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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신화인가
이 글은 그저께 썼지만 온 국민이 총선에 정신이 쏟아져 있는데 이런 글을 올리려니 좀 뻘줌하여 며칠 기다렸습니다. 이제 총선 결과에 대한 흥분도 좀 가라앉았으리라 믿고 올려 봅니다.
제가 지난 주 부활절에 부활에 대한 글을 쓰고 이어서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여기에 대해 미국 유타 주에 계시는 JiHyun Kim 교수님이 “신화와 전설과 상상이 뒤섞인 것 같습니다.”하는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훌륭한 관찰입니다. 그분에게 개인적으로 댓글을 달까 하다가 다른 분들도 관심이 있을 것 같아 여기 따로 올립니다. 처음엔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여기 따로 쓴다고 하니 좀 길어졌습니다. 될 수 있는대로 쉽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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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특히 복음서가 기본적으로 “신화적(mythological)"이라고 주장한 이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한 분인 독일의 Rudolf Bultmann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신화라는 것은 마치 호두(walnut)와 같아서 그냥 그대로 먹을 수는 없고, 껍데기를 깨야만 속살을 먹고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신화는 일단 깨어져야 한다는 거지요. 신화를 대할 때 ‘호두까기 인형’이 필요하다고 할까요. 이처럼 신화가 신화로 남으면 안 되고 깨어져야 하는데 깨어져서 속살을 들어낸 신화를 '깨어진 신화(broken myth)'라고 합니다. 이처럼 속살을 들어내도록 하는 것을 불트만은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이라고 했는데, 'de'이가 마치 신화를 송두리째 없앤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어서 폴 틸리히(Paul Tillich)라는 또 다른 신학의 거장은 그것을 탈문자화(deliteralization)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읽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신학자로는 폴 틸리히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3권짜리 <조직신학>을 보면 '상징(symbol)‘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십자가의 상징', '천국의 상징' 등등 십자가가 정말로 무엇을 뜻하는가, 천국이 정말로 무슨 뜻인가 그 속살, 속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분이 쓴 <신앙의 역동성 Dynamics of Faith>이라는 책 제3장에 보면 그분이 뜻하는 상징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 하는가 잘 나옵니다. 그 장 첫줄이 “인간의 궁극 관심은 상징적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상징적인 언어만이 궁극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Man's ultimate concern must be expressed symbolically, because symbolic language alone is able to express the ultimate." 여기서 '궁극 관심'이라는 것은 그가 말하는 신앙faith입니다. 이 문장이 나온 다음 단에서 symbols와 signs가 다 같이 ”point beyond themselves to something else."라고 하지요. 상징이나 싸인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와서 문자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는 분으로 존 쉘비 스퐁 신부를 들 수 있습니다. 그분의 책 대부분은 문자주의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외친 셈이지요. 가장 잘 알려진 책으로 <성경을 근본주의로부터 구해내기 Rescuing the Bible from Fundamentalism>인데 근본주의와 문자주의는 같은 것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최근에 마태복음 주석서로 쓴 책 <성경 문자주의: 이방인의 이단, Biblical Literalism: A Gentile Heresy>(이 책은 지금 변영권 목사님이 번역중이라고 합니다.)라는 책에서 기독교는 2천년 가까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느라 성경의 본의와 관계없이 헛다리를 짚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을 위해 쓰이어진 마태복음이 유대인이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이른바 ‘미드라쉬’적 기법으로 기술한 이야기인데, 초대 교회에서 유대인들이 사라지고 이방인들이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느라 성경 본 저자의 종교적 메시지를 놓치고 엉뚱하게 문자적 뜻에 매달리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다가 “그건 호랑이 담배 피울 때 이야기야”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것이 오랜 옛날이라는 뜻으로 금방 알아듣지만, 우리말을 모르는 미국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호랑이도 담배를 피울 수 있다, 호랑이는 담뱃대로 피울까 권련으로 피울까, 권련으로 피운다면 하루에 몇갑이나 피울까 하는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에 예수님 탄생 시 애기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는 것도 유대인들이라면 예수님도 모세와 같이 위대하다는 말이라 금방 이해하지만, 모세 이야기를 모르던 이방인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 정말로 아기들이 죽었다고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문자주의가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ㅣ
저도 저의 글에서 제일 많이 강조하는 것이 문자에서 해방되라는 이야기입니다
. <예수는 없다> 제2편 60페이지는 몽땅 문자주의를 경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바울도 말했습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새번역, 고린도후서 3:6)
276Shin-pyo Kang, Woo Fa and 274 others
85 comments
교수님의 이 말씀을 저처럼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훨씬 잘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기독교도들은 그 속에 매몰되어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백건우
비기독교인이 이해하신다니 신기하네요.^^
호랑이 담배 비유 강력한 가르침이네요!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로고스로 오신 예수님이라고 하셨는데..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이야기로 해석 하면 되나요?
Misook Lee
로고스를 말씀으로 해도 되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쓰는 그런 말 이상이라 보시면 됩니다.
