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앤드마이크
23 August 2016 ·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
김일성의 주체농법은 농업 생산량 감소를 막아 보자는 바보들의 대증요법이다. 면적당 소출이 떨어진 만큼 면적을 늘려 총생산량을 회복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농지는 산비탈로까지 밀려 올라갔다. 비가 오면 토사가 흘러내리는 환경 재앙은 주체농법의 명징한 결과다.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계화, 농자재와 비료 등 농업의 공업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김일성뿐만은 아니었다.
마이너스 금리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도 비슷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일본은 대체로 2011년을 정점으로 급격하게 금리를 내렸고 2014년부터는 역금리로 돌아서 지금은 스웨덴 -1.25%, 스위스 -0.75%, 유로존 -0.40%, 일본 -0.1% 등이 역금리다. 대부분은 중앙은행 예치금에 대해서만 마이너스를 적용하고 일반 대출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지만 덴마크에서는 일반 대출에도 적용하고 있다. 현금 보관비용과 마이너스 이자를 합친 한도 내라면 일반 대출에도 역금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농법과 비슷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저축률은 세계 최고인 20.1%까지 치솟아 버렸다. 제로 수준이던 스웨덴 저축률도 16.5%까지 급등했다. 덴마크도 8.1%로 뛰었다. 저축률이 줄곧 하강해 온 일본도 2.1%로 반전했다. 소비를 늘리자고 도입한 아이디어였지만 결과는 저축의 증가였다. 저축자들은 줄어든 이자수익만큼 오히려 예금총액을 늘리고 있다. 소비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승수적으로 줄고 있다. 케인스가 말한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적 상황이지만 은퇴자도 청년들도 끝내 저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저축자들은 투기상품을 찾거나 저축 총량을 늘려 장래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이 고령화 시대에 마이너스 금리는 노후 불안을 더욱 부채질한다. 더구나 은행 다니느라 닳게 될 구두축 비용도 아깝기 때문에 돈은 빠른 속도로 퇴장한다. 화폐 유통속도는 떨어지고 돈을 풀수록 시중 현찰이 사라진다. 바보만 모르는 미스터리다.
‘돈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반감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근대 신용화폐가 도입되면서 극에 달했다. 이자수익에 세금을 매기거나 감가상각 제도를 통해 ‘돈의 불멸성을 파괴하고, 자가증식을 차단하자’는 주장의 현대적 선구는 1916년 실비오 게젤의 《자연적 경제질서》다. 우리는 오늘날 케인스 《일반이론》 23장에서 그의 이름을 보게 되는데, 한때는 헨리 조지 이상의 열광적 추종자가 있었다고 한다. 화폐 이자율이 실물자본의 성장 한계라고 주장한 게젤은 이자율을 제거하면 경제 성장이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돈 벌어봤자 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거나 “장사 잘 해봤자 임대료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할 때의 바로 그 화폐 수익을 제로 혹은 그 이하로 만들어야 실물 경제가 성장한다는 대증요법이다. 게젤은 적정 마이너스 금리를 연 5.2%로 제시하기도 했다.
케인스는 게젤이 유동성 선호라는 개념을 몰랐다고 비판하면서도 장차 마르크스보다는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뿔싸. 케인스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케인스는 저축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저축을 결정하고, 다시 소비가 투자를 결정한다면서 자본의 희소가치를 제거할 때까지 이자율을 끌어내리자고 주장했다. 그렇게 소비를 자극하면 완전고용과 부의 평등한 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낮은 이자율 이론은 결국은 자신이 되살려냈던 게젤의 결론 즉, 마이너스 금리로까지 미끄러져 갔다.
