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4

한국전쟁시기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한 전투적 반전연대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한국전쟁시기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한 전투적 반전연대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한국전쟁시기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한 전투적 반전연대


등록 :2020-09-18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

니시무라 히데키 지음, 심아정 김정은 김수지 강민아 옮김/논형·1만9000원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재일조선인과 스이타 사건>(‘전후’ 일본의 운동과 사상 1)은 비교적 길고 ‘설명적인’ 제목만큼이나 호흡도 긴 탐사취재 기록물이다. 

저자는 마이니치 방송사 ‘북한전문기자’ 출신 니시무라 히데키씨. 
저자 소개란을 보면 그는 “여섯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 취재했고, 제주도에서 두만강까지 한반도를 남북으로 종단하며 취재를 해왔다”고 한다. 
가히 ‘전문기자’의 이름 값을 충족하고도 남을 만큼 한글판 4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통해 본 그는 ‘이슈 집착력’과 집중력이 강한 사람이다. 
묻고 또 묻고, 꼬리를 물고 관련 인물들을 추적하여 그들로부터 증언을 듣고, 그들의 오늘이 어떠한지 확인하며 역사적 사건의 퍼즐을 맞춰간다. 기자 특유의 쉽고 생생한 문체 탓인지 묵직한 시대와 공간이 지루하지 않게 잘 기술돼 있다.



고마쓰제작소 오사카 공장의 포탄가공작업(<고마쓰제작소 50년의 역사>). 논형 제공



이 책이 추적하는 사건은 ‘스이타 사건’과 ‘히라카타 사건’ 두 가지다. 
우선, 스이타 사건은 1952년 6월24일에서 25일 사이 ‘한국전쟁 한복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전후 몸살’(post-war conflict)을 앓는 일본 오사카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전투적 반전 시위’다. 

그날 밤 오사카대 도요나카 캠퍼스에선 노동자, 학생, 시민, 재일조선인 들이 한국전쟁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다. 집회 후 약 1000명의 시위대는 동양최대 국철 조차장이던 스이타 조차장에 난입, 25분간 구내 시위행진까지 벌였다. 책의 부제와 홍보관련 글에서는 ‘재일조선인’이 부각됐지만 책을 완독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의 반전 시위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한 초국적 연대였다는 것을. 이 본질적 측면은 역자후기에 잘 요약되어 있다.


“마르크스주의마저도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자국의 방어’를 우선시하며 실천하지 못했던 인터내셔널리즘은 니시로쿠샤에서 그리고 스이타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이라는 거창한 슬로건 없이도 가능했다.” (역자후기)

“스이타 사건을 함께 겪어냈던 그 밤의 밝아오는 새벽 공기 속에서” 동지적 연대를, 그리고 연대적 인간의 존엄을 느꼈을 68년전 조선인과 일본인들을 상상하자니 오늘 두 나라 시민들이 서 있는 자리와 교차해서 보게 된다. 두 나라의 날 선 대립의 역사도 그러하고, ‘친일’ ‘반일’ 담론이 정파적으로 소비되는 요즘, 이 책의 부제와 홍보의 쟁점이 ‘초국적∙전투적 한일 반전 연대’로 좀 더 기울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2차 대전 패망으로 초토화됐던 일본이 전후 고도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한국전쟁이 있다는 총론은 익히 널리 알려진 바다. 그 중에서도 오사카가 한국전쟁에 사용할 무기와 탄약의 생산기지였고, 이쿠노구 일대 영세공장에서 만들어진 부품이 국철 스이타 조차장을 거쳐 고베항에서 선적되어 한반도로 보내졌다는 상세한 내막은 그 시대를 추적하고 살려낸 바로 이 책이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정보다. 1952년 6월24일 밤 “산을 넘는 부대”까지 조직했던 이 반전시위는 저자 니시무라의 집요한 추적 끝에 거의 시간대별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같은 날 벌어진 히라카타 사건은 동양최대 무기공장으로 알려진 히라카타 조병창을 다이너마이트 시한폭탄으로 폭파한 사건, 동시에 무기공장 유치에 앞장섰던 지역 유지의 집에 방화를 시도한 사건이기도 하다. 방화는 미수로 끝났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은 니시무라 기자의 퍼즐에서 두 문장으로 만났다.

“히라카타 사건·방화미수 사건은 1952년 6월25일 새벽 2시 45분경, 피해자의 신고로 발각되었다. 스이타에서 ‘산 넘는 부대’와 ‘인민전철부대’가 이동 중이던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스이타 사건 연루자들을 찾아나서는 저자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다. 저자는 사건 둘째날인 6월25일 마이니치 신문 오사카 본사 발행 사회면에 실린 기사 하나를 단서로 부상자를 찾아 나선다.

