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30

2023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전개 주요섭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전개

-‘생명운동가’ 김지하를 기리며



주요섭(생명운동가)



1. 다시, 왜 김지하와 생명운동인가?


2. [1980년대]생명사상의 구성 생명운동의 태동 

1)로터스상 수상 연설과 원주보고서

2)생명사상의 구성과 정립: : 이변비중의 차원변화

3)생명운동의 근거지 만들기


3. [1990년대]생명운동의 양 날개 

1)개벽과 생명운동

2)생명정치운동의 실험

3)생명문화운동의 전개


4. [2000년대]생명운동의 차원변화

1)생명과 평화의 길 

2)세계생명문화포럼과 생명사상·생명운동의 전지구적 확장

3)촛불과 화엄개벽의 꿈


5. 생태파국시대의 생명운동과 흰 그늘의 길




1. 다시, 왜 김지하와 생명운동인가?


새삼스러울 수도 있다. 김지하(1941-2022)의 생애 후반 40년은 의문의 여지없이 심원한 생명시인이자 생명사상가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오늘날 김지하의 감각과 사유는 한국  생명운동 , 나아가 한국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다시, ‘김지하와 생명운동’인가? 왜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관계를 다시 질문하려 하는가? 오늘의 초점은 ‘생명운동가’ 김지하이다. 김지하는 분명 시인이었고 생명사상가였지만, 또한 김지하는 ‘생명운동가’였다. 스스로 그것을 자임했거니와 그의 폭넓은 활동은 생명운동가라는 말에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김지하는 이미 “감옥 안에서 생명운동을 결심했다”고 말하고 있다(『흰 그늘의 길3』). 그의 생명사상은 생명운동의 실천과정에서 더욱 깊고 넓어졌으며, 또한 섬세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부가 필화(筆禍)나 설화(舌禍)로 격발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지하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서있을 때에도 생명사상을 품고 있었고, 생명운동의 감각으로 행동했다. 예컨대, 그는 1975년 양심선언에서 “동학의 속삭임”을 언급했고, 1976년 최후진술에서 “시천주/양천주/체천주” 등 동학의 언어를 빌어 그의 민주화운동이 ‘천주(天主)운동’이었음을 밝힌다.

  이 글의 목적은 ‘생명운동가’로서의 김지하를 조명하는 것이다. 시인이나 사상가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운동가’ 김지하의 면모를 관찰한다. 한국 생명운동 40년 역사에서 김지하는 간과되었다. 감옥에서의 극적인 생명체험 끝 생명사상을 태동시킨 것은 물론 인정되고 있지만, 대체로는 1991년 ‘죽음의 굿판’으로 기억되고, 여성 대통령 지지자로 언급된다. 김지하에게서 열정적이고 치밀한 사회운동가를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이변비중(離邊非中)의 차원변화’ 와 ‘초월적 돌파’ 를 위해 용맹정진한 ‘생명운동의 전사’였는지도 모른다. 환경부 직원들 앞에서 ‘생명운동’을 ‘환경운동’과 구별했고, 서유럽의 근본 생태주의운동과도 다르다며 각을 세웠다.  


“나는 환경운동과도 다르고, 근본 생태주의운동과도 또 다른, 생명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글에서는 김지하의 생명사상이 처음으로 문자화된 1981년 로터스상 수상 연설문으로부터 시작해 생명운동가로서 절정의 활동력을 보여준 2000년대까지 생명운동 및 사회적 활동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이 작업을 통해 한국 생명운동사에서 ‘생명운동가’ 김지하가 재조명되고, 나아가 한국 생명운동의 잠재력이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단, 이번 작업은 ‘김지하와 한국 생명운동’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보는 시론적인 작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활동과정과 활동내용에 관한 연구는 향후의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이글에서 ‘율려학회’와 ‘세계생명문화포럼’ 등 김지하의 생명문화운동 부분은 스케치 머물고 있음을 밝힌다.


2. [1980년대]생명사상의 구성 생명운동의 태동


생명운동은 물론 사회운동으로서 ‘집합적 행동’이고 사회적 소통의 형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 생명운동의 태동에는 가톨릭과 원주라는 종교적·지역적 배경이 엄존했다. 그러나, 그것을 담론으로 구성하고 서사를 창조해낸 것은 분명 김지하라는 ‘인물’ 이었다. 1980년대 한국 생명운동의 태동기, 김지하는 고유의 생명사상을 주창·구성·정립하고, 생명운동의 근거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로터스상 수상 연설문과 원주보고서


”나의 생명운동 제안은 사실상 그날의 원주 가톨릭센터 이층 수상식장에서였다. 명시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그 내적 흐름은 그러했다.“(『흰그늘의 길3』, 41)


김지하는 광주학살의 ”비참과 죽음의 공포“가 사람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1980년 12월 석방됐다. 6년여만이었다. 그리고, 1년 후 1981년 12월 김지하는 로터스상 수상 연설을 통해 ‘생명의 세계관’을 제안한다. 이 상은 1975년 김지하의 감옥 시절에 이미 수상이 결정된,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 수여하는 문학상이었다. 김지하의 고백에서 보았듯이, 이 연설문 안에 생명사상의 핵심이 다 들어있었다. ‘생명의 세계관’과 ‘생명의 존재양식’이 명시되고, 생명의 존재양식, 즉 생존양식은 ‘공동체’적이면서도 ‘영성’적이라는 점이 적시된다. 그리고, 후천개벽과 음(陰)개벽을 천명한다.  


“우리는 이 비참과 죽음의 암흑 한복판에서 그 암흑이 지닌 양면성(兩面性), 암흑의 의미, 그 모순의 신비를 발견함으로써 비참과 죽음의 암흑 그 자체를 그대로 뒤집어 유럽인과 모든 형태의 민중의 적(敵)마저도 포함한 전 인류와 전 생명계에 찬란한 부활을 가져다 줄 세계사적 대전환을 이루어야 할 역사적 책임을 걸머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존엄한 생명의 존중과 사랑’이라는 보편 진리를 생활적으로 구체화시키고 새롭고도 폭 넓은 세계관을 창출해내야 하며 영성적(靈性的)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새로운 생존양식을 창조해내야 합니다. 인간과 자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결정적인 친교와 평화를 성취시킬 생명의 세계관, 생명의 존재양식을 출현시켜야 합니다.”(강조는 필자)


이뿐만이 아니다. 놀랍게도 김지하의 ‘개벽사상’과 ‘전환담론’이 이미 로터스상 수상 연설문에는 내장되어 있었다. 나아가 강증산의 ‘음개벽’을 빌어, 여성의 시대를 선포한다. 


