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6

알라딘: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 고전으로부터 배운다

알라딘: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 고전으로부터 배운다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4
윤천근 (지은이),한국국학진흥원 (기획)글항아리2012-08-15

































Sales Point : 83

8.3 100자평(1)리뷰(5)

302쪽

책소개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내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 제4권. 이번 책에서는 동양의 선현들이 스스로를 향해 수없이 던졌던 ‘치恥’라는 질문, 즉 ‘부끄러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권모술수가 일종의 경쟁논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후흑학’이 자기합리화의 보루로 여겨지는 요즘, ‘부끄러움’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질문으로 던진다는 것은 왠지 퇴화한 꼬리뼈를 만지작거리는 멋쩍음마저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꼬리를 치켜드는 때가 없다. 정의의 실종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지난 2-3년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젊은 세대에 대한 나이든 세대의 안타까움으로 세대간 소통을 이뤄냈다. 만약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정의’를 묻지도 못했을 것이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지도 못했을 때문이다.


목차


책머리에_029

제1부 부끄러움이 이끌어가는 도덕의 길

1.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2. 부끄러움의 권능
3. 생각의 목표와 부끄러움
4. 바름의 목표와 부끄러움
5. 통합된 인격과 부끄러움의 잣대
6. 다른 이의 시선 앞에 세운 나의 부끄러움
7. 자신의 내면을 지향하는 비판의 칼날, 부끄러움
8. 부끄러움과 우리의 욕망
9. 함께하는 부끄러움
10. 강성한 의지와 나약한 인내 사이의 부끄러움

제2부 원전과 함께 읽는 ‘부끄러움’

제3부 원문





저자 및 역자소개
윤천근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56년 생. 2014년 현재 안동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는 <부끄러워야 인간이다>, <원시유학의 새로운 해석>, <노장철학의 현대적 조명>, <퇴계 이황은 어떻게 살았는가>, <퇴계이황과 도산서원>, <남인예학의 선구-정구> 등이 있다.


최근작 : <안동문화로 보는 한국학>,<한국학과 인문학>,<부끄러워야 사람이다> … 총 21종 (모두보기)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한국국학진흥원은 ‘전통을 이어 미래를 여는 국학의 진흥’이라는 목표 아래 전통 기록유산을 중심으로 민간 소장 국학자료의 체계적인 수집·보존과 연구·활용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목판 10만장 수집운동’을 통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조선시대 유교 목판을 보존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그런 기록유산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한국적 스토리텔링 소재를 발굴하여 콘텐츠 제작 현장에 제공하는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선현들의 지혜를 전승하고, 한문교육원과 유교문화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 www.koreastudy.or.kr
이야기할머니사업단 www.storymama.or.kr
유교문화박물관 www.confuseum.org
유교넷 www.ugy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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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한국의 종가, 그 현재와 가치>,<한국의 종가, 그 역사와 정신>,<만날수록 정은 깊어지고> … 총 7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공자, 맹자, 정호·정이, 주자, 퇴계, 남명, 율곡, 김시습
그들은 왜 하나같이 ‘부끄러움’을 말했는가
앎이 실천이 되고, 먹고살 길이 되며,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 됨은
바로 모두 부끄러움과 관련 있다
마음이 부끄러움의 노선에 순응한다면 모든 행위가 적절하게
바람을 갖출 것이다

