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4

希修 내 삶, 내 운명, 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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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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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 내 운명, 내 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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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운영하시던 'X분식'이라는 가게를 내가 물려받는다면, 나는 소유권과 운영권뿐 아니라 부모님이 지은 부채까지 상속하게 된다. 종업원이 손님에게 실수를 할 경우엔, 나중에 그 종업원을 징계를 하든 어쩌든 그건 차후의 일이고 우선은 가게 주인인 내가 손님에게 사과해야 한다. 종업원들을 교육하는 것도 주인의 책임이기 때문. 하지만 내가 아무리 세심히 교육한들 종업원은 주인이 아니기에, 주인이 종업원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100% 컨트롤할 수는 없다. 종업원 고용에 있어 신중하고 가게 운영이 종업원들에게 오히려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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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이나 운명은 어쩌면 이런 가게와도 같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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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주인  =>  현재 주인.
* 부모  =>  나.
* 이전 생의 나 'A'  =>  이번 생의 나 'B'.
* 과거의 나  =>  현재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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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은 부모가 나를 낳아 주었기 때문이다. 내 맘에 들든 안 들든 이런 저런 부모의 유전자를 나는 그대로 상속했으며, 부모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내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부모가 나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 했을 경우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 할 사고/행동 패턴을 내가 갖고 있을 확률이 높지만, 내가 행복하고 싶다면 나는 나의 성장과정을 변명으로 삼기보다 이제부터라도 남들의 말을 경청하고 남들이 사는 방법을 열심히 관찰하면서 내 자신을 스스로 교육시켜 나가야 한다. 마찬가지 원리로, A와 B는 100% 동일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편의상 둘 다를 '나'라고 칭할 뿐) B에게 삶이 주어진 것은 A의 업을 상속했기 때문이기에, A와 B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하여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때로는 10년 전의 내가 저지른 실수의 댓가를 오늘의 내가 치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몇 분이 걸리든 몇백 생이 걸리든, 인과는 저절로 소멸하지 않는다. (성폭행/성추행을 줄줄이 저질러 놓고서, 그 분야에서의 평판이 나빠져 생업에 지장을 받게 된 것에 대해 '억울'해 하며 세상만 탓하는 사람의 장래가 과연 밝을 수 있을까. 인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자신의 잘못에서 파생된 기회비용을 타인이 지불해 줄 수도 없는 일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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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이전 생, 과거의 나로부터 상속받은 부분들 외에 '종업원'과 관련된 부분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이 '종업원'을 나는 주위의 다른 존재들로부터 내가 받는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도 남의 인생에서는 종업원인 것.) 종업원이 실수를 해서 가게의 평판이 나빠진다면 그건 가게 주인이 감수해야 한다 - 종업원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책임.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내게 안 좋은 영향을 줘서 내 삶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살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 누구를 흘려보내고 누구와 어떤 종류의 관계를 맺으며 누구를 얼만큼 신뢰해야 하는지 등에 있어 중심을 잡지 못 한 '책임' (≠'잘못'/'탓')을 나는 감수해야 한다. (세상엔 '악의도 없지만 integrity 역시 못 갖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데이면서 특정 개개인에 대한 혹은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한 혐오를 갖고 살아 봐야 내게 도움되는 것은 없다.) 반면, 내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손님들에게 친절할 경우엔 내 가게가 점점 번창하는 것처럼, 내가 잘 되는 것은 알게 모르게 주위로부터 이런 저런 도움을 받은 부분이 내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클 수도 있음 역시 기억해야 한다. 사실 종업원 문제는 '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을 단순히 운이라고만 생각하는 C보다는, 주위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땐 인간관계 관리에 대한 책임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땐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워 하는 겸손을 기억하는 D가 궁극적으로 보다 성공하고 좀더 행복해지지 않겠는지. 그리고 이런 '종업원'의 영향이 차원을 넘나들 수도 있을 가능성을, 나는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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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타인이 보는 나는 가게 전체여도 내가 실제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가게의 운영방식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컨트롤을 벗어나는 부분까지 책임져야 하는 주체 역시 나 자신. 자신의 컨트롤을 벗어나는 자기 가게 문제에 대해 늘상 불평을 늘어 놓거나 남이 대신 책임져 주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삶의 냉정한 규칙이지만, 본인의 컨트롤을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이 사실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이해와 연민을 갖는 또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내 가게를 장악하고 컨트롤하는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수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능력의 신장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또 이미 일어난 원인에 대한 결과를 100% 피할 수는 없기에 인내심이 필요할 뿐, 삶/운명이라는 '갑'의 '을'/노예가 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인 것은 아니라고 [?]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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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 글은 개인차원에서의 얘기일 뿐 정부/사회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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