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에서 명상을 하는 목적/의의 6가지 >
.
.
1. 깨달음.
부처님 말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의 의식작용에 대한 가르침을, 명상을 통해 실험, 확인하여 direct knowledge를 얻는 것.
- "아~ 부처님의 말씀이 사실이었구나! 내 마음/의식도 정말 그렇게 작동하는구나!"라는 '확인'이 바로 불교의 '깨달음'.
- 깨달음이라는 것이 이 확인 이상의 신비적인 것이 아님.
- (이 direct knowledge를 증득한 후 모든 생각과 노력을 놓는 것, 즉 수행이라는 배에서 내려 윤회라는 강의 건너편 땅을 밟는 것이 해탈의 완성.
- 그러므로, 관념이나 노력을 놓는 것은, 강 건너편에 도달이나 하고난 다음에 걱정할 일
- 아직 강의 이쪽편에 있는 사람은 강의 급류를 건너는 일에 집중해야.)
.
.
2. 죽는 연습.
죽는 순간의 의식상태가 다음 번 윤회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초기불교는 말함.
- (다음 생에서 사는 동안 만나게 될 조건/사건들은 이승에서 지은 업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됨.)
- 그런데 투병과정을 거치면서, 특히 죽음이 임박해서는 죽음에 대한 불안, 이승의 삶에 대한 회한, 남겨 놓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집착, 그리고 육체적 고통 등으로 정신이 점점 더 산만해지고 흐려짐.
- 그러므로 건강할 때부터 자신의 심신을 직시하는 연습을 하는 것.
.
.
3. 행복의 자가발전.
- 5감+정신까지, 이 여섯 가지를 초기불교는 모두 '감각'으로 간주.
- 인간이 말하는 상식적인 행복이라는 것도 전부 이 감각들의 만족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늘 외부의 사물이나 관계를 통해 이 6가지 감각을 충족시키려고 함.
- (내가 좋아하는 이성의 관심을 받는다든가, 나의 일/작품을 통해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든가, 돈을 벌어 좋은 차를 산다든가.)
- 외부에 대한 이런 의존이 지나치면, 물질에 혹은 타인의 평판에 노예가 되거나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을 정신적으로 '소비'/'착취'하는 결과에 이르게 됨.
- 상대에 대한 기대나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적을수록 인간관계가 오히려 더 건강해지기 때문에, 행복을 최대한 자가발전하라고, 그게 결국 온세상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불교는 가르침.
- (오로지 사적 욕망에만 관심 있으면서 대의명분으로 치장하여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만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 명상이 바로 그 자가발전의 방법.
.
.
4. 감정 다스리기.
- 예를 들어, 결혼기념일을 잊어 버린 배우자에게 내가 서운할 경우, 그 서운한 감정은 '세상 모든 기혼자는 결혼기념일을 챙길 의무를 갖고 있다'라는 전제/생각 위에 서 있음.
- 서운함을 느끼는 '내 안의 아이'에게 내 이성이 '그 전제가 과연 타당한 것이냐? 결혼 당시 이런 규칙을 명시적으로 상대와 합의한 적이 있느냐?'라고 물어 보면 내 안의 아이는 할 말이 없어짐.
- 이런 식으로, 감정이라고 하는 집이 서 있는 기반 자체를 해체하면 그 집은 저절로 무너짐.
- 이것이 감정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 "모든 생각과 감정은 空하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운들, 그 주문 때문에 제 손으로 자기 집 무너뜨리는 사람은 없음.
- .
- 설사 감정을 일시적으로 억압한들, 억압된 감정은 언제라도 잡초처럼 다시 일어서기 마련.
- 그런데 그렇게 다시 일어설 때는, 억압기제를 회피하고 자신의 의식을 스스로 기만하기 위해 원래의 감정이 아닌 다른 가면을 쓰고 돌아옴.
- 이것이 습관화되면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균열이 점점 커지면서 integrity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장애가 생김.
- 그러나 그 증상이 가시화될 즈음에는, 억압의 부작용이 이미 상당 수준 축적된 상태인지라, 원래의 문제가 무엇이었었는지 찾아내기도, 해결하기도 어려워짐.
- .
- 인간이 평소에 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대개, 자기 안의 아이가 갖고 있는 감정/욕망을 정당화/합리화하기 위해 그 감정/욕망에 멋진 포장지를 씌우는 것들임.
- 양파껍질 같은 이 포장지들을 하나씩 벗기는 것이 바로 명상이고. 그런데 양파겁질을 벗기는 명상은 양파껍질을 계속 입혀 나가는 평소의 사고방식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그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평소의 생각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음.
