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9

이 땅에서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공공’이란 무엇인가? 조성환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 다시개벽

이 땅에서 공공철학하기(1)

-‘공공’이란 무엇인가?

글: 조성환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공공성’의 유행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공공성’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가령 구글에서 ‘공공성’으로 검색해 보면, ‘법률의 공공성’이나 ‘의료의 공공성’또는 ‘교육의 공공성’이나 ‘건축의 공공성’, ‘금융의 공공성’과 같은 용례가 나오는데, 이에 의하면 ‘공공성’은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만능어’처럼 보인다.
마치 조선시대에 성리학에서 ‘리(理)’라는 말이, ‘사랑[愛]의 리’, ‘효도[孝]의 리’, ‘마음[心]의 리’, ‘사물[物]의 리’와 같이,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성리학에서 ‘리’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그러나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른, 당위적 ‘가치’를 의미하였다. 모든 사물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에게는, ‘그렇게 있어야 할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리’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마찬가지로 ‘공공성’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어떤 분야에도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덕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덕목이 모종의 이유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고,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말이 일종의 화두처럼 쓰이는 느낌이다. 가령 세월호 사태가 있은 지 얼마 후, 〈공공성 꼴찌 국가 한국…세월호와 ‘공공성’〉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보도되었는데(2014.11.7. SBS 인터넷판 뉴스 「취재파일」). 이 보도에 의하면, SBS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1년 동안 공동 연구한 결과, 세월호 사태의 원인은 한국 사회의 공공성이 낮은 데에 있었고, 실제로 OECD 국가들의 순위를 매겨 본 결과 한국의 공공성은 꼴찌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공공성’에서 찾은 대표적인 예이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공공성’이라는 말의 유행과 더불어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령 조원희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매일노동뉴스》 2006.08.20.), 조한상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2009), 이노우에 타츠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초청강연회, 2010.11.05.), 정태인 「공공성이란 무엇인가」(《공무원U신문》 2014.11.17) 등이 그것이다.
이 공통된 물음이 말해주는 것은 ‘공공성’이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공공성이 중요한지는 알겠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래서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여기에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철학적 의미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즉 ‘공공성’이라는 말 속에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더 나아가서는 ‘정치’나 ‘경제’의 핵심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 논의에서 공통된 것은 ‘공공성’ 개념을 논하는 데 있어 하나같이 서양의 ‘public’ 개념을 출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공공성’을 ‘publicity’나 ‘publicness’의 번역어로만 이해하지, 원래 동아시아사상에서 논의되어 온 ‘공공성’ 개념은 전혀 고려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실은 ‘공공성’ 개념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의 인문학적 논의에서 보이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는 서양의 ‘publicity’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었을까? 다시 말하면 ‘publicity’의 번역어로서의 ‘공공성’ 개념은 어떻게 해서 탄생한 것일까? 그것은 원래부터 한자문화권에 있던 말일까? 아니면 번역을 위해서 만들어진 말일까? 이하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의 일환으로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는 ‘공공’ 개념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한국에서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즉 한국 사회에서의 공공성 문제를 생각하는데 있어 첫걸음으로 삼고자 한다.

