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이 무속인인가?] 무교는 무죄
일반 언론은 물론 기독교 언론과 목사들이 천공 등을 무속인으로 칭하고, 무속/무교가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한다고 비판한다.
뭐가 무속/무교이며, 뭐가 무속인/무당/무교인인지, 그 범주화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면 좋겠다.
천주교는 19세기 유교 정부와 주자학을 받드는 양반들에 의해 혹세무민하는 미신/사술/사교로 여겨졌고, 무부무군의 천주교인은 여러 번의 박해를 통해 10,000명 가까이 처형되었다. 뭐가 이단사술인가?
천주교나 개신교는 포교 초기에 한국의 무교를 종교가 아닌 '미신'으로 낙인 찍었다. 경전, 사원/예배당, 목회자 조직 등 눈에 보이는 체제가 없으면 종교의 범주에 넣지 않았다.
일제는 무속을 한국인의 종교로 못박고, 한국이 1,000년 이상 정체하는 영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여성의 신앙, 전근대적 신앙, 미신적 신앙으로 낙인을 찍었다. (정체성론) 그리고 자연종교에서 더 발전된 남성 사제를 가진 신도로 대체하려고 했다. (근대화론) 그들은 조선 멸망의 한 원인을 민비의 무속화라고 주장했고, 지금도 식자들의 글에 민비와 비선실세 진령군의 관계를 가지고 와서 한국 정치를 비판한다. 일제 식민지사관을 비판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포로가 된 꼴이다. 진령군 역시 무당이라기보다는 도교쪽 사이비 예언자였다. 민비는 1887-94년 앨러즈 의사(간호사), 언더우드 부인 등 선교사들과 친하고 복음을 듣고 기독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 면도 있다는 뜻이다.
박정희 정권도 동일한 노선에서 새마을운동을 통해 미신적 무속을 청산하려고 했다.
이러한 기독교-일제-박정희정권의 남성적, 군사적, 조직 종교의 힘으로 억압하고 미신으로 낙인한 한국 무교는 핍박 속에서도 민중의 종교로 살아 있다. 한국 개신교 목사들이 가진 무교에 대한 지식은 그처럼 매우 천박하다. 혹 공부를 좀 한 목사도 두 세대 전에 나온 유동식 교수의 무교 이해에 머물러 있다. 만일 누군가가 60년대 한국 개신교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현재를 진단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난 10년 동안 출판된 한국 무교에 대한 논문 한 편이라도 읽으면 좋겠다. 한국 무교는 지난 30년 동안 급변했다.
과연 도사 노릇하는 천공 등이 무당/무속인인가? 한국 종교 전통에서 남자 무당이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선도/도교 계열에 남자 도사들이 많았다. 물론 유불선이 습합된 한국의 다종교 상황에서 일부 불승은 도교를 실천하고 무속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불승을 보고 무당/무속인이라고는 잘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1) 도교의 경전을 공부하고 단전 호흡 등을 하며 도를 닦았던 도인들을 무당/무속인이라 할 수 없다.
2) 도교의 경을 암송하며 축귀하던 맹인 판수를 우리는 무당/무속인이라 하지 않는다.
3) 유교와 도교 전통의 일부인 풍수하는 풍수가를 무당/무속인이라 하지 않는다.
4) 점을 치는 역술인(점쟁이)도 무당과 다르다.
5) 정치적 도참가도 다른 부류였다.
이처럼 남성 도인, 판수, 풍수(쟁이), 역술인, 도참가 등은 무당과 다른 부류의 종교인들이었다. 지금은 더 다양하다. 모두 무속인으로 퉁치면 곤란하다.
무교를 유사종교도 아닌 미신으로 분류했던 일제 총독부의 학문적, 행정적 한국 종교 탄압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해방 후 여러 정권과 기독교는 여전히 한국의 민속 종교를 통으로 싸잡아 미신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기독교를 통으로 싸잡아 서양 귀신을 섬기는 반민족적 집단으로, 조상신(세습해 준 아비 목사)을 섬기는 제사 집단, 거대 예배당을 짓고 복을 비는 우상숭배 집단으로 몰아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타종교를 비판하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조선 시대 불교가 지금 불교가 아니고, 조선 시대 유교가 지금 유교가 아니며, 1903년 개신교가 지금 개신교가 아니듯, 100년 전 무교가 지금 무교가 아니다.
교회가 이미 기복신앙 집단, 미신적 집단이 되어 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부터 보기 바란다.
참고) 무속보다 가짜 예언이 문제, 202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