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3

알라딘: 철학으로 저항하다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다카쿠와 가즈미

  • 알라딘: 철학으로 저항하다


    Jin Lee
    https://www.facebook.com/jin.lee.129357

    ·
    팔리는 책보다 절판 폐기하는 책이 더 많은 건 아닌가 싶은 시기에, 어쩐지 조금은 비장한 마음이 되어 내보내는 신간. 이번에는 철학 입문서다. ‘편집자 북클럽 랑’을 시작하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책을 고민하던 무렵에 눈에 띈 책이다. 일본어는 읽을 줄 모르니 한자로 표기된 세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철학, 저항, 이색 철학 입문서. 검토해보니 일반적인 철학 입문서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과감하게 실천한 책이었다.
    저자는 일본의 철학자 다카쿠와 가즈미. 일본에서는 아감벤, 푸코, 데리다 등의 수많은 저작을 번역해 ‘번역 기계’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철학사를 요약 정리하는 방식의 입문서를 쓸 법도 한데, 이 책에서 저자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철학사와 철학자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책 자체도 ‘철학이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철학이라고 하면 겁부터 먹는 사람들에게 철학자들의 저작을 읽고 철학사를 익히는 것이 곧 철학 그 자체는 아니라고, 철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며 책의 문을 연다.
    철학이 아닌 것들을 하나씩 언급한 뒤에 저자는 오랫동안 철학을 공부하며 다듬어온 자신만의 정의를 내놓는다. “철학은 개념을 운운하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 그런 다음 이 정의에 등장하는 ‘개념’, ‘운운’, ‘세계’, ‘인식’, ‘지성’, ‘저항’ 등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는데, 요약하자면 하나의 세계 안에서 일관성 있게 쓰이고 그 세계에 일순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인식을 통째로 바꾸는 것, 그 달라진 눈과 머리로 권력의 통제나 개입, 폭압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때의 개념은 어떤 한계 상황에 처한 사람이 생활이나 경험에서 우연히 건져 올려 그 상황에 맞서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물고기나 와인일 수도 있고 오를 수 없는 계단이나 폐관된 공공도서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철학을 다시 정의한 저자는 두 편의 영화, 두 편의 소설, 두 명의 인물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인 철학의 계기, 저항이 시작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보도자료와 카드뉴스에서 소개한 예 말고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최초의 아이누 출신 국회의원이자 아이누 문화 연구자인 가야노 시게루는 오랜 시간 일본 정부의 아이누 문화 말살 정책에 저항해왔는데, 어느 날 문득 과거 ‘일본인’이 아이누에게 강요했던 연어잡이 금지가 단순히 어업 제한에 불과한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누어 사전 편찬자이기도 한 그는 아이누어에서는 연어가 곧 ‘주식主食’을 뜻한다는 것(시에페, 시=정말로, 에=먹는, 페=것)을 불현듯 발견하고, 일본의 아이누 박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주식을 빼앗는 일’이었다는 새로운 개념, 더 강력한 저항의 언어를 찾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부, 반란 노예, 운명론에 저항한 소설가, 민권 운동가 등의 ‘철학자’들을 보며 홍은전 선생님의 여러 글에서 보았던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순간’이 자주 떠올랐다. 이를 저자의 표현으로 바꾸면 ‘철학이 탄생하는 순간’일 것이다. 저자가 예로 든 영화나 소설 속, 역사 속 저항은 대체로 다 실패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섯 가지 이야기는 대부분 비극이다. 저자는 저항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로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 순간 세계를 보는 방식이 이미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시위에 나가는 것, 맞았으면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 “이제 이런 것은 싫다”라며 앓아눕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저항이며,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철학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현대 프랑스, 이탈리아 철학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던 저자는 일본 정부의 계속되는 실정과 부패, 횡포에도 불구하고 냉소와 무력감을 보일 뿐인 사람들을 보며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냉소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철학자의 실천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의미의 철학’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이런 것도 철학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가 제시하는 철학 개념과 가까운 자리에 계시는 고병권 선생님께 먼저 읽어봐 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이 책에 대한 나의 인식까지도 갱신하는 너무나 귀한 글을 받았다. 편집자가 책을 소개하는 여러 가지 말들이 조금 미심쩍은 분들은 “이 문으로 들어가 철학을 탈환하고 싶다”라는 고병권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열린 문으로 쓰윽 들어와 주시면 좋겠다.
    오랜만에 ‘입문’이라는 말이 붙은 책을 진행하니 조금 설레기도 했다. 어떤 분야의 문을 여는, 이리로 들어오라고 초대하는 책. 11월 ‘편집자 북클럽 랑’에서는 이 책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려고 한다. 초대에 응해주실 분들은 10월의 마지막 날 사계절출판사 SNS 계정을 확인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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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으로 저항하다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다카쿠와 가즈미
    (지은이), 노수경 (옮긴이) 사계절 2023-10-26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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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100자평 3편
    리뷰 4편
    세일즈포인트 1,034