“이 기사에 의하면 경찰관이 권총을 발사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나는 부상당한 시위대원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친분이 있던 정신과 의사를 통해….” 니시무라는 부상당한 시위대(그는 일본인이다)를 결국 찾아내고 마는데, 그 기쁨을 “가슴이 고동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생각하면서 전해 받은 번호로 조심스럽게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간격을 두고 등장하는 감성적 언어들은 이 책의 입체적 면모를 강화시켜주는 요소다. 나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 이름과 프로필 그리고 행위와 행위장소 등을 메모해 가면서 읽었다. 주로 소설을 읽을 때의 습관이다. 한 편의 ‘르포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이따금 ‘울컥한’ 순간을 선사한다. 내게 그러한 순간을 묻는다면 단연 시위 참가자 중 한 명이었던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의 말을 만났을 때다. 그는 스이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겠다며 찾아온 니시무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위대의 후미에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에 보내지던 군수 열차를 10분간 멈추면, 1000명의 동포를 살릴 수 있다고 해서 필사의 심정으로 참여했습니다”

김시종은 제주 4·3봉기를 경험한 섬 사람이고 스이타 사건 발생 3년 전에 오사카에 왔다. 그 시절 재일조선인 다수가 제주 출신이라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연동된 책이 한 권 있다.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 문학상> 수상작인 구소은의 <검은모래>(은행나무, 2013년)가 그것인데 스이타 사건을 다룬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은 일제강점기 미야케지마 섬에 정착한 제주 해녀 4대의 삶을 그린 <검은모래>와 꼭 함께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제주’, ‘일본’, ‘전쟁’, ‘디아스포라’를 두루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대와그 공간을 이해하는 데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이 책은 분명 사건 중심으로 추적하는 글이긴 하나, 전후 이념적 갈등을 못잖게 겪었던 일본 현대사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효과를 부여한다. 일본에서도 ‘공산주의자 색출 작전’(이 책에서는 “레드퍼지”로 표기됨)이 벌어졌다는 건 흥미롭고 그 색출 작업이 한국전쟁이라는 변수 탓에 더욱 도드라진 것이 의미심장하다. 언론도 이 색출 작업의 대상이 됐다. 한국전쟁 발발과 관련, 북한의 발표 내용을 받아쓴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에 대한 사흘 간의 간행정지도 그런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한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자 신문, 통신, 방송 등 50개 보도기관에서 704명이 해고되는 건 물론 여러 산업현장, 심지어 정부기관에서도 1천명 이상이 해고됐다고 한다.

야마다 마을을 행진하는 시위대. 논형 제공

그러한 냉전의 한복판에서 일본은 미군기지 역할을 한 사실상 ‘참전국’이었음을, 그리하여 군대도 전쟁도 거부한다는 일본헌법 9조 위반은 이미 1950년대 초 벌어진 일이었음을 폭로하는 것도 이 책의 남다른 의미일 것이다. 이를 물리적으로 증명키 위해 저자는 겨우 스물한 살의 나이에 ‘해상보안관’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전사한 나카타니 사카타로의 형 도이치를 찾아가 사카타로 죽음의 진실을 재건(reconstruct)해 본다. “동생은 전후 제 1호 전사자예요. 전쟁에 참가했으니까요….” 저자는 이런 형의 말을 기록하고, 더 나아가 그의 전사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는 해상보안청의 편지 내용까지 폭로한다.

“이것은 미군의 명령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시끄러워질 것이니, 부디 외부에 이야기하지 않도록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바로 ‘민간군사기업’에 관한 얘기다. 21세기 전쟁터에서 전투-비전투 영역을 망라하고 목격되는 전쟁 외주 현상, 이른바 ‘민간군사기업’(PMC)의 활약은 언론인을 포함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21세기 서막을 열어 젖힌 대표적 전쟁이 벌어진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는 “컨트랙터”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수많은 전쟁산업 종사자들이 전투병, 비전투병을 망라하고 몰려들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일본의 한국전 참전방식도 PMC 현상으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의 말을 이어보자.


“전쟁은 군대만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아시아·태평양전쟁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일본인이 ‘협력’한 실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전 당시) 한국으로 건너간 일본인 8000명이 얼마나 많은 인원인지…. 물론 그들은 군인이 아니다. 말하자면 민간군사회사의 선봉대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기지국가’라 불리는 이유다. 일본은 한국전쟁에 실질적으로 ‘참전’하고 있었다.

‘‘전후’ 일본의 운동과 사상 시리즈’ 두번째 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국제분쟁전문기자 이유경 LEE@Penseur21.com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62662.html?fbclid=IwAR2uRkgAQk9kKFrxFiD8BdL7tBdvZ6BEJRNjjq6Fvc7kG3OigeyWT71tPhY#csidx8e8f1f97182816193ff2969597c08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