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9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 주간경향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 주간경향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글자작게 글자크게인쇄|목록|복사하기페이스북트위터밴드
단군시대부터 내려온 민주주의의 뿌리 “백성이 하늘이다”

“단 한번이라도 그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참으로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생긴다. 아래 있는 뭇 백성들은 지극히 약해 보이지만 힘으로 겁을 줄 수도 없고, 지극히 어리석어 보인다 해서 지모(꾀)로써 속일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그들은 복종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곧 떠나가버린다. 떠나고 붙는 것이 털끝만큼의 여유도 허락지 않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정보위(正寶位)’의 한 구절이다. 고려왕조를 빼앗은 이성계의 역성(易姓)혁명을 천명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조 초기의 선비들, 특히 정도전은 정몽주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맹자의 혁명사상에 경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맹자의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의 영향임에 틀림이 없다. 백성이 제일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가치관은 가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다.

그들은 유학에 새 기풍을 일으켰다. 그것은 군왕도, 사직도 바꿀 수 있지만 백성은 변치(變置)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백성은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관은 하늘의 질서를 인간의 도덕원리로 삼는 천명(天命)과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새로운 철학체계로 삼아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게 했다. 이러한 사유체계는 조선초기의 세종대왕이란 성군을 낳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왕의 자리는 귀하고 높지만, 그 자리(位)를 지키는 방법은 패도가 아닌 인(仁)이어야 했다. 그 자리를 얻는 것도 어짊(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을 있게 한 원동력

이 말은 군주가 어질지 못하면 변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혁명의 논리다. 천지는 만물을 생(生)하는 것으로서 그 마음을 삼고, 만물을 생하는 마음이 천지의 큰 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仁)이라고 여겼다. 천명을 대행하는 군주는 천지처럼, 인간 세상사가 생산적일 수 있도록 어진 마음을 갖출 때 치자로서 그의 보위(寶位)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인자인야(仁者人也)’, 즉 어질다는 것은 사람답다는 말이다. 백성을 사람답게 여기는 것이 인(仁)이다. 그래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의 마음이 올바를 때 백성의 마음도 편하다. 임금은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을 그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덕이며 인(仁)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나 군주의 뜻을 따라 백성이 대신한다. 이 생산이 군주의 권력 기반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뿌리정신이기도 하다.

이런 천인합일 사상은 맹자 이전인 단군시대, 환웅시대에 시작됐다. 하늘의 형상이 사람이라는 생각은 천부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지만물이 하나에서 시작하고 천지의 기운이 사람이 됐다는 사유체계는 세종대왕의 “백성이 하늘이다”란 정신으로,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으로 면면히 전승되었다.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천지 마음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명제다.

이형래〈세계역사문화연구소장〉


원문보기: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0109&code=116#csidx986bb8e37605ce8b3a1818e616c3c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