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3

알라딘: 간디 자서전 함석헌 (옮긴이)

알라딘: 간디 자서전

간디 자서전 -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마하트마 간디 (지은이),함석헌 (옮긴이)

한길사2002-03-15



원제 : An Autobiography: 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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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업적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풀어냄

인도 하면 젤 먼저 떠오르는 건 '간디'

'간디'하면 떠오르는 건 '비폭력'

이 정도가 전부였다.



이 자서전은 그의 사상과 한 업적에 대해 자세히 얘기 하지는 않는다.

부제목처럼 자신의 '진리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살아있는 동안 하는 모든 활동에 대해.

먹는 것, 입는 것, 어버이로 사는 것, 인도의 지식인으로 사는 것, 종교인으로 사는 것...

등등등 말이다.



이 책을 골라 읽을 땐 일단 그 두께에 질린 건 사실이다.



그래서 얼른 집어 들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행을 간 바람에 나의 독서 특성상 여행을 가게 되면 '가장 길고, 두껍고, 지루할 것' 같은 걸 고른다.



그래야 한권을 가지고 가면 오래 오래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이 자서전은 나의 예상을 깼다.

두껍긴 했지만 그 읽는 속도가 빨랐다.

옆에서 '간디'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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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910 2006-03-09 공감(2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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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진리 실험. 새창으로 보기

간디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지금 약 4년이 다 되어갔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간디에 관해 알게되었고 진심으로 감동하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접하였을 때 그 열기는 잠시, 책에 손을 데는 횟수가 적어지더니 손을 놓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잡기 시작하여 그의 수많은 진리실험을 기억하고 싶어 이틀에 걸쳐서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 그의 진리실험이란 과연 어떤것일까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그는 이곳에서 잣니의 삶은 끊임없는 진리실험의 연속이라고 했다. 진리 실험에 자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하거나 동참시키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평생 할수도 있지만 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을 해내었고, 또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 같다.



그에겐 단지 자신의 천성대로 봉사를 행했다 할 것이다.  그 봉사의 힘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나에겐 단지 학교에서 주어진 꼭 해야만 하는 활동이었다가, 주일에 한번씩 나가는 스스로 하고 싶어서 했던 다른 봉사활동을 통해 내 주변의 이웃을 돕는 일이라는 생각이라고 생각했을 뿐 이다.



봉사란 의미가 그 작은 것만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수많은  진리 실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가 죽을 때 까지 행한 봉사를 감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몸소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직접 행동하기란 쉽지는 않았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 했다면 그의 진리 실험을 통해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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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륜 2005-11-04 공감(10) 댓글(0)



   

순도 100% 의 평화주의자 새창으로 보기

이번에 읽은 책은 <간디 자서전>(함석헌 역, 한길사)이다. 군에 있던 시절 책에 목마름을 느낀 나는 공용(행정상 타부대나 상급부대로 출장을 나가는 경우)을 가거나, 외출, 외박을 나갈 때면 꼭 한 권씩 책을 사오곤 했다. <간디자서전>은 그렇게 구입한 책이다. 그러나 군에 있을 때는 다른 책을 읽다가 이 책은 읽지 않은 채 나와 함께 제대하고 말았고, 나는 이제서야 이 책에 다시한번 눈길을 주었다.



애초 서점에 널려있는 수많은 자서전과 평전을 물리치고 <간디자서전>을 구입한 것은, 반전평화주의에 빠져있는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 배운대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주체인 간디는 매력적인 인물이었고, <간디자서전>을 번역한 이가 '함석헌'이라는 점에도 끌렸다. 또한 출판사가 '한길사'라는 것도 조금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간디'와 '함석헌'과 '한길사'라는 삼박자가 어우러져 나의 손길에 닿았고 내것이 되었다.



<간디자서전>은 서문에 간디가 밝히고 있듯이 그의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진리실험 이야기'이다. 간디는 "만일 학문적 원리를 토론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자서전은 아예 쓰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목적이 자신이 "실제에 적용했던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자는데 있었"기에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꾸준한 실험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어린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삶이 섞여나올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이 책은 '자서전'의 색깔 또한 지니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그렇다. 간디는 그다지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서 책을 좋아하는 학생도 아니었으며, 그다지 정의심에 불타는 인물도, 용기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대개의 '위인'이 지니고 있는 요소들을 단 하나도 지니지 못한 이 인물은 그저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대로 삶을 한발자욱씩 걸어왔을 뿐이다.



