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9

[주성하의 서울살이] 노동당의 주체농법과 농민의 주체농법



[주성하의 서울살이] 노동당의 주체농법과 농민의 주체농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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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의 서울살이] 노동당의 주체농법과 농민의 주체농법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2-05-04

북중 접경지역인 압록강변 북한땅에서 주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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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번 시간에 농사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 시간에도 계속할까 합니다. 아마 다음 주부터 농촌동원에 본격적으로 나가겠죠. 제가 북에 있을 때는 봄에 논밭머리마다 방송차가 서서 열심히 불어댔는데, 기름이 금값인 지금도 그거 하나요? 방송차에 기름 넣을 바에는 모내는 기계라도 하나 더 돌리지 하는 생각입니다. 봄에 방송차가 섰다 하면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영양단지를 알알이 정성들여 만들고, 한랭전선에도 끄떡없이 냉상모판의 벼를 튼실하게 키우고, 적지적작, 적기적작의 원칙을 지킴으로서...”하고 그냥 귀가 빠지게 불어댑니다.
사실 여기 와서 들으면 주체농법도 별거 아닙니다. 적지적작, 적기적작이란 거야 원래 농사꾼들에겐 상식 중의 상식 아닙니까. 당연히 작물을 제때에 적당한 밭에 심어야 하는 것이고, 이건 수천 년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겁니다. 이런 것까지 마치 당에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농부들이 모르는 것처럼 생각하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제발 당에서 가르쳐 주지 말고 농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장담컨대 생산량이 더 나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주 초보적인 이런 상식을 북한 노동당만 모르는 것 같습니다.

주체농법의 상징 같은 것이 바로 강냉이 영양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오니 강냉이는 다 직파합니다. 제 생각에는 영양단지가 강냉이가 자라는데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문제는 효율이죠. 영양단지 만들겠다고 밭을 평평하게 만들어 그래, 각종 부식토와 비료를 가져다 영양단지를 찍어내 그래, 그걸 또 사람이 하나하나 가져다 밭에 심어서 그래, 아무튼 이거 하려면 사람 손이 엄청 필요합니다. 멀리 강에 가서 바케쯔로 물을 길어다 영양단지 심을 때 물까지 부어주던 것을 생각하면 고생도 이런 생고생이 없죠. 거기다 냉상모판 만든다고 비닐박막 비싼 외화 들여 구입해 씌우는 것까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영양단지를 만들었으면 정보당 생산량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두 배나 나오던가. 이건 아니잖습니까.

여러분이 소토지를 하면 다 직파를 하죠. 농장 밭에는 영양단지를 안하면 당정책을 어긴 반동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자기 개인 텃밭에는 그냥 직파를 해버립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거 그렇게 난리 법석 부리면서 영양단지 만들어봐야 별로 효과 없다는 것을 농민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비료만 잘 주면 직파면 어떻고 영양단지면 어떻습니까. 농민들도 영양단지 만들고 옮기기 싫으니 영양단지 이식은 농촌지원노력들, 특히 학생들에게 다 맡겨 버립니다. 그래서 영양단지는 학생단지란 말도 나왔고요. 이제는 과거에 하늘처럼 떠받들고 살던 교시니 말씀이니 이런 것도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은 좀 버리면서 살면 오죽 좋습니까.

주체농법 하면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문제가 뭐냐 하니 다락밭 농사입니다. 예전에 다락밭을 만든다면서 산에 층층이 밭을 만들었지 않습니까. 제가 한국에 와서 보니 여기 과학자들은 그걸 엄청 비판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다락밭을 만들면 산이 자기 역할을 못해서 홍수로부터 산 아래 논밭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산은 산의 역할을 하고, 밭은 밭의 역할을 하고, 논은 논의 역할을 해야지 산을 밭으로 만들면 어떻게 하냐 이겁니다. 물론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사실 북엔 다락밭이 사실 그리 많지는 않죠. 한때 만든다고 난리 부렸지만 그 산에 등짐으로 돌을 날라 층층이 쌓는 품이 어디 보통 품입니까. 지금이 원시시대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다락밭을 만들었지만 그 다음이 또 문제입니다. 기계도 들어가기 힘들고, 물도 끌어올리기 힘들어 가뭄을 탑니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락밭 영농법이 다 망한 것임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내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거죠. 다락밭이 효율성이 없다든지, 만들 필요가 없다든지 하면 당 정책을 거역한 반동이 되니 문제입니다.

농촌에 다락밭과 같은 사례가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명백한 상식과 진실도 당정책과 어긋난단 이유로 감히 말을 못하고, 그러니 잘못된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하는 수없이 따라해야 하는 그런 일들이 말입니다. 북한은 바로 그런 굴레에서 하루 빨리 해방돼야 발전합니다.

봄에 전국을 농촌지원 전투에 내모는 일도 그렇습니다. 도시에 있어봐야 할 일이 없으니 어른들이 나가는 것은 정말 크게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다 쳐도 공부하는 학생들과 대학생들까지 1년에 두 달씩 농촌에 내보내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입니다. 아이들 때는 공부를 해야죠. 머리에 공부가 쏙쏙 들어가는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귀중한 시간을 농장에 나가 흙 담가나 쥐고 나르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학생들이 모자라 농사를 못 짓는다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는데, 그러면 영양단지를 하지 말고 직파를 하면 되잖습니까. 직파해서 떨어지는 소출하고 나라를 끌고 갈 미래들이 공부 못해 생기는 공백하고 저울질해보면 전 세계적으로 답은 공통일 겁니다. 그런데 북에서만 다른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내용을 말하면 여러분들은 “우리도 다 안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하고 반박하실 겁니다. 여러분도 잘못된 것들 저보다 수없이 더 많이 아실 겁니다. 하지만 말을 못하죠. 그래서 오늘 시간엔 여러분을 대신해 제가 서울에서 여러분이 다 아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다 알고 있어도 누군가는 말을 해야 공감을 만드는 거니까 말입니다.

당에서 시키는 게 주체농법이 아니라, 농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그게 바로 주체농법입니다. 당의 주체농법이 농민의 주체농법으로 바뀌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