‘공공성(公共性)’ 개념의 기원
먼저 ‘공공성’이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공공’+‘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성(性)’이란 ‘인간성’, ‘특수성’, ‘형평성’과 같이 명사 뒤에 붙어서 ‘어떠한 성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공공성’이라는 말도 일단 ‘공공의 성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공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귀착된다. 즉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시아사상사에서의 ‘공공’ 개념에 주목한 학자는 일본에서 활동한 공공철학자 김태창이다. 그는 동아시아 고전에 나오는 ‘公共’ 개념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공공철학’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김태창의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동방의 빛, 2010)에 의하면, 한자어 ‘公共’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처음 등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사기』에 수록된 「장석지(張釋之) 열전」에 처음 나오는데,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에 법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고 있던 고위 관리였다. ‘공공(公共)’ 개념이 최초로 나오는 문맥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한나라 문제(B.C.202~B.C.157)가 궁궐 밖을 행차하다가 마침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리 밑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오는 바람에 문제가 타고 있던 말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문제는 무사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황제가 말에서 떨어져 큰일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문제는 즉시 장석지에게 다리 밑에서 뛰쳐나온 사람을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장석지가 자초지종을 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황제의 행차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다리 밑에 숨었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행렬이 다 지나간 줄 알고 나왔는데 아직 행렬이 다리를 건너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에 장석지는 황제의 행차를 방해했으므로 법률에 따라 벌금 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문제는 황제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에 비하면 형벌이 너무 가볍다면서 크게 화를 냈다. 이에 대해 장석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법이란 천자가 천하와 함께 공공(公共)하는 바입니다.”
이 말은 문맥상으로 볼 때 제아무리 천자라 할지라도 법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임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공공’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그 의미는, 앞의 ‘공公’은 ‘모두’ 또는 ‘공평하게’를 뜻하고, 뒤의 ‘공共’은 ‘함께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두와 공평하게 함께한다”는 정도의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핵심은 뒤의 ‘함께한다(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의 ‘공(公)’은 ‘함께한다’를 수식하는 부사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석해 보면, ‘공공’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함께한다’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공공’이 동사로 쓰였다면 여기에 ‘성’이 붙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왜냐하면 ‘성’이란 말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대개 명사에 붙어서 추상명사를 만드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이란 ‘공공하는 성질’, 다시 말하면 ‘모두와 함께하는 성질’이라고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고전적인 의미의 ‘공공’에서 보면, “한국이 공공성이 낮다”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모두와 함께하는 성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모두’가 아닌 ‘일부’하고만 함께하거나, 아니면 ‘자기’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공공철학을 다룬 도서들: 왼쪽부터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김태창 저 / 조성환 역, 도서출판 동방의빛, 2010),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기획, 조병희, 이재열, 구혜란, 김지영 저, 한울아카데미, 2015),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조한상 저, 책세상, 2009),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김태창 구술/야규 마코토 기록, 정지욱 역,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2)]

우주론적 차원의 ‘공공’
‘공공’ 개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사기』로부터 약 1000년 뒤인 성리학에서의 일이다. 성리학에서는, 『사기』에서와 같이 “법을 공공한다”는 용례 이외에도, “리를 공공한다”는 의미에서의 ‘公共之理(공공지리)’라는 말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리’는 앞에서 말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 쓰는 말이다. 즉 법과 같이 단지 인간 사회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 쓰이는 개념이다.
그래서 ‘공공지리’란 “모든[公] 존재가 공유하는[共] 리”를 말한다. 이것을 줄여서 ‘공리(公理)’라고도 한다. ‘공리’는 근대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때 ‘axiom’의 번역어로 채택된 말이기도 하다. 수학에서 axiom이 “어디에나 두루 적용되는 증명이 불필요한 자명한 진리”를 의미하듯이, 전통시대에 ‘공리’ 역시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존재원리 같은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가치중립적인 법칙이나 원리를 말하였던 것은 아니다. 즉 뉴턴 물리학에서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유클리드 기학학에서의 ‘평행선 공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리’에는 무엇보다도 가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즉 그것을 실천하면 우주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경우에 한해서 ‘리’라고 한 것이다(Brook Ziporyn 참조).
대표적인 예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다. ‘공’은 그 원리를 체득하면 해탈을 이룰 수 있고 다른 존재와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리’이다. 그리고 ‘공’이라는 ‘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공공지리’, 즉 ‘공리’이다. 붓다는 이 ‘공리’를 몸소 깨닫고 중생을 위해 설파했기 때문에 중국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아울러 인도의 ‘불도(佛道)’가 유교와 같은 중국의 공식적인 ‘가르침’, 즉 ‘불교(佛敎)’로 격상될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 자극을 받아 성립한 성리학에서는 고대 유학의 ‘인(仁)’을 ‘리(理)’로 격상시켰다. 즉 맹자에서는 ‘인(仁)’이 타자의 아픔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라고 하는 인간의 심리현상으로 이해되었는데, 12세기의 주자에 가면 그것이 “우주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이라고 하는 우주론적 원리, 즉 ‘공리’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이 우주의 마음으로 확대된 것이다. “인(仁)은 사랑의 리(理)이다”[仁者愛之理]라고 하는 주자의 말은 이러한 변화를 말하고 있다.