성경공부하면서 수녀님이 미드라시를 언급해주셨죠. 코로나로 3주만에 수업이 중단됐지만요.
문자주의를 경계하라는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성경을 상징으로 이해하고 가리키는 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게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차라리 문자 그대로 믿는 게 더 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먹지 말라는 명을 어기고 먹은 후 눈이 밝았지는 모순에서 어떤 상징을 찾아야 하나요? 감사드립니다.
JiHyun Kim
선악과 이야기는 순종/불순종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 의식의 발달사 관점에서 보면 그 깊은 뜻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제 책에 설명이 있는데 언제 시간되면 말씀드리지요.JiHyun Kim
예수님이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신 말씀과 선악과를 비교하면, 선악과를 먹으면 죽고 어린 아이와 같으면 산다 즉, 천국이 저의 것인 것이겠죠. 그렇다면 어린 아이의 특징은? 아주 어린 아이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점점 자라면서 선과 악을 배우고 구별합니다. 그럼 천국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다른 말로는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순종 불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일을 선과 악으로 분별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반복 후 마지막엔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선악을 구별했다고 할 수 있는데, 창조를 마친 후에는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니까 하신 말씀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였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생명나무를 감추셨습니다. 즉,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인데, 이건 안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선악에 대한 모든 판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게 영원히 사는 길이고요. 저는 신학을 한 적이 없기에 깊이 있게 성경을 연구하지 못하고, 이렇게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적느라 제 생각이 잘 정리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교수님은 부족한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아실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윤완섭
선악에 대한 모든 판단을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되라는 말은 어린아이처럼 무조건적으로 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신의 영역을 넘보지 말라는 것인가요? 전지전능하신 분의 영역을 넘보면 괘씸죄 이니 안식의 장소인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건가요? 그럼 그로인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은 축복인가요 벌인가요? 제가 생각할 때 자칫 잘못하면 소위 예언자를 자칭하는 목사들의 논리로 보이는데요?
JiHyun Kim
제가 글을 오해하게끔 적은 것 같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교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천지도 아니고요. 오히려 성경의 내용을 인내천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과 불교적인 관점에서 봅니다. 성경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발견하고, 불경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결국 둘이 같은 말을 하는데, 기독교는 그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선악을 판단하면 첫째는 내가 하나님처럼 됩니다.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판단 내리기도 하고 악하다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설사 그게 옳은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나 자신을 잘 살피면 괴로운 것입니다. 이게 곧 지옥이지요. 죽고 난 후에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 하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증명되지도 않고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면서 천국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마음에 있다고 하신 것처럼 지금 내 마음에 천국이 임하는 것이 곧 천국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가장 큰 걸림돌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하지 않아도 아무 걱정할 것도 없고 괴로울 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이걸 깨닫고 적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에는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옥이 안 나옵니다. 이스라엘 인들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를 발견하지도 못했고요. 예수님이 인류의 원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다면 선악과 이야기를 하셨어야 했는데, 입도 뻥긋하지 않으셨습니다. 에스겔18장에는 원죄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으로 가득하고요. 오히려 원죄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을 걸고 말씀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러니 저는 목사들 편이 아닙니다. 예언자도 아니고요. 단지 성경을 읽고 상식적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문자주의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에 비유와 상징으로 읽고요.
JiHyun Kim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만일 아담이 지금까지도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았을 것이고 그가 낳은 자손들도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제가 제 나름대로의 인구증가율(1.0215/연. 이건 굉장히 작게 잡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야곱의 가족 70명이 이집트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의 인구 등)을 가지고 계산했는데, 불과 2,000년이 지나면 2천억명*10의9승이 되어서 지구에 가득 차는 정도를 넘어버립니다. 더구나 이게 33년마다 두 배가 되니,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천사들이 인간을 다른 행성으로 옮기느라 다른 일을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넓은 지구에 남녀 달랑 두 명을 만들고 난 후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호기롭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 차라”고 하셨지만, 사실은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었습니다.
이걸 뒤늦게 알고서는 선악과를 만들어 아담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그걸 핑계로 인간을 죽게 만드셔서 인간의 수가 빠르게 늘지 않도록 일부러 선악과를 만드셨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왜냐 하면, 그 무시무시한 선악과를 만들어서 동산 중앙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두셔서 아담이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한두 번은 넘어가도 어떻게 영원히 안 먹을 수 있겠습니까? 아담이 안 먹었으면 다른 누군가는 먹었겠죠.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하와와 아담이 그것을 먹을 때는 그 자리를 피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소부재하고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는 하나님께서 그 순간엔 어디로 도망가셨지요? 그런데 아담이 먹자 말자 바로 옆에 숨어있다가 나타나신 것처럼 짠 하고 나타나셔서는 이놈 저놈 벌주기에 바쁘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음모(?)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이러니 저는 하나님을 악한 신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즉,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대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선악과가 과연 무엇을 뜻할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 전체와도 연관 지어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