“현대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시대이며 음개벽(陰開闢)의 때입니다. 이제까지의 인류문명사는 선천(先天)시대였고 음과 양이 갈등하는 시대, 즉 양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중략)  이 전환이 곧 부활이요, 이 전환이 곧 단(斷)이며, 이 전환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한국 민중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체 민중이 수행해야 할 세계사적 책임의 내용입니다. 이 대전환은 무엇보다도 먼저 정신개벽, 즉 문화적 대변혁을 전제로 합니다. 전환과 변혁의 주체는 물론 민중입니다.  (중략)  오늘날 후천개벽의 시대에는 음과 양이 조화하는 시대, 즉 음이 지배하기 시작하는 시대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대동을 이루는 것, 즉 '여성적인 것'이 그 지배를 넓혀가는 역사이며 새로운 형태의 모권(母權)이 중심으로 되어가는 문화의 때요, 해원과 상생의 때입니다.“(강조는 필자)


  그리고, 이듬해인 1982년 봄, 드디어 ‘생명운동’이라는 말이 적시된 문서가 발표된다.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이하 ‘원주보고서’)이란 문서가 그것이다. 이 문서는 ‘생명운동에 관한 원주보고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197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으며 지역협동운동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던 원주의 사회운동가들이 이 문서를 통해 사회운동의 방향전환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원주보고서」는 개요, 본문, 각론의 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요’가 1985년 출간된 『남녘땅 뱃노래』에 「삶의 새로운 이해와 협동적 삶의 실천」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은 순수하게 김지하의 글로 보인다. 본문과 각론은 원주캠프의 좌장이었던 장일순을 비롯한 원주의 활동가들에 의해 보완되거나 공동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문서 앞의 로터스상 연설문과 달리 가톨릭적 언어로 쓰여있는데, 이 문서가 공식적으로는 가톨릭 원주교구 사회개발위원회의 활동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문서에서 김지하는 당대를 ‘생명위기시대’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협동적 삶으로의 전환’과 산업문명의 쌍생아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문명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밝힌다. 그리고, 유물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전통적인 사회운동 노선에서 ‘생명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으로의 전환을 선언한다. 

  물론 키워드는 ‘생명’이었다. 이때 생명은 ‘이념’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와 같은 이념의 환상을 깨뜨리며, 고통과 죽음의 생명세계를 알아차리게 했다. 기존의 사회운동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차원의 사회운동의 길을 제안했다. 그리고, ‘생명운동이라는 희망’을 선언한다.


“제3세계 민중자신을 비롯한 전 인류와 전 생명계, 전 우주적인 생명의 부활, 해방, 완성을 향한 세계사적 대전환에 대해 제3세계 민중운동이 짊어진 역사적 책임의 내용이 그 확실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광활한 대륙에서, 수십억 민중의 일상적인 영성과 생존 속에서 생명운동이라는 대전변이 일어나야 하고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이야말로 죽음에 직면한 전 인류 전 중생의 유일한 희망이다”.(강조는 필자)


  「원주보고서」 이후 생명운동은 스스로를 다른 사회운동들과 구별하면서 자신을 생성해갔다. 조선 말 동학이 서학 및 성리학과 싸우면서 자신을 정립했듯이, 생명운동은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진보와 보수 양쪽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만의 사회운동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이변비중(離邊非中), ‘양끝’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었다. 새로운 범주, 도식, 패러다임으로의 ‘차원변화’였다.


2)생명사상의 구성과 정립: 이변비중의 차원변화


김지하의 관점에서 생명운동으로의 ‘전환’은, (생명체험에 의거한 생명사상의 통찰이 그렇듯이), 단순히 ‘방향바꾸기’가 아니었다. ‘차원변화’였다. 그리고 그 설명의 논리가 원효의 화쟁사상으로부터 얻은 ‘이변비중(離邊非中)’ 개념이다. 이는 「원주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내내 결정적인 화두가 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넘어서기라는 실천적인 과제이기도 했다. 


“생명의 진리는 중도다. 그것은 양쪽 가장자리를 떠나면서도 가운데가 아니다(離邊非中). 그것은 모두(全)이며, 모든 것이 생명의 씨앗임(處處皆佛)을 믿는 것이며 이 믿음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실천(慈悲行)이다. 제3세계 민중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다같이 떠나면서도 그 중간길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것, 어떤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모든 사람 속에 활동하는 반생명적 경향을 반대하고 모든 것, 모든 사람 속에 숨은 채 드러나는 생명의 씨앗을 현실적으로 꽃피우는 일이다. (중략)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 해방하고 반생명에 저항하다 죽고 다시 부활하여 스스로 확장함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키고 체제 자체의 역사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근원적으로 철저히 소멸시킬 전면적인 부활과 해방과 개벽을 가져오는 변혁운동이며 동시에 자비와 사랑의 운동인 것이다.”(강조는 필자)


로터스상 수상 연설문과 「원주보고서」를 통해 ‘생명의 세계관’이 제안되고 생명운동으로의 차원변화가 이루어진 후, 김지하는 『대설 남』을 통해 생명사상의 한국적 원형을 판소리 형식을 빌려 형상화한다. 그리고 1984년 출간된 이야기 모음집 『밥』과 1985년 출간된 『남녘땅 뱃노래』(특히 2부)를 통해 그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론의 핵심내용이 구성되고 정립된다. 1989년 「한살림선언」을 포함해, 이후의 논의는 이들의 변주, 혹은 심화·확장이라고 말해도 아주 잘못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아래 『밥』과 『남녘땅 뱃노래』(2부)의 목차가 이를 증거한다. 


