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쌍두마차’ 혜민 vs 법륜, 숨은 차이는 이것?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힐링의 쌍두마차’ 혜민 vs 법륜, 숨은 차이는 이것?
등록 2014-02-01
왼쪽부터 혜민스님, 법륜스님. 사진 김태형, 신소영 기자
[사람매거진 나·들]
엄친아 대 재야파…설법 대신 귀엣말
대중이 선택한 힐링 시장의 큰손들
“법륜이 예언자라면, 혜민은 치유자”
▷ 사람매거진 나·들 기사 더보기
요새 출판계에서는 스님들이 약진하고 있다. 자기계발과 힐링, 인생상담의 영역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이런 현상은 2010년대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우선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쌤앤파커스·2013)의 정목 스님과 도쿄대 출신의 훈남 작가로 잘 알려진 고이케 류노스케 스님을 떠올릴 수 있겠다. 특히 고이케 스님은 다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요새 항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인생수업>(휴·2013)의 법륜 스님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2012)의 혜민 스님을 들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불교계의 강세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미지일 게다. ‘산사’(山寺)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다시피 불교에는 탈속적인 분위기가 있다. 속세의 욕망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갈 것 같아 보이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치유와 위무를 찾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불교의 고유한 종교적 성격을 희석시키고, 대중의 감성에 다가오는 유연한 접근을 취한다는 데 있다. 가령 고이케 스님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혜민 스님은 트위터를 통해 평이하고 감미로운 속세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이제 힐링시장은 멘토 스님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게다. 그중에서도 법륜과 혜민은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 판매 기록이 말해준다.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는 2012년 종교 분야 1위이며, <인생수업>은 1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2012년과 2013년 연속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종합베스트셀러 2년 연속 정상 수성의 기록은 <시크릿> 이후 처음이다. 실로 ‘진격의 스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들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스님들의 모습은 위로자이며 치유자이다. 비록 서로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이들은 동일하게 작가로서나 멘토로서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고 있다. 대중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는 한결같다. 바로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목받는 멘토가 된 것에도 그런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해서, 또한 이들의 저작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우리 사회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엘리트 혜민, 달달한 국민 멘토
우선 혜민 스님부터 살펴보자. 그는 이른바 ‘엄친아’다.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 UC버클리로 진학하고, 하버드대학 비교종교학 석사 학위와 프린스턴대학 종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그는 미국 동부에 있는 햄프셔대학의 종교학과 교수다. 또한 그는 스님이다. 하버드대 재학 중 출가를 결정하고 2000년 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아 조계종의 승려가 되었다(조계종은 한국의 최대 종단이다). 의문의 여지 없이 정석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이다. 현재 그의 입지는 <시사저널> 조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2011년과 2012년 연속 불교 분야 차세대 리더 1위이며(불교계에서는 그 설문조사가 엉터리라는 논란이 있다), 2013년 종교 분야 차세대 리더 1위이다.
혜민의 영향력은 단적으로 말해서 대중과의 소통에 기초한다. 그의 일차적 소통의 매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 그가 쏟아놓은 트윗(트위터에 올리는 글)이다. 혜민은 대표적인 파워 트위터러이다. 그의 팔로어 수는 무려 68만2507명에 달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실은 그의 트윗들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2년 연속 종합베스트셀러 1위일 뿐만 아니라 비소설 단행본 중 최단기간 내 200만 부 판매를 달성했다(출간 13개월 만이라고 한다).
혜민의 트위터 활용의 발단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다 생긴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8쪽)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대학교수로서 하루 종일 영어로 수업하고, 대화하며, 글을 써야 하기에 때때로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트위터에 기록했고, 모국의 언어로 대화해주는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큰 위안을 얻곤 했다.”(8쪽) 이렇듯 스스로 위안받고자 시작한 것이 점차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긍정적 평가가 누적됐다.