유가儒家의 ‘치恥’사상 현대인의 윤리로 재탄생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내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 제4권으로 『부끄러워야 사람이다』가 나왔다. 이번 책에서는 동양의 선현들이 스스로를 향해 수없이 던졌던 ‘치恥’라는 질문, 즉 ‘부끄러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권모술수가 일종의 경쟁논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후흑학’이 자기합리화의 보루로 여겨지는 요즘, ‘부끄러움’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질문으로 던진다는 것은 왠지 퇴화한 꼬리뼈를 만지작거리는 멋쩍음마저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꼬리를 치켜드는 때가 없다. 정의의 실종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지난 2-3년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젊은 세대에 대한 나이든 세대의 안타까움으로 세대간 소통을 이뤄냈다. 만약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정의’를 묻지도 못했을 것이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지도 못했을 때문이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진화론의 법칙을 따르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마음의 물리학에 속하는 듯하다. 부끄러움이라는 꼭지점이 없으면 마음이라는 구조물, 더 나아가 사회라는 구조물 또한 허물어지는 그런 존재.
『부끄러워야 사람이다』는 부끄러움이 배면으로 밀려난 시대, 다시 한 번 그것을 개인과 사회의 윤리로 제대로 제시해보고자 한 시도이다. 그러기 위해 저자 윤천근 교수는 윤동주의 「서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부끄러움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펼치고 있다. 그것을 오늘날의 삶 속에서 재개념화하고 실천 윤리로 설계하고 있다. 이어서 『논어』 『맹자』 『대학·중용』부터 『근사록』과 『주자어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매월당과 퇴계 등으로 이어지는 유가儒家의 ‘치恥 철학’을 계보적으로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부끄러움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감정의 하나다. 윤동주에게 그 부끄러움은 그가 자청하고 있는 삶의 어떤 조건이다. 윤동주는 이 감정이 자기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 그는 그것이 자기 마음속 모든 영역에서, 이를테면 잎새에 이는 바람을 느끼는 지점에서도 움직일 수 있도록 그 의식을 설계하고 있다. 윤동주의 마음속에서 부끄러움이란 모든 가치를 드러내는 유일한 조건으로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마음이 부끄러움의 지도 노선에 철저하게 순응한다면, 일어나는 모든 생각이나 구현되는 모든 행위가 적절하게 바름을 갖추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목표와 현실 사이에 드러난 결핍으로부터 파생되는 정서다. 이것을 부끄러움이라는 감성으로 떠올리는 것은 총족을 전제로 하여 그 부족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이 짓는 태도다. 충족을 바람직한 것으로 전제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그 결핍이 부끄러움을 길어올리지 않는다. 따라서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그 결핍을 결핍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을 충족으로 채워놓고자 하는 다음의 노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태도라고 하겠다.
나아가 저자는 “부끄러움은 잘못을 범한 자리에서만 기능하는 자기반성의 소극적인 기제가 아니라 아무 잘못을 범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 적극적인 기제”라고 말한다. 마음에는 완성된 성인의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한 내용을 갖는 것으로 지금의 마음을 잘 떠올리기 전에는 원래 성인의 마음이란 없다. 그러므로 지금 잘 생각하고, 잘 행동하는 방법밖에는 최선의 도리가 없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전전긍긍하는 규율 작업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생각이 움직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부끄러움의 잣대가 작동하여 선의 씨앗이 꺾여 없어지지 않도록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서 있는 존재들이고, 같이 나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지향하는 도덕의 세상이 결국은 아름다운 인간사회라는 것을 전제하게 한다. 이런 전제가 실제로 움직인다면 우리 자신에게 주는 사랑만큼 타자에게 사랑을 표명하지 않는 지금의 내 마음은 우리 속에서 부끄러움을 불러내 그것에 의한 규율과 지도를 자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강성한 의지’와 ‘나약한 실천’ 사이의 부끄러움을 화두로 제시한다. 굳건한 의지를 마음속에 들여세우는 데 있어서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많이 있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이 굳건한 의지를 빈틈없이 끌고 나가는 실천력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원흉이다. 처음에는 날을 세웠던 의지도 시간이 흐르면 바래고, 무뎌진다. 인생은 찰나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과 사 사이의 오랜 시간 속에 있다. 인생의 긴 시간 속에서 굳건한 의지가 언제나 기능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나약한 인내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역시 그 인생 속에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은 어떤 도덕적 자아의 구현에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 곁을 떠나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오를 새롭게 하는 반성력으로 작용해야 하고 모자라는 인내력을 추슬러 세우는 채찍으로 작용해야 한다. 우리의 도덕은 이 의지와 부끄러움 사이에서 출렁거리며 형체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치恥의 사상사적 전개