    원제 哲學で抵抗する228쪽
    122*188mm
    228g

    책소개
    ‘철학’의 이미지에 갇힌 철학을 탈환하려는 야심 찬 시도. 철학자의 이름과 철학사를 몰라도 철학에 입문할 수 있을까? 아감벤, 푸코, 데리다 등 현대 철학자들의 저작을 일본어로 번역해온 철학자 다카쿠와 가즈미가 철학의 문에 들어서는 색다른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철학사를 익히고 철학자들의 저작을 읽는 것과 철학 그 자체를 신중하게 구분하며, 모든 철학의 뿌리에 있는 ‘저항’을 중심으로 철학을 다시 정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이란 개념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 즉 생활이나 경험 속에서 건져 올린 어떤 개념을 통해 세계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고 그 세계를 지배하는 우월한 힘에 맞서는 것이 철학이다. 그러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면 ‘바다의 물고기’도, ‘주식主食’이라는 흔한 단어도 철학 개념이 될 수 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좁은 의미의 철학자’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저자는 그 대신 영화 〈흔들리는 대지〉와 〈스파르타쿠스〉, 소설 『캉디드』와 『제5도살장』, 역사적 인물인 가야노 시게루와 마틴 루서 킹의 이야기를 통해 철학이 탄생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전태일 같은 이를 철학자로 보지 않는다면 나는 철학을 떠나겠다’라고 마음먹었던 철학자 고병권은 다카쿠와 가즈미가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가 철학을 탈환하고 싶다고 말한다. 저항의 계기가 차곡차곡 쌓여도 냉소와 환멸만이 가득한 시대에 이렇게 되찾은 철학이 변화의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야심이 깃든 이색 철학 입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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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들어가며
    철학의 이미지에 겁먹지 마라 | 모든 것이 철학으로 보이는 경험 | 철학은 철학사가 아니다 | 철학자는 세습되지 않는다 | 철학은 고매한 이념을 논하는 행위만은 아니다 | 철학은 고민이 아닐뿐더러 고민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1장 철학을 정의하다
    철학의 정의 | 개념 – 일관성 있는 단어 혹은 표현 | 당장 개념을 정의할 필요는 없다 | 개념이라고 모순이 없는 것은 아니다 | 개념을 운운하는 것 – 창조·폐기·왜곡·전용 등에 관하여 | 개념의 긴장감이 미치는 곳, 세계 | ‘엘리먼트’에 관하여 – 와인과 물고기 | 시간은 금이다 | 인식 – 머리로 세계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 | 관점의 갱신 – 전승이 아닌 행위 | 지성 –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머리가 좋다 | 저항 – 말을 듣지 않거나 들을 수 없는 것 | 저항에는 ‘좋고 나쁨’이 존재하지 않는다

    2장 예속된 자의 저항
    〈흔들리는 대지〉와 〈스파르타쿠스〉 | 〈흔들리는 대지〉 | 〈흔들리는 대지〉의 줄거리 | 토니의 연애 | “바다의 물고기는 먹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 시칠리아 속담 | 철학자의 탄생 | 속담의 전용 | 저항이 실패하더라도 | 푸코와 〈흔들리는 대지〉 | 봉기는 쓸모없는가 | 〈스파르타쿠스〉 | 〈스파르타쿠스〉의 줄거리 | 인텔리 노예 안토니누스 | 시칠리아 출신 |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 커크 더글러스의 의도 | 안토니누스의 기지 | 원형 연판장이 발명되는 순간

    3장 주식主食을 빼앗긴다는 것
    가야노 시게루 | 소년 시게루의 경험 | 동정에 관하여 | 여성이라는 소수자 | 다수자와 소수자 | 감정 이입의 중요성 | 연어는 아이누의 주식 | 주식론 | 서서히 정립된 ‘주식’이라는 개념 | 시에페 | 소수민족과의 교류 | 댐 건설 반대 운동 | 감정 이입의 강요 | 주식론의 계승

