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5

세계 철학의 무대에서 ‘한국철학’을 묻는다 -정세근 교수신문 2408

세계 철학의 무대에서 ‘한국철학’을 묻는다 - 교수신문

세계 철학의 무대에서 ‘한국철학’을 묻는다
정세근
승인 2024.08.1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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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세계철학대회’ 로마 현장을 가다_②

이번 로마 세계철학대회(2024년 8월 1일 ~ 8월 8일)에는 109개 나라 5천723명이 참가했다. 제안된 8천626개 주제 중에 절반인 4천309개(학생 997명)가 초청되었는데, 코로나 이후 첫 대회다. 등록비가 250유로(38만 원)다. 그럼에도 차 한 잔 주지 않는 야박한 대회였다. 그렇다면 그 돈으로 부른 초청 인사의 강연이라도 열심히 들을 일이었다. 세 사람이 눈에 띈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과)가 3일 오전 강연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을 한마디로 하면 수퍼파워와 수퍼리치에 대항하는 전 지구적 윤리였다. 공자의 『논어』를 인용하면서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준칙이 무너진 현대 사회, 그 가운데에서도 미국의 행태를 그는 비판했다. 공자의 인(仁), 붓다의 자비, 예수의 사랑과 같은 인류의 공동 가치를 살리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삭스 교수는 자신이 아마추어 철학자이니 이제 여러분과 같은 철학자에게 달렸다고 끝을 맺었다.

삭스 교수는 이어 ‘아리스토텔레스, 붓다, 공자, 이슬람 심포지움’에도 세 명의 발표 가운데 하나로 참석했는데, 이 발표가 더 구체적이었다. 30년 전보다 나빠진 가난과 굶주림에는 세계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미국의 책임이 있는데 과학적인 면에서는 지구온난화, 기술적인 면에서는 좋은 에너지, 윤리적인 면에서는 매일 천 명씩 죽는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다섯 가지였다. ①지속가능한 발전 ②미국의 오만을 제어할 윤리 ③폭주하는 기술(무기, AI)의 제어 ④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기 ⑤UN을 영향력 있게 만들기였다(UN에서 활동하는 그답게 UN을 믿어달란다). 미국은 바뀌지 않아 비관적이지만, 한마디로, 철학적 유산이 위대한 문명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세계철학자대회가 로마에서 열렸다. 사진=정세근




찰머스 교수 “말이 먼저인가, 생각이 먼저인가?”

얼마 전 미국철학회장을 지낸 데이비드 찰머스 뉴욕대 교수(철학·신경과학과)도 왔다. 필자가 그를 아는 것은 철학적 농담을 잘 모아놓아서였는데(닭이 길을 건넌 까닭 등) 이제 그의 위상은 분석철학·뇌과학 분야에서 견고하다. 유일하게 한인 출신으로 미국철학회장까지 지낸 김재권 전 브라운대 명예교수(1934∼2019)와는 반대로, 찰머스 교수는 의식이 물질로 쉽게 환원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폈다.

3일 오후에 이루어진 찰머스 교수의 강연은 「철학자에게 AI는 도구인가, 대리인인가?」라는 6명의 초청 세션과 같은 주제로 이뤄졌다. 그는 평균 36도 내외의 8월의 로마를 예로 들었다. 사람에게는 ‘로마’라는 개념이 있고, ‘로마는 덥다’라는 조합된 명제가 있고, ‘로마는 덥다고 믿는다’는 태도가 있는데 AI가 ‘로마는 덥다’고 말할 줄 아는 것으로 보아 명제적 태도의 조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내 식으로 말하면 아기가 말 배우는 것과 같다: ‘엄마, 밥’, ‘엄마, 밥 줘.’, ‘엄마가 밥을 줄 거야.’).

큰말모델(LLM)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누구도 잘 모르지만, AI가 개념 잡기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로 든 것이 ‘Golden Gate Bridge’(AI의 입장에서 세 낱말을 따로 받아들이자)를 물었을 때의 AI의 대답이다. 찰머스 교수는 영어와 더불어 한국어·일본어·러시아어의 예를 들며, AI가 개념 구분을 잘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AI는 완전히 반성적이거나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추리 과정에서 완전한 자기의식은 결여’한 것으로 본다.

찰머스 교수의 장점은 이런 문제를 아주 오래된 철학적 문제부터 시작한다는 데 있었다. 말이 먼저인가, 생각이 먼저인가? 그것은 AI가 개념 잡기를 한다면 생각도 할 수 있다는 데에 이른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중국철학

찰머스 교수도 그랬지만, 기술철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육휘(Yuk Hui) 네덜란드 에란스무스대 교수(철학)도 달밤에 옛 로마 시가지의 팔라티노 언덕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강연에 5일 초청되었다. 그가 특별한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에 중국철학의 특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한국철학회장 할 때 10년간 3억을 약정한 노소영 나비센터 관장이 특히 그를 좋아했다. 동양이 동양을 만나야 하는데(서양으로 만나지 말고) 바로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강연에서 중국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칸트의 일면과 하이데거의 기술철학을 역사적으로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수학자로 ‘사이버네틱스’(1948)라는 개념을 제시한 노버트 위너(1894∼1964) 전 MIT 교수(수학)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1872∼1970)에게도 배운 위너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인간형을 기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계가 동물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실제로도 자동으로 사람을 정조준하는 기계가 있다!