△ 공자가 말했다. “옛사람의 말은 ‘몸소 행하는 것이 민첩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이인」)
저자는 성인의 말씀은 우리가 앎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에 집중된다고 강조한다. 우리 자신 속의 앎이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은 우리 마음이 실천하지 않고 있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갖는 것에서 마련된다.
△ 공자가 말했다. “다스리는 것으로 이끌어가고, 형벌로 바르게 하면 백성들은 벌을 피하기만 하면 부끄러워하지 않게 마련이다. 덕으로 이끌어가고, 예로써 가지런하게 만든다면 백성들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느끼고 스스로 바로잡아나갈 것이다.”(「위정」)
도덕은 최소한의 규율을 통해서는 자라나지 않는다. 도덕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규율할 때만 성장할 터전을 만들어낸다. 부끄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부끄러움, 우리 인격을 바르게 만들어나가는 부끄러움이 될 수 없다.
△ 맹자가 말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공경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시비를 따지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자함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로움이고, 공경하는 마음은예를 갖춤이고, 시비를 따지는 마음은 지혜로움이다. 인의예지가 나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디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구하면 얻을 것이고 버리면 잃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고자」 상)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자기애와 타자애 사이에서 소통되는 도덕정신이 그 조화와 균형의 질서를 갖추어내기 어렵다는 점과 연관되어 있는 덕목이다. 사람은 사적 존재이므로 자기애에 치중할 가능성이 언제나 크게 확보되어 있다. 그것을 타자애를 받아들여 희석시킴으로써 객관적인 인간애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작동하는 덕목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인간의 자기애 속에 마련되어 있는 위대한 인간이 되려는 근원적 지향, 즉 인간에게 도덕적 자아를 이루고자 하는 덕성을 견고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반성력이다. 이러한 반성력은 자아의 마음속에서 그 마음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덕성이라고 할 수 있다.
△ 군자에게는 ‘자신을 미루어 생각하는 도리’(혈구지도?矩之道)가 있다. 윗사람이 싫어할 것은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아랫사람이 싫어할 것은 윗사람에게 하게 하지 않고, 앞에서 싫어할 것을 뒷사람에게 먼저 하게 하지 않고, 뒤에서 싫어할 것은 앞사람에게 따르게 하지 않고, 우측에서 싫어할 것을 좌측에 바꾸어주지 않고, 좌측에서 싫어할 것은 우측에 바꾸어주지 않는 것, 이것을 ‘혈구지도’라고 한다.(『대학』)
다스리는 자의 도리는 매우 간단하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도 갖고 싶은 법이고, 자기가 하기 귀찮은 일은 다른 사람도 귀찮아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도리는 이미 다스리는 자의 경험에 드러나 있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 다스리는 자의 위세를 써서 좋은 것은 자기가 가지려 하고, 싫은 것은 신하와 백성들에게 미루어버린다면, 그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부끄러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다스리는 자의 마음이 부끄럽다면 바른 다스림이 행해지기 어렵고,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따라서 행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 군왕의 마음속에 자리잡는 부끄러움 속에 정치는 실종되기 마련이다.
△ 사람이 적절한 수준을 넘어섬에 있어서는 각각 그 종류가 다르게 나타난다. 군자는 항상 도탑게 대하는 데에서 절도를 잃고, 소인은 항상 야박하게 대하는 데에서 절도를 잃는다. 군자는 사랑이 넘치기 쉽고, 소인은 사랑을 너무 참아서 상처를 입힌다.(『근사록』 권12 「함근」)
군자의 마음은 도덕인의를 중심에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낼 때 그 도덕적 의지의 지원을 받아서 과도하게 드러내는 약점을 노출할 수 있다. 과도하게 드러난 사랑하는 마음은 군자의 부끄러움이 되고, 그러한 군자의 과도한 감정은 군자다운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다. 그렇게 흘러넘치는 사랑에 군자의 지향은 있으되 도덕은 없다. 이렇게 사랑의 도덕을 구현하는 데에 실패한 군자는 진실로 군자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다. 소인의 마음은 자아의 이익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므로 그 감정은 사랑을 길러내는 데에 항상 야박하다. 그 야박함은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순자가 말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다. 어리면서 어른을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것, 천하면서 귀한 이를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것, 어리석으면서 현자를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것, 이것이 사람의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소학』 「명륜」)
