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9

생멸(生滅)이 어째서 없다고 하십니까? 초기선종법

 생멸(生滅)이 어째서 없다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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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바로 앞에 생멸이 보이는데 어찌해서 생멸이 없다고 하십니까?

답 : 인연화합으로 생(生)한 것은 생하였다고 하지 않는다. 인연화합으로 생한 까닭이다.

인연화합으로 멸한 것은 스스로 멸할 수 없다. 인연화합으로 멸하는 까닭이다.

문 : 어찌해서 인연화합으로 생한 것은 생(生)이라 하지 않는 것입니까?

답 : 인연화합으로 생한 것이니 저것으로부터 생한 것(彼生)도 아니고,

또한 스스로 생간 것(自生)도 아니며, 또한 공생(共生 : 피생과 자생이 함께 어울려 생한 것)도 아니고,

또한 인연없이 생한 것도 아니다. 또한 생긴 법이 없으며, 생긴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생긴 곳이 없다.

이 까닭에 (바로 앞에) 보이는 생긴 것이 생한 바 없고, 환(幻)이 생(生)한 것이라 생이(생한 것이) 아니고,

환이 멸(滅)한 것이라 멸이 (멸한 것이) 아니다.

문 : 범부가 왜 악도(三惡道 : 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까?

답 : 아견(我見)이 있는 까닭에 어리석다. 그래서 내가 술을 마셨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이는 말한다.'네가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왜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이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너의 아(我)가 어디에 있는가? '

어리석은 자는 또 말하길,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한다.

이는 모두 인연화합으로 생긴 것이어서 자성(自性: 我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생겼을 때 이미 무아(無我)임을 알진대 누가 누구를 누구라고 하는가?

경에서 이른다. '범부는 억지로 분별하여 내가 탐착하고 내가 성낸다고 한다. 이렇게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는

삼악도에 떨어진다.'

경에서 이른다. '죄의 성품은 안에 있지도 아니하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두 중간에 있지도 않다.'

이는 죄에 처소(處所)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처소가 없다는 것이 바로 적멸성이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마음에서 아(我)를 헤아리며 생각하고 분별하는 까닭이다.

내가 악을 지었고 내가 받으며, 내가 선을 지었고 또한 내가 받는다고 한다. 이것이 악업이다

내가 악을 지었고 내가 받으며, 내가 선을 지었고 또한 내가 받는다고 한다. 이것이 악업이다.

본래로 없는 것인데 마음대로 생각하고 분별하여 이것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악업이다.

[해설]

꿈 속에서는 울고불고 하는 아(我)가 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아(我)가 있어 아(我)가 둘이다.

아(我)가 둘일 수 없는데 둘이니 현실이 아니어서 꿈이라고 한다.

술을 마시지 않은 아(我)가 있고, 그 아(我)를 대상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지(知)하고 분별하는 아(我)가 있

어 이 또한 아(我)가 둘이다. 그래서 우리가 꿈 꾸는 것은 꿈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라 한다.

죄를 짓고 그 악업이 있으며, 그 과보가 있다고 함도 모두 꿈속의 일이라 그 처소가 없다.

마음이 본래 아무데도 없는 것이어서 그 처소가 없다.

그 마음으로 아(我)가 있다고 분별하여 아(我)가 짓고, 그 지은 죄가 있으며, 그 과보가 있다고 함이 다 꿈 속의

일과 같아 본래로 없던 것인데, 이를 모두 있는 일이라고 하니 이것이 곧 악업이고, 그러한 어리석음의 무명으

로 지옥에 떨어지게 한다.

문 : 누가 나를 해탈시킬 수 있습니까?

답 : 법성(法性,眞如,佛性)이 나를 해탈시켜준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상(相)을 취하는 까닭에 지옥에 떨어지며, 법(진리,법성,진여)를 보는 까닭에 해탈한다.

만약 상을 보고 생각하며 분별한다면 바로 솥단지 속의 끓는 물과 화로의 탄(炭) 속에 있게 되고,

우두옥졸(牛頭獄卒 : 망자가 지옥에 들어가 소대가리와 옥졸과 말대가리의 나찰을 보게 되는 것), 아파파(阿婆

婆 : 8寒 지옥의 하나) 등을 보게 되며, 바로 생사상(生死相)이 앞에 나타나 보이게 된다.

만약 법계열반성을 보게 되면 생각하고 분별함이 없게 된다. 바로 이것이 법계성이다.

[해설]

본래 불(佛:法性)인 까닭에 언젠가는 본 자리에 돌아온다(해탈).

본래 불(佛)인 까닭에 마음을 일으켜서 불(佛)을 지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당념 당처 그 자리가 본래 불(佛)인 뜻을 알고 있으면 된다.

그렇지 아니하고 어떠한 법상을 분별하여 치켜들면 <법화경>의 비유와 같이 보배를 지니고 보배 찾아 헤매는

것과 같다. 또한 그 법상의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된다.

능(能: 주관)과 소(所: 객관대상)가 둘이 아닌 자리가 해탈이니 분별 떠나야 하고, 또한 본래 항상 분별 떠나 있

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능가경>에 분별을 떠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본래 능소(能所)를 떠나 있다고

하는 각지(覺知)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담림 편집, 박건주 역주 <보리달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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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14.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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