    4장 운명론에 저항하다
    『캉디드』와 『제5도살장』 | 계몽사상가 볼테르 | 『캉디드』 | 낙관론 | 신의론 | 충족 이유율 | 팡글로스에 의한 최선설 | 신의론을 깎아내리다 | 리스본대지진 | 대지진 이전의 볼테르 | 「리스본의 재앙에 관한 시」 | 철학 개념의 폐기 | 커트 보니것과 볼테르 | 커트 보니것의 경험 | 드레스덴 폭격 | SF소설 『제5도살장』 | “그런 것이다” | 서두의 몇 가지 예 | 끝부분의 몇 가지 예 | 불편한 농담 | 최선설과 운명론을 부정하다 | 그런 것일 리가 없다 | 20세기의 볼테르?

    5장 지금이 그 시간
    마틴 루서 킹과 커트 보니것 | 흑인 민권 운동의 시작 | 「버밍햄 교도소에서 온 편지」 | 편지는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 시의적절하지 않은 운동 | 신화적 시간 개념 | 「편지」 전체를 지배하는 시간론 | 워싱턴대행진 연설과 비교하면 | 신중하게 고려된 속도 | 토크니즘 | 토큰(대용화폐) | 워싱턴대행진 연설 – 수표에 관하여 | 반드시 지켜지는 약속? | 바울을 대신하는 킹 목사 | 바울에 대한 명시적 언급 | 1957년의 설명 | 바울의 설명 | 킹 목사의 해명과 고통 | 구제되어야 하는 현재 | 지금이 바로 그 시간 | 종말은 왔는가

    마치며
    주요 참고자료 일람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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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에서
    P.8~12
    철학은 철학사와 다르다
    철학은 철학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 마치 ‘배움의 패키지’처럼 되어버린 철학사는 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무슨 활동을 했는지를 기록한 ‘정사正史’에 지나지 않습니다. […] 대학은 정사를 배우고 가르쳐 ‘철학하는 마음’을 전승하는 데 적합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무언가 전해진다고는 해도 철학은 본래 그 철학자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입니다. […] 철학이라는 행위는 역시 그때그때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철학을 참고할 때조차도, 그 사람의 철학에 아무리 깊은 영향을 받더라도 다른 사람의 철학을 잇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한다’는 행위에서는 전에 있던 것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P.27~29
    개념과 철학의 세계
    개념이라는 일관성 있는 말을 사고의 장에 던져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것이 모순 없는 세상을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 행위에 의해 그때까지 숨어 있던 모순이 눈에 확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개념을 고집스럽게 사용하는 것, 일관성을 완고하게 주장하는 것, 그리고 논의의 결과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감각적인 표현이 되긴 하겠지만, 어떤 일관성 있는 개념에 의해 그 세계 전체에 순식간에 긴장감이 생긴다, 이런 이미지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긴장감이 미치는 범위가 그 철학의 ‘세계’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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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45~48
    저항은 성패로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저는 시위에 가끔 참가하는데요. 대체 시위를 하러 가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시위에 가도 대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 효과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치 참여로서는 투표 쪽이 훨씬 더 정공법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위에 가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위에 가는 것은 그 효과를 따져가며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 맞을 때 “아파”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이미 저항입니다.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겨지기도 할 테고, 애초에 효과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 철학이라는 저항은 세계를 실제로 변혁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이기기도 하지만 아주 많이 집니다. 그러나 이기든 지든 이 철학이라는 행위에 의해 그 순간 ‘세계를 보는 방식’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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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64~66