육휘(Yuk Hui) 네덜란드 에란스무스대 교수(철학)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AI 중심으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세근




AI 관련 논문 쏟아져...AI는 사람과 다른가

이번 학회의 특징은 역시 AI 관련 논문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점이다. 전 세계가 AI 앞에서 휘청대고 있다는 증거다. AI는 피부가 없어서 사람과 다르다는 강한 주장이 육휘 교수에 바로 이어 있었지만 감정도 학습으로 나온 것이라면, 그리고 실연만으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면, AI의 감정 문제도 쉬운 것이 아니다. 필자도 고통을 느낄 몸이 없다는 점에서 ‘없다’ 쪽이었다가 감정도 배운다(학습)는 점에서 ‘있다’로 기울어지고 있다.

세계대회답게 많은 지역의 학회가 세션을 만들어 참가했다. 한국철학회도 그랬지만, 북미한국철학회(오전, 오후), 국제중국철학회, 국제일본철학회(오전만 이틀)도 그랬다. 러시아·카자흐스탄·아르마니아·보스니아 관련한 집담회도 있었다. 작게는 패널을 만들어 라이프니츠나 로크나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남미에서의 칸트의 영향-카라비안의 시선에서, 21세기 마르크스 철학 등으로 주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후기 칸트주의 미학자 수잔 랭거(1895∼1985)가 하나의 세션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이었다(그러나 그의 스승격인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는 없었다). 필자는 평소 접하기 힘든 이슬람, 아프리카, 그리고 일본 철학을 선택했다.




일본 철학, 교토학파 많이 다뤄

일본 철학은 예상대로 쿄토학파를 많이 다루었다. 니시다 키타로(1870∼1945)의 좌파적 발전인 미키 키요시(1897∼1945)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2차대전 종전을 앞두고 옥중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그의 사상적 발전이 끊겼는데 이제 세계에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외에도 쿄토학파의 새 인물을 발굴하기도 했고, 미학자 이마미치 토보노부(1922∼2012) 연구소에서 환경윤리를 갖고 오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는 불교 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츠(1870∼1966)와 스웨덴의 신학자 에마누엘 스베덴보리(1688∼1772)의 비교 발표도 있었다.

아랍 철학은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인 페르시아 제국의 철학자·의학자 아비켄나(이븐 시나: 980∼1037)를 빼놓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우리의 유의(儒醫)처럼 그도 의학적 저술을 많이 남겼다. 히포크라테스 등과 비교해보는 연구였다. 세계 평화와 조화를 말하는 이슬람 윤리도 제시했고, 유대와 아랍 철학을 함께 다루기도 했다. 어떤 철학이 사랑과 평화를 잊겠는가.

아프리카 철학은 재밌게도 ‘아프리칸’과 ‘아프리카나’를 나눠서 그 기준이 뭔지 궁금했는데, 발표가 끝나자마자 질문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철학의 출발점을 언제로 잡느냐는 데 있었다. 아프리카는 이슬람 국가도 많지만, 사실상 더 오래된 것은 그리스도교다. 성모의 신성 문제로 쫓겨난 네스토리아 교도가 이디오피아(正敎)와 중국(景敎)으로 도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우분투’였다. 투투와 만델라가 보여준 아프리카인의 ‘진정한 사죄를 받아주는 공동체의 용서’ 같은 것이다.

그 밖에도 필자가 좋아하는 인도의 제헌의원이자 불교사상가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1891∼1956)에 대한 발표가 있어 인도 교수에게 여러 질문을 했는데, 인도의 평등은 불가능하다는 데 마음이 크게 상했다. 그에게 카스트나 바르나나 자티는 한 가지였다. 그는 대승불교(인명학)가 전공인 브라민(브라만)이었다.

거의 매일 총 6건의 기금 강연회도 있었다. 중국은 왕양명의 이름을 붙였는데, 필자와 함께 책을 낸 적이 있는 왕중장 북경대 교수가 6일 강연을 했다. 한국은 다산의 이름으로 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7일에 발표했다. 이 선생님께 부탁드릴 때 필자는 운영위원회에서 기획자에게 한국적인 것을 넣어주십사 당부했는데 전달이 안 된 것 같았다.

필자가 한국철학회 70주년 행사를 치뤘으니 정확히는 올해가 한국철학회 72주년이다. 세계인에게 한국철학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 아비켄나가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로 인식되는 것처럼, 퇴계와 율곡이 주자의 주석가로 인식될 것이다. 2008년 한국대회 때 씨알 철학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우분투만큼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아프리카 철학의 문제처럼 언제부터 한국철학인지, 어디까지 한국철학인지, 오늘의 한국철학이 무엇인지, 서양과 다른, 아니, 중국과 다른 한국철학이 무엇인지(요즘 중국인들이 한국철학도 자기 철학의 일부분이라는 태도를 보이니) 자꾸 묻게 되었다.

