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9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감상문 /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감상문 /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감상문 /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기자명 박장미
입력 2018.10.07 18:55


동아시아의 미래와 한·일 노년철학 —노년철학 제2회 국제회의에 다녀와서—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동양포럼- 노년철학 2회 국제회의 감상문

동아시아의 미래와 한·일 노년철학

—노년철학 제2회 국제회의에 다녀와서—



이은선(세종대 명예교수, 한국 信 연구소)



1. 지난 9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서 보은 속리산 숲체험 휴양마을에서 열렸던 ‘노년철학 제2회 국제회의’에 다녀왔다. 한일 국제회의라고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 오랜 기간 ‘교토포럼’을 운영하시던 김태창 선생님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충북 청주의 지역신문 <동양일보>와 손잡고 진행하고 있는 ‘동양포럼’의 일환으로 열린 작은 모임이었다. 20여 명 참석자의 면면은 다양하여 학자와 언론인, 시인, 공직자와 지방 연구소의 정책연구가 등이었는데, 독특하게도 대부분 참석자는 이 포럼에 오기 전에 먼저 노년과 나이 듦, 바람직한 노인상 등과 관련해서 각자 짧은 성찰의 글을 보내야 했고, 그것이 <동양일보>에 기사화되어서 우리 토론의 주제와 성찰의 구체적인 내용물이 되었다. 한일 양국의 참석자들이 소개한 노인상으로는 한국 측에서 퇴계 이황(1501-1570), 해월 최시형(1827-1898)의 노년기가 있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충북 보은의 성리학자 대곡 성운(成運, 1497-1597)이 있었다. 일본 측 참석자가 소개한 바람직한 노년상으로는 일본 현대 선불교 철학자 니시타니 게이지(1900-1991)가 있었고, 일본 에도시대(1603-1868)의 유학자이면서 박물학자인 카이바라 에키켄(1630-1714)과 그와 동시대인 쿠마자와 반잔(熊澤蕃山), 그리고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큰 불교 종파인 정토진종의 창시자 신란(1173-1263)이 있었다. 발표자가 참석은 못 했지만 노년기 주자(朱子, 1130-1200)의 삶과 사상도 짧게 다루어졌고, 일본 측 학자가 소개한 한국의 혜강 최한기(1803-1877)도 조명되었다.



2. 왜 지금 ‘노년철학’인가? 예전에 ‘노년철학’이라는 말이 있기나 했나? 어린 시절부터 한국과 일본, 서양 문화를 두루 접하면서 동아시아의 불행한 현대사를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일에서 자신의 시대적 소명을 본다는 김태창 선생은 포럼의 서두를 여는 말로 뜻밖에도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 시몬느 보부아르를 언급했다. 보부아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그때까지 ‘제2의 성’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삶을 복권시키고자 한 것처럼 그렇게 이제 노년의 삶도 온전히 나름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가진 유의미한 시간임을 새롭게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김태창 선생은 그렇게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문을 연 시몬느 보부아르가 바로 ‘노년’의 삶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주창하는 글도 썼고, ‘아동’(어린이)의 발견도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우 탁견이라고 생각했고, 이어지는 선생님 자신의 노년적 삶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다. 이제 80대 중반을 지나고 손주를 보게 되면서 노년이 시작된 것을 생각한다는 이야기, 매일 아침 6시에 동네에 나가서 자신의 집 주변 사방 100m 내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면서 젊은 사람들이 힘들게 사느라고 하지 못 하는 일을 자신이 한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 젊은이들을 나무라거나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70세를 넘어서 산다는 것은 이미 사회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이니 노년의 삶은 ‘보은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 그래서 세대 간의 상생을 이루고 노년이 단지 복지의 대상이거나 도움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바를 찾아서 해야 한다는 당부 등, 많은 따뜻한 감성과 인성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러한 담화들은 지금까지 ‘(공공)철학’ 운동을 주도해 온 선생으로부터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들려졌고, 이와 더불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기독교 신앙을 말하고, 자신의 어머니가 독실한 성결교 신자였다는 것을 밝히면서 ‘영성’에 대한 강조를 한 것이다. 선생은 지금까지 철학자로 살면서 신앙이나 영적 지혜, 영성 등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것 같은데, 이제 노년이 되어서 종교와 영성의 차원에 대한 의식을 강조하는 입장에 선 것 같았다.




