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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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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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李海仁
작가 정보
본명이명숙
출생1945년 6월 17일(79세)
대한민국 강원도 양구군
국적대한민국
직업수녀
수필가
시인
종교천주교 (수도명: 클라우디아)
장르시문학
수필문학
웹사이트이해인 - 공식 웹사이트

이해인(한국 한자李海仁, 본명 : 이명숙[1]1945년 6월 7일~)은 천주교 수녀이자 시인이다.

학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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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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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에서 이대영, 김순옥의 1남3녀 중 셋째로 출생하였다. 태어난지 3일만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3]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아버지가 납북되었다.

1964년에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세례명은 벨라뎃다 (벨라데따), 수도자 이름은 클라우디아이다[4][5]. 입회한 이후부터 '해인'이라는 필명으로 천주교 발간 잡지《소년》에 작품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 첫 서원을 하였고, 1976년에 종신서원을 하였다[6]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경리과 보조 일을 하였다.

1976년에 첫 시집인《민들레의 영토》를 발간하였다.

1992년에 수녀회 총비서직을 맡게 되었다. 비서직이 끝난 1997년에 '해인글방'을 열어두고 문서 선교를 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부산 가톨릭대학교의 교수로 지산교정에서 '생활 속의 시와 영성' 강의를 하였다.

그녀의 작품 중 하나인 《말의 빛》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언어 영역 읽기 교과서에 실려 있다.

활동[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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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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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들레의 영토(1976, 가톨릭출판사)
  2. 내 혼에 불을 놓아(1979, 분도출판사)
  3.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3, 분도출판사)
  4. 시간의 얼굴(1989, 분도출판사)
  5. 엄마와 분꽃(1992, 분도출판사)
  6.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1999, 열림원)
  7.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1999, 열림원)
  8. 작은 위로(2002, 열림원)
  9. 작은 기쁨 (2007, 열림원)
  10. 엄마(2008, 샘터)
  11. 희망은 깨어있네(2010, 마음산책)
  12. 작은기도(2011, 열림원)
  13. 이해인 시전집1.2(2013, 문학사상)
  14.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2014, 마음산책)
  15. 꽃잎 한 장처럼(2022, 샘터)
  16. 인생의 열 가지 생각(2023, 마음산책)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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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레박(1986, 분도출판사)
  2. 꽃삽(1994, 샘터)
  3. 사랑할 땐 별이 되고(1997, 샘터)
  4.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2002, 샘터)
  5. 기쁨이 열리는 창(2004, 마음산책)
  6. 풀꽃 단상(2006, 분도출판사)
  7. 사랑은 외로운 투쟁(2006, 마음산책)
  8.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2011, 샘터)
  9.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2018, 샘터)
  10. 기다리는 행복(2018, 샘터)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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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계절의 기도(1993, 분도출판사)(2001, 개정판)
  2. 고운새는 어디 숨었을까(2000, 샘터)
  3. 눈꽃 아가(2005, 열림원)
  4.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2006, 분도출판사)
  5. 나를 키우는 말(2013, 시인생각)

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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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1999, 황금가지)
  2.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2001, 샘터)
  3. 영혼의 정원(2003, 열림원)
  4. 우리는 아무도 혼자가 아닙니다(2003, 황금가지)
  5. 마지막 선물(2003, 보보스)
  6. 마음속의 샘물(2004, 계림북스쿨)
  7. 마법의 유리구슬(2005, 분도출판사)
  8. 우리가족-최고의 식탁(2008, 샘터)
  9. 교황님의 트위터(2014, 분도출판사)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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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년 제9회 새싹문학상
  • 1985년 제2회 여성동아 대상
  • 1998년 부산여성 문학상
  • 2006년 천상병 문학상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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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수녀)

최근 수정 시각: 
이해인
李海仁|Lee Hae-in
이해인 사진 01
본명
이명숙(李明淑)
세례명
클라우디아(Claudia)[1]
출생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동수리#
국적
직업
가족
부모님, 1남 3녀 중 셋째
학력
성의여자고등학교 (졸업)
필리핀 세인트루이스대학교[2] (영문학 / 학사)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 석사) #
종교
소속
등단
「하늘」(1970, 월간《소년》)
이해인 사진 02
청년 시절의 사진(위)
노년의 이해인 수녀 사진(아래)