순자가 말하는 위의 세 가지 인간답지 못한 일에는 계급주의의 논리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상황에 맞춰 조정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속에서 움직이는 정신은 언제나, 누구에게서나, 도덕을 배워서 닦는 것이 인간다운 일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오늘날에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덕목은 오늘날 더욱 중요성을 지닌다고 할 수도 있다. 요즘 시대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도덕의 눈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도덕적 행위를 보고도 우리의 도덕적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도덕이 사라지고 이익이 앞서서 끌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 시대를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이익이 앞세워지는 시대가 편리함은 보장해주겠지만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평안은 도덕이 구현되는 사회에서만 주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도덕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지 못하는 오늘의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시와 술을 벗하여 30년을 지내왔네. 주변 사람들은 잘못 보고 선으로 도망갔다 하지. 푸른 구름 한 덩이 한유한 날에 던져놓고 한바탕 맑은 생활 즐기며 온전하지 못할까 걱정하네.(『매월당집』 권1 「자소」)
풍류의 인물 김시습, 그는 현실의 벽에 갇혀 스스로 울타리를 넘어 뛰쳐나가는 선택을 한다. 그의 벗은 술과 시다. 김시습의 그런 생활은 그의 현실적 능력을 주목하는 이들에게는 비극적인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고작 선으로 도망한 것인가 묻는다. 그 손가락질 앞에서 부끄러운 이는 김시습이 아니다. 그렇게 손가락질하는 자가 부끄러움을 갖는 사람이다. 손가락질하는 이는 그런 부끄러움을 통해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에게 지시한다. 현실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그는 분명히 하는 셈이다. 그의 부끄러움이 온전히 제 길을 찾아갔다면, 그는 그저 현실의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좋은 현실의 사람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의 손가락질 밖에 자리잡고 있는 김시습이 그냥 울타리를 넘어간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울타리 밖에서 온전한 삶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래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손가락질당하고 있는 사람이 온전한 삶의 미덕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손가락질한 사람은 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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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이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적어도 내가 읽은 이 책의 1장은 부끄러움에 대한 도덕적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밋밋하다는 느낌. 여기에는 레비의 치열함은 물론, 당대 한국문학이 도달한 성취도 찾기 어렵다. 왜 이 책은 높은 평가를 받았을까.
생쥐스뜨 2016-01-1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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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오래된 질문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 스스로 부끄러움을 말하는 것이 사실 부끄럽다. 과거 선인들에 비해서 우리가 아무리 인격수양을 하고 고전을 읽는다 한들, 선인들이 닦던 인격수양에 따라가려면 아마 발톱의 때에도 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너무 착한 것에서 오는 부끄러움은 피하고 싶다. 지금은 너무 착한 것도 죄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는 부끄러움이 미덕이 아닌 심지어는 죄악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일일 시스템이 자본(돈)또는 물질(이)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부터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본의 무제한적인 이윤 추구를 방치한 결과이다. 맹자가 "온 나라가 이를 추구하면 그 이 때문에 산산조각이 날 것이요, 온 집안이 이를 추구하면 그 이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내팽개칠 것이다.‘ 라고 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인정하기 싫지만, 맹자가 경고하였던 사회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이 책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는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내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시리즈로 제4권에 해당한다. 사실 부끄러움이란 아주 오래된 미덕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끄러움이란 저 멀리 던져야 하는 것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잣대는 도덕적인 것이며 도덕이야말로 인간의 양식과 연결되어 있고, 이것에 거리낌이 없을 때 인간의 행복감이 크게 향유될 수 있다고 한다.