3. 이번 노년철학 포럼에서 특히 강조된 것 중의 하나는 노년철학과 우리 나이 듦의 지향이 결국 ‘영성’(spirituality)의 차원과 연결되며, 또한 바람직한 노인상의 정립은 한 인격 안에 ‘여성적인’ 덕목을 통합하지 않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나도 “노년, 여성, 영성”이라는 짧은 성찰의 글을 보냈고, 여류시인 김영미 선생은 “나이 들수록 아름다운 두 여류시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김남조(1927-)와 유안진(1941-) 시인을 잘 소개해 주었다. 또한 이에 앞서 그녀가 소개한 정현종의 ‘방문객’과 같은 시는 참석자로서 사회를 보던 김봉진 교수(일본 기타규슈대학)의 마음을 크게 움직여서 눈물을 자아내게도 했고, 이렇게 인간의 감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여성적이고도 감성적인 차원이 바람직한 노인상에 통합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이번 포럼의 또 다른 여성 참석자 황상희 박사는 퇴계 이황의 삶과 사상을 특히 ‘영성’ 추구의 그것으로 풀어주었다. 우리가 보통 퇴계의 ‘경’(敬) 사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그의 사상이 단순히 좁은 의미의 이성적 도덕철학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오십의 나이가 되어가면서는 지속해서 공직으로부터 물러남(退)을 청하면서 당시 반복되는 사화의 분쟁 속에서 조선 사회를 구할 ‘천년의 기초’(訂千年)를 찾기 위한 간절한 정신적 추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퇴계 선생은 하늘이 우리 안에 ‘상제’로서 내재해 계시는 것을 깊이 느끼는 신앙(對越上帝)을 표현했고, 그 각성이 만물과 더불어 한 가족임(‘우주적 가족공동체’)을 느끼는 큰 존숭과 떨림(敬)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 사상사에서 이러한 종교적 차원에 대한 재인식과 발견을 강조한다.



4. 퇴계 선생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이번 노년철학 포럼을 통해서 알게 된 대곡 성운의 삶도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당시 시대의 혼돈과 좌절을 뒤로하고 처가인 충북 보은으로 내려와서 3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성운의 삶을 김양식 소장(충북연구원)은 충북 보은이 배출한 바람직한 노년상으로 소개하며 오늘 우리 시대의 귀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남명 조식이나 서경덕, 토정비결의 이지함 등이 그를 찾아올 정도로 학문과 인격을 갖추었지만, 그는 거문고를 타다가도 남이 칭찬하며 청하면 그만두었을 정도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삼갔다고 한다. 속리산을 특히 좋아하여 홀로 산에 들어가서 며칠씩 지내다 오곤 했다는 그에 대해서 김양식 소장은 “귀촌한 이후 ‘도시’를 꿈꾸지 않았다.”라고 서술한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귀촌하여 노년을 보내고자 하지만 그중 상당수 사람이 다시 도시로 떠나는데, 성운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대부의 삶을 떠났지만, 참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통해서 ‘지성’의 끈을 놓지 않았고, 온화하고 단아하며 큰 이해심으로 주변의 사람과 잘 지내는 ‘인성’을 잘 가꾸었고, 이와 함께 때때로 집에서 몇 리 떨어진 산수를 찾아가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몇 날을 보낼 정도로 순수하게 자연과 하나 되는 자유와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영성’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했을 때 한 인간의 살아온 삶은 자연스럽게 그가 살았던 공간(지역)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데, 성운도 그가 보은 산골로 귀촌함으로써 충청도 최초의 서원인 ‘삼년성서원(현 상현서원)’이 세워졌고, 그래서 충청도 지역의 성리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의 귀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5. “생각하는 노년, 수양하는 사회”라는 글로써 바람직한 노년상을 특히 ‘영성’의 실현에서 보는 조성환 박사(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는 “노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상적으로는 사회가 영성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여기서 그가 이해하는 영성이란 어떤 초자연적이고 탈세상적이거나 지성이나 인성과 상관없는 무슨 비의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영성은 진정으로 자신을 비울 수 있고, 자기를 無로 만드는 자기 비움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에 따르면 노인 세대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지적해온 ‘꼰대’라고 말은 ‘설교’하기를 좋아하고, ‘말’이 많은 것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설교나 말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배려하고 포용하는 생각하는 노인상이야말로 바람직한 노인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도 밝혔듯이 이처럼 현실과 이 세상에서의 구체적인 살림과 치유에서 드러나는 노년의 영성을 한국 역사에서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1898) 선생만큼 진실하게 체현한 사람이 또 있을까?