자신의 글에 대한 적극적인 피드백을 확인한 그는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맑은 글, 따뜻한 글들을 올려보자고 마음먹게 되었다.”(9쪽) 온라인에서의 반응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맞춰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중의 반응이 그의 글쓰기 준거가 된 셈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9쪽)이었다. 이렇게 대중의 필요가 힐링에 있다고 판단되자, 그는 치유 상품 판매에 주력하기로 결정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부족한 ‘나’라고 해도, 내가 나를 사랑해주세요. 이 세상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분투하는 내가 때때로 가엽지 않은가요?”(19쪽)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20쪽) “내 마음이 쉬면 세상도 쉬고, 내 마음이 행복하면 세상도 행복합니다.”(37쪽) “나를 낮추면 세상이 나를 높여주고 나를 높이면 세상이 나를 낮춥니다.”(57쪽) “외로워하지 말고 내 어깨 위의 천사에게도 그동안 나를 돌봐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세요.”(64쪽) “복수는 이렇게 멋있게 하는 거예요. 사랑으로.”(81쪽)
혜민의 메시지는 달달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약간의 충고를 토핑한 달달한 위로이다. 그의 손은 우리를 “토닥토닥”(20쪽)한다. 토닥토닥이라니! 이건 애초에 우리가 책망하는 꼰대가 아니라 공감하는 멘토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남자이나 여자에게, 독신이나 아기엄마에게, 불자이나 기독교인에게 말을 건넨다. 트위터상에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맑은 글, 따뜻한 글들을 올려보자고”(9쪽) 결심했을 때, 혜민은 사실상 판매할 상품을 선택한 것이다.
법륜과 혜민은 요새 한국 출판계를 이끌어가는 가장 ‘핫’한 저자다. 두 스님의 이력과 성향,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지만 대중이 그들에게서 종교인의 이미지만 가져다 힐링 멘토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서로 닮았다.가끔 의욕이 과할 때도 있다. 직장인이 “내 자유를 돈 받고 팔지 마세요”(119쪽)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책 출간 이후의 트윗이지만 “엄마가 어린애들 일어나는 새벽 6시45분 정도 같이 놀아주는 것이에요. 새벽에 놀아주세요”와 같은 조언은 여러 엄마들을 ‘열폭’하게 했다. 심지어 종종 불법(佛法)의 기본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발견된다. 종교학 교수이자 조계종 소속의 승려인 그가 불법을 몰라서 그럴 리는 없다. 교재의 의미를 분석하던 그의 두뇌가 이제 대중의 욕망을 분석하는 데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혜민의 (어쩌면 그 자신은 모르고 있을) 비전은 국민멘토가 되는 것일 게다. 앞서 언급한 <시사저널>의 조사에 따르면, 이제 그의 바람은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그의 성공은 정확한 시장분석에 기초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심오한 영성가로서의 혜민이 아니라 성공한 1인 기업으로서의 혜민이다. 삶의 지혜란 “편안한 멈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간단한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10쪽)던 혜민의 성공이 필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행동파 법륜, 명쾌한 상담가
혜민 스님과 달리 법륜 스님은 행동가라고 할 수 있다. 평화재단 이사장이며 정토회 지도법사이다. 비록 교계의 핍박을 비롯해 여러 이유로 정식 승적이 없지만, 어느덧 불교계 안팎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명실상부한 사회지도 인사다. 사회를 바라보는 커다란 시야와 이에 따른 적극적인 발언으로 인해 진보적 인사로 분류될뿐더러 보수 진영으로부터 부당한 공격도 종종 받고 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와 함께한 30여 시간의 대담 기록을 묶어낸 <새로운 100년>(오마이북)에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호방한 안목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법륜은 통일 한국을 내다본다. 독자를 위해 매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말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가장 소극적으로는 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하고, 두 번째로는 선거에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정치세력을 선출하며, 세 번째로는 정당,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코리아를 건설하는 세력을 형성하자는 것입니다.”(328쪽) 이러한 전망은 의문의 여지 없이 그의 삶으로 증명돼왔다.