    철학 개념이 된 물고기
    평소 별 생각 없이 사용하던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비유에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바로 ‘여자/남자’에 겹쳐 사용하던 ‘물고기/잡는 사람’이라는 비유 말입니다. 여기서 잡힌 물고기를 자신들에, 잡는 사람을 중간 상인에 대응시켜 전용한 것이지요. 그러자 자본가에 의한 무산 계급 착취라는, 세상의 새로운 이미지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집니다. 여자로 보이던 그물 속 물고기가 자기 자신으로 보이는 충격! […] 마르크스주의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채로 경제의 냉혹한 구조를 깨닫고 문득 물고기의 비유를 건져냅니다. 그 비유가 자기들의 곤궁한 상황을 드러내는 말로 사용되자마자 세계는 투쟁의 무대로 변합니다. […] 토니는 ‘물고기’를 개념으로 만들어 세계의 지배적인 인식을 뒤흔들었습니다. 토니는 철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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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04~106
    다수자와 소수자
    어떤 사회 시스템이 작동할 때 그 안에서 구조상 의식하지 못한 채 자주 이익을 얻는 쪽이 다수자입니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올라탄 ‘보통 사람’, 이런 구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쪽이 바로 다수자입니다. 반면에 어떤 ‘색이 칠해진 존재’가 소수자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은 거의 수가 같지만 여성이 소수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경우라면, 수로는 노동자가 많지만 노동자가 소수자입니다. 다수자와 소수자는 ‘표식이 있음/없음’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표식이 있음/없음’은 언어학 용어인데요, 굳이 설명하거나 형용할 필요가 있는 것에는 ‘표식’을 붙이고 그럴 필요가 없는 자명하고 당연한 ‘보통’의 것에는 표식을 붙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우리는 자신의 어딘가에 반드시 붙어 있는 어떤 표식을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도 표식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상상할 수 있으며, 그렇게 상상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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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권 (읽기의집 집사, 노들장애학궁리소 회원): 철학자는 예전의 나로서는 감히 받을 수 없는 이름이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도무지 받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철학 종사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생각한 철학은 철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전태일의 ‘바보회’를 현대사의 중요한 철학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내게 전태일은 철학자이고 그가 말한 ‘바보’는 개념이다. 그런데 철학 종사자들 사이에서 전태일 같은 이는 철학자가 아니므로 나는 철학자를 떠나려고 했다. 다카쿠와 가즈미는 이런 나를 다시 철학으로 끌어들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좁은 의미의 철학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아니며, 개념들도 ‘바다의 물고기’처럼 좁은 의미의 철학 개념을 닮지 않았다. 이 책에 따르면 철학이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 그런데 이 책은 또한 철학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고 있다. 좋은 철학 입문서, 다시 말해 철학으로 들어가는 정말 좋은 문이 열렸다. 이 문으로 들어가 철학을 탈환하고 싶다.


