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1

“선수행, 신비적 깨달음 넘어 깨달음의 사회화를” : 마성 스님, 한겨레

“선수행, 신비적 깨달음 넘어 깨달음의 사회화를”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선수행, 신비적 깨달음 넘어 깨달음의 사회화를”
등록 :2011-11-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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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방에서 선승들이 동안거 동안  참선하고 있다.
한 선방에서 선승들이 동안거 동안 참선하고 있다.
‘불교평론’ 수행 문제점 분석
조계종 총무원 폭행사건 등
삶과 동떨어진 수행서 비롯
중생·수행 다양성 돌아봐야
음력으로 ‘10월 보름’인 지난 10일부터 선방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갔다. 조계종에서만 전국 100개 사찰의 선원에서 2200여명이 내년 ‘음력 정월 보름’인 2월6일까지 세달간 집중적으로 참선 정진한다.
그들이 수행에 들어갈 즈음 조계종 총무원청사에선 해인사 출신의 한 종회의원 스님이 같은 해인사 출신의 동료 의원을 폭행한 일이 발생했다. 성철 스님과 현 종정 법전 스님 등 조계종의 대표적인 선승들의 수행처인 해인사 스님들이 폭력으로 물의를 빚은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최고의 수행처에서 마음공부를 한 스님에게서 나온 폭력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때마침 나온 <불교평론> 가을호에서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인 마성 스님(작은 사진)이 ‘한국불교의 수행법, 무엇이 문제인가’란 논단을 통해 이런 궁금증을 파고들었다.

 수행법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미 조계종이 발간한 <간화선>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염불·주력·절·사경·관법 등 통불교로서 여러 수행 방법이 통용되는 조계종에서도 ‘이 뭐꼬’ 등의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간화선>은 최고 수행법으로 권위를 점하고 있다. 조계종은 2008년 <간화선>이란 책을 수행지침서로 내놓았다. 이 책에선 “우리나라 수행자들의 삶과 수행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법(진리)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에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교법과 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또한 이를 생활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9월28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현대 명상문화와 한국 선의 과제’를 주제로 열린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대토론회’에서도 수행풍토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한산사 용성선원장인 월암 스님은 “적정무사(寂靜無事·번뇌와 고통을 떠남)에 안주하여 선미(禪味·선의 맛)를 탐착하는 일부 수행 전문가의 생활 방편으로 전락되고 있기 때문에 위기가 제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마성 스님도 논단에서 금강대 권탄준 교수와 도법 스님의 주장을 빌려 생활에서 실천되지 못하는 ‘수행을 위한 수행’을 비판하고 있다. 권 교수는 “평소 생활에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스려 잘못 길들여진 생활방식을 바꾸고 훌륭한 생활 습관을 길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도법 스님은 ‘생활 따로 수행 따로’인 이유에 대해 “비중도적인 불교관과 수행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마성 스님은 “간화선 수행을 통해 깨달은 자라고 자처하는 선사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아집과 집착에서 비롯된 행위를 할 때, 후학들은 간화선 수행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며 “선사들은 여전히 삶의 현장에서 실현할 수 없는 공허한 언어의 나열이나 삶과 유리된 깨달음에 대한 환상만 심어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깨달음의 사회화’가 실현되지 못함으로써 선방의 수좌는 사회문제에 초연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사회문제와 중생의 삶을 돌아보지 않게 되고 나눔·생명·평화에 대한 문제에도 무관심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불교의 존재 가치를 따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김나미 한신대 강사의 논문을 빌려 “그 어디서도 깨달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정의도 발견할 수 없이 무척 신비한 ‘그 무엇’으로 포장되어 깨닫기만 하면 당장 도인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깨달음 지상주의가 한국 선종의 현주소”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인 마성 스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인 마성 스님
마성 스님은 “초기경전에 의하면 ‘깨달음이란 진리에 대한 눈뜸’이라고 정의돼 있어 세계와 인생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라고 밝혔다. 그는 “깨달음에 대한 신비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깨닫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한순간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만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안성두 금강대 교수의 ‘수행도의 다양성과 깨달음의 일미’라는 논문을 빌려 “수행이란 하나의 치료약과 같은 것으로, 자신의 능력과 관심에 맞는 방법을 채택하는 것인데 만일 모든 사람에게 맞는, 모든 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만능의 치료약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극히 비역사적일 뿐 아니라 교리적으로도 극히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성 스님은 “비록 붓다가 직접 제시한 것일지라도 자신의 근기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올바른 길이라고 할 수 없기에 어느 한 가지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고집하지 않는 게 불교 수행법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며 “선수행만이 깨달음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또 하나의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