이번 포럼에서 김용환 교수(충북대)는 노년기 최시형의 삶과 사상을 21세기 바람직한 노인상으로 소개하면서 첫 번째 발제를 담당했다. 알다시피 해월은 한국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뒤를 이어받아 스승이 1864년 처형당하자 무려 36년 동안이나 보따리 하나를 가지고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스승의 도를 최고의 경지로 전개시킨 인물이다. 그의 사상의 핵심을 김용환 교수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들을 하늘과 같이 섬김)과 ‘양천주’(養天主, 내 안의 천주를 잘 모심)로 소개하는데, 당시의 상황에서 그의 사상은 내우외환으로 쓰러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자주의식으로 표현되었고, 신분제를 타파하여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평등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해방과 평등의 정신으로 전개되었으며, 가정의 주인이 부인임을 알고 여성과 부인을 섬기고 태아와 아이들을 존중하는 여성해방과 아동중시 사상이 되었다. 노년의 최시형은 그렇게 오랜 기간을 쫓겨 다니면서도 틈나는 대로 자기 수련에 몰두했고, 스승의 남은 가족들을 극진히 보살폈으며, 스승의 신원운동과 척왜운동, 동학의 체계화와 정비에 힘을 쏟았다. 그는 어느 곳을 가든지 그냥 있지 않고 새끼를 꼬고 꽃나무를 심고, 1899년 72세의 나이로 원주에서 체포되기 전날에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지막 잡히는 과정에서도 그는 더 도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평소에 중요하게 펼친 ‘용시용활’(用時用活, 때를 살려서 쓸 것)의 도와 영적 혜안을 따랐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는 자신 삶의 시간과 때가 도달했다고 여겼고, 그래서 더 이상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으며, 따르던 사람들에게도 두려워하지 말고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오니 오직 믿음에 더욱 서라고 당부할 뿐이었다고 한다(道源記書).




6. 이렇게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노인상의 모습에는 우리의 일반적인 지적 능력이나 감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높은 영적 능력과 통찰력이 포함된다. 거기에 ‘죽음’에 대한 통찰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한일 노년철학 포럼을 통해서도 우리 몸의 끝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일본 측 참여자들에 의해서 몸의 늙어감과 보통 그 끝이라고 생각되는 죽음을 어떻게 보는지가 주목되었는데, 포럼이 열리는 당시 일본에 몰아친 태풍으로 직접 참석지는 못했지만 데구치 야스오(교토대) 교수는 현대 선불교 철학자 니시타니 게이지의 ‘한산시’(寒山詩, 1974)를 통해서 그의 ‘공(空)의 철학’이 밝히는 늙음과 죽음을 소개했다. 한산은 원래 중국 당나라 시대의 불교 성지인 천태산의 은자였다고 한다. 그가 실제 인물이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그가 사라진 후 깊은 산속의 바위 등에 남겨진 수많은 시에 따르면 한산은 오히려 깊은 산속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춥고 음습한 풍경의 절망을 ‘바람직하다’라고 하고 ‘즐기는 경지’까지 갔다고 한다. 니시타니는 그로부터 노경의 늙어감과 외로움, 죽음으로 가는 내리막길을 오히려 자아와 타자, 존재와 비존재 등의 모든 분열과 틈새를 넘어서는 ‘공’(空) 과 ‘천공’(天空) 체현의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한 쇠락함과 죽음과 허무를 넘어서는 큰 허무의 자유로움과 명랑함, 밝음, 너그러움을 말한다. 그것을 그는 “화해정의”(和解情意)의 일이거나 “죽음을 살다”, “지속적이고 체험 가능한 죽음”, 또는 삶과 늙음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위해 “타자의 늙음을 늙는다는 것” 등으로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우리의 생물학적인 죽음 이후에도 확실한 것은 “죽음 앞에 보이는 푸른 하늘”일 것이라고 말한다.