『밥』의 목차


창조적인 통일을 위하여; 〈로터스상〉수상연설, 

인간 해방의 열쇠인 생명

일하는 한울님

나는 밥이다

천지굿

똥 또는 광대

생명의 담지자인 민중


『남녘땅 뱃노래』(2부)의 목차


삶의 새로운 이해와 협동적 삶의 실천 

인간의 사회적 성화(聖化)

은적암기행

구릿골에서

남녘땅 뱃노래

앵산기행

민중문학의 형식문제


그리고, 1985년 「민중문학의 형식문제」를 통해 ‘신명’의 예술론을 펼친 김지하는 1986년 발행된, 한국전쟁 당시 죽임당한 원혼들의 해원을 노래한 시집 ‘검은 산 하얀 방’ 서문에서 ‘신명의 생명사상’을 대답한다. 김지하는 스스로 묻는다. “그 소리, 속으로부터 울려나오던 그 소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그 무엇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조짐인가? 이런 일은 무슨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인가?” 그리고, 김지하는 스스로 답한다. 


“이 물음에 대답할 자는 오직 하나─

모든 것을 아우르며 모든 것을 놓아주며 모든 것을 살아 뜀뛰게 하는 활동하는 무(無), 신명─

지금 여기 죽임당하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솟구쳐 출렁거리며 모든 존재를 죽임에서부터 살려내고 인간의 사회적 삶과 내적인 삶,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 무생물, 물질과 기계까지도 거룩하게 드높이고 서로 친교하고 공생하고 해방하고 통일하여 ‘한울’로 살게 하는 가없는 저 화엄의 바다, 그 약동하는 생명의 물결뿐이리라.”


3)생명운동의 근거지 만들기


신명은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어떤 힘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게 하는 힘‘에 대한 체험적 통찰이며, 그러므로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신명’의 생명사상이다. 그렇다. ‘신명 없는 노래’는 ‘죽은 노래’가 되고, ‘신명 없는 노동’은 ‘죽은 노동’이 된다. 생명운동은 곧 ‘신명 살림 운동’이고, ‘신명 나는 세상’이 ‘생명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신명 나는 세상’은 저절로 이루지지 않는다. 김지하에게 생명운동은 “인위적이고 자각적이며 조직적인 것”이다. 생명운동은 ‘인위적 무위’일 수밖에 없다. 생명운동의 역설이다.


“생명운동은 인위적이며 자각적이며 조직적인 것입니다. 생명운동에 인간의 역사적 사회적 생명, 즉 민중생명의 인위적이고 능동적인 자기회복운동 속에서 자각적으로 진행됩니다. 전 우주중생의 생명운동이란 현실적으로는 인간의 인위적인 죽임, 즉 억압과 분단과 왜곡 소모 파괴 약탈 오염 변질 멸종 등에 대한 저항을 민중생명의 인위적인 자기회복운동 속에서 진행한다는 이야기입니다.”(『김지하전집1』, 「인간의 사회적 성화」)


생명운동은 신명나는 활동이고 생명의 결대로 사는 삶과 사회를 지향하지만, 그 역시 사회운동인 이상 하나의 인위적 사회기획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지하는 끊임없이 조직을 시도했다. 특히 생명운동의 초창기 ‘생명운동의 근거지’ 만들기가 절실했다. 전국 곳곳에서 실현지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나는 전부터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고, 이제는 낙향하여 생명과 영성과 지역공동체운동을 새로운 시작하려는 높은 뜻이 있었다.”(『흰그늘의 길3』, 137)


김지하는 1985년 여름 전라도 해남으로 이사했다. 원주에서 빚어진 여러 가지 “불화와 집안의 내적 갈등에서 벗어나고 악화되는 신병치료와 생명사상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원주를 떠나면서 가톨릭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땅끝 해남은 김지하 생명사상의 또 다른 계기이기도 했지만, 김지하 생명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애린』 연작에서 보여지듯, 새로운 것은 항상 끝에서 시작된다. 수운 최제우가 ‘하늘님체험’을 체험하고 자신의 깨달음을 펼치다 눈을 피해 전라도 남원에 갔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남접의 씨앗을 뿌려졌듯이 김지하는 해남의 아우들에게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이는 훗날 광주한살림과 전북한살림을 포함해 호남지역 생명운동의 뿌리가 된다. 김지하도 그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해남의 아우들)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사상과 지역공동체운동에 관한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흰그늘의 길3』, 144)


김지하가 해남에 머물던 시절 인연을 맺었던 지역의 후배들, 김성종, 천용식, 박순태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1987년 여름부터 광주 무등산에서 감잎차를 공동 제다(製茶)하며 ‘광주한살림공동체’를 준비했다(모심과살림연구소, 2007: 106-107).


“광주는 처음부터 유기농산물직거래보다 문화운동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 이들은 1988년 봄, 광주 주월동에 한 살림농장을 세워 젊은이 30여명이 공동체생활을 하며 녹차와 감잎차를 생산하고 달과 장승, 종이공예, 전통염색 공예품 들을 공동생산하는 등 생명문화에 기초한 생활문화운동을 전개하며 생산과 배움 그리고 치유를 통합하는 한살림 실현지를 꿈꾸었다. 이때 한광석이 시도했던 전통염색은 이후 우리 사회에 전통염색이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8년 여름부터 유기농산물 공급 사업을 시작한 뒤, 1990년에 광천동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출판, 교육, 도농직거래, 녹색환경운동, 주민자치운동, 의료공동체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내부 구심력을 잃고 직거래 사업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해 1992년에 활동을 중단하고, 2003년 다시 유기농산물 직거래 논의가 시작될 때까지 긴 휴면 상태로 접어든다. 하지만 초창기 광주한살림은 생명사상에 기반을 둔 생명문화운동의 폭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주고, 배움과 치유의 터전 그리고 생산이 결합된 한살림마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실험이었다.” 


한편, 1988년 4월 김지하는 원주의 동지들과 함께 <한살림모임>의 준비에 착수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 생명운동의 근거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86년 12월 <한살림농산>의 설립으로 본격화된 유기농 생산소비운동과 더불어 생명운동의 또 하나의 수레바퀴인 생명문화운동을 시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개벽적 문명전환 운동을 펼칠 수 있는 큰 틀의 생명운동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김지하는 “그늘로부터 새 빛이 돋으리라”고 믿으며 <한살림모임>에 큰 기대를 가졌다. 1년여간의 연구와 토론 끝 최혜성의 대표 집필로 선언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989년 9월 29일, <한살림모임> 창립식과 함께 「한살림선언」이 발표된다. 

