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1

지금 불교계 화두는 ‘화두 수행’ 회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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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불교계 화두는 ‘화두 수행’ 회의론

ㆍ“50년간 깨달음 20여명뿐”… 간화선 ‘시대와 괴리’ 논란

지난달 24일 합천 해인사의 선원(禪院) 개방이 화제를 낳았다. 참선을 체험하려는 일반인들이 줄을 이었고, 언론들은 ‘1200년 만의 첫 선방공개’라는 사찰 이벤트를 대서특필했다. 보도대로라면 불교의 참선 수행이 대중화될 날도 그리 머지않아 보였다.

그러나 외부에 비친 ‘매력적인’ 불교 선원문화와 달리 수행 스님들의 고민은 깊은 모양이다. 출가 경험이 있는 한 불교계 인사는 “최근 한 스님으로부터 ‘선방에 앉아 화두를 들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 ‘간화선 수행’에 대해 회의를 갖는 수행자들이 적잖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불교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채 과거의 관습을 답습하고 있다”며 “현실세계와 소통하지 못하는 불교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이러한 목소리는 불교계 내부에서 공론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 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 방법)’ 수행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한국 불교의 수행전통인 간화선이 시대의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수행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전남 해남 미황사에서 참선하고 있는 재가불자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불교 초기경전을 연구하고 있는 마성 스님(팔리문헌연구소장)은 계간 ‘불교평론’ 최근호에 기고한 ‘한국불교의 수행법,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간화선 수행의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에서 펴낸 <간화선>에서는 “간화선은 조사선(祖師禪)의 핵심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수행법”이라며 “한국 불교가 자랑하는 최고의 이상이자 목표인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마성 스님은 올해 초 조계종 총무원이 올해의 역점 사업으로 ‘수행결사’를 제안한 사실을 상기하며, 수행 결사 제안이 조계종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와 함께 “간화선을 통해 수행한 스님들은 얼마나 많이 깨달음을 이루었는가?”라며 간화선의 깨달음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마성 스님은 도법 스님(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 추진본부장)의 글을 인용, 통합종단 출범 이후 지난 50여년간 조계종단 출가자 50여만명 가운데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는 20여명에 불과하다며 “간화선 수행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 이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한국불교가 최고의 수행법으로 내세우는 간화선의 성적 치고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마성 스님은 간화선 수행법은 물론 간화선 수행자의 태도에 문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불교는 계(戒:계율)·정(定:참선)·혜(慧:지혜) 삼학(三學)의 일치를 추구하는 종교다. 그러나 한국 불교, 특히 간화선의 수행은 계율을 소홀히 하고 참선과 지혜를 통한 깨달음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스님의 수행과 생활이 불일치되는 경향이 종종 나타난다.

마성 스님은 “선방 스님들마저 수행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속에서 재가불자가 일생생활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간화선의 대중화에 회의를 표시했다.

마성 스님은 ‘깨달음 신비주의’도 간화선 수행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정의가 정립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신비화되어 있다”며 깨달음을 ‘신비 체험’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묵언정진(침묵 수행), 장좌불와(오랫동안 눕지 않고 수행), 동구불출(수행하는 선방이나 토굴 밖으로 나가지 않음) 등이 수행의 최고경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러한 신비주의와 관련이 있다.

간화선 수행의 문제점은 조계종단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지난달 28일 조계종 교육원 주최로 열린 ‘현대 명상문화와 한국 선(禪) 문화’ 토론회는 요가, 단전호흡 등의 명상 수행법이 유행하는 가운데 간화선으로 대표되는 불교 수행법을 알리고 대중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기조 발제자로 나선 수불 스님(안국선원장)은 지난 20여년간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간화선을 미래불교의 대안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상이 흙탕물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것이라면 간화선은 흙탕물 자체를 뽑아버린다”며 명상 프로그램이 스트레스 해소, 건강 추구 등 세속의 목표를 추구한다면 간화선은 열반, 대자유 등의 긍극적인 깨달음에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토론자들은 간화선의 수행법, 수행자의 자세 등의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월암 스님(한산사 용성선원장)은 “한국 간화선의 문제는 오직 화두에만 매달리면 된다는 깨달음 제일주의에 빠져 무사안일에 침잠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좌선 형식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선(禪)의 이론을 정립하고 간화선 전문인력양성기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김태완 무심선원장은 “조계종은 선종을 표방하면서 선에 대한 교육이 충분치 않다”며 선 교육을 체계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제열 법사는 “선 수행자들의 경전무용론이나 기본 교설에 대한 공부 없이 신도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깨달아보라는 식의 방법은 재고되어야 한다”며 선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간화선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의 간화선 논쟁은 아직 간화선 폐기나 무용론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전통 간화선이 시대정신과 동떨어져 ‘천년 전의 죽은 이야기’가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높다. 월암 스님은 “시대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없는 화두는 효용가치가 없다”며 “지금 여기 존재 자체의 실존적 문제에서 화두를 잡고 수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운찬 선임기자 sidol@kyunghyang.com
[경향신문 2011년 10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