    한겨레: 한겨레 신문 2023년 11월 3일자 학술지성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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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지은이: 다카쿠와 가즈미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철학으로 저항하다>,<푸코 이후> … 총 7종 (모두보기)
    1972년생. 게이오기주쿠대학 이공학부 외국어・종합교육교실 교수. 전공은 이탈리아·프랑스 현대사상 및 정치철학. 지은 책으로 『아감벤의 이름을 빌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내전』, 『왕국과 영광』, 『산문의 이데아』, 『사고의 잠재력』, 미셸 푸코의 『안전・영토・인구』, 자크 데리다의 『사형 1』, 이브-알랭 부아・로잘린드 E. 크라우스의 『비정형: 사용자 안내서』(공역) 등이 있다.


    옮긴이: 노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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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이들의 계급투쟁』, 『여자들의 테러』,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책의 길을 잇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구원의 미술관』, 『만년의 집』,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사람은 봉기한다. 이는 하나의 사실이다” 저항을 전면에 내세운 철학 입문서 철학 입문서라고 하면 대개 고대부터 현대까지 철학자들의 사상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책을 떠올린다. 저자는 철학사를 따라가며 공부하는 것, 철학자들의 저작을 정독하는 것은 모두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 자체가 곧 철학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또 철학은 무엇이 아닐까. 철학은 세습되거나 계승되는 것이 아니며, 진·선·미 같은 고매한 이념을 논하는 행위만도 아니다. 최근에는 ‘위로’나 ‘처방’ 같은 말과도 곧잘 짝을 이루지만 철학은 고민이 아닐뿐더러 고민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저자는 ‘철학이 아닌 것’을 하나씩 배제한 뒤 “어떤 경로를 거쳐서든 철학하는 마음이라는 불꽃이 날아오기만 한다면 누구든 철학을 할 수 있습니다. (…) 철학이란 일부의 지적 엘리트가 독점하고 있는 행위가 아니라, 말하자면 지극히 민주적인 행위, 지식의 서민에게도 열려 있는 자유로운 행위입니다”(13쪽)라며 전형적인 철학 입문서와는 다른 길을 갈 것임을 예고한다. 저자는 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철학이란 개념을 운운하는 것으로 세계에 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23쪽) 그런 다음 이 정의에 등장하는 ‘개념’, ‘운운’, ‘세계’, ‘갱신’, ‘인식’, ‘지성’, ‘저항’ 등의 어휘를 차례로 설명한다. 요약하자면 하나의 세계 안에서 일관성 있게 쓰이고 그 세계에 일순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인식을 통째로 바꾸는 것, 그 달라진 눈과 머리로 권력의 통제나 개입, 폭압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때의 개념은 물고기나 와인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빈자리나 식당 앞에서 맞닥뜨린 문턱, 폐관된 공공 도서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저항은 시위나 집회, 파업 같은 강력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움직이지 않거나 병에 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저항이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봉기한다. 이는 하나의 사실이다”(71쪽)라는 미셸 푸코의 말처럼 “사람은 그냥 저항”(67쪽)한다. 이기든 지든, 쓸모가 있든 없든 그 저항에 의해 세계를 보는 방식이 이미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책은 저항하는 이들에게 튄 철학의 불꽃을 전하는 방식으로 철학의 문을 연다. 그 불을 받아 스스로 키우는 사람은 누구라도 철학자가 될 수 있다. ‘바다의 물고기’도 철학 개념이 될 수 있을까 철학사와 철학자의 이름 없이 철학을 말하기 1장에서 자신의 언어로 철학을 새롭게 정의한 저자는 2장부터 영화와 소설, 인물 이야기에서 그 정의에 어울리는 철학자와 철학 개념을 건져 올린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흔들리는 대지〉에서 잡은 물고기를 매번 헐값에 중간 상인에게 빼앗기던 토니는 어느 날 문득 그물에 잡힌 물고기의 운명이 중간 상인이 짜놓은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성을 사냥감 취급하듯 쓰이던 농담인 “바다의 물고기는 먹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 속의 ‘물고기’가 불현듯 자기 자신으로 보이는 인식의 전환이 찾아온 것이다. 그물을 찢지 않으면 평생 먹이 취급을 당할 뿐임을 간파한 토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 자본가, 무산 계급, 착취 같은 잘 다듬어진 용어 없이도 ‘물고기’를 개념으로 삼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뒤흔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철학이다. 저자는 또한 볼테르의 『캉디드』와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연결하여 운명론에 저항하는 철학의 힘을 보여준다. ‘신이 창조한 세계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악에도 선을 실현하려는 신의 뜻이 깃들어 있다, 세계는 무수한 가능성 가운데 최선의 상태로 존재한다’라고 답하는 신의론 혹은 최선설이 지배하던 시기에 볼테르는 이를 우스꽝스럽게 비트는 소설 『캉디드』를 발표한다. 리스본대지진 같은 재앙을 ‘최선’이나 ‘필연’ 같은 말로 설명하는 철학이라면 차라리 폐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철학 개념의 유해성을 끈질기게 반어적으로 보여주는 이런 행동은 철학자의 이름을 참칭한 타락한 자들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철학을 탈환하려는 행위라고 간주해도 좋을 것입니다. - 152쪽 리스본대지진에 버금가는 재앙인 드레스덴 폭격을 겪은 커트 보니것은 그 체험을 기초로 쓴 소설 『제5도살장』에서 마치 운명론에 굴복하는 듯한 “그런 것이다So it goes”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지만, 타임 슬립이라는 SF적 장치를 도입해 이를 ‘그런 것일 리가 없다’라는 메시지로 뒤집는다. 위기의 시대마다 인간을 사로잡는 운명론에 저항한 볼테르와 커트 보니것은 철학자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미국에서 흑인 민권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마틴 루서 킹은 “기다려라. 