1. 개요2. 생애3. 대표작4. 타 종교인과의 만남5.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가톨릭 베네딕도회 소속의 수녀1970년 시인으로 등단하여 많은 동시(童詩)와 수필을 써온 문인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이해인 수녀의 삶, 작품세계를 다룬 2023년 7월 기사(조선일보)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자랐고, 어렸을 적부터 책 읽고 글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6.25 전쟁 시기 납북되었다. 어머니가 20대에 세례를 받았고, 자식들로 1남 3녀(이해인 수녀는 셋째)를 키웠는데 그 중에서 큰딸, 그러니까 이해인의 큰언니는 이해인이 초등학교 시절 수녀원에 입회했으며, 이에 이해인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고모가 2명 있는데 그 중 1명도 젊은 시절 수녀가 되려 하였다고.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자신이 지은 동시를 "누가 써 준 것임에 틀림없지?"라고 믿지 못했던 담임선생의 증언(?)이나, 백일장에서 입선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글쓰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수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때 수도자의 길과 시인의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 결국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

2005년에 발간된 가톨릭 성경 번역에도 참여하였다. 주로 시 부분의 번역에 도움을 주었다.


2021년 12월 8일,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 미사에서 수도자 대표로 축사를 했다.

2024년으로 수도자 생활 60주년을 맞이했다.

3. 대표작[편집]

4. 타 종교인과의 만남[편집]

종파를 넘어 생전의 법정과 친분이 깊다.[3] 관련 기사 한국 천주교와 불교는 서로 왕래가 매우 잦으며 친분도 굉장히 두텁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오신날에 서로 축하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도 인식이 서로 호의적인데다가 사제와 승려들이 친밀하게 지내는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4]

external/dimg.do...
법정과 함께

external/d3091c8...
혜민과 함께

5. 대중매체에서[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그대 어이가리의 연희(정아미)가 적어놓은 메모에서 시 '나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극 중에서 연희가 병마와 싸우는 고통의 감정을 시를 기록하는 것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나중에 이를 발견한 동혁(선동혁)이 연희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투병을 알고 펑펑 운다.

[1] 정확히는 수도 서원을 하면서 받은 수도명이다. 태어날 당시 부모님이 지어 준 세례명은 '벨라뎃다(Bernadette)'. 수도자들은 대부분 서원 이전의 세속의 삶을 끊어낸다는 의미에서 수도명을 새로 지으면 기존 세례명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2] 필리핀 바기오에 위치한 대학교로, 1911년 12월 1일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필리핀의 명문 대학교 중 하나이다.[3] 두 사람은 샘터 출판사에서 다수의 저서를 쓴 문인으로서의 인연도 깊다.[4] 종교가 다르다고 사제나 수도사, 목회자 등이 승려와 서로 감정이 안 좋지는 않다. 오히려 성품이 온화한만큼 잘 맞는 부분이 많으며 목회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이 스님들을 좋아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본보기가 될 수도 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3/07/12/D7MEF3VHZRDDDN63AON76M7ASE/

이해인 수녀, 300만부 작가지만 교통카드가 전부… 글은 쉽게

[파워라이터] [13] 시인 이해인 수녀



평생 카드라곤 주민등록증과 경로우대 교통카드 딱 두 장 가져봤다는 이해인 수녀는 “비우고 비우는 이 삶이 만만치가 않다”며 웃음을 터뜨렸다./오종찬 기자
곽아람 기자
입력 2023.07.12


30



지난달 19일 서울 동자동 ‘성분도 은혜의 뜰’ 툇마루에 앉은 이해인 수녀. 

  •  “평범한 일상을 긍정하면서 
  • 사물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노력했고, 
  • 러브레터 같은 시를 쓴 ‘작은 수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고 했다./ 오종찬 기자

지난 50년간 쓴 책이 300만부 넘게 팔렸지만, 시인 이해인(78) 수녀는 평생 카드라곤 딱 두 장 가져봤다. 신용카드 아닌 주민등록증과 경로우대 교통카드. 그간 받은 인세는 모두 수녀회에 귀속된다. 수도자는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친족에게 상속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 3년마다 공증을 받는다. “1년에 한 번 수녀회 경리가 회원들 앞에서 살림살이 보고를 하며 ‘이해인 수녀 인세는 이만큼이다’ 알려줍니다. 1억이 넘게 들어올 때도 있고, 몇천만원 수준일 때도 있지만 저는 한 번도 제 통장을 본 적이 없어요.”