필자는 법륜의 이러한 시야와 균형감각을 주목해왔다. 따라서 법륜의 즉문즉설로서의 설법 또한 관심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인생수업>을 보면서 다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해맑게 말한다. “10대는 공부에만 매진하면 됩니다. (중략) 20대가 되면 연애하면서 설렘도 맛보고 가슴앓이도 합니다. 이것은 청춘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에요.”(10쪽) 이건 다른 자기계발서 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이 결여된 언급이 아닌가. 우리 현실을 아우르는 사회적 행동가가 난데없이 여기에서는 내면으로 들어가는 자기계발 강사로 돌변하고 말았다.
본문의 기조 또한 다를 바가 없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예요.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할 책임도 있고 권리도 있습니다.”(17쪽) 또한 그는 “일어나버린 일은 항상 잘된 일이다”라고 생각할 것을 조언한다. 암에 걸린 이에게 “이제부터는 덤이다”라고 생각하란다. 사별 후에는 “딱 3일만 슬퍼하고 정을 끊어라”(105쪽)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참으로 명쾌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되새겨볼 부분이 있기는 하나, 도대체 자기계발서와 다를 바가 없다. 석 달간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할 수 있던 이유가 아닐까?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에 따르면, 그의 즉문즉설의 근간에 금강경이 놓여 있다고 한다. 하나 정작 그의 법문 대부분을 살펴보면 심리학이 떠오른다. 다이아몬드처럼 우리의 아상(我相)을 박살내는 것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우리로 하여금 착실한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여기에서 위험신호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보다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발언하는 그조차 정작 법회 혹은 토크 콘서트에서는 결국 멘토나 카운슬러를 자처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법륜 스님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토록 치열한 삶을 살고, 자신을 시대의 격랑 속에 내던지는 분이 아니던가. 외려 <인생수업>은 용기 있는 투사조차 말랑말랑한 멘토로 만들어버리는 어떠한 사회적 압력을 보여준다. 즉, <인생수업>의 흥행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위기를 반영하는 어떤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사회(팔꿈치사회), 승자독식사회, 위험사회, 불안사회로 규정되는 현대사회는 법륜조차 대중을 상대할 때는 온건한 멘토로 만들어버린다(혜민처럼 말랑말랑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대중이 선택한 힐링시장의 큰손들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법륜과 혜민은 그 성향부터 매우 다르다. 법륜이 예언자라면, 혜민은 치유자이다. 법륜이 바라보는 전망이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라면, 혜민이 바라보는 시야는 내면적이고 감성적이다. 법륜이 아직까지도 승적이 없는 반면, 혜민은 비교적 일찍 승적을 받았다. 법륜이 현실사회에 깊숙이 발을 디디고 있다면(그는 현재 사실상 진보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혜민은 현직 대학교수로 지식의 상아탑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하나 그 차이가 어떠하든 지금 두 스님은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스님의 약진은 곧 대중의 선택이다. 지금의 대중은 스님을 통해 멘토 혹은 힐러를 찾고 있다. 대중의 선택은 또한 시장의 선택이다. 다시 말해 멘토 스님들에게 대중의 처지에 대한 해법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장은 종교시장이 아니라 힐링시장이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던 소비자학과 교수보다 우리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기대되는 순백색 이미지의 스님들에게 귀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스님의 약진은 대중의 현실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법륜과 혜민이 보여주는 것은 대중의 현실과 그들의 욕망이다. 이들의 상품이 판매되는 시장은 종교시장이 아니라 힐링시장이다. 이들은 영성을 설법하는 스님이기 전에 힐링을 제공하는 멘토이다. 이들을 멘토로 소비하는 대중이 살아가는 현실은 바로 영혼마저 노동하는 피로사회이다. 그러므로 스님이 약진하는 지금 현실은 잘못된 것이다. 행동가 법륜과 지식인 혜민을 우리가 힐링과 자기계발의 맥락에서 소비하는 지금의 방식 또한 문제가 있다.
글 이원석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문화이론 전공으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연세대 언더우드 학원선교센터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이른바 ‘개독교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이다. 종교적 본능에서 말초신경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며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