인종 통합은 신중하게 고려된 속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언젠가 적절한 시점이 되면 차별은 시정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문제 해결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이와 같은 ‘신화적 시간 개념’에 맞서 킹 목사는 바울의 종말론을 참조하여 맹렬한 긴급성을 지닌 ‘지금’이라는 시간 개념을 세운다. ‘시간이 문제가 되는 현장에서는 시간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종말을 설정하여 기다리는 시간을 폐기하자, 우리에게는 창조적으로 사용해야 할 지금이라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라는 킹 목사의 시간론은 ‘언젠가’에 저항하는 철학이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스파르타쿠스〉, 아이누 문화 연구자 가야노 시게루의 삶과 글에서 한계 상황에 처한 인간이 문득 개념 하나를 집어 들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맞서는 순간, 즉 철학이 탄생하는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냉소주의에 맞서는 철학자의 실천 저항과 연대라는 일상의 윤리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철학적 훈련의 장 이 책의 저자 다카쿠와 가즈미는 ‘번역 기계’라는 별명으로도 불릴 만큼 현대 프랑스‧이탈리아 철학자들의 수많은 저작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학술 논문을 쓰거나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전문 연구자로 활동해왔다. 그런 그가 왜 이런 독특한 형식의 철학 입문서를 썼을까. 책을 마치며 쓴 글에서 저자의 생각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항을 전면에 내세운 데는 당연하게도 시대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 코로나든 원전 재가동이든 문제는 자연에서 비롯한 재난 그 자체보다는 이를 기회로 삼아 무질서를 만들어 자리보전을 획책하는 체제입니다. 그 체제는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특별히 계기가 되는 재난 없이도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다양한 일을 종횡무진 전개했습니다. […] 최근 몇 년간, 차근차근 논의를 만들어가는 것보다 거짓말이나 궤변, 변명으로 상황을 넘기는 것을 현실주의적이라 평가하는 냉소주의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경향에 끈질기게 “아니오!”라고 말하며 기본적인 윤리 감각에 숨을 불어 넣는 일입니다. - 213~216쪽 재난 상황을 틈타 이익을 취하고, 힘을 키우고, 약자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의 전횡에 냉소와 환멸, 무력감을 보일 뿐인 사람들에게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저자의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단순하지만 정교하게 구상된 실천적 철학 입문서이다. 저자는 모든 철학의 뿌리에 있는 저항의 면모를 드러내는 한편으로, 연대를 우직하게 긍정하는 일에도 비중을 두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부, 반란 노예 등의 ‘철학자’들에게 ‘철학의 불꽃’이 튄 순간은 모두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자들이 함께 있는 때였다.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존재로 거듭날 때 그 옆에는 반드시 함께 서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저항자와 연대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 저자는 이런 일상의 윤리 감각을 회복하는 일에 철학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철학 입문자에게 저자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은 냉소를 걷어내고 저항하고 연대하자는 것이다.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충분합니다. 내가 맞았다면 “아프다”라고 말하고, “아프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옆에 서는 것. 실제로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적어도 원칙은 이것뿐입니다. 이 책이 그 원칙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역할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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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ngken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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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철학적 영감의 순간, 기존의 질서나 권력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는 순간에 초점을 맞춘 철학 입문서. 지적 자극과 발견의 기쁨, 읽는 즐거움을 두루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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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w9304.suh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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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읽은 책. 철학책을 잘 읽어낼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어렵지 않았다. 철학의 뿌리에는 저항이 있구나. 거스르고 뒤집고 맞서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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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가방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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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 시절 서양철학사 전반을 몇 학기에 걸쳐 배웠다. 교양철학부터 서양고대, 중세, 근현대 철학에, 사이드로 몇몇 철학과목까지. 보통은 이런 식으로 철학사를 따라가면서 철학을 공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건 철학사지, 철학 그 자체는 아니지 않았을까?(물론 단순한 역사만이 아니라 그 철학자들의 주장을 통해 철학적 고민과 탐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배울 수 있지만)