부끄러움이란 이상의 눈을 가지고 현실의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자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 감정이다. 이 감정을 갖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의 현실에 만족하고 있거나 혹은 내 기적을 만들어가기에 아무 관심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책의 구성은 3부로 나누어져있고, 1부는 부끄러움에 관한 저자의 인문학적인 철학적 사색을 들을 수 있으며, 2부에서는 『논어』 『맹자』 『대학·중용』부터 『근사록』과 『주자어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원전과 함께 밝히는 ‘부끄러움’을 통한 자아 성찰의 시간을, 3부에는 원전을 실어놓았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구한다. -논어 6-



이상하게 사람이라는 종자는 ‘나’를 볼 수 없고 남을 보게 되어 있나보다.하루의 반 이상이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남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다가 실망하면 남탓만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구절 하나로 진정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기분이다. 모름지기 치열한 자기 성찰이란 자기 자신을 고민하고, 자기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며 타인을 가르침을 주는 존재로, 부끄러움을 촉발시키는 존재로, 간접적인 작용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임에도 남이 잘못으로 치부하곤 한다. 위 구절에서처럼 군자는 부끄러워하는 것도 자기의 존재성의 어떤 부분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도 자기 존재 속에서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공자가 말했다. “현자를 보면 바르게 할 일을 걱정하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스스로를 반성한다.” -논어 1-







타인의 시선에 기대서 위안을 찾고, 진실한 자아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저자는 군자가 타인의 시선 앞에 자신을 놓고 있다면 그는 진실한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며, 가장과 허위로 자신을 꾸며서 보여주고 있다면, 그에게 도덕의 길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라 한다. 군자는 타인에게서 부끄러운 것을 찾아서 그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돌아가고, 타인에게서 자랑스러운 것을 찾아서 그 자신의 자랑스러운 것으로 환원시켜내며 진실한 자기 자신과 대면하면서 스스로의 이상을 목적지로 삼아나가는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이 언제나 절실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부끄러움(의)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사양하는 마음(예)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시비를 따지는 마음(지)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가끔 흔들릴 때가 있다. 그것은 밥벌이의 지겨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을 때가 찾아 올 때면 고전이 주는 말들이 이 흔들림을 잡아줄 때가 있다. 고전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내면의 자아를 투명하게 반추하여 준다. 모든 문제는 결국 '나'로서 비롯된다. 고전은 타인을 이해하게 해주고 사람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을 주지만 . 그 모든 것은 바로 ‘나’를 가르키고 있다. 그래서 옛 성인들이 스스로를 닦기 위해 공부하고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게 아닐까? 대학의 모든 가르침의 기본은 수신修身이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수신(자신의 몸을 닦는 일)이 먼저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 <이주현목사의 대학중용 읽기>에서는 수신이라는 기둥에 격물,치지,성의,정심이라는 뿌리가 있고 그 위에 제가 , 치국, 평천하라는 가지와 열매가 대학이라는 나무라고 하였다. 나무의 깊은 중심이 수신인 것처럼 모든 것은 중심인 '나'의 문제이다. 결국 오늘 남으로 인해 흔들리던 나를 다잡으며, 치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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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09-04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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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됨의 기본 요소, 부끄러움



윤동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부끄러움에 관한 책을.

윤동주는 부끄러움의 시인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시'만 보더라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고 있다.

이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왜 사람에게 중요한지를 윤동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광수와 비교를 하면서 말이다.



부끄러움을 다른 말로 하면 성찰이다.

성찰이 바로 우리를 사람답게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치열한 자기 성찰, 이것이 바로 부끄러움의 다른 모습이다.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성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자기 자신을 남의 자리에 놓아야 한다. 남의 자리에 놓인 자신을 엄정하게 평가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자기 성찰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을 통해 부끄러움이 나온다.

부끄러움을 알면 고치게 된다



속된 말로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싸가지를 사가지로 적어놓고 보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요소 4가지를 갖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4가지는 무엇일까?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일 수도 있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 아니던가.