- (마치, 동쪽으로 달리던 차를 서쪽으로 향하게 하려면 방향을 바꾸기 전에 일단 속도부터 줄여야 하는 것처럼.)
- 그래서 '생각 중단'이 과도기 단계로서만! 필요한 것인데, 생각을 아예 안 하는 자체가 궁극의 목적이고 무슨 심오한 경지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음.
- 윤회라는 강의 건너편에 도달하여 해탈의 완성을 위해 생각과 노력을 놓는( =배에서 내리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의 경우에는, 생각을 놓는 자체가 善 혹은 목적이 될 수 없음.
.
암튼, 양파껍질 같은 온갖 변명을 벗겨내기 위해 하는 것이 명상이고, 그 작업을 잘 하기 위해서 일상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호흡에 집중하는 과도기 과정이 필요. 일상에 대한 생각을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심신 이완/휴식의 효과를 볼 수 있음.
.
.
5. 자기객관화 연습.
- 일상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멈추기 위해 보통 자신의 호흡을 관조하는 것으로 명상을 시작하는데, 이것이 워낙 지루한지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매 30초마다 잡념이 일어남.
- 그리고 잡념이 일어났을 때 '잡념이 일어났구나'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자기객관화.
- 불교에선 탐진치를 三毒이라 부르는데, 瞋이 자각하기 가장 쉽고 貪도 자각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癡는 자각이 정말 어려움. (자신의 '어리석음'을 '어리석음'이라고 매번 정확히 실시간으로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은, 수행이 필요 없는 이미 아라한.)
- 그리고 무지와 망상이 癡의 전형적인 예이기 때문에, 자신이 distract 되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그래서 훌륭한 자기객관화 연습이 되는 것. 대개는 distract 되는 순간과 distract 되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사이에 수 초에서 수 분의 시차가 발생하는데, 이 시차를 제로로 줄이는 것이 명상의 잠정적 목표.
- distraction이 일어나고 있을 때 distraction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매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의 첫걸음.
-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서사=망상이라는 우물 속에 갇혀 평생을 살다 가는 셈.
.
6. 일상생활에서 평정, 현명해지기.
- 평소 우리의 뇌는 70%는 눈앞의 작업에 (회사일이든 집안청소든), 15%는 이따 할 일에 (친구 만나서 할 말 미리 생각해 놓기 같은), 나머지 15%는 수십 수백 가지의 온갖 잡다한 것들 사이에서 널뛰기를 하는 데에 팔려 있음.
- 그렇기에 아무리 겉으론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 한들, 사실 속으로 눈앞의 일들에 일희일비하며 판단력이 흐려짐 - 마음의 중심이 잡혀 있지 않기 때문.
- 그러나 뇌의 단 5%라도 '자기 호흡 관조'에 늘상 붙들어 둔다면, 이리 저리 휩쓸리지 않는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음.
- 겉으로 평정 혹은 온화해 보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매순간 탐진치 없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 단 한 찰나도 자신의 호흡을 놓치지 않고 그에 대한 관조를 유지함으로써 매순간 현명한( =탐진치 최소의) 생각/말/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mindfulness.
- (운명에 순종하거나 매순간 현재를 즐기거나 이런 것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mindful과 전혀 무관.)
.
.
- * 인간은 자기기만과 자기미화의 천재인지라, 명상 중 떠오르는 생각은 전부 '神/우주로부터 온 메세지'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경향 (癡의 극치)을 또 갖고 있음.
- 심신이 차분할 때 떠오르는 생각이 실제로 神/우주로부터 온 메세지일 수.도. 있고 암튼 심신이 불안정할 때 떠오르는 생각보다는 현명할 확률이 매우 높지만, 여전히, '신뢰의 대상' 아닌 '회의/검증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 타니사로 스님의 말씀.
** 누구는 한 번 들은 음악을 고대로 피아노로 연주해 내고, 누구는 생전 처음 먹어 본 정체불명의 음식 레시피를 대충 스스로 생각해 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명상 중 다른 차원 존재의 음성이 들리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의 이미지가 보이거나 그런 사람들이 무척 드물지만 분명 존재함.
본인이 그런 경우라면 그냥 '나는 이런 적성을 갖고 태어났구나'라고만 생각하시면 됨. 이걸 자랑스러워하는 순간 주화입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사실 'to be remedied'의 대상이라고까지 타니사로 스님은 경계하심.