  한국 생명운동사에서 「한살림선언」은 서구의 공산당선언에 버금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역사적인 문건으로 이후 한국 생명-생태-환경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살림모임>은 창립 후 생명사상과 관련된 대중강좌를 개설하고 『한살림』(1990)이라는 무크지를 발행하기도 하고, 『공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1990) 등 생명운동 관련된 책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살림모임>의 활동은 재정적인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오래지 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계기로 김지하는 박재일의 한살림과도 멀어지게 된다. 김지하는 훗날 “한살림 문화운동의 중지는 ‘운동’의 정지”였다고 회고한다(『흰그늘의 길3』, 244).  그만큼 아쉬움이 컸다는 말이다. 


3. [1990년대]생명운동의 양 날개 


세인들에게 1990년대의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지만 , 김지하에게 1990년대는 생명운동의 양 날개를 펼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양 날개는 ‘생명정치’와 ‘생명문화’였다. <생명민회>가 만들어지고 경기도 부천과 전북 부안 등에서 ‘생명과 자치’의 실험이 이루어진다. 다른 한편, <율려학회> 등 생명문화운동단체들이 창립되고 새 담론이 제시되었으며, 서울과 지방을 넘나들면서 생명문화의 개화를 꿈꾸었다.


1)개벽과 생명운동


「한살림선언」이 발표된 1년 후 1990년 8월 김지하는 수운회관에서 「개벽과 생명운동」이라는 제목으로 긴 강연을 한다. 김지하는 이 강연을 통해 ‘생활협동운동’과 구분되는 ‘생명문화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을 강조하며 「한살림선언」에 버금가는 강령적 비전을 제시한다. 「개벽과 생명운동」은 김지하 개인의 것이었지만, 1981년 로터스상 수상 연설 이후 10여년 간 심화·확장된 생명운동론의 결정판이었다. 특히 개벽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 문명전환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의 비전과 전략이 담대하게 펼쳐진다. 김지하에게 개벽이 천도(天道)라면, 인사(人事)는 생명운동이다. 


“개벽은 천도요, 인사는 생명운동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인간, 사회,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근원적 우주 생명의 질서로부터의 이탈이 극에 달한 현실 속에서 그 생명의 본성을 인식하고 그 생명의 본성과 질서에 따라서 살려고 하는 생명운동을 통해서만이 개벽을 실천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강조는 필자)


강연은 놀랍게도 “나는 찢어진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강연은 현 시대를 ‘만연된 병적 현상’과 ‘생명의 상실’으로 진단하고, 개벽의 전망을 제시한다. 김지하에게 개벽은 “한 마디로 우주질서 전체가 바뀐다는 뜻이며, 우주질서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질서, 인간의 역사적인 모든 조건도 또한 변한다는 뜻이며 5만 년의 인류문명사 전체가 대전환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개벽의 관점에서 생명운동의 철학과 비전을 밝힌다. 세계관과 생활양식의 대전환, 사회와 문명의 대전환을 선포한다. 김지하가 제안하는 ‘생명문화운동의 6대 방향’은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함께 탁월한 시대적 적실성으로 30년이 훨씬 지난 오늘에도 큰 영감을 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자기실현 

생명공동체 건설 

생태계의 균형 회복 

중도적 민족통일 

새로운 문명의 창조 

우주와 인간 간의 관계 정립 


2)생명정치운동의 실험


그리고 김지하는 한편으로 <한살림모임>과 함께, 다른 한편 개인적으로 다양한 생명운동들을 펼쳐나간다. 1990년 4월 21일 <한살림모임> 등 여러 단체가 함께 마련한 ‘지구의 날’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1991년엔 ‘지구의 날’ 행사와 이른바 ‘은행나무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또한 1993년 4월 환경운동연합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김지하가 ‘생명’이라는 술을 부어준” 최열을 위해 축사를 하기도 한다(신동호, 2007).

  특히 ‘은행나무 살리기운동은 기존의 환경운동과 구분되는 김지하의 생명론적 환경운동을 잘 보여준다.  1991년 4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높이 25m, 둘레 10.7m에 달하는 거대한 은행나무 앞에 김지하과 풍수지리 전문가 최창조, 단식농성을 하던 환경운동가 차준엽 등이 모였다. 인근의 아파트 신축으로 수령이 500여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가 고사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준엽 대표의 단식 8일째 되던 4월 22일 제2회 지구의 '지구의 날'에 김지하는 차준엽과 함께 환경선언문을 읽었다. 제목은 ’환경에서 생명으로!‘였다. 

  

”시민 각자 각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커다란 생명의 그물임을 깨우치고 생명의 원리를 공부하며, 그 원리에 따라 총체적 오염에 스스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모든 환경운동은 이제 포괄적 생명운동으로 크게 차원변화를 해야 한다.

  생명의 또 하나의 원리는 창조적 영성이다. 방앗골 은행나무 주변토박이 주민들은 요즘 매일밤 산신령과 큰 호랑이 꿈을 꾸고 있다. 생명은 그렇게 신령한 것이다.“(강조는 필자)


다시 ’차원변화‘다. 주민과 함께 하는 생명운동은 이제 ’주민자치‘, ’생명정치‘로 비약한다. 김지하는 1992년 지방자치선거가 부활한 것을 계기로 시민 참여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내건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에 참여한 바 있는데 , 이제 본격적인 생명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를 전후해 생명운동과 주민자치에 관한 담론을 모은 책들을 연이어 펴낸다.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1991), 『옹치격』(1993), 『틈』(1995), 『생명과 자치』(1995)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1994년 <생명가치를 찾는 민초들의 모임(이하 생명민회)>의 창립 제안으로 구체화된다.


“이에 대안운동으로서의 새로운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환경, 자치, 문화 등을 한 고리안에 통합시킬 생명운동을 제창하며 생명가치, 곧 보편적 삶의 통합을 추구하는 민초들의 모임인 생명민회 운동을 제안하는 바이다.”


