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 공포영화 주인공은 위기 자초하나' 여기 답이 있다 - 오마이스타
'왜 일본 공포영화 주인공은 위기 자초하나' 여기 답이 있다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클래식한 J호러 <토시마엔 괴담>
김준모(rlqpsfkxm)
19.07.01
▲ <토시마엔 괴담> 포스터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1년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링>과 <여우령>의 각본가로 유명한 그는 당시 심사위원으로 부천을 찾았고 인터뷰 답변으로 J호러의 한계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J호러의 근원은 심령사진의 재현으로 우연히 찍힌 심령사진을 실제로 재현해 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시도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일본 공포영화의 전성기로 이어졌다.
<링> <주온> <착신아리> <하나코> 등 J호러는 다채로운 귀신 캐릭터와 빠져 나올 수 없는 저주의 매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더 자극적이고 무서운 영상들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지자 더 이상 관객들은 심령사진의 재현이라는 J호러의 방향에 관심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 당시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은 J호러가 다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방향성에 있어 고민을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놀이공원 토시마엔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
▲ <토시마엔 괴담>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리고 1년 뒤, 동명의 이름을 지닌 신인 감독이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하였다. 그의 영화 <토시마엔 괴담>은 요즘 보기 힘든 클래식한 J호러의 느낌을 담고 있다. 인터넷 개인방송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을 통한 촬영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주지만 공포를 주는 방법에 있어서는 J호러의 고전적인 규칙들, 특히 귀신의 원한을 통한 복수와 청각적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시각적으로 마무리를 짓는 기술, 전해 내려오는 괴담과 이를 통한 저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놀이공원 토시마엔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클래식하게 공포를 유발해낸다. 첫 번째는 괴담을 통한 저주이다. 도입부에서 인터넷 공포체험 개인방송을 진행하던 세 명의 남녀는 토시마엔 놀이공원에 내려오는 금기를 어기고 악령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금기를 통한 저주는 J호러가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어떤 비디오를 보면 3일 후 죽게 된다는 <링>이나 학교 공중 화장실에 등장하는 변소귀신의 소문이 주가 되는 <하나코>처럼 특정 장소나 행동에 대한 괴담이나 금기, 이를 통한 저주가 이 작품의 핵심이 된다.
도쿄에 실재하는 토시마엔 놀이공원의 도시괴담에 담긴 금기는 세 가지이다. 오래된 건물의 문을 두드리지 말 것, 귀신이 불러도 대답하지 말 것, 비밀의 거울을 바라보지 말 것이다. 금기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는 항상 이 금기가 깨지면서 저주가 시작된다. 유학을 앞둔 대학생 사키는 학창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온 네 명의 친구와 함께 추억 여행으로 이 놀이공원을 향하고 토시마엔 괴담의 금기사항을 어기고 저주에 빠지게 된다.
▲ <토시마엔 괴담>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두 번째는 원한을 지닌 귀신을 통한 공포의 유발이다. J호러가 심령사진의 재현을 위해 택한 방법은 귀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원한을 지닌 사람이 죽어 그 혼령이 악령이 되었다는 기본 설정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귀신 캐릭터를 만들어 왔다. 이 작품 역시 저주를 발현하는 귀신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공포를 유발해낸다. 3년 전 사키를 비롯한 친구들이 고등학생일 때 토시마엔 놀이공원에서 실종된 친구 유카의 존재가 저주의 근원으로 등장하며 왜 유카가 악령이 되어 친구들에게 저주를 내리는지가 미스터리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공략하는 효율적인 공포감 조성이 인상적이다. 악령이 나타나기 전 사운드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악령이 등장하는 순간 시각적인 공포를 통해 마침표를 찍는다. 이 영화는 J호러의 클래식한 방식이 여전히 관객들에게 유효하다는 점을 증명해낸다. 다만 J호러가 왜 전성기 이후 오랜 시간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SNS나 스마트폰 활용해 공포의 감도를 높이다
J호러의 약점은 장면의 연출을 위해 캐릭터들을 극단적으로 답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가득해 위기를 자초하는 편이며, 경찰에 신고하거나 해당 장소에서 빨리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등 이성적 사고가 부족한 인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물 간에 갈등이 극에 달할 수 있게 쉽게 흥분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어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이 작품에서도 사키를 비롯한 친구들은 맨 처음 실종된 친구 카야가 전화를 걸어 기묘한 이야기를 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놀이공원을 빠져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 <토시마엔 괴담>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또 안쥬는 친구들이 실종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경찰 신고보다는 '우리가 친구들을 찾아야 된다'며 무리하게 친구들에게 수색을 강요한다. 그런 안쥬에게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도망치자는 말만 반복해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치아키의 대립은 극적인 재미보다는 답답함을 유발해낸다. 이는 클래식한 J호러가 지니는 문제점으로, 호기심과 답답함이 바탕이 되어야만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흩어지고 그 순간 공포를 조성해낼 수 있다는 단점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토시마엔 괴담>은 여전히 J호러가 지닌 힘과 그 힘에 관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신예 타카하시 히로시 감독은 SNS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공포의 감도를 높이는 건 물론 괴담을 통한 금기와 저주를 흥미롭게 풀어내면서 J호러의 새로운 방향성보다는 기존 스타일의 강화와 보완을 보여준다. 공포 장르의 다양한 변주 속 여전한 클래식의 매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지향하는 장르영화의 방향성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