#168. [Source] "Normalcy"
[Extract] When we read about other people’s meditation experiences, we like to read about the really dramatic ones: The meditator’s awareness leaves his body and goes wandering around, sees all kinds of visions. Or a meditator discovers a sense of oneness with everything she sees. Everything is beautiful, luminous. These things sound very impressive, something we’d like to try too. But you have to look a little further into their stories, and you realize that those kinds of extreme experiences are things that have to be remedied. They’re problems. They actually get in the way of the goal.
... ... You’re not going off into extremes of harmful behavior because you’re trying to establish a pattern that will carry into your meditation. ... ...
Why do we tend to fall into extremes? In some cases it’s because we want a larger sense of self. We’re tired of being finite people and want a taste of the infinite. ... ... Or we push ourselves into extremes with the idea if we just push a little bit harder, we’ll get over the hump and into jhana, into the transcendent. But these things don’t come from pushing. ... ...
... ... We’re not trying to put ourselves into trances. ... ... You get your mind into all kinds of weird situations, weird perceptions, extreme perceptions. Then you’ve got to get yourself out, because that’s not where you’re going—at least not where you’re going if you’re going anywhere sane, anywhere safe.
... ... If your mind has a natural tendency to go in those directions, you’ve got to learn how to remedy it. ... ...
Sometimes you read that in the stages of insight you get into weird psychophysical experiences.
... ... We tend to think of the stages of jhana as very strong trance states, but actually they’re the mind in a state of genuine normalcy where it’s very perceptive, very clearly perceiving things as they are, as they come as they go, able to see distinctions.
... ... If you don’t really understand monkeys, you become a monkey too. When the monkey jumps around, your mind jumps around with the monkey. But what we’re trying to do here is to stay in a state of normalcy where the monkey jumps, but we don’t jump. We know it’s jumping, but we’re not jumping along with it. ... ...
So we are not trying to induce special experiences. ... ... You try to develop a state of normalcy where the mind can stay still and calm in the face of what it likes, in the face of what it doesn’t like. If that sounds too dull, we may want to try to force something unusual, like obliterating all distinctions between subject and object. But look carefully at that desire. There may be a strong but subtle sense of aversion underlying it, or a strong but subtle sense of passion. It’s not the way of the path. Those passions and aversions are the things you’ve got to learn how to see and uproot. ... ...
So what we are doing is something very normal. What’s unusual about it is that we’re trying to maintain this state of normalcy as consistently as we can throughout the day. That’s really extraordinary. It’s the consistency that makes it special.
[希修] Throughout the early scriptures, the Buddha strongly rebukes any mysticism such as believing in the efficacy of religious ceremonies/rituals, pursuing 'miracles' or paranormal powers and fortunetelling. Unusual visions or psychophysical experiences are not the goals of the Buddhist practice. If you experience them, you in fact have to be wary if anything. They are not at all a measure of spirituality.
[cf.] "Experimental Intelligence"
* jhana, concentration, normalcy, 走火入魔.
#88. [Source] "Experimental Intelligence"
- https://www.youtube.com/watch?v=VgDHXMUpz44&t=626s
- https://www.dhammatalks.org/.../Medit.../Section0041.html...
[Extract] "... ... Because even when the mind settles down and you see things, you’ve got to test them. Sometimes you hear the teaching that once the mind settles down, you get in touch with your Buddha nature or your Inner Stillness, and you can trust whatever your Buddha nature or Inner Stillness tells you. The Buddha never taught that way. ... ... even fully awakened arahants can’t always assume that what they think is true. ... ... So when insights arise in your meditation, or when you gain an intuitive feel for something, the question is not where the insight comes from, but what happens when you apply it. You view it as a hypothesis in an experiment. ... ... there is a lot of wrong views that come from people who meditate and gain some insights or intuitive knowledge, but the knowledge isn’t as complete as they thought it was. So they jump to the wrong conclusions. ... ... We’ve all read the Kalama Sutta, where the Buddha says not to take religious texts as being necessarily true. ... ... he also says not to take what you like as necessarily being true. Don’t take what seems to fit into your worldview as true; don’t take what seems to work out logically as necessarily being true. You’ve got to test things. ... ... So we work with the nitty-gritty of just learning to observe what’s going on in the mind, testing it, learning to put away whatever assumptions which don’t pass the test — because only through working through the details like this do we ultimately break through to something much larger and more lasting."
[希修] There seems to be a lot of people who believe that whatever comes up in their meditation is trustworthy or some sort of insight/wisdom. Some people even believe and allege that the 'message' they got from meditation/prayer was from God. Well, from the Buddhist perspectives, those beliefs *can* be mere delusions or self-deception. The Buddha says that no one can trust anything from any source without testing it.
[cf.] "Normalcy"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02393016799447&set=a.1042727616099321&type=3&theater
* meditate, insight, test, trust mind. See l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