케인스는 이자생활자의 안락사, 투자자의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이자생활자는 안락사했는지 모르지만 실물경제의 활기도 동시에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그들이 없애고자 했던 투기 거품만이 산처럼 솟아 올라 보통 생활인의 미래까지 저당잡히기에 이르렀다. 진정 안락사하고 있는 것은 화폐도 이자도 부도 아닌 것 같다. 케인스와 함께 태어난 거시경제학이야말로 안락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
김일성의 주체농법은 농업 생산량 감소를 막아 보자는 바보들의 대증요법이다. 면적당 소출이 떨어진 만큼 면적을 늘려 총생산량을 회복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농지는 산비탈로까지 밀려 올라갔다. 비가 오면 토사가 흘러내리는 환경 재앙은 주체농법의 명징한 결과다.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계화, 농자재와 비료 등 농업의 공업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김일성뿐만은 아니었다.
마이너스 금리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도 비슷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일본은 대체로 2011년을 정점으로 급격하게 금리를 내렸고 2014년부터는 역금리로 돌아서 지금은 스웨덴 -1.25%, 스위스 -0.75%, 유로존 -0.40%, 일본 -0.1% 등이 역금리다. 대부분은 중앙은행 예치금에 대해서만 마이너스를 적용하고 일반 대출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지만 덴마크에서는 일반 대출에도 적용하고 있다. 현금 보관비용과 마이너스 이자를 합친 한도 내라면 일반 대출에도 역금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농법과 비슷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저축률은 세계 최고인 20.1%까지 치솟아 버렸다. 제로 수준이던 스웨덴 저축률도 16.5%까지 급등했다. 덴마크도 8.1%로 뛰었다. 저축률이 줄곧 하강해 온 일본도 2.1%로 반전했다. 소비를 늘리자고 도입한 아이디어였지만 결과는 저축의 증가였다. 저축자들은 줄어든 이자수익만큼 오히려 예금총액을 늘리고 있다. 소비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승수적으로 줄고 있다. 케인스가 말한 이자생활자들의 안락사적 상황이지만 은퇴자도 청년들도 끝내 저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저축자들은 투기상품을 찾거나 저축 총량을 늘려 장래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이 고령화 시대에 마이너스 금리는 노후 불안을 더욱 부채질한다. 더구나 은행 다니느라 닳게 될 구두축 비용도 아깝기 때문에 돈은 빠른 속도로 퇴장한다. 화폐 유통속도는 떨어지고 돈을 풀수록 시중 현찰이 사라진다. 바보만 모르는 미스터리다.
‘돈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반감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근대 신용화폐가 도입되면서 극에 달했다. 이자수익에 세금을 매기거나 감가상각 제도를 통해 ‘돈의 불멸성을 파괴하고, 자가증식을 차단하자’는 주장의 현대적 선구는 1916년 실비오 게젤의 《자연적 경제질서》다. 우리는 오늘날 케인스 《일반이론》 23장에서 그의 이름을 보게 되는데, 한때는 헨리 조지 이상의 열광적 추종자가 있었다고 한다. 화폐 이자율이 실물자본의 성장 한계라고 주장한 게젤은 이자율을 제거하면 경제 성장이 빨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돈 벌어봤자 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거나 “장사 잘 해봤자 임대료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할 때의 바로 그 화폐 수익을 제로 혹은 그 이하로 만들어야 실물 경제가 성장한다는 대증요법이다. 게젤은 적정 마이너스 금리를 연 5.2%로 제시하기도 했다.
케인스는 게젤이 유동성 선호라는 개념을 몰랐다고 비판하면서도 장차 마르크스보다는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뿔싸. 케인스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케인스는 저축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저축을 결정하고, 다시 소비가 투자를 결정한다면서 자본의 희소가치를 제거할 때까지 이자율을 끌어내리자고 주장했다. 그렇게 소비를 자극하면 완전고용과 부의 평등한 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낮은 이자율 이론은 결국은 자신이 되살려냈던 게젤의 결론 즉, 마이너스 금리로까지 미끄러져 갔다.
케인스는 이자생활자의 안락사, 투자자의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이자생활자는 안락사했는지 모르지만 실물경제의 활기도 동시에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그들이 없애고자 했던 투기 거품만이 산처럼 솟아 올라 보통 생활인의 미래까지 저당잡히기에 이르렀다. 진정 안락사하고 있는 것은 화폐도 이자도 부도 아닌 것 같다. 케인스와 함께 태어난 거시경제학이야말로 안락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