또 4가지를 예의와 염치로 볼 수도 있다. 결국 인의예지나 예의와 염치가 없는 사람은 사람 축에 들지 못하고 비난을 받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요소가 바로 부끄러움이다. 그러한 부끄러움은 성실과 끈기를 지녀야지만 유지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지니고 산다는 일,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에 관한 옛사람들의 글을 모아놓았다. 단지 공자와 맹자의 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도 골랐으며, 또한 중국의 유명한 학자인 정호, 정이, 주자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자인 김시습, 이황, 조식, 이이의 글에서도 골랐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아울러 부끄러움에 관한 글을 모아 그것에 대한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히 부끄러움에 관한 '고문진보'라 할 수 있다.



부끄러움, 사람됨의 기초일텐데... 가끔 보면 부끄러움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것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에게서. 그런데도 그들은 당당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짐승의 모습임을 알 수 있을텐데...



글을 읽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고 했는데... 글조차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현실.

우리, 사람됨의 기준으로 '부끄러움'을 두자. 저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두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남을 보는 기준만이 아니라, 나를 보는 기준으로도 '부끄러움'을 두자.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가. 과연 나는 자기 성찰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부끄러움에 관한 '고문진보'

방대한 고전을 다 읽기 힘들 때 부끄러움에 관해서, 성찰에 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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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2-09-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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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야 사람이다















학창 시절 의식족지예절,예의염치 등에 대해 배우면서 그것들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른이 되어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상과 삶의 현실 사이의 결핍에서 파생되는 정서적 반응이 '부끄러움'이 아닌가 많이 생각한다.기본적인 삶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먹고 입는 것이 제대로 갖춰진 연후에 예절도 생각하고 염치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요근래 들어와서는 사회적인 지위 및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도층들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는 것이 문제이다.또한 높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 나가려는 파렴치한 행위도 '돈'으로 해결하려는 저열한 행태를 보여 주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일반인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가질 텐테 지도층에 있는 자들은 목에 죄를 뉘우치는 커녕 뻣뻣한 자세로 관중들 앞에 변명과 불운이라는 자기 방어 및 변호에만 급급하니 사회구성원 간에 불신의 벽은 높을 수밖에 없고 그러한 사횓일수록 밝은 내일을 기하기가 힘들다고 본다.







부끄러움이란 이상의 눈을 가지고 현실의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자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 감정이다. - 본문에서 -









그런데 인간은 인간 관계 및 사회 조직을 통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럽다고 여긴다.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약점 및 치부(결핍)를 드러내지 않은 채 현상을 부풀리고 과시하려는 경향이 짙다.그것은 자기를 분식(粉飾)하고 가장한다.인간에게는 집단의 삶이 있고,집단 속에서의 평판이 중요하고 자기 향상을 위한 이상적 묙표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개인의 의식 지평 뿐만 아니라 집단의 하늘과 같은 형체의 훈장으로도 표식되기에,개인으로서 집단에 관심을 갖고 집단의 삶에 개입하기도 하고,집단으로서 개인의 삶을 평하가혹 그 삶에 개입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 사회 개개인이 목표를 달성하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멋진 모습'으로 자리매김 받고 싶어하는데 이것은 생존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 도덕성과 관련 지어지며,도덕은 인간의 위엄이 문제되는 자리이며 생존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여유를 잃게 되는데 인간다움,인간의 위엄을 구현키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면 도덕적으로 완성된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가 있다.



나아가 도덕은 개인 차원에서는 인격의 문제가 되겠지만,사회 차원에서는 정의의 문제이다.사회와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 타인의 마음과 행동은 그저 스쳐 보내는 정도라면 마음 속의 부끄러움은 반성력을 행사하기 힘들며,타인의 생각과 행위에 둔감한 의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위에 대해서는 치열성을 발휘하기 힘드리라 생각된다.







부끄러움을 제대로 알고 현실에 적용한 선현들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며 도덕과 윤리의 근본이란 무엇인지를 새삼 깨우치게 된다.도덕적 차원에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도리가 군자의 덕목이라면 소인은 이해관계로 저울질을 하게 되는데,공자는 배움을 통해 덕성을 기르고 도덕을 구현했으며,맹자는 부끄러운 마음은 의로움이라 했으며,주자는 사람의 마음과 성품,이치에 대한 유학적 설명을 완성하고,남명 조식은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유지하기를 꿈꾸었다.







