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30

한국형 탄소중립위원회, 허울뿐인 조직 전락 우려 < 기후변화 < 환경뉴스 < 기사본문 - 환경일보

한국형 탄소중립위원회, 허울뿐인 조직 전락 우려 < 기후변화 < 환경뉴스 < 기사본문 - 환경일보


한국형 탄소중립위원회, 허울뿐인 조직 전락 우려

기자명 최용구 기자
입력 2021.04.29 

영국 CCC, 자체적으로 예산 관리할 권한 가진 독립적인 전문가 조직
탄소중립 이루려면 사회 전체 변화 불가피,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어

지난 4월16일 열린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 출범식 당시 /사진출처=산업통상자원부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탄소중립추진위원회가 곧 출범한다. 관건은 탈탄소를 위해 얼마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책임과 권한이 있느냐다. 하지만 당장 정부를 제외한 학계와 단체, 국회 차원에선 “실질적인 변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월26일 진행된 에너지전환포럼 주최 탄소중립세미나에서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CC) 소속 레베카 히튼(Rebecca Heaton) 박사는 “CCC는 독립성이 보장됐다. 오로지 개인의 역량과 전문성을 기준해 각계에서 구성원을 선출하다 보니 정치적 이득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자체적으로 예산을 관리할 권한을 가진 것도 독립성을 키우는 환경”이라고 밝혔다. 이날 영국의 사정을 물은 국내 전문가들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정부와 상생한 성공사례 CCC

영국은 2008년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법을 도입했다. 최근 열린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는 2035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78%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발표했다. 기존 2050년 탄소중립의 실행을 구체화할 중간지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엔 독립적 기구 CCC가 있다.

이 조직은 매 5년마다 향후 12년 뒤 탄소예산을 설정해 정책 당국을 자문한다.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그에 맞춰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를 정부와 나누면서 감시하고 견제한다. 공감대가 쌓인 일관된 방향의 정책이 설계될 조건을 만들어 주는 셈이다.

선보인 정책이 실제 대중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모니터링할 전문가 조직도 갖췄다.

기후변화는 결국 모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임을 감안한 대응이다.

레베카 히튼 박사는 “시민들이 수용할만한 정책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기에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집한다”면서 “2035년까지 78% 감축이라는 한층 강화된 목표가 설정된 만큼, CCC는 더욱 심층적인 분석을 거쳐 많은 보고서를 제출하고 공론화되도록 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정책 당국과 공유되고 있는 영국기후변화위원회(CCC)의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로드맵 /자료출처=Climate Change Committee

영국은 기후변화법 도입 후 40% 이상 온실가스 배출을 줄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따르면, 전력부문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제로에 다다르고 있다. 각국이 CCC의 존재감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에 더해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을 준비 중인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화상으로 진행된 이번 기후정상회의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강화해 올해까지는 유엔에 제출하겠다”는 입장만 내놨다.

2030년까지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미국과 2013년 대비 46% 감축이란 새 목표를 제시한 일본 등과 비교됐다.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넘어, 점차 시점이 앞당겨지고 그만큼 강화된 목표를 요구하는 대응 트렌드에 적응할 혁신책을 꺼내 보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CCC에 대한 벤치마킹도 생각할 대안 가운데 하나다.

‘변화’ 얘기 못한 한국···예산 수반 독립성 보장 기구 절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박사는 “독립성이 보장되고 자체 예산을 갖춰 책임있는 역할을 할 위원회가 절실하다”면서도 “계획과 목표치를 잡아놔도 총괄할 역량과 이행을 점검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정부가 먼저 초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일부 조정하는 수준에서 위원회를 활용하는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영국처럼 90년 대비 78%를 줄일 수 있다는 혁신적 계획은 생각조차 할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며 연말까지 NDC를 조정하도록 내몰린 현 시점에, CCC을 본딴 위원회를 만든다고 한들 당장의 돌파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목표를 세워놔도 총괄할 역량과 이행을 점검할 수단이 부족한 '근본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장 연말까지 NDC를 상향해야 할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사진출처=Greenpeace

청년들의 목소리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빅웨이브) 운영위원은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을 고민하기 보단 수단이 먼저 나오고, 그걸 정당화 하려는 증거들이 수집되던 현재까지의 관행을 과감히 떨쳐야 한다”면서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출범할 탄소중립위원회 역시 변화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 경고했다.

탄소중립의 활로를 열어주기 위한 관련 법과 전문기구의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그동안 운영되던 4개 기구(지속가능발전위원회·녹색성장위원회·국가기후환경회의·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를 합치면서까지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드는 이유다. 문제는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다.

정부 안팎에 따르면, 이번 탄소중립위원회는 100여명 규모로 꾸려질 거란 전망이 지배적인데 벌써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기엔 턱없이 못 미친다는 우려에서다.

이유진 박사는 “새로운 NDC 초안을 만드는 것부터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과 조정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정도 규모의 위원회가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면서 “정부가 사무국을 꾸리고 운영하는 구조에 민간 관계자들이 초대된 게 아닌, 민간이 더 개입될 수 있는 조건부터 만들어 지는 것이 우선”이라 거듭 당부했다.

관행부터 떨쳐야 바뀐다

비슷한 의견은 국회에서도 나온다. 김세호 이소영의원실 보좌관은 “탄소중립위원회 출범 취지에 걸맞는 의사결정을 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예산이 주어지는 독립적 환경이 되기까지도 아직은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게 많다”고 상황을 전했다.

'영국의 기후변화 대응 성과와 탄소중립 이행방안'을 주제로 지난 4월26일 진행된 에너지전환포럼 주최 탄소중립세미나 당시 /사진=온라인 캡처

종합해보면 뿌리 박힌 문제의 원인부터 따져볼 수 있어야 법과 조직이라는 구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신호다. 지나친 걱정일까.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한국과 영국은 전력시장제도에서 30년 정도의 격차를 보인다. 현재 우리의 석탄발전량이 30년 전 영국의 수준과 비슷한 것이 단적인 예”라며 “이런 실정에 상위의 구조만 영국을 흉내 낸다고 해서 의미있는 개선을 보이긴 힘들 것”이라 설명했다. 모범 답안이 있어도 수용할 수가 없는 현주소다.

알리나 아베첸코바(Alina Averchenkova) 런던정경대학교 그랜텀연구소 박사는 “기후변화 문제를 위한 위원회는 정부에 책임성을 명시해주고 명확한 매커니즘을 바탕으로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는 여기에 반응해야 한다”면서 “그럴려면 자금이 주어지고 다양한 기술적 전문성을 갖춘 이들로 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이것이 영국 CCC가 정부로부터 독립되고 정치적 공감대를 구축할 수 있던 이유”라고 조언했다. 다만 우리에겐 우선 풀어야 할 전제가 있다. 쫒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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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구 기자 cyg34@h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