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0

[김조년] 단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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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4.19

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해 본다. 

물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맘이나 생각에서 떠나지 않고 항상 내 삶과 함께 따라다니는 질문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청소년 때, 장년 때, 노년 때도 각각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늘 고민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쌈박한 답을 스스로 얻지 못하고 있다. 설령 막연하게 이러한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멀게 산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확산 사태로 관행으로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다 흩어지고 새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을 느낀다. 많은 이들이 말하고 나 자신도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지만, 분명히 코로나19는 인류의 삶의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한 대응은 전혀 나에겐 없다. 물론 이 때에도 내 맘 속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런데도 어떤 뾰족한 대답이 찾아진 것 같지가 않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빈번하게 여러 사람들이 만나던 것이 줄어들었고, 집단으로 하던 것들이 줄어들었을 뿐 나머지는 별로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그 결과로 사회 전체의 경제활동이나 일상생활이 크게 손실을 보게 되었다고 걱정하는 것을 많이 보고 듣는다.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 이 때에 오래 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는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드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내가 어려서 살던 시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때 삶은 참 단순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삶도 많이 단순했다. 문명의 이기가 지금처럼 좋게 발달하지 못하던 때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들도 교무실이나 다른 특수하게 중요한 곳에만 전기가 들어올 뿐 교실에는 전기가 없었다. 그래서 저녁에 하는 수업이란 것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 때 나는 전기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전기 있는 것보다 불편했겠지만,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다. 삶의 기구들도 복잡하지가 않았다. 추위나 더위를 피하는 방법도 유치하지만 단순했다. 나무를 때서 방을 덥히거나 문을 활짝 열어서 식히는 것이 전부였다. 옷과 신발도 무척 열악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기 없는 세상을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선 당장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 전기가 끊어졌다고 생각하여 본다. 내가 안에 있다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이고, 내가 밖에 있다면 우리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우선 출입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승강기는 멈추어서 높은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려야 할 것이다. 수돗물이 올라오지 않아 밥을 지을 수도 없고, 세수를 하거나 몸을 씻을 수가 없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을 내릴 수도 없다. 냉장고도 가동이 되지 않을 것이고, 전화도 안 되고, 컴퓨터사용도 불가능할 것이다. 음악도 들을 수 없고, 뉴스도 듣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여름이라면 무척 더운 상태에서 살게 될 것이고, 겨울이라면 전혀 난방이 되지 않는 무척 추운 상태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노트북으로 쓰는 이 글도 쓰지 못할 것이고, 이 글을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만약 전기가 끊어져서 얼마동안 지속된다면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게 될까를 상상할 수가 없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내가 살던 시골농촌에서도 지금은 전기 없이는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고도로 문명한 시대라는 지금은 완전히 전기에 종속된 때다. 그런데 불과 60년 또는 70년 전만 하여도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살았던 것을 잊고 산다. 그렇다고 그 때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잘 사는 것은 단순하게 사는 것이라고 스스로 확정하고 있다. 단순, 소박하게 사는 것이 곧 모든 삶의 근본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가정생활도, 친구관계도, 사회생활도, 국가의 재정이나 정치도, 국제관계도 단순한 것이 바닥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생각도, 사상도, 그것들을 펼치는 것도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너무 생각이 탁월하게 예민하니까 복잡하다.

물론 이미 복잡하게 얽힌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이지만, 일단 맘을, 생각을 단순하게 하자고 하고 나서면 무엇인가 단순하게 되는 길로 가지 않을까? 단순하게는 일단 자기 맘 속에 처음 떠오르는 것, 어떤 잡다한 계산들이 세워지기 전에 떠오른 그 생각을 따르면 될까? 집이라면 살아야 하는 것, 옷이라면 입어야 하는 것, 밥이라면 먹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어떤 가치나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가장 단순한 기본 가치만을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단순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떤 정책,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여지는 아파트라면, 전망 값, 고요함 값, 편리한 생활권 값, 좋은 학교가 가까이 있다는 값, 시장이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값, 주변이 개발될 것이라는 값이 따로 붙지 않는 단순함을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거기다가 일단 하나만 더, 플라스틱 제품이 없는 삶은 어떨까를 생각해 본다. 무척 불편하고, 지금 쓰고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버려야 할 처지가 되겠지만, 그 플라스틱의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어마어마한 폐해를 벗어나는 어떤 단순한 삶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망상일까? 어찌 되었든 나는 단순함이 곧 모든 행복과 평화로운 삶의 기초를 이룬다고 본다. 그 생각에서 앞으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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