지난달 서울에서 기자와 만난 이해인 수녀는 “비우고 비우는 이 삶이 만만치가 않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간 쓴 책이 지난달 나온 에세이 ‘인생의 열 가지 생각’까지 저서만 20여 권, 선집과 번역서 등을 합치면 50여 권에 달한다. 32세 때인 1976년 낸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100만부 가까이 팔렸고,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79), 첫 산문집 ‘두레박’(1986) 등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쇄당 1만~2만 부를 찍던 출판 시장 호황기, 그의 책은 거의 매번 권당 50쇄를 거뜬히 넘겼다.

지난달 19일 서울 동자동 ‘성분도 은혜의 뜰’ 툇마루에 앉은 이해인 수녀. / 오종찬 기자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여섯 살 때 6·25가 나서 부친이 북에 끌려갔다. 전쟁통에서 자랐기에 일찍부터 앞당겨 죽음을 묵상했다. 먼저 수녀가 된 언니가 이해인을 수도자의 길로 이끌었다. 스무 살 때인 1964년 수녀원에 입회했다. 포기와 희생이 수도자의 덕목이라 믿어, 쓰고 싶은 욕망도 애써 접었다. 그렇지만 재능은 주머니를 뚫고 비어져나온 송곳처럼 빛을 발했다. 몰래 끄적인 시를 우연히 본 관구장 임남훈 수녀가 당시 가톨릭출판사 사장으로 있던 김병도 몬시뇰을 소개했고, 김 몬시뇰의 주선으로 만난 시인 홍윤숙이 “혼자 보기 아깝다”고 평했다.

1976년 2월 종신서원을 기념해 수녀회 안에서만 돌려보기로 하고 1000부가량 첫 시집을 찍었는데, 우연히 언론에 소개된 표제작 ‘민들레의 영토’에 독자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로 시작하는 맑고 깨끗한 시가 세상사에 지친 이들의 가슴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재소자들로부터 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정결한 수녀님도 이렇게 자기반성을 하는데 죄 많은 내 삶이 너무 부끄러워 엉엉 울었다고.”

이해인 수녀가 2023년 6월 19일 오후 서울 용산 은혜의 뜰에서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쉽고 진솔한 시어는 이해인 수녀가 지난 50년간 쉼 없이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비결이다. 이를테면 그의 대표작 ‘수녀1′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면서/ 누구의 엄마도 아니면서/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여인아”…. 이 수녀는 “담백하고 진솔한 것이 내 글의 장점이다. 그렇지만 독자를 끌기 위해 일부러 쉬운 말로 쓰는 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이 나의 개성이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인 것 같다”고 했다.


2008년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시집과 산문집 등을 끊임없이 냈다. 언제나처럼 모두 잠든 밤,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엎드려 연필로 썼다. “내일은 내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간절함으로 썼다”고 이해인은 말했다. 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수도자로서의 소임이자, 신(神)에게로 가는 방편이기도 하다. “타고르는 ‘기탄잘리’에서 시인을 절대자가 새로운 노래를 불어넣는 ‘갈대피리’에 비유했어요. 저의 역할도 그 피리와 같습니다. 저는 지난 47년간 수녀원에만 틀어박혀 있었지만 제 시가 날아가 선교와 복음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수녀가 환속하지 않고 아직도 ‘민들레의 영토’를 가꾸고 있다는 사실에 독자들이 보람을 느낀답니다.”
이해인 수녀의 ‘좋은 글 쓰려면’

글쓰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예비 수녀들에게 문학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식당에서 조갯국이 나온 날, 국 속 조개껍질을 다 떼어 흩어놓고 다시 제 짝을 찾아보라고 시켰다. 그 과정에서 느낀 사랑과 우정의 개념을 정의하는 글을 써 보라고 했다. 시계, 십자가 등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소지품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한 적도 있다. 모든 이들의 내면에는 글 쓰는 능력이 있다. 그 잠재력을 깨닫고 발휘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닮고 싶은 작가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고 그처럼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시성(詩聖) 타고르의 시는 종교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이라 좋아한다. 윤동주의 ‘서시’를 특히 좋아하는데 선한 영향력을 주는 별 같은 삶과 글이 일치하는 걸 닮고 싶다는 갈망이 있다.

표현력은 어떻게 키우는 게 좋을까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을 필사하면 도움이 된다. 베끼라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라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꽃 이름이나 나무 이름처럼 모르는 것이 나오면 사전뿐 아니라 도감을 찾아서라도 끝까지 찾아내며 연구해야 한다. ‘공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이다. ‘이름 없는 꽃’ ‘이름 없는 새’ 같은 구절이 있는 글은 성의가 없어 보인다.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