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30

希修 수다 (Idle Chatter)가 불교에서 Wrong Speech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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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다 (Idle Chatter)가 불교에서 Wrong Speech인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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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다음의 4가지를 Wrong Speech로 분류한다:
(i) lying: 사실/진실을 구부려서 오해를 유도하는 행위, 거짓말을 용인하는 행위 포함.
(ii) divisive tale-bearing: 이간질을 목적으로 하는 고자질/말옮김.
(iii) abusive speech: 타인을 조롱하거나 짓밟기 위한 목적에서 하는 말. (상대방을 정신 차리게 만들기 위한 compassion에서의 꼭 필요한 비판은 신랄할 수도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심 - MN 58.)
(iv) idle chatter: 목적/필요성이 불분명한 모든 종류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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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4가지는 모두 지옥이나 축생계로의 윤회를 이끈다고 초기불교는 말하며, 그래서 '수다'는 특히 'animal talk'이라고 불린다. 대체 수다는 왜 wrong speech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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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처님은 이승의 삶을 머리카락에 불( =윤회)이 붙은 상황으로 비유하셨다. 죽지 않으려면(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불끄기( =수행) 이외의 다른 것 (온갖 종류의 파티, 수다 등)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얘기. 이기적? 비행기에서도 긴급상황시 본인부터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후 옆사람을 도우라고 말하는데, 모두가 각자 자기 수행이나 잘 하면 세상에 '문제'는 아예 일어나지도 않을 거라는 게 초기불교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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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ali어에서 '자만'을 뜻하는 단어는 '인간'을 뜻하는 단어와 관련있다고 한다. 자기중심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자기중심성'이라는 것은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놓는 시각을 말하며, 행위 대신 행위자에 촛점을 두는 모든 종류의 사고, 즉 '나는 이타적인/겸손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조차 '자기중심적'인 것. 그리고 욕망/집착이 윤회의 대표적 원인인데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면 욕망/집착도 생길 리 없을 것이기에, 그래서 불교가 not-self, no conceit을 강조하는 것. (이타적인 혹은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얘기는 그 핵심이 아님.) 하여간, 그런데 수다의 내용은 100%! 나!에게 생긴 일, 나!의 생각/감정, 나!의 관심사에 대한 것.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화자의 자기중심성이 강화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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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우리는 가급적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의 생각/감정을 긍정해 주려고 노력하는데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예의의 차원에서), 결과적으로 우리의 이런 '선한' 의도는 상대방의 '병' (소망사고 등의 탐진치)를 오히려 승인, 강화시켜 주는 결과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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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타인의 얘기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일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런데 치매환자가 의식의 흐름을 따라 혼자 중얼거리듯 그렇게 자기 의식의 흐름을 따라 상대방을 향해 즉흥적으로 주절거리거나 (talk with나 talk to도 아닌 talk at), 자기 얘기의 디테일 수준을 상대가 보이는 관심 수준에 맞추려는 노력(*) 전혀 없이 '친하면' 상대방의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듯한 이들도 적잖은 것이 사실. 그래도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직장상사나 고객과의 대화기술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하기에 이런 '눈치'가 발달하지만, 전업주부들은 이 점(*)에서 좀 둔감하여 얘기가 두서 없이 너무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또 진의 일종인 습관적인 불평/한탄 들어 준다고 해결되는 일도 없는데, 차라리 그 시간과 에너지를 각자 수행에 쏟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도움된다, 라는 것이 초기불교의 현실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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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생각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생각의 대부분은 탐진치에 의해 오염되어 있기에, 내가 이 생각을 왜 지금 해야만 하는지, 내가 지금 하는 생각에 어떤 탐진치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를 매 순간 점검하고 '쓸데없는' 생각은 잘라내는 연습이 중요하며 (잡념이라는 것도 결국 자신을 상대로 지껄이는 수다), 이 훈련이 되어야 명상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수다는 목적도 필요도 불분명한 생각들을 필터링 거의 없이 실시간으로 계속 쏟아내는 일이므로 그래서 나쁜 습관이라는 것이 타니사로 스님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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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에 대해 토론할 때 이외에는 침묵하라고 부처님이 가르치신 것은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 아니었을까 나는 추측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행자들을 위한 원칙이고, 재가자들은 수행자처럼 살지 못할 것임을 부처님도 알고 계셨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면서 원칙을 늘 기억하면 되는 것. 다만 말이라는 것은 일단 듣는 이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고, 또 내가 하는 말 속에 담긴 탐진치는 마치 감기 바이러스처럼 공기를 오염시킨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상대의 관심 수준 이상으로 내가 내 얘기로 상대의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고 있지는 않은지를 계속 예민하게 체크해야 하고, 감기 걸린 사람은 마스크를 쓰는 것이 타인에 대한 예의이듯 나의 탐진치를 걸러내기 위해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신중하고 책임있게 말해야 하는 것. 대화 목적도 사전에 상호 분명히 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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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예외는 있을 것 같다. 첫째, 누군가가 뜻밖의 일로 혼란스러워 하거나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 할 때는 말을 통해서라도 나쁜 에너지를 우선 좀 배출하게 해 주는 것이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비상시 나의 횡설수설을 들어 준 사람에 대해서는 깊이 감사해야 하며, 타인을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소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계속 응해 주는 것은 말하는 이에게나 듣는 이에게나 결코 바람직하지 못 하므로 이런 대화는 '예외적'이어야 한다.) 두번째는,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뿐 대화의 내용은 중요치 않은 경우. (그래서 숭산 스님도 서로 말을 주고 받는 자체가 바로 '사랑'이라고 하신 것일 터. 다만 머리카락이 불타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할 때, 이조차도 무한정으로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세번째는 아마도 페북 글 (? ^^;).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티끌만큼이라도 자기객관화가 되는 측면이 있고 (실시간으로 떠드는 수다와 비교해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단어를 고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음), 지루한데도 단지 예의 때문에 계속 들어 주고 공감해 줘야 하는 부담을 특정인에게 지우는 일이 아니며, 그러므로 누구든 언제든 읽고 싶을 때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그러다 재미 없으면 중간에 접고 나가도 그만인, 그 누구에게도 부담 안 되는 페북 수다를 내가 사랑하는 이유다, ㅎㅎ. (저의 페북 수다가 시끄럽게 느껴지시는 분들은 저를 unfollow 혹은 unfriend 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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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崔明淑, 이인자 and 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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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Nothing Special” by Charlotte Joko 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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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 억 번, 수 조 번, 무한하게 윤회하는데 그중 하나일 뿐인 이승에서 좀더 오래 살고 짧게 살고는 무의미하다는 얘기. (물론 이승만 보는 인간에겐 유의미하지만.) 그러므로 매 순간을 수행에 집중하라는 얘기. 오직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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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수님 공유합니다. ^^/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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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 h
  • 감사합니다. 좀 있으면 책 한 권 내셔도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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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말씀을요. 그냥 페북수다 수준인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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