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원전 마니아’가 된 이유는
조선비즈
이재은 기자입력 2020.11.07 06:00 | 수정 2020.11.07 08:59
빌 게이츠 "원전은 온실가스 배출 없는 청정에너지원"
원전기업 설립하고 차세대 소형원전 개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회장은 전 세계 억만장자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원전기업 테라파워(TerraPower)를 설립해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나섰고, 그간 언론 인터뷰나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원전의 필요성을 설파해왔다. 게이츠 회장이 기존에 하던 일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원전에 관심을 갖고 옹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 로이터 연합뉴스
게이츠 회장은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에서 손을 뗀 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질병 퇴치에 힘써왔다. 범세계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 마련에 골몰해온 그는 수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기후위기 대응이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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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많은 전문가가 비슷한 견해를 밝힌다. 게이츠 회장이 조금 다른 것은 원전의 필요성을 제일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는 매년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는 동시에 이로 인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려면 원자력 발전소를 늘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이츠 회장은 "원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24시간 연속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라고 말했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2050년이면 전 세계 인구는 90억명을 돌파하고 이에 따라 에너지 수요도 2018년 대비 50% 증가할 전망이다.
게이츠 회장은 지난해 직접 출연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Inside Bill’s Brain)’에서 원전을 활용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면서 저렴한 미래형 원자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그는 2006년 테라파워라는 원전 기업을 설립하고, 차세대 소형원전 개발에 돌입했다.
테라파워는 미 원전기업 ‘GE히타지 뉴클리어 에너지’와 손잡고 소형 원전 나트륨(Natrium)을 개발해 10년 내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미 에너지부는 7년 안에 가동 가능한 2개의 차세대 원자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테라파워를 선정하고, 80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테라파워가 10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나트륨 소형원전 조감도 / 테라파워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나트륨 소형원전은 소듐냉각고속로(SFR)를 사용한다. 액체 나트륨(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차세대 원자로다. 기존 원전은 물을 냉각재로 쓰는데, 액체 나트륨은 물보다 더 많은 열을 흡수할 수 있어 발전 출력을 높일 수 있다.
이 소형원전은 날씨, 계절 등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용도로 설계됐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테라파워는 "나트륨 기술은 SFR를 사용해 열을 생성하고, 이를 통해 즉시 전기를 생산하거나 몇 시간 동안 저장고에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전력 수요가 적을 때 원자로에서 생성된 열을 저장해놨다가 풍력·태양광 기반 전력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나트륨 소형원전의 건설 비용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로 기존 대형원전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발전용량은 345MW(메가와트)다. 크리스 르베스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상용화에 성공하면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소형 원전을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테라파워는 최근 영국 원전벤처 '코어파워', 프랑스 원전소재 전문기업 '오라노'와 손잡고 용융염 원자로(MSR) 개발에도 돌입했다. MSR는 선박추진에 사용할 수 있는 초소형 고안전성 원자로다. 최근 미국,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원자로 추진선이 친환경 선박으로 주목받으면서 원자로 소형화 관련 연구가 추진력을 얻고 있다.
한동안 원전 산업에 소홀했던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를 기점으로 차세대 원전 개발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테라파워의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민주당도 50년 만에 ‘원전 지지’로 입장을 선회해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도 원전 개발과 건설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전력 부문에서의 탈(脫)탄소화를 골자로 한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데,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제로·net zero)이라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