니시타니는 우리 존재에서 삶과 죽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원성을 넘어서는 ‘늙음’을 “제3의 범주”로 간주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죽음을 곧 앞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아직 살아있지만 머지않아 죽는다.’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아직 장래에 머무는 한 역시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것을 그는 ‘죽음을 살고’, ‘죽음을 체험’하는 것 등으로 표현하는데, 여기에 진정한 노경의 품격이 있고, 참된 늙음이 있음을 밝힌다. 데구치 교수는 이것은 전통적인 불교의 사생관인 고통으로서의 죽음관을 넘어서서 정의적으로 죽음과 화해를 이루는 시각이었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나는 뜻밖에도 여기서 서구의 한나 아렌트도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대목을 들어서 제안한 방식이 생각났다. 즉 그것은 우리가 모두 죽는 사멸성의 존재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죽음을 향해서 사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그보다는 매 순간의 삶에 더 몰두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일본 선불교 철학자가 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노년의 의미와 그 독자성을 밝혀주고, 생물학적 죽음을 상대화시키는 이야기는 오늘 늙는 것과 몸의 끝을 극도로 혐오하는 우리 세대에게 확실히 줄 것이 많아 보인다.



7. 이상의 철학적 성찰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죽음과 늙음의 힘을 상대화시키는 가능성을 일본 측의 또 다른 참석자 기타지마 기신 교수(욧카이치대학)는 일본 정토교의 창시자 신란 연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한다. 익히 아는 대로 신란은 12세기 일본에서 16세기 서구 개신교의 마틴 루터보다 훨씬 더 일찍이 ‘믿음’(信)을 통한 구원을 설파하여 일본의 마틴 루터로 여겨지기도 한다. 기타지마 교수에 따르면 신란은 노년기에 일관되게 ‘정정취론’(正定聚論)을 펼쳤다. 정정취란 ‘신앙, 신심(信心)을 통해서 죽어서 부처가 되는 것이 확정된 사람들의 무리에 속한다.’는 의미인데, 따라서 이제 여기서 아미타 부처의 도움으로 믿음을 통해서 구원과 극락왕생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거나(卽得往生) 자아를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깨달음의 위계에 오른 사람들은 온전히 평등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여 자신의 남은 힘을 현실 세계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쓰는 것을 말한다. 신란은 말년에도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전혀 갖지 않았고, 세속의 모든 가치관을 상대화할 수 있는 영적 힘을 가지고 심지어는 84살의 노년에 이러한 자신의 신앙과 신념에 부응하지 못하는 친아들 젠란에게 의절장을 보내 절연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염불하는 사람들은 신심이 결정되면, 자신의 왕생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염불을 하면 됩니다. ... 자신의 왕생이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분은 구원받기 위한 염불은 필요 없고, 구원해주신 부처님의 은혜를 자각한다면 보은을 위해서 마음을 담아 염불을 하고, 세상이 태평하도록 염불이 퍼질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親鸞, 唯信鈔文意)라고 선언한다.