  김지하에게 주민자치는 ‘생명운동의 정치형식’이었다.  김지하에게 ‘지역은 생명운동의 틈’이었다. 틈을 통해 기존의 질서와 다른 새로운 시공간이 태동한다. 김지하는 <생명민회>를 통해 생명운동의 조직화를 시도한다. <생명민회>는 생명운동단체들 중 유일하게 ‘정치(자치)’를 표방한 단체로써, 1995년 전면 실시 예정인 지방선거를 앞두고 설립되었다. 김지하는 생명운동의 ‘정치형식’으로서 주민자치와 민회운동을 내걸고, 이창식(YMCA) , 강대인(대화문화아카데) 등과 함께 <생명민회> 활동을 이끌었다. 특히 생태정치학자 문순홍(1957-2005) 등 소장학자들과 함께 공동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때 발표된 「생명민회를 제안한다」 는 한국형 ‘생명정치’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이 문서는 김지하와 문순홍의 공동작업의 결과로 명시되어 있다. <생명민회>는 먼저, “현재의 세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특히 「생명민회를 제안한다」의 ‘생성적’ 시공간관은 2023년 오늘의 생명운동에도 통찰의 원천이 된다. 


① 열려있는 선형이 아니라 ‘닫혀있는’ 그물망의 원으로

② 단선형 절대시간에서 복선형 상대시간으로

③ 절대공간에서 상대공간으로 : 다층의 동위상화


그리고, 미래세계는 현 세계 속에 만들어진 ‘틈’으로 엿보인다. ‘틈’으로부터 생성된다. 


“현재의 세계는 자신의 모습으로 실체적인 외형과 가치내재적 내용이란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반면, 바라직한 사회는 구체적 외형을 가지지 못하고 오직 의식속에 이미지로만 낡은 삶의 틀속에 존재한다. 즉, 이 세계에서는 그 가치체계가 구체적인 제도/법률/학문체계 속에 감추어져 있으면서 무의식속에 숨어서 보편화되어 있다. 반면 바람직한 세계는 현실세계를 위태롭게하는 문제군들이 만들어낸 의식의 “틈” 속에 과거의 구체적 경험과 더불어 이미지로서 엿보인다. 그러나 현 체제의 보편적 의식과 무의식은 상식의 세계를 이루고 있어, 이 “틈” 속에 살아 숨쉬는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도록 막거나, 보더라도 곧 부인토록 만든다. 따라서 미래의 세계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틈”을 확장시키기 위해 제도와 삶의 방식 속에 감추어져 있는 상식을 걷어내고, 이를 새로운 가치체계로 전치시킬 필요가 있다.“(「생명민회를 제안한다」)


<생명민회>는 구상에 머물지 않았다. <생명민회>를 통한 생명-자치운동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기대했고, 청년들의 조직화를 도모했다. 실제로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생명사상 및 생명운동 강좌를 통해 청년모임이 만들어지고, 전북 부안 등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생명가치’가 실현되는 주민자치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또한 ‘그물코’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생명문화운동과 생명자치운동의 연결고리를 꾀했다. 

  그러나 <생명민회>의 활동은 문순홍의 투병과 이른 죽음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활동이 중단된다. 훗날 김지하는 이 시기의 활동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물코는 간행물의 제목이기도 했는데, ”생명문화운동과 지역의 풀뿌리 정치 등을 연결하고 동북아와 세계의 환경, 생활협동, 유기농 등 시민생명운동을 네트워킹하는 그야말로 ‘그물코’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세한 형태로마나 경기도 부천과 전라북도 부안에 근거지를 만들고자 몇 년간 노력했다.(흰그늘의 길3, 240) 특히 부안 변산반도에 전남 전북 충남 경기를 잇는 풀뿌리 생명운동의 근거지를 장만하는 것. 부안에 자주 갔다. 김지하에게 그것은 ”작지만 큰일이었고 오래됐지만 새길이었다.“(『흰 그늘의 길3』, 240) 


3)생명문화운동의 전개


환경-생명운동과 자치-생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김지하는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생명운동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는 없었다. 1990년 후반 김지하는 역량을 생명문화운동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자치-생명운동을 위해 자주 방문하던 전북 부안 변산의 바닷가에서였다. ‘변산의 밤’에 김지하는 ‘시인’과 ‘문화’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생명운동, 풀뿌리지역운동, 사회변혁운동도 중요하지만, 시인이 노력해야 할 것은 ‘마음보’를 바꾸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생명문화운동이요, 영성운동이었다(『흰그늘의 길3』, 252). 이때 문화운동이란 “문학과 예술, 역사, 철학 세 방면의 통합된 큰 틀의 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창조하는 운동”이다(『흰그늘의 길3』, 253).

  김지하는 생명운동의 핵심은 ‘접화군생(接化群生)’ 네 글자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접화군생’은 최치원의 그 유명한 난랑비서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결국 생명운동이란 뭇 생명과 모시고 어울리는 ‘풍류’ 세상인 것이다.  

  이런 감각은 1996년 7월 ‘신풍류회의’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김지하를 비롯해 미술과 국악, 문학을 아우르는 문화예술인 6명이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모임을 갖고 <신풍류회의(新風流會議)>를 발족한다. <신풍류회의>는 “본디 우리 스스로가 갖고 있던 풍류사상의 큰 회복을 통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1998년 생명문화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율려학회>가 조직된다(『흰그늘의 길3』, 264~268). ‘율려’는 생명문화운동의 새로운 키워드이다. 김지하를 비롯해 강준혁·김영동·김정헌·임진택·채희완·정희섭 등은 1998년 8월부터 9회에 걸친 준비모임을 갖고 새로운 인간상과 우주질서를 우리의 고대로부터 공부한다. 그리고, 1999년 8월 4일 공식적으로 창립대회를 개최한다. 

  김지하에 의하면, “율려는 우주만물의 생명질서에 알맞은 음악”이다. 율려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동양의 음악의 이름이다. 율(律)은 양(陽)이고 려(呂)는 음(陰)이다. 우주의 12계절에 비유하면, 6개월은 따뜻한 계절인 양(陽)이고 나머지 6개월은 추운 계절인 음(陰)인데, 바로 이 음양(陰陽)의 음률을 '12율려(律呂)'라고 한다. 동아시아 사상에서 율려는 음악적 척도이지만, 삶과 세계의 준거가 된다.  