하늘이 내려준 성품과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기질을 갖고 열정적으로 배워 세상을 교화해 나가되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참된 인간상이 아닐까 한다.목표와 현실에서 오는 결핍에서 느끼는 감정이 부끄러움인데 이를 무시하고 후안무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사회 지도층은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과 성찰을 깊게 해야 할 것이다.자연적인 순리를 거스르고 탐욕과 욕망으로 인한 제반 행위는 일반인들의 눈과 귀를 멍들게 할 뿐이다.수주어정,유어족하(水注於頂,流於足下)라고 하지 않았던가.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부끄러움을 잃고 뻔뻔하고 도도하게 행동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회 지도층으로 인해 대다수 국민들의 심성에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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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 2012-09-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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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사람이라는 것은 뭘까요?
아마도 수많은 이야기들과 정의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인 "부끄러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부끄러움에 관해서 생각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라는 시가 아닐까 싶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기를...
사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잘못을 하게 되죠.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런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느냐,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
그것이 바로 사람으로서 느끼고 있는 부끄러움이 아닐지 모르겠어요.
선을 알 수 있는 것도 악이 있기 때문이고, 이런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에 우리들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부끄러움조차 없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배우고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이런 부끄러움조차 없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옛 선현들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부끄러움은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죠.
그런 반성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아닌 바로 미래를 설계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말이죠.
또한 이런 부끄러움을 통해서 우리들은 도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부끄러움이야 말로 마음 속에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데 요즘은 이런 인성교육보다 오로지 문제 하나를 더 맞추기 위한 지식만을 강요하는 게 아닌지 묻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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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루 2012-09-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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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들은 왜 하나같이 부끄러움을 말하는가? [恥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성현들은 왜 하나같이 부끄러움을 말하는가? [恥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앎이 실천이 되고, 먹고 살 길이 되며,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 됨은 모두 부끄러움을 아는데서 시작된다. 성현들은 자기성찰을 통해 삶의 나아갈 길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지식인의 부끄러움을 우리에게 가장 잘 보여주었던 사람은 시인 윤동주이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부끄러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전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그의 시는 오늘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윤동주시인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부끄러움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왜 지식인의 중요 덕목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부끄러움은 나와 세상의 잘못을 판단하는 성찰의 도구이기때문이다. 우리는 바름의 목표를 가지고 살려고 하지만 욕심으로 인해 세상과 분리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삶에서 부끄러움은 세상과의 분리된 삶을 반성하고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 통합의 인격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단지 머리 속에 많은 것을 담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진정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함께 합일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가져야 하는 이유이며 성찰이 없는 지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이책은 이러한 지식의 위험성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동양고전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성현들이 왜 부끄러움을 말하고 있는 지를 얘기하면서 지식인이 나아갈 바를 생각하고 있다. 공자와 맹자, 정호, 정이, 주자, 이퇴계, 남명, 이율곡, 김시습의 원문과 해석을 통해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생각해보게 한다.

동양고전의 해석들이 대부분 저자들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전집의 해석을 주로 하는데 비해 이책은 성현들의 일관된 생각인 부끄러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동양고전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매우 재미있는 시도라 생각한다. 그것은 물론 성현들이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하겠지만 현대인에게 매우 필요한 주제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화두 중 하나가 부끄러움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가지는 부끄러움의 의미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려 하는 것이다.










이책을 통해 생각해보는 것은 왜 서양의 학문은 합리주의를 지향하는데 비해 동양의 학문은 통합과 합일의 정신을 강조하게 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서양의 정신이 매우 커다른 인류문명의 진보를 가져왔으며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인 파괴를 통해 생산된 풍요는 소외된 사람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새로운 사회를 보는 사람들은 다시 동양의 지혜를 통해 합일과 새로운 방향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떤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진정 부끄럼없이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면서 삶을 바라보는 합일의 정신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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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씬고래 2012-09-0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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