오늘 한국 기독교 개신교의 어느 강력한 구원론을 생각나게 하는 이 믿음의 선포는 그러나 자칫하면 위험한 신앙적 배타주의와 결정론으로 화해서 오히려 지독한 이기주의와 자기 폐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미 죽음 이후의 구원과 극락까지 확보해 놓았다는 믿음은 노년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고 하지만, 오늘의 과격한 세속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신란에 대한 성찰을 발표한 기타지마 교수 자신이 일본 사회에서 불교 성직자이기도 하고 뛰어난 사회운동가로서 동아시아 평화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신란 정정취론의 긍정적인 역할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지만, 오늘 점점 더 폐쇄적이 되고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 특히 그 노년 세대의 현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다른 참석자 오오하시 켄지(일본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의 이야기는 그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오오하시 선생이 소개한 일본의 또 다른 바람직한 노인상은 17세기 에도시대의 유교적 무사 쿠마자와 반잔이었다. 발표자 자신도 그렇듯이 에도 막부시대의 반잔은 양명학을 배운 후 유교 실심과 실학의 입장에서 이론으로서의 학문이나 사적 이익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도를 이루려는 유교 이상주의와 경세제민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분투한 사상가 겸 행동가였다고 한다. 에도시대 무가(武家)의 가신으로서 번(藩)의 행정을 주도하여 구휼, 치수, 교육 사업 등을 담당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는 특히 “어려서는 배우고, 자라서는 행하며, 늙어서는 가르친다.”라는 모토를 강조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늙어서 가르친다는 말은 단순히 연장자로서 지식이나 경험을 연소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즉 노년에 이를수록 보다 나은 미래사회를 위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일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그에 따른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강압적인 권위나 나이 듦을 내세워서 ‘스승’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 ‘함께’ 힘을 다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배우는 사람만이 참된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르치는 것이 동시에 배우는 것’이고 그것이 ‘교육의 진수’라고 말한다. “사람이 어려서 배우고 자라서 실행하며 늙어서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과 어긋난 사람을 국적(國賊, 나라의 도둑), 혹은 밥도둑(穀賊)이라고 부른다. 늙어서 현역에서 물러가고 고향에 돌아가서 자제와 이웃 아이들을 가르치고 하늘에서 내려주신 생명 정신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을 불곡(不穀)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짧게 소개된 반잔에 따르면 바람직한 노인상이란 노년이 될수록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일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은 생을 홀로 즐기는 일에 몰두하거나 다가오는 죽음을 염려하며 경직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세계를 향해서 활짝 열고 타자와 함께 공동체의 안녕과 미래세대를 위한 활동 속에서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방식을 사는 일을 밝혀준다.



8. 이번 노년철학 한일 국제회의를 주관한 동양포럼은 알다시피 김태창 선생이 지난 시간 일본에서 오래도록 주도해온 교토포럼에 이어서 한국에 돌아와서 ‘동양일보’와 손잡고 그 모토를 “동아시아의 공동 가치를 찾아서”라는 것으로 하면서 이끄는 모임이다. 이번 노년철학도 그 지향대로 한일 양국의 바람직한 노년상을 찾아내어서 공통분모를 얻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고, 과거와는 달리 ‘평화’와 ‘행복’의 동아시아를 이루는 일에 더욱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 화해와 평화의 일을 위해서 ‘노년’에 주목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노년이 된다는 것은 그 이전의 삶의 시간 속에서 국적이나 성별, 계급 등의 차이로 인해서 첨예하게 갈등을 일으킨 요소들이 바로 모두의 보편적인 나이 듦과 죽음 앞에서 크게 완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노년철학의 구성을 위한 중요한 축은 오늘날 100세 시대를 구가하는 일이 점점 더 보편적으로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오늘의 노년세대야말로 그 삶이 점점 핍절해지는 젊은 세대에 비해서 이미 축적해서 줄 것이 많고, 그래서 그것을 동아시아의 선한 미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노년은 복지의 수혜자이고, 사회의 부담이라고 여기지만, 그리고 물론 우리 주변에 어렵고, 공동체의 돌봄이 있어야 하는 노인들이 많이 있지만, 동양포럼의 노인철학은 그보다는 앞의 반잔의 노년 철학에서 보았듯이 그와 같은 일반적인 노년 이해에 제동을 걸면서 점점 더 길어지는 생애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멀쩡한 노인들”, 단지 복지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노년세대에게 철학하고 성찰하는 노년상과 그 일을 통해서 ‘공공’(公共)하는 노년의 삶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노인철학을 가지고 운영되는 동양포럼이다 보니 그 일을 이끄시는 분들의 면면이 바로 그 철학의 화신인 경우가 두드러졌다. 앞서 말한 김태창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3박 4일의 회의기간 내내 뒤에서 참된 성실과 친절, 겸손으로 회의 전체를 세밀히 살피며 이끄시는 유성종 운영위원장님, 한국 최고령 3선 군수로서 충북 보은을 행복과 돌봄의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정상혁 군수님, 30여 년 전에 기자로서 신문을 창간하여 지역 언론을 통해서 좋은 담론을 형성하고 성찰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고투하는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등이 그런 분들이다. 또한 한 아침에 회의장을 찾아서 한국 농촌의 현실과 보은군의 노인 현황, 본인의 삶의 자리에서 나온 바람직한 노인 정책 등을 제안하며 감동 있고 힘 있는 말씀을 들려주신 대한노인회의 보은군지회 이응수 회장님이 있었다. 그와 더불어 교토포럼에 이어서 동양포럼의 핵심 멤버이신 일본 <미래공창신문>의 야마모토 쿄시 사장은 그의 발제에서 노년들이 특히 언론활동을 통해서 사회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도덕 규준이 있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서 그는 노년들이야말로 그 체력적 한계를 넘어서서 언어와 말과 글을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고, 다음 세대와 어린이들을 위해서 사람에 따라서는 가지고 있는 축적해 온 지적 재산과 안정된 재력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그는 ‘매문’(賣文), 즉 글을 파는 행위를 특히 경계했고, “정보화시대의 무기로서 언론의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노인들의 연대는 먼저 새로운 언론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관건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 100년대인 만큼 노인들에게는 엄청난 사명과 책임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자각하시기를 바란다.”라고 역설한다.