이탈리아 철학자인 안토니오 그람시에 전시회가 세계철학자대회에서 열렸다. 사진=정세근

그람시의 깨알 같은 글씨들이다.

그람시의 옥중 수고 글씨가 깨알 같다.

이번 로마 세계철학자대회에서 그람시 전시회가 열렸다.

잊을 뻔했다. 현대 이탈리아 철학자로는 가장 유명한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의 옥중 수고(원본) 전시회가 있었다. 직접 보니 정말로 보통 글씨의 반도 되지 않는 깨알 글씨였다. 그림으로 소개한다. 아무래도 철학은 감옥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전 한국철학회장
Tag#정세근#로마철학자대회#세계철학자대회#육후이#정세근교수#한국철학회#안토니오그람시#인도철학#일본철학#제프리 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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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4-08-14 03:06:07더보기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교는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부처의 무신론적 불교 Monkey신앙. 그리고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은, 헬레니즘의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로마제국에서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앙으로 변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유태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아서, 기독교사회에서 박해를 받아왔습니다.@불교는 인도정복자들이 만든 브라만교의 상당부분을 이어받았고(다시 브라만교에 억압당해 인도는 천 몇백년동안 불교를 억압하며, 브라만을 섬기는 힌두교로 이어짐) , 기독교는, 이스라엘보다,로마제국에서, 헬레니즘과 융합되어, 원죄의식등을 가지는 세계종교로 계승된 측면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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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4-08-14 03:05:05더보기
들로, 그 수가 몇억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전통적 세계종교 유교나, 가톨릭 및 중세시대의 세계종교 이슬람교는 10억 이상의 세계종교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에서 싹튼 다신교 신앙중 황하문명의 유교와, 인더스문명의 브라만교는 지금도 힌두교로 이어지고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과, 이집트 문명 지역은 중세시대의 이슬람교의 무자비한 포교로 이슬람국가로 변했습니다. 에게문명의 헬레니즘은 기독교와 경합하다가, 점차 기독교가 강력한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유교는 최고신이신 하느님[(天):만물의 창조신,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최고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며, 그 밑에 여러 하위신이 있는 다신교신앙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브라만교.힌두교도 다신교 신앙입니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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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4-08-14 03:04:10더보기
중세시대에 서아시아 중심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도는 불교 이전 인더스 문명과 정복민의 신앙에서 형성된 브라만교가 선발종교였음., 그 후에,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브라만(성직자계급) 다음계급인 크샤트리아(정치.군사담당)출신 부처가 창조신 브라만보다 높다는 무신론적 특성을 보였는데, 최고계급인 브라만에 제사용품을 공급하는게 하나의 불만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나 창조신을 부정하여, 누구나 바른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불교 사상이 각광받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같은 크샤트리아 계급인 아소카왕때, 적극적인 포교를 하여, 세계종교로 인정받다가, 나중에 다시 브라만교가 불교를 탄압하면서, 천 몇백년동안 인도에서는 억압받고 있습니다. 불교인구는 일본,태국 및 동남아 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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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4-08-14 03:03:08더보기
이전 인더스 문명과 정복민의 신앙에서 형성된 브라만교가 선발종교였음.,

세계사로 보면,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과 그리스지역의 에게문명이, 인류문명의 시초입니다. 그런데 원래 세계 4대문명과, 에게문명은 다신교신앙이었으며, 半人半獸의 형태를 가진 대상을 신격화하는 선사시대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독교사상은 다신교의 헬레니즘을 계승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후, 인격신 중심의 그리스도교(헤브라이즘)가 중심이 되고, 헬레니즘사상도 오랫동안 같이 병존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에 세계종교로 성립된 세계종교는 동아시아 유교, 로마제국 기독교, 인도 아소카왕때의 왕성한 포교로 인도지역중심 불교가 3대 세계종교였습니다. 이슬람교는 나중에 중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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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4-08-14 03:02:30더보기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사로 보면, 세계 4대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과 그리스지역의 에게문명이, 인류문명의 시초입니다. 그런데 원래 세계 4대문명과, 에게문명은 다신교신앙이었으며, 半人半獸의 형태를 가진 대상을 신격화하는 선사시대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독교사상은 다신교의 헬레니즘을 계승한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후, 인격신 중심의 그리스도교(헤브라이즘)가 중심이 되고, 헬레니즘사상도 오랫동안 같이 병존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에 세계종교로 성립된 세계종교는 동아시아 유교, 로마제국 기독교, 인도 아소카왕때의 왕성한 포교로 인도지역중심 불교가 3대 세계종교였습니다. 이슬람교는 나중에 중세시대에 서아시아 중심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도는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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