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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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19 September


번역에 관하여

예정대로라면 지난 봄 쯤 나왔어야할 이 번역서
(메튜 제이. 무어, 박병기, 이철훈 옮김, <불교, 정치를 말하다>, 씨아이알, 2020)가 여러 사연을 담고 다음 주 초에 출간된다. 역자 서문을 써보냈고, 출판사 책소개글 검토는 공역자인 이철훈선생이 맡았다. 그는 나의 대학원 제자이자 고등학교 윤리교사다.

"각자는 자기 언어로 그러나 타자를 번역함으로써 대화해야 한다. ... 번역은 문화들이 서로를 맞대면하면서 서로 간의 간극을 통해 각자의 사유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번역은 도래할 글로벌 세계에 가능한 유일한 윤리'이다."(프랑수아 줄리앙, 이근세 옮김,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 교유서가, 2020, 144-145쪽)

중국이라는 창을 통해 자신이 속한 유럽문화를 성찰하는, 수준있는 철학함의 경지를 보여주는 줄리앙의 번역이야기가 조금은 각별하게 다가선다. 그는 문화 보편주의와 상대주의라는 두 뿔 사이를 넘어서, 마주치는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을 전제로 하는 대화를 통해 '공통의 것'을 조심스럽게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화(dialog)에 포함된 디아dia와 로고스logos에 주목하면서 서로 간의 간극이 전제되지 않으면 진정한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당연하면서도 곱씹어볼 만한 지점이다.

<불교, 정치를 말하다>는 서양 정치철학과 이론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전제하면서, 정치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으로서 불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최근에 나온 방영준선배님의 저서(<붓다 정치철학 탐구>, 인북스, 2020)와 함께, 종교와 정치 사이의 관계 설정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우리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으로 자리하기를 빌어본다. ... 상사화가 흐드러지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