주의를 줬습니다.
‘고용을 하지 않고 자원봉사 방식으로 건물을 운영할 수 있으면 짓고, 그렇게 못 하면 건물을 짓지 맙시다. 건물을 짓고 나서 고용을 하게 되면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우리 정토회의 이념에 큰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겁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신라시대에 승려가 절에 노비를 고용해서 농사를 짓고 살았던 것과 다름없는 것이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건물 짓는 것에 반대를 했을 때, 고용하지 않고 건물을 운영할 수 있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런데 막상 건물을 다 짓고 나니 전기기술자며 열관리사며 전문가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래서 현재 새롭게 제안이 올라온 내용은 건물 관리를 한시적으로 위탁회사에 맡기자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정토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지는 않아도 되니까요. 위탁회사가 건물을 관리하는 동안에 옆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전문적인 업무를 배우면서 그에 필요한 관련 자격증도 획득해서 그 이후에는 자원봉사자로만 운영을 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래서 은퇴한 정토회 회원들 중에서 누구는 전기 관련 업무를 맡고, 누구는 열관리 업무를 맡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해요. 처음부터 자원봉사자가 전문 업무를 맡기는 지금 어렵다고 하면서요. 이런 제안이 들어왔는데, 이것도 제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건물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개원 기념 100일 법문도 새로 지은 건물에서 하지 않고 두북 수련원에서 온라인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불사팀에서 자원봉사 운영팀을 구성해서 연구 중에 있습니다. 아무런 대책이 세워져 있지 않은 것은 아니고 이미 팀을 구성해서 엄청나게 연구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불사 책임자가 건물 짓는 일과 건물 운영하는 일을 동시에 신경 쓰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운영 면에는 조금 소홀하게 된 것 같아요.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빨리 운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일반 건물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그냥 위탁관리를 맡기든지 사람을 고용해서 관리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공동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예요. 고용을 하는 순간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맺게 되니까요.
다소 편법이긴 해도 위탁관리를 6개월 맡기는 방식이 새로운 제안으로 올라왔는데, 짧은 시간 동안 임시로 위탁관리를 허용할 것인지, 그것조차 거부하고 차라리 건물의 문을 닫고 사용을 안 할 것인지, 조만간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난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 건물에 안 들어갈 생각입니다. 새로운 건물의 문 앞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충분한 노력을 했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어서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건물을 지어놓으면 스님도 어떡하겠느냐. 설마 안 들어오겠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그러면 개원 기념 백일 법문도 모두 취소할 생각이에요.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려고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데, 건물 하나 때문에 그것을 어기고 살 수는 없잖아요.
어쨌든 지금 다양한 고민을 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이 일에 자원봉사자로 적극 참여해 주시고,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좀 구해 주세요.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거사님들도 은퇴한 분이시라면 돈 몇 푼 더 벌려고 하지 마시고 정토회에 와서 건물 운영을 좀 봐주시면 좋겠어요. (웃음)
이 점을 처음부터 얘기했는데도 다른 일로 바쁘다 보니 준비가 좀 미비해요. 얼마 전에 저에게 마지막으로 들어온 요청은 전기기사 한 명만 고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나 한 명이나 열 명이나 똑같습니다. ‘건시나 곶감이나’ 이런 속담도 있잖아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긴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현재는 그런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말씀 주신대로 열심히 자원봉사자를 구해 보겠습니다. 이것저것 걱정이 좀 됐었는데 뻥 뚫린 기분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서초 정토회는 기존 업무에 본부를 운영하는 역할도 있어 활동가들이 어떤 활동을 중심에 두고 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법의 길을 떠나라고 하실 때 둘이 의지해서 함께 가라고 하지 않고 왜 혼자서 가라고 하셨나요?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되고 법당이라는 공간이 없어지면 지역 정토회는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토회 통일의병들이 소임을 2-3개씩 하는데 행복학교 진행까지 하려니 부담이 됩니다. 또 지인들에게 불교대학 홍보 시즌 때마다 홍보문자를 보내고 요즘은 행복학교까지 홍보하니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해야 할까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다 해준 후 마지막으로 스님은 다시 한번 정토회가 지켜나가고자 하는 원칙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스님이 너무 까다롭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부처님이 살아가신 삶에 비교하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삶은 초호화판입니다. 지금과 같은 온라인 시대에는 제가 있는 이곳에 폐교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온라인 시대의 도래를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건물을 짓긴 했습니다만, 새로 지은 건물도 활용 가치가 굉장히 많을 겁니다. 앞으로 정토회 활동이 확대될 것을 예상하면 금방 건물 안이 가득 찰 겁니다.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정한 법규에는 이런 건물은 자격증 있는 사람이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의 원칙과 세상의 원칙이 지금 안 맞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업무를 능히 맡아서 할 수 있다고 해도 ‘당신한테 자격이 있느냐’ 이렇게 됩니다. 법륜 스님이 이렇게 법문을 하고 여러분들이 다 스님을 좋아해도 동국대 교수 자격은 없어요. 대학도 안 다녔고, 박사 학위도 업으니까요. 환자를 잘 보는 사람이 있어도 의사 자격증이 없으면 의료행위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새로 짓는 건물 운영에도 이런 한계와 모순이 있습니다. 세상의 규칙을 따라가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훼손되고, 여기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고집하면 세상이 정한 법을 어기는 행위가 돼요. 지금 이런 모순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여러분 중에서 전문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큰 뜻을 내어서 새로운 건물 운영에 참여해줘야 해요. 부처님의 가르침도 지키면서 세상의 법규도 지킬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잖아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중 누군가의 헌신적인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건물 문을 닫아 놓아야 해요. 다른 사람들은 그 건물에 들어가 살더라도 저는 밖에서 살 생각입니다.
다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어떤 분은 스님이 타고 다니는 차가 지금 상태로 계속 다니면 위험하다고 하면서 더 좋은 차를 사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 타고 다니는 봉고만 해도 부처님에 비해 초호화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 무엇을 더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부처님이 그렇게 살아가셨기 때문에 저도 조심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것처럼 제가 이렇게 살아야 미래의 정토회 수행자들도 주의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저부터 남이 주는 것 다 받아먹고 살면 후대 사람들도 그 모습을 다 본받게 돼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따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항상 도에 지나치지 않도록 살아야 해요. 여러분도 이렇게 관점을 갖고 수행정진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정토회 정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오늘 법문을 들은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점심 식사를 한 후 여유 시간이 생겨서 농사팀 행자님들에게 산행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오후에 다들 뭐 하세요? 산행을 같이 다녀올까 하는데...”
“저희는 요즘 행복학교 진행자 교육을 받고 있어요. 시간을 내기가 어렵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무도 시간이 나지 않아서 산에는 가지 못하고 오후 내내 여러 업무들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