  한편, 김지하는 <율려학회>와 별도로 지역의 영호남의 지역활동가들과 문화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삼남민족 네트워크>를 결성한다(『흰그늘의 길』, 273-276). 1999년 개천절에 남원 교룡산성 선국사 은적암터에서 2박 3일의 판이 열렸다. “동학사 속의 동이사상 문화사를 공부하는 삼남민족 네트워크 구성”했다. 김지하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아! 그날을 어찌 잊겠는가! 그날에 푸르른 하늘이 그토록 활짝 열렸으며...“


4. [2000년대]생명담론의 확장과 차원변화


2000년대 들어서며 김지하의 생명운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삼보일보와 오체투지와 같은 생명운동의 현장에 참여하고, 세계생명문화포럼을 개최하여 생명사상의 지평은 전지구적인 차원으로 개방된다. 아울러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단체를 창립하고 같은 제목의 책을 펴내며, 김지하 고유의 ‘생명평화운동’을 펼쳐나간다. 그리고, 다시 이변비중의 차원변화. 화엄개벽의 촛불을 켠다.


1)생명과 평화의 길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대의 첫 10년은 한국 생명운동의 절정기였다.  지리산 생명평화결사와 삼보일배, 그리고 오체투지를 거치면서 생명평화운동으로 확장되고, ‘생명평화’ 가치는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생명과 평화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생명운동가 김지하도 함께 했다. 

  김지하는 2001년 4월 지리산 실상사에서 도법 스님과 등과 함께 젊은 학자·학승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리산’을 주제로 공부를 시작한다. 김지하는 지리산 공부모임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리산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좌우익 대립이 가장 치열했던 곳입니다. 민간인과 군경을 합쳐 1만명이 죽어나갔어요. 그러나 그곳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이 몸을 숨기는 곳이었고 혁명투사들이 정기를 받은 장소입니다. 삶과 죽음, 투쟁과 화해가 함께 숨쉬는 산이지요. 전쟁·배제·대립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화해·사랑·모성·자비를 철학화, 사상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지하는 같은 해 5월 26일 열린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의 공동봉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3년은 한국 생명운동의 신기원이 열린 해였다. 2003년 3월 25일에서 5월 31일까지 불교의 수경스님과 가톨릭의 문규현 신부가 중심이 되어 전북 서해안의 대규모 간척사업 저지를 위해 ‘삼보일배(三步一拜)’가 진행됐다. 삼보일배는 한국 사회운동의 새 지평을 여는 대사건이었다. “환경에서 생명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선언되고, 운동방식에 있어서도 간디의 비폭력 투쟁에 비견되는 ‘거룩한 사회운동’의 모델이 만들어졌다(주요섭, 2023).

  김지하에게 삼보일배는 ”이 세대의 징표“였다. 김지하(『생명학1』, 5)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시민운동에서 생명운동은 그 차원이 변했다. 형식은 시민운동이지만, 내실에서는 사회적 공공성을 넘어서 우주사회적 공공성, 생태적 연쇄저항, 생명학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왔다. 새만금 간척 중단을 요구하며 삼보일배 55일째를 맞이한 순례단에게 김지하는 헌시를 보내기도 했다.  제목은 ‘三步一拜(삼보일배)’다. 

  그리고 5년 후 2008년, 김지하는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대운하에 반대하는 투쟁의 현장에 다시 함께 한다. 그해 4월에는 종교환경회의가 개최한 ‘문명전환기 생명평화운동의 방향과 역할'이라는 주제의 대화마당에서 김지하는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강의를 통해 김지하는 “역사상 사회공공성을 지닌 현안이 시민운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며 "한반도 대운하 정책 논란이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ㆍ문화적 운동의 시초가 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5년 전 삼보일배로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거룩한 투쟁에 나섰던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2008년 9월 4일 4대강으로 상징되는 “개발과 파괴, 생명의 죽음과 약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참회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지리산 노고단 천고제가 참석한 김지하는 “광장의 촛불. 이제 산에 오릅니다.”로 시작되는 고천문을 짓기도 했다. 

  김지하의 ’생명과 평화의 길‘은 대안적 경제시스템의 제시로 이어지기도 했다. 2008년 11월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열린 ‘호혜를 위한 아시아 민중기금’의 아시아 확대회의에 제안자로 참석하여 기념 강연을 한다. 일본의 생협 및 환경운동단체들과 한국의 일부 생협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민중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김지하는 칼 폴라니의 ‘호혜’, ‘교환’, ‘재분배’ 개념을 빌려 ”호혜를 전면(前面)에, 교환을 일상으로, 획기적 재분배를“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한다. 호혜와 교환이 융합된 ‘호혜시장’ 개념을 제안한다. 사실 이 슬로건은 한살림운동에서 상품을 파는 동시에 선물을 나누는 ‘매장/나눔터’의 이중구조를 통해 나름대로 구현되어왔다. 

  한편, 김지하는 2004년에는 ‘생명과 평화의 길’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직접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조직한다.  2004년 8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은 정성헌을 비롯해, 삼남민회·율려학회·생화생명공부모임·지리산공부모임 등의 형태로 10여 년 동안 함께 활동한 인물들이 참여했다. 김지하는 ‘생명과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하는 화두로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 를 제시한다. 이후 <생명과 평화의 길>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생명문화포럼을 주관하고, 2007년 <생명학회>를 창립을 주도하는 등 생명학을 체계화하고 생명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김지하는 2005년에 같은 제목의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펴내기도 했다.

 

2)세계생명문화포럼과 생명사상·생명운동의 전지구적 확장


이제 생명평화의 지평은 동아시아와 전 세계로 확장된다. 생명문화의 확산과 생명학의 정립을 중심으로 고유의 생명문화운동을 계속 이어오던 김지하는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세계생명문화포럼>(2003~2006년) 개최한다. 이를 통해 국내외의 생명담론 집대성하고, 생명운동의 지평을 지구로 확장하고자 했다. 세계생명문화포럼은 그 규모에 맞게 국내외 성과를 집대성했다. 


