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 생활 입문 [제3부 수덕(修德)]제3장 인내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떼쎄라
2016. 5. 25.
[제3부 수덕(修德)]
제3장 인내
성경에서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히브 10,36)라고 말했고, 주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필로테아 님, 우리에게 영혼이 있는 것은 크나큰 행복입니다. 우리가 인내심을 많이 가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완전하게 우리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수난으로 우리를 구하셨으니, 우리도 온갖 불의와 고생과 불행을 인내하고, 고통과 비애를 견뎌 냄으로써 우리 영혼의 구원이 성취된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특정한 고통이나 불의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모든 것을 인내해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히는 일, 신앙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당하는 일, 올바른 주장 때문에 어려움에 빠지는 일 등 명예스러운 고통만을 잘 참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명예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인내심이 강한 하느님의 종은 명예와 관계없이 모든 고통을 감수합니다. 그런 사람은 악인에게 조롱과 비난과 괴롭힘을 당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나 친구, 친척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내입니다.
예전에 엄격한 수도회 소속의 한 유명한 설교자가 대중 앞에서 설교하던 중에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을 몹시 비난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모든 비난보다도 유명한 설교자가 쏟아 붓는 온갖 비난을 오랫동안 견뎌 온 위대한 성인의 온유함을 더욱 존경합니다.
파리보다 벌에 쏘이는 것이 더 아픕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사람이나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는 비난과 공격은 다른 이로 말미암아 받는 고통보다도 훨씬 더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이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훌륭한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이 달라 서로를 비난하거나 괴롭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대는 큰 고통뿐만 아니라 이에 따르는 부수적인 어려움까지도 인내해야 합니다. 그에 따르는 불편함은 참지 못하면서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친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식들을 키울 수 있다면 가난해도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이 내 탓으로 가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가난해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비방을 받아도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참아 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불행의 전체가 아닌 그 일부만을 감수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으나 치료받을 돈이 없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필로테아 님, 병 자체를 참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마음에서 병으로 말미암은 고통과 불편도 함께 참고 견디는 것이 참된 인내이며, 이는 다른 모든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불행하다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십시오.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뒤에는 온전히 인내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처분을 기다리십시오. 만일 그렇게 해서 불행이 물러갔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대에게 닥친 불행이 주님의 거룩한 뜻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를 인내하고 하느님을 찬미하십시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그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면, 그러한 비난을 받아도 마땅함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만일 그 비난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를 부인하고 조용히 해명하십시오. 이는 진실을 드러내고 남들에게 덕을 기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정직하게 해명을 했음에도 여전히 비난을 받게 되어도 결코 괴로워하거나 다시 해명하려 하지 말고, 진실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대의 명예를 보존하는 동시에 그대 마음의 평화와 온유와 겸손을 지키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대를 괴롭히더라도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일반적으로 자기애가 강하면 더욱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면 죄를 짓기 쉽습니다. 특히 쉽게 흥분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화를 내지 마십시오. 상처를 치유받거나 정신적으로 위로받고자 누군가에게 자기 고통을 호소하고 싶거든, 성품이 온화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로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갈등만 더 커지게 될 뿐입니다. 박힌 가시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박히게 하는 결과만 낳게 됩니다.
병들거나 걱정이 있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입어도 불평하지 않고 참는 사람들 중에는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두려워서 참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은근히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동정하고 걱정해 주거나 심한 고통도 씩씩하게 견딘 것을 칭찬해 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도 인내이기는 하지만 거짓된 것이고 사실은 교묘한 허영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행위가 아니다.”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진정으로 인내심 있는 사람은 고통을 말하지 않고 남에게 동정을 구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문제를 단순히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사실과 다른 것에 대해 걱정해 줄 때에는 그렇지 않다고 사실을 밝힙니다.
신심 수행을 방해받을 때에는(방해는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요한 16,21)
그대 영혼에 잉태되신 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대 영혼에서 태어나실 때까지 그대는 산고를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지나면 아기를 낳은 기쁨이 영원할 것이니 용기를 내십시오. 그분은 진정으로 그대를 위해 태어나실 것입니다. 그분이 사랑으로 당신 마음에 오시면 당신의 행동은 그분을 닮게 됩니다.
아플 때에는 그대의 아픔과 고통과 약함을 모두 주님께 바치고, 그대의 고통으로 그대를 위해 견디신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시어 쓸개를 맛보신 것을 기억하며, 의사의 말을 듣고 약과 음식을 복용하고, 다른 조치도 취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르려면 무기력함과 나약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꿀벌은 꿀을 만드는 동안 매우 쓴 것을 먹는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역경을 견디며 고난의 빵을 먹지 않는다면 우리는 겸손과 인내와 같은 진정한 덕의 꿀을 모을 수 없습니다.
‘백리향초(百里香草) ’라는 작고 쓰디쓴 풀꽃에서 채취된 꿀이 제일 감미로운 것처럼, 가장 비통하고 비천한 고통 중에서 행한 덕이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알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사람들에게 온갖 모욕과 조롱을 받으시고 비탄과 슬픔에 짓눌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대가 주님을 위해 받는 그 어떤 고통도 그대를 위해 주님께서 견디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주님을 위해 온갖 고통을 감수한 옛 순교자들이 그대가 받는 고통보다 더욱 심한 고통을 견뎌냈고 또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위로해 줄 사람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며, 견디기 힘든 괴로움과 참혹한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고통은 장미의 가시에 찔린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심 생활 입문 (Introduction à la vie dévote)에서 발췌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백)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필립보 네리 성인은 1515년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때 사업가의 꿈도 가졌으나 수도 생활을 바라며 로마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활동을 많이 펼친 필립보 네리는 특히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형제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6세에 사제가 되어 영성 지도와 고해 신부로 활동하면서 많은 이에게 존경을 받았다. 동료 사제들과 함께 오라토리오 수도회를 설립한 그는 1595년 선종하였고, 1622년 시성되었다.
제1독서 <여러분은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불러내신 하느님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2,2-5.9-12
사랑하는 여러분, 2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9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0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자비를 입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12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1서 2,2-5.9-12)
복음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 무렵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마르코 10,46ㄴ-52)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눈먼 거지는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친 그는,
많은 이가 그를 꾸짖어도 듣지 않고 예수님께 소리 높여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윗 왕의 자손이라는 고백은 독특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술하며 예수님께서 다윗 가문에서 나온 메시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마태 1장 참조).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구세주이심을 확신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치유된 소경과 군중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고 전합니다
(루카 18,43 참조).
루카는 사람들이 기뻐하며 찬미하는 광경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비는 소경의 믿음으로부터 왔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치유도 믿음으로부터 옵니다.
구원받고 치유 받은 사람의 특징은 감사와 찬미와 기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자비를 체험하였습니까?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기뻐한 적이 있습니까?
기쁨의 성인 필립보 네리는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연민과 배려,
사랑의 실천을 보여 준 분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전하신 분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기쁨을 전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됩시다.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백)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