    이 책의 저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학자들의(그리고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좁은 의미의 철학’일 뿐이고, 실제 철학은 훨씬 넓은 의미의 활동이라는 것.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을 “개념을 운운하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라고 정의한다. 이건 또 뭔가 싶을 정로 생뚱맞은 표현인데, 또 그 설명을 가만히 들어보면 일리가 있다. 어떤 개념을 일관성 있게 사용하면서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해 이 세상의 특정한 측면을 설명하는 동시에 그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저항적인 활동이 철학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설명해도 좀 이해가 어려운 건 사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네 가지 실제 예를 들면서 철학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각각 영화와 사회운동, 소설과 편지라는 다른 장르에서 이 작업을 진행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은 말을 사용해서 철학이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 중 사회운동과 관련된 3장에서는 아누족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일본 열도의 북부에 살았던 북방계열 민족인 아이누족은 남방 계열의 현 일본의 주류 세력에 밀려 오랫동안 억압과 착취를 당해왔다. 이 문제를 공론화한 아이누족 출신의 정치인 가야노 시게루는 ‘주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런 사회의 폭력에 저항하는 철학적 투쟁을 감행한다.






    아이누족의 주식은 연어였는데, 일본인들이 그들의 영토를 침탈하면서 대량으로 연어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어족자원이 고갈되자 금어기나 어로면허제도 같은 것을 도입해 아이누족이 연어를 잡는 것을 막았다는 것. 문제는 자기들이 일으켜놓고, 선주민들을 제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했던 일본 정부에 대해, 가야노는 “주식”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동시에 사회에 대한 저항을 했다. 이런 게 철학이라는 거다.






    5장의 주인공은 마틴 루터 킹이다. C. S. 루이스와 함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저자이기도 한 그는, 많이들 알고 있다시피 미국 흑인인권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저자는 킹이 쓴 “버밍햄 교도소에서 온 편지”라는 글 속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사회 문제에 대항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당시 미국은 법적으로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잘못이라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그것을 시정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기한 없는 계도기간을 두는 모순적 상황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흑인에 대한 차별도 결국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면서 킹을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의 강경한 태도를 꾸짖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킹은 “기다리라”는 말은 결국 인종차별주의를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차별의 철폐는 바로 지금 시행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시간’이라는 익숙한 개념을 ‘지금 여기의 시간’이라고 새롭게 정의하면서 사회문제에 저항하는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고, 이 역시 저자가 말하는 철학하기의 방법이다.














    책의 부제가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이라고 되어 있다. 그만큼 저자는 철학의 특징을 ‘저항’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늘상 책상에서 어려운 책이나 읽다가 가끔 알아듣기 힘든 말이나 하는 철학자들이 무슨 저항을 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저항’은 꼭 반정부적 활동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저항이란 기존 질서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젖어서 더 이상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벗어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그 안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이런 차원에서의 철학이라면 그건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민(民)이 주(主)가 되는 게 민주주의 아니던가.






    당연히 소위 말하는 개똥철학 따위는 철학이 아니다. 그건 개념을 일관되게 정의하지도 못하고,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꾸거나 새롭게 만들지도 못하는 잡담 수준의 발화일 뿐이니까.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누구나 하는 말이 다 철학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고하고 효과적으로 말을 하기 위해선 연습과 훈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철학이 필요할 때, 저자도 지적하듯, 오늘날에는 냉소주의가 좀 더 판을 치는 것 같다. 온갖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면서도, 정작 큰 문제 앞에서는 다들 그저 자기 살 구멍만 찾아 나서느라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않는다. 진영논리에, 정체성 정치에 빠져서 우리 편을 옹호하는 데에만 힘을 뺀다. 제대로 된 철학 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좀 필요하겠다 싶은데, 학벌주의에 매몰된 사회에선 그 또한 쉽지 않을 것 같으니 큰일이다.






    작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로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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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족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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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는 부모라서,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하지 못 할 거 같다.




    저항,이라는 말이 멋지다고, 저항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나의 젊은 날들이 있는데, 지금 부모가 된 나는 나의 부모님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철학으로 저항하다,라는 책이 가지는 지향이 '저항'이라서,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세상을 자신의 믿음으로 보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철학은 필요하다. 세상을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믿는다면 투쟁에 적합한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하고, 세상을 힘을 합해 함께 만드는 무엇으로 믿는다면, 또 그렇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나와 다를 바 없는 너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나의 질문이라서, 정치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선택의 순간 갈등한다.

    투쟁의 순간, 이익에 대한 말이 정직하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오직 이익 때문이라면, 나의 이 저항이 힘을 발휘할 공간은 생기지 않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 나의 이익이지만, 나만의 이익은 아닌 이유여야, 이익이 걸리지 않은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조금이나마 귀라도 기울여주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거다.

    명분이나, 사명감이, 어떻게 들릴 지 알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무언가를 같이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탈리아의 가난한 어부 이야기를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자의 숙명적 실패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일본 아이누의 연어낚시와 아이누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언어로 사로잡히는 사고의 저항으로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밥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인 나는, 일본인 특유의 약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불교나 유교적 태도는 아닌, 서구화된 태도 가운데, 저항이나 정체성에 대한 말들이라도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곧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면서 뚜렷한 의식으로 아내와 아들의 탈출을 본다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상궤를 벗어난 고통일 것입니다. - 34%




    그러니까 이 저항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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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n7070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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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 '저항' 두 단어를 연관지어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싶다. 두 단어가 어떤 면에서 연결될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부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철학'은 저자가 눈치채고 있던 것처럼, 기존의 철학자와 그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어렵고 알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철학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우리가 윤리와 사상이라고 할 때의 그 사상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헌데 '저항'이라고 하면 조금 더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방식 안에서 생각해야 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철학'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저항'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편견 정도. 그래서 두 단어가 어떻게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미 말했듯이, 저자의 말대로라면 철학은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 다가 아님을, 지금까지의 생각을 깨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이것부터가 '저항'의 시작이지 않을까.