9. 하지만 이런 모든 안목과 제안에도 불구하고 요사이 한일 양국은 모두 더욱더 부패하고 있는 언론과 우경화, 보수화를 거듭하고 있는 ‘기득권’ 노년세대로 인해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소위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주로 노년층과 특히 보수 종교계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특권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펼치는 ‘가짜 뉴스’(fake news) 문제로 점점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특히 그동안 한국 사회가 크게 고통받아온 냉전과 남북분열의 시간을 극복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려는 사회 진보적 노력을 각종 가짜 뉴스와 과거체제 고착적인 시각으로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며 끌어내리려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노년철학을 다각도에서 탐색했고, 더군다나 노년세대가 이바지할 수 있는 공정하고 깨끗하며 공공적인 언론을 위한 기여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리에서 김태창 선생은 가짜 뉴스라는 것을 누가 판정할 수 있으며, 오늘 한국사회가 너무 편파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등의 언급을 하면서, 그 태극기 부대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시는 것을 듣고 나는 실망감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든 철학을 말하고 높은 영성을 구하며, 남이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행할 수 있는 노인철학을 구성하려고 한다면서도, 그 일이 한갓 오늘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면, 그 허구성과 비현실성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서 사실 이번 노년철학 회의가 영성과 더불어 ‘여성’적인 가치에 대해 주목한다고 했지만, 오늘 상식적인 여성들의 보편인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조차도 소수의 여성이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얻으려는 왜곡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듣고는 참으로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현실들을 목도하니 그동안 꼬박 하루 거의 8시간 이상을 노년철학을 위해 ‘대화’해 온 자리라는 것도, 사실 서로간의 대화가 아니라 거의 일방적인 강술이었고, 모든 담화의 마지막 결론은 항상 선생 한 분의 입장과 시각으로 정리되고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당혹감을 감출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리 자신을 비우는 노년철학을 말하고 바람직한 노년상을 위해서 타자와 낯선 것에 대해서 개방하는 것을 강조해도, 그것이 실제로 실천되는 일은 그처럼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퇴계 선생은 ‘학자의 큰 병은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따르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不能捨己從人 學者之大病)이라고 하셨고, 전설적인 성인(聖人) 순임금의 가장 뛰어난 덕목이 바로 ‘사기종인’이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선을 행하는 것’(善與人同)이었다는 것이 다시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바람직한 노인상을 위해서 제일 중요하고 긴요한 것은, 끊임없이 과거의 자신을 내려놓고 그것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과 다른 것에 자신을 개방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실감한다. 그래서 어쩌면 그 일은 우리 개인적 의지나 인간적 노력을 넘어서, 다시 어떤 신적 은총이나 전혀 낯선 것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철학만으로는 안 되고 한 인격의 진정한 변화와 새로워짐은 ‘종교’나 ‘영성’의 차원이 꼭 함께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의미로도 받아들인다.