‘공공’의 세속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쓰는 ‘공공성’이란 개념은, 앞에서 소개한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주론적 차원에서의 ‘공공’이 인간사회의 영역으로 한정됨과 동시에 동사에서 명사로 그 쓰임이 변질되어 탄생한 말이다. 이와 같이 ‘공공’ 개념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세기 초의 일본에서의 일이다. 야마와키 나오시에 의하면, 일본의 윤리학자 와츠지 테츠로(和辻哲郎)는 1930년대에 『윤리학』이라는 저서에서 ‘公共性’이라는 개념을 처음 썼다고 한다.
그런데 와츠지는 ‘공공’을 추상명사화함과 동시에 그것이 적용되는 영역을 ‘국가’로 제한시켰다. 즉 공공성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을 ‘국가’로 한정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도 ‘윤리’적 차원으로 축소시켰다. 주지하다시피 1930년대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전후로 이른바 ‘전시체제’에 돌입한 시기이다. 즉 국가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점이었다. 이때 탄생한 ‘공공성’ 개념이 ‘국가’를 핵심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결과 전통시대의 ‘리(理)’의 자리에 ‘국(國)’이 들어가게 된다.
이때 생겨난 말이 “멸사봉공(滅私奉公)” 즉 “사(私)를 멸하고 공(公)을 받든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공(公)을 위해서 사(私)는 희생되어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의 ‘공’은 이제 ‘리’가 아닌 ‘국’으로 제한된다. 그래서 ‘멸사봉공’은 달리 말하면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고 하는 국가지상주의적인 표어를 의미한다.
당시에 일본은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살 특공대를 만들어 미국과 싸우게 했는데, ‘멸사봉공’은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사용된 일종의 슬로건이었다. 또한 ‘멸사봉공’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를 다스렸던 일본 총독의 연설 속에 나오는 말로도 유명하다(〈이순신 장군이 ‘멸사봉공’? 뜻이나 알고 쓰나〉, 인터넷판 《오마이뉴스》 2012년 12월 5일자). 이 연설은 일본이라는 나라[公]에 대한 봉사[奉]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후에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게 되는데,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서, 또는 회사를 위해서, 또는 조직을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되어도 된다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公)’은 주로 ‘정부’나 ‘관청’ 등을 나타내는 말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게 된다. ‘공직자’, ‘공무원’, ‘관공서’, ‘공기업’, ‘공익’과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에 국가나 사회를 뛰어넘어서 모두가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 ‘공(公)’을 쓰는 일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공(公)’ 하면 곧바로 국가나 정부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아울러 이때부터 ‘공공’이라는 말도, ‘공공 기관’이나 ‘공공 정책’과 같이, 국가로서의 ‘공(公)’을 나타내는 말로 의미가 한정된다.
나는 이것을 ‘공공의 세속화’라고 부른다. 국가를 넘어선 우주론적 차원의 ‘공공’이 국가적 영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를 잇는 사상적 고리는 끊어지게 되고, 인간의 문제를 우주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하는 사고는 소멸하게 되었다. 흔히 근대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인간중심주의, 생태문제, 국가주의 등은 모두 공공의 세속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과제는 이 세속화된 ‘공공’을 어떻게 하면 다시 자연의 영역, 우주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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