간디의 집안은 대대로 인도에서 총리를 지냈던 집안이기에 아버지에 이어 총리를 하려면 굉장한 뭔가가 있어야 했다. 특출난 경력이나 학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간디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척의 도움으로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게 되지만 인도에 온 뒤에도 그 자격증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인도법이 아닌 영국법에 관한 자격이었기 때문에 간디는 인도법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저 공소장 작성이나 해주며 근근히 벌어먹었을 뿐이다. 그는 그 나이대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처럼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남아프리카에 가게 되면서 그의 삶은 바뀐다. 그곳에서 각종 운동과 시위에 참석하게 되면서 간디는 주변 환경이 만들어준 유명인이 되었다. 간디 또한 개인적인 노력을 했겠지만 책을 읽은 뒤의 느낌은 간디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주변 환경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다. 그러나 간디의 '진리'를 향한 열정이 없었다면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의 위인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진리를 쫓는 자였다.



마늘빵 2004-06-21 공감(5) 댓글(0)



   

이 시대의 조명탄! 간디. 그 위대하고 영원한 스승 새창으로 보기

간디가 위대한 것은 몸소 행했다는 것일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며 사랑을 외치며 살아가는가? 간디의 이야기는 이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역효과만 날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라면...이 간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간디는 외면적으로는 정치인이었으나 내면적으로는 종교의 사람이었다. 간디의 일생의 목표가 하나님을 대면하듯이 참에 사는 것이었으니 종교로 인해 모든 것을 판단 결정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 미련하고 이성적이지 못하고 극단적인 것같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미련할 정도의 참에 대한 열정이 간디를 간디답게 한 것이며 당신이 가신지 55여년 되는 지금까지 온세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이책을 기독교도로써 읽었다. 물론 추천해 준 사람도 기독교도 였으며 이책을 번역하신 함석헌 선생도 기독교도이다. 하지만 간디는 힌두교도일뿐더러 자서전 곳곳에 기독교에 대한 실망의 말들이 많다. 하지만 그 내용들을 보면 간디가 만난 기독교도들보다 간디가 더욱 기독교적이기에 실망한 듯하다. 자서전 곳곳에 나오는 기독교적인 마인드. 맹세(약속)의 절대성. 미련한 도. 죄의식으로부터의 구원 등등..각 종교간의 일치하는 부분도 많을테니 그럴테지..



이 책은 말그대로 자서전이다. 간디의 탄생으로부터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의 이야기. 하지만 다른 자서전과의 다른 점은 이 책의 부제에 설명되었듯이 “진리 실험이야기”라는 것이다. 논리적 감정적이 아니라 모든 의심나는 것들에 대한 몸으로써의 실험이야기. 경험이 가장 큰 배움이라는 것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더욱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간디의 일생을 걸고 실험한 내용이기에 더욱 소중한 가르침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거론하지만 대부분 사상의 변화를, 환경의 변화에 따른 사상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간디 스스로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 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강함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나를 반대하더라도 나는 나서련다”



외면적으로는 스펙터클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참에대한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찾으려는 사고와 고민들이 매우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물론 그 사고와 그 실험에 독자인 내가 끌려 들어갔을 때 이야기지만. 그 고민에 끌려 들어가지 못한다면 이 두꺼운 책은 그저 시간낭비만 될 수도 있다. (몇번 맞아 죽을뻔도 하고 자살을 생각도 한 적이 있지만 지면에서는 잠시 지나갈 뿐 크게 다루지 않음.그만큼 간디에게는 자신의 내면 성찰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



이 책이 그저 한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임에도 읽기에 어려웠던 것은 부담스러울 정도의 두께, 너무 많은 사람과의 의미있는 만남. 그 사람들 이름의 어려움. 너무 많이 돌아다님, 단어 개념 이해의 어려움, 인도의 사상의 근간이 없음. 간디의 실험 및 사상에 대한 사고를 요함.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기독교적 단어를 힌두교에 접목시켜 사용함 등의 이유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모두 헤쳐나가며(피해가라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면 젊은 시절 너무도 크나큰 스승을 얻는 것이리라.



이 책이 초간 된것은 1976년. 우리나라나 인도나 힘겨웁게 살때다. 함석헌 선생은 지금 그때에 이땅의 씨알들이 간디를 배워야 한다고 설파한다. 2003년. 우리나라는 잘살고 인도는 발전의 기미가 있다하지만 여전하다. 그런데 간디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한국은 살얼음을 걷는 듯하다. 사회적으로 부패 척결을 위해, 사회전반의 도덕적 교육을 위해 힘쓰지만 크나큰 희생을 치루지 않는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인도는 그 근간은 부패하지 않았다(적어도 우리보다는). 그래서 인도를 잠재력의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15여년 전에 작고하신 함석헌 선생이 지금 계시다면 오늘도 외치실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기술을 배우기 전에 먼저 간디를 배워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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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깃드는나무 2003-07-3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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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아그라하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옳으니 그르니 시비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고, 가능하면 거기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 아래서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또 우리가 사람을 그 드러난 행동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충분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 한, 그것은 한낱 믿을 수 없는 추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본문 p282)



'사티아그라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가르키는 힌두어다. 간디의 위대함이야 새삼 말 할 것도 없는 일임에도 한번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일이 없다. 그저 학교에서 배웠던 피상적인 내용, 영국 식민지 시절 악법에 복종하지 않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이끌었던 인도의 등불이라는 정도가 그에 대해 알고있는 전부였다.