“아름다운 모심 힘찬 살림” 


2003년 12월 18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세계생명문화포럼-경기 2003' 개막식이 열리고 3박 4일이 포럼이 시작됐다. “21세기 문명의 전환과 생명문화”를 주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과 해외 15개국 108명의 학자와 문화예술인,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생명과 관계된 문화적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옛 아시아의 문예와 지혜들을 전면적으로 탐색·재조명하고, 세계 곳곳에서 논의되고 실천된 생명문화 등 동서양의 여러 사상과 그 사례들을 나누고자” 했다. 

  ‘생태주의와 생명사상’, ‘생명의 문화적 통로’, ‘공생의 삶과 생명의 경제’, ‘동아시아의 역사와 상생’로 구성된 4개의 주제마당과 ‘생명문화와 지역발전계획-‘살림’의 경기도 만들기‘를 주제로 하는 특별마당이 열렸고, 국내외의 저명한 환경운동가와 지식인이 초대되었다. 반다나 쉬바(인도 환경운동가), 리카르도 나바로(‘지구의 벗’ 의장), 수잔 레이시(예술가), 발 플럼우드(호주 국립대학 연구원), 미조구찌 유조(동경대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3박4일의 포럼을 마친 참가자들은 「수원 세계생명문화 선언문」을 발표한다. 선언은 “개개 인간의 삶이 소중하게 여겨지며,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인간의 활동과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생명문화의 원칙’을 따랐음을 확인하고, 1)전체마당 선언과 2)주제마당 선언 3)‘행동 추천’으로 구성된 선언문을 발표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호주의 생태여성주의자인 발 플럼무드(Val Plumwood)가 제안한 “생명권에 대한 존중”은 큰 주목을 받았다. 김지하는 이후 여러 차례 플럼우드를 언급하며, 파국적 생태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플럼우드와 합의한)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 모두를 우주의 공동주체로 다 함께 모시는 문화와 생활의 대변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전하고 있다.  플럼우드의 ‘비인간 생명권’ 개념은 ‘선언문 1-4’에 반영되었다. 선언문의 ‘주권국가’처럼이란 표현은 ‘비인간-비생명’에 대한 ‘윤리적’ 고려만이 아니라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다.


“1.4 인간을 넘어선 세계(다른 생명 존재)에 관해서, 우리의 삶이 다른 생명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우리의 철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도 중요하다. 모든 문화와 전통은 반드시 자신의 관행과 전통을 주의 깊게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인간을 제외한 생명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바꾸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면, 이제 그 영향을 우리 자신이 깨닫고, 그에 따른 책임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곧 우리의 의무이다. 인간을 제외한 종들은 고유한 권리와 영토를 가지고 있는 “주권국가”처럼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 “주권국가”들과 평화적인 공존과 상호존중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강조는 필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된 세계생명문화포럼의 주제를 일별한다. 

  2003년에는 ”21세기 문명의 전환과 생명문화“를 주제로 ”여러 생명담론들과 실천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했다. 

 2004년에는 ”한국의 생명담론과 실천운동“을 주제로, 한국 생명사상의 조명을 통해 생명운동의 대중화 촉발을 기대했다. 

  2005년에는 ”동아시아 문예부흥과 생명평화“를 주제로 ‘동아시아 사상 문화의 르네상스 탐색과 호혜망 구축을 모색’했다. 

  4년째 2006년에는 ‘생명사상과 전 지구적 살림운동’을 주제로 3년 동안 진행된 세계생명문화포럼의 사상을 통합적으로 회고하여, 21세기 새로운 학문이자 실천사상으로서의 ‘생명학’을 정립하며, 전 지구적으로 ‘살림운동’을 확산하는 메시지의 전 세계로 발신하는 것을 기대했다.  


3)촛불과 화엄개벽의 꿈


‘후천개벽’은 김지하 생명사상이 처음으로 문자화되었던 1981년 로터스 수상 연설에서부터 김지하 생명사상의 열쇠말이었다. 김지하의 시대인식이자, 문명사적 대전환의 비전을 제시하는 핵심 개념이었다. 그것은 우주론적이면서도 사회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2008년을 전후해 드디어 ‘화엄개벽’으로 종합된다. ‘화엄개벽의 길’(법보신문) , ‘화엄개벽의 모심’(대화문화아카데) 으로 선포된다.

 

“이 지구와 전 인류의 오늘의 삶과 의식 안에 모심의 화엄개벽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지금의 대혼돈은 내일 없는 대붕괴로 귀일하고 말 것이다.”(「화엄개벽의 모심」) 


그런데, 김지하에게 화엄개벽은 관념의 산물이 아니었다. ”촛불을 켜라, 모셔야겠다.“(흰그늘의 길3, 426)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김지하는 이미 화엄개벽을 예감했고, 또 체험했다. 2008년 이른바 광우병 촛불 현장이 그곳이다. 김지하는 촛불에 ‘진심’이었다. 그의 촛불에 대한 관심은 2002년 6월 서울 월드컵 당시 출현한 '붉은악마'에 대한 경탄과 재해석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 6월 ‘유월개벽’ 이라는 김지하의 기고글은 이를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이다(『흰그늘의길3』, 351-369).


  김지하에게 촛불은 “우리 시대의 4.19”였다. 김지하에게 촛불은 “68혁명보다 훨씬 더 깊고 더 넓고 더 거창한 문명사 전체의 근본적 대전환과 직결돼 있다.”(2009a: 44) 그리고, 김지하에게 촛불은 ‘숯불’과 ‘횃불’과 구별되어야 한다.  “지난해 시청 앞에 켜진 촛불은 바로 이 돌아옴이었다. 네페쉬하야의 예루살렘 입성소식이었으니 이 소식을 모심이 다름아닌 촛불이다. 촛불은 횃불이 아니다. 숯불도 아니다.”(화엄개벽의 모심) 

  김지하에게 촛불은 ‘하아얀 어둠’, ‘흰 그늘’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 원형은 김지하 생명사상의 태동기에 한 편의 시로 출현한 바 있다. ‘촛불’이라는 제목의 시가 그것이다.