    철학이란 개념을 운운하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23쪽)

    저자가 내린 '철학'의 정의다. 철학의 정의에 이미 저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철학이란 지금의 삶 속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기존의 것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 현재의 현상을 다시 생각할 줄 아는 저항. 철학이 흔히 말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삶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철학은 우리의 삶의 있는 그대로라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나는 과연 철학하는 삶을 살고 있나를 돌아보게 됐다. 영화와 소설에 담겨 있는 그들의 세계와 같이 나 또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저항하는 표현과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는지 말이다. 늘 이 지점에서 드는 생각을 이제 나도 정리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과연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간격을 어느 정도 좁힐 수 있을까.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고 그 아님을 내 말과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삶을 끌어들일 수 있는 어느 지점에 와 있는 걸까. 저자는 이 모든 것의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내가 하고 있는 것의 결과에 또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므로, 그 결과가 그 다음을 할 수 있게도 혹은 포기하게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결과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고, 나의 노력이 얼마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두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계속 철학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스스로 고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을 통해 또한 사회의 변화를 꾀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시작이 결국 철학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철학이 그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사상을 그대로 학습하여 아는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생활로 혹은 나를 둘러싼 거대한(내지는 아주 작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래서 저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 저항을 통해 이루어지는 많은 작고 소소한 철학을 작게든 크게든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저자는 성인 독자라면 학생의 입장에서 이 책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했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성인인 나에게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조금 더 깨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으니까. 다르게 생각해봐도 좋다는,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의 변화가 곧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 꼭 학생, 청소년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작품과 영화, 혹은 삶의 현상과 문제 상황을 소재로 한 <철학으로 저항하다>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지금껏 자연 재해와 사회적 큰 이슈를 바탕으로 발견되는 저항의 철학이 있었다면, 이제 지금, 당장의 우리에게도 이 철학은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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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아 2023-12-10
    메뉴
    * 철학
    1.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
    2.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

    * 저항: 어떤 힘이나 조건에 굽히지 아니하고 거역하거나 버팀.

    최근 아이들과 [동물농장]을 읽었다. [동물농장]의 혁명을 아이들은 실패라고 결론 내린다. 그저 성공인가 실패인가를 물었을 뿐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폴레옹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입장에 서고, 혁명의 시작점에 담겼던 가치의 실현이라는 입장에서 혁명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한다. 성공과 실패라고 결론 내린 다양한 이유를 들은 후 혁명의 실패 원인을 함께 찾아본다. 다양한 이유들이 나오는 가운데 아이들에게서 듣고 싶은, 기다리는 답이 하나 있다. 바로 ‘질문’하지 않음. ‘그들이 자신에게, 타인에게 질문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동물농장의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아이들이 생각했음 한다. 그리고 질문하지 않음을 자신의 삶에 끌어와 생각해보기 기대한다.
    ‘질문’. 나와 함께 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길렀으면 하는 힘은 바로 질문하는 힘이다. 내게 있어 질문하는 힘은 철학함과 동의어이다. 철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나와 세상에 질문하고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철학이고, 나는 아이들이 그런 힘을 가졌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하는 힘, 철학은 저항의 행위이다. 무비판적으로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기존의 자신과 세상에 계속해서 질문하고 그 저항의 행위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과 그런 자신이 변화시키는 세상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철학으로 저항하다]는 ‘철학함’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철학사를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풀어쓴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철학 입문서가 아니라 철학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철학함의 입문서 이다. 이 책은 고병권선생님의 추천사대로 철학함(고병권선생님은 철학이라고만 쓰셨다.)으로 들어가는 정말 좋은 문의 역할을 해준다. 이름난 철학자들이 한 말의 함의를 고민하고 정해진 답을 찾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내게 질문 하게 하고 스스로 답을 만들어가게 한다. 이 책을 읽어가는 시간이 ‘철학함’의 시간이 되는 듯하다. 이 책은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고, 당신도 철학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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