물론 간디자서전을 읽은 지금도 알게 된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진리를 찾는 실험이야기는 중간중간 지루하기도 했고, 알수없는 힌두어 지명과 인명 그리고 연대별 정리가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왔다갔다 하는 통에 정신이 없기도 했으며,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이해 조차도 힘든 극도의 정신적 절제와 절식이나 단식이야기가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이부분에서 나는 간디가 탄력적이지 못한 인물로 느껴졌다. 자신의 틀에 아내와 자식들을 지나치게 옭아메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어야 하는 것은 그의 비폭력정신이다.



간디는 모든것에 편견이 없었다.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 마음은 순결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내 자신이 존엄할 때 모든 생명 또한 존귀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딛고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심은 실제는 자신의 존귀함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자는 결국 자신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다.

간디가 온생애를 통해 맞선 것이 바로 '인간존중'에 대한 것이다. 인종차별이라던가, 불가촉천민제도 같은 계급적 차별, 권력에 대한 비열한 복종 등은 그를 그저 평범한 식민시민으로 머물지 않게했다. 타고난 내향적 성격 탓에 첫 법정에서 제대로 입 한번 뗄수 없어 물러났던 그가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을 통해 타고난 운동가로 변모하게 된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채식주의로 표현되었고, 자신이나 아내, 혹은 막내 아들이 병중에 죽는다 할지라도 동물성 영양은 섭취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되었다. 그점이 나에게는 견딜수 없는 답답함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의 문제이다. 내 생각, 내 추측으로 간디를 평가해서 안되었다. 그것이 바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보는 '비폭력대화'의 핵심이다.



간디가 국가의 횡포에 맞서 '비폭력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기 위해 무한히 절제하고 절식하고 서슴없이 단식해야 했을 것이다. 그의 절제를 통해 인도는 조직적인 사랑의 힘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인도의 대중은 승리할 수 있었다.

간디는 자신의 생을 진리를 찾아가기 위한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진리를 찾기 위해 티끌보다도 겸손한 마음과 믿음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기 자신에겐 엄격함을, 그러나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는 평등한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간디 자신이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이론으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실천했다. 겁쟁이 선생은 결코 제자를 용감하게 만들 수 없고, 자제가 뭔지 모르는 선생은 결코 자제의 귀함을 가르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하나, 그의 위대함은 단순한 실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제와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렸으나 그 모든 것을 이겨냄에 있다. 자서전을 마치는 글에도 자신이 끊임없이 쉬지 않고 노력은 하면서도 자신의 속은 정결치 못함을 알기 때문에 세상의 칭찬이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도 결국 피조물의 하나일 뿐이였으므로 그 위대함이 더하다.



진정한 힘은 폭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화를 통한 내적인 힘은 물리적 폭력을 이긴다. 그것이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의 정신이다.

이론으론 이해가 가는데,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사는 극도의 물질만능 시대인 지금, 돈이 권력이고 돈이 생명까지도 덮는 이 시대에도 과연 정신이 물질을 이길 것인지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너무 많이 보아왔다. 힘없고, 돈없고, 갈 곳 조차도 없는 민중은 항상 핍박 받아 왔음을......



 간디의 자서전 읽기를 끝내고 서평까지 마치고 난 오늘 아침 신문에서 우연찮게도 발견한 기사는 '서사하라의 간디' 19일째 단식 투쟁이라는 기사였다.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 제도의 한 공항에서 모로코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하이다르 라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사다. 그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 투쟁을 벌여온 공로로 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인권단체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모로코는 서사하라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뿐 아니라, 미국의 어느 단체에서 '용기있는 시민상'을 받고 귀국하는 그녀를 공항에서 여권을 빼앗고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스페인의 한귀퉁이 공항바닥에서 19일째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는 바닥에 모포를 깔고 앉은 하이다르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히잡을 쓰고 모로 고개를 돌린 그녀의 표정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내뿜는 처절함을 느낄수 있었따. 상상할수도 없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국가적 폭력 앞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단식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결국, 비폭력 투쟁이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싶은 생각 또한 하게 된다. 왜냐하면 약한 자 앞에서 한없이 강해지는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은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적 숭고함을 무기로 폭력과 맞서온 간디의 비폭력 정신은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켜 왔고, 우리 인간의 자멸을 막는 힘이 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의딸 2009-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