촛불


나뭇잎 휩쓰는

바람 소리냐 비냐

전기는 가 버리고 

어둠 속으로 그애도 가버리고 

금세 세상이 온통 뒤집힐 듯 

눈에 핏발 세우던 그 애도 가버리고 

촛불 

홀로 타는 촛불 

내 마음 휩쓰는 것은

바람 소리냐 비냐. 

(『검은산 하얀방』, 1986: 21)  


그렇다면, 김지하의 화엄개벽의 실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만물해방’이다. ‘인간해방’이 아니다.  김지하는 신유물론에 버금가는 통찰력과 실질적 탐색을 진행한다. 그의 슬로건은 ‘물질이 메시아다’이다.


“나는 지난 촛불의 '온라인, 오프라인 화백'의 저 시끄러운 쌍방향 통행들과 광장의 직접민주주의에서 희미하게 화엄경을 느꼈다. 또한 그때 동시에 느꼈다. '우주만물이 물질의 굴레에 갇힌 채 자기들을 해방해줄 메시아가 올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성경 구절이다.

메시아는 누굴까?

물질 자신이다.

물질 자신이 물질 자신을 인식하고 해방한다.

사실은 물질 안에 있는 신과 영과 생명이 그 주체로서 물질 자신을 자기조직화하여 해방하는 것이겠다. 이것이 곧 창조적 진화다. 화엄경의 진리와 근본에서는 같다.”(『촛불, 횃불 숯불』, 92, 강조는 필자)


일찍이 김지하는 돌멩이의 생명성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물질이 메시아다. 21세기 첫 번째 바이러스인 ‘사스’가 유행했을 때, 김지하는 경북의 산간을 헤메인다. 치유물질을 찾기 위해서였다(『초미』). 4대강의 반대운동을 펼칠 때에도 김지하는 ‘죽임당하는 강’과 동시에 그 강의 재생능력에 주목했다(「변혁적 생명학」). 

  김지하는 화엄개벽을 통해 ‘차원변화의 차원변화’를 보여준다. 김지하의 촛불과 화엄개벽론은 2009년 출간된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 4권에 풍부하게 결집되어 있다. 


1권 『방콕의 네트워크』. / 서문: 모심, 화엄개벽의 길

2권 『촛불, 횃불, 숯불』. / 서문: 촛불, 횃불, 숯불

3권 『새 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 서문: 사타구니 대해탈의 첫 샘물

4권 『디지털 생태학』 / 서문: 붉은악마에서 이미 촛불을 보다


5. 생태파국시대의 생명운동과 흰 그늘의 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동아시아는 향후 2~3년 안에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문화적 대변동을, 향후 7~8년, 또는 13년 안에 온 세계와 연계되어 생명, 생태, 생활, 물, 식량, 건강, 에너지 등등에서 생태적, 기후적, 우주적 대변동, 악질만세(惡疾滿世)의 대병겁(大病劫)을 맞이하게 된다. 불가피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김지하는 꼭 집어서 ‘13년’이라고 적시한다. 2008년에 쓴 글이니 13년을 더하면 2021년인 셈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던 시기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예사롭지가 않다. 김지하의 생명운동은 처음부터 개벽운동이었다. 

  파국의 위기가 운위되는 오늘 김지하의 개벽담론은 서유럽의 ‘파국담론’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전환담론의 가능성을 예감케 한다.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은 한국 생명운동의 잠재력이다. 전지구적 생명운동이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과학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는 묻는다. “근대화할 것인가? 생태화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물론 방향으로 ‘생태화’를 지시한다. 그리고 전략으로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를 제시한다. 수많은 동서의 지식인들이 그를 인용해 “인간과 비인간의 집합체를 하나의 세계”로 여기는 코스모폴리틱스를 논했고, 국내의 적지 않은 학자들이 그를 소개하고 논문을 썼다(김환석, 2017). 그러나, 김지하의 ‘우주생명학’에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다. 

  최근 서유럽의 생태철학에서 이른바 ‘어둠의 생태학(dark ecoloyg)(티머시 모턴, 2022)‘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유럽에 ‘어둠의 생태학’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어둠보다 깊은 ‘심연의 생명사상’이 있다. 김지하의 ‘명(冥)의 생명사상’(『아우라지 미학』)이 그것이다. 그리고, ‘심연’의 어둠은 ‘희망’의 어둠이기도 하다. 김지하는 말한다.


 “이 어둠. 이 절망을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희망은 ‘명(冥)’에 있다. 김지하가 「화엄개벽의 모심」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종말이 개벽”이기 때문이다. ‘지구적 비상사태와 새로운 생태신학의 전환점”을 탐색하는 여성신학자 캐서린 켈리는 『지구정치신학(2022)』에서 “시작에서 종말로 가는 시간이 아니라 종말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시종(始終)’과 ‘종시(終始)’는 구별되어야 한다. ‘종시의 시간’을 구성해야 한다.

  ‘생명운동가’ 김지하를 일별해보았다. 그는 시인이고 사상가였지만, 분명 그는 생명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인의 감수성과 사상적 깊이로, 김지하는 한국 생명운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안에 있다. (물론 수많은 다른 감각과 사유와 사건들이 한국 생명운동사에 스며들어 있다.) 

  김지하 평생의 화두는 ‘모심’이었다. “내 생애를 통틀어 더듬어 찾아온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모심’ 즉 ‘侍’ 한글자라고 즉 대답하겠다.”(『흰그늘의 길3』, 424) 그런데, 이때 모심은 ‘허공에의 모심’이다(『김지하전집』, 11). 비약을 위해서는 허공에 발을 내딛어야 한다. 화엄개벽의 ‘풍요로움’의 원천은 ‘허공에의 모심’에 있었던 것이다. 1976년 김지하가 ‘최후진술’에서 언급한 ‘천주운동’도 어쩌면 ‘허공에의 모심’이었을 것이다. ‘활동하는 무’를 모심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흰 그늘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김지하의 생명운동의 길이었을 것이다.


“흰 그늘은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희망, 그러나 현실적인 치유에 대한 희망이다.”(『흰그늘의 길』, 41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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