노년의 삶 속에서 여성적 측면을 인정하는 일에서도 가장 간단하고 단순하게 말해보면 어떤 회의나 대화의 장소에서 말하는 시간의 양을 적절하게(평등하게) 나누는 것만큼 실제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더 있을까 생각한다. 참석자의 면면은 물론이고 말하는 시간의 분배가 거의 한 특정한 남성에게 쏠려있다면 그가 강조하는 여성적 가치의 중시는 한갓 빈말일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많은 사안과 주제에 대해서 여성의 관점과 남성의 관점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속리산 보은에서의 은둔적 성리학자 성운의 삶과 사상을 논하는 데서도 김영미 시인은 여성들은 그처럼 생계나 일상의 관계와 살림살이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 남성 선비의 은둔상이 오늘 귀촌의 바람직한 상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했고, 또한 많은 발제가 노년의 삶을 너무 무한한 사회적인 책임과 공적 의무의 차원에서 논해지는데 자신은 노년의 삶을 좀 더 쉬고 자신에게 관심하는 일로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마지막 날 회의에 함께한 김연숙 교수(충북대)는 노년 철학의 노년 이야기에서 정작 노인의 목소리는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고, 최근에 마당에 호박을 심어보는 경험 속에서 시들어가고 소멸해 가는 것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마지막 발언으로 요즈음 자신에게는 삶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acting’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undoing), ‘그만둘 수 있는 것’인 것 같다고 하는데, 이런 발언들에서 여성적 사기종인의 지혜와 덕이 더욱 느껴졌다.



10.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서 한일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일은 지난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그 긴 시간을 힘써 이루어 오신 포럼의 관계자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종 거기에서도 유사한 모순과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회의의 일본 측 참석자에 속해 함께 한 김봉진 교수는 30여 년을 일본에서 지내오면서 일본 사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거의 저버렸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아베 정권의 아베는 거의 확신범 수준이지만 이번에 다시 수상에 오를 수 있었고, 후쿠시마 원전 폭파의 처리가 어떻게 되어가는 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언론 통제와 보도 통제가 심한 가운데 사회는 점점 더 우경화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과는 달리 김태창 선생의 언어에는 무심코 던지는 말에서도 한국사회를 폄하하는 듯한 말들이 종종 나온다. 특히 한국의 촛불 혁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분이 어린 시절 일제 식민지시기를 보내면서, 그리고 오랜 기간 일본에서 지내면서 무의식적으로 얻게 된 한국 노년세대의 자기비하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일의 극복이 어떻게 가능한가가 오늘 우리 사회 노년세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여기고, 바로 그럴 때 참다운 세대 간의 상생과 나눔,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본다.

이제 나는 그렇지만 모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참관기의 마지막 말을 맹자의 언어를 빌어서 하고자 한다. 그것은 그가 오래된 것, 나이 듦에 대한 존숭(警長)이야말로 한 공동체의 義의 토대가 된다고 밝힌 말이다. 이 가르침은 오늘의 우리가 있기 위해서 과거에 이루어졌던 수고를 공정하게 알아주고, 갚아주고, 감사하며 보은하는 마음이 현재의 모든 삶에서의 공정과 정의의 기초가 된다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제 스스로가 나이가 들어서 노년이 되었지만, 자신을 감사와 보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먼저 받은 은혜와 수고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갚으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이 바람직한 노인상의 토대가 되며 그 길이 우리 몸과 마음을 경직되지 않고 보수화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본다. 또한 그 일은 우리 삶에서 오랜 기간 행해온 孝의 의미와도 잘 통하는데, 일본 측의 참석자 야규 마코토 박사(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가 17세기 일본의 에키켄과 19세기 조선의 최한기에게서 공동으로 발견한, 만물을 낳고 살리는 하늘 부모에 대한 孝가 노년의 양생과 바람직한 삶을 위한 근본이 된다고 한 가르침과도 상통함을 본다.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 김태창 선생님과 포럼이 한일간의 화해와 새로운 관계 맺음을 위해서 들인 노력은 그 여러 가지 반박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감사와 보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또한 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보은에서의 회의가 내가 학문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셨고 아이들을 돌봐주신 시어머님의 고향이었으므로 그분의 수고와 은혜를 더 기억나게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게 했다. 또한 거기서 멀지 않은 청주의 한 요양소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불효를 겪었으니 이번 노년철학을 논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또 돌아보게 되었다. 이런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주신 김태창 선생님과 동양포럼, 그리고 보은군의 베풂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된 노년철학이 더욱 전개되고 발전되어서 동아시아의 미래뿐 아니라 세계를 더 좋은 인간적 삶의 터로 화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박장미 pjm8929@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