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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통 재가수행모임 선도회(禪道會)
기자명 김형규
입력 2004.08.10
“一香 타는 시간 앉지 않으면 不食”“360개 뼈마디와 8만4000여 개 털구멍으로, 온 몸으로 의단을 일으켜 밤낮으로 ‘무(無)’자를 참구하라. 그러다 갑자기 뭉쳐졌던 의심 덩어리가 대 폭발을 일으키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관우 장군의 대도를 빼앗아 손에 넣은 것과 같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 것과 같고, 생사의 기로에 섰을지라도 자유자재를 터득하여,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든지 마음대로 행하여도 해탈무애(解脫無애)한 참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남송 무문 혜개 선사
65년 종달 노사에 의해 시작
수행도 이제는 하나의 상품처럼 고르는 시대가 됐다. 스승이 제자에게 비밀스럽게 전해 주던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전통은 고리타분한 옛 유물이 돼 버렸다. 남방에서 수입돼 각광을 받고 있는 위파사나에서, 쉽고 간편하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무슨 무슨 수행법들. 이제 화두 타파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은 고리타분하고 효용의 가치가 떨어진 수행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 오죽하면 간화선이 한국불교를 망치고 있다는 비난까지 일고 있을까?
서강대 물리학과 박영재 교수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는 선도회(禪道會)는 세간의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화두 타파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간화선을 고집스럽게 이어오고 있는 재가 수행 단체다.
1965년 종달 이회익 노사(1990년 작고)로부터 시작됐으니, 횟수로도 벌써 37년째. 재가 참선 모임으로 적지 않은 세월이다.
긴 역사만큼 수행력이 높은 사람도 많다. ‘무(無)’자 화두를 타파해 거사호와 대자호를 받은 회원이 60여 명에 이르고, 무문관을 끝까지 투과해 인가를 받고 법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 10여명이나 된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간화선 만큼 쉬운 수행도 없을 듯 싶다.
화두 타파는 바로 견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선도회가 일반 선원에서도 만나보기 힘든 수행력이 높은 인물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이유는 스승과 제자간의 사자상승의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입실지도로 불리는 전통 수행법이 그것이다. 입실지도는 제자가 스승과 일대일로 만나 끊임없이 수행력을 점검받는 것.
오늘날 간화선이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것도 이런 입실지도의 전통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수행단체의 경우 1년에도 수 천명이 회원이 거쳐가는데 비해, 선도회가 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졌음에도 1000여 명의 입참자 밖에 받지 않았던 것도 이런 입실지도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전국 6곳에 70여 회원 활동
“만약 화두에 진척이 없다면 이는 제자의 문제가 아니라 스승의 문제입니다. 스승은 제자의 근거와 상황에 맞는 지도로 끊임없이 제자를 분발시키고, 발전을 이뤄내야 합니다. 오늘날 간화선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개별적으로 입실지도를 해 줄 수 있는 눈 밝은 스승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스승만 만난다면 간화선만큼 빨리, 그리고 간결하게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수행도 없을 겁니다.”
선도회의 가풍(家風)은 간단하다. “하루 향 한 대 타는 시간동안 앉지 않으면 한끼를 굶는다.”
이 가풍 아래 서울 목동, 정릉, 서강대, 인천, 대전, 광주 등 6곳에서 70여명의 회원들이 화두 타파에 전념하고 있다.
선도회가 이렇게 뿌리내리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65년 조계사에서 첫 출발을 했지만, 재가 수행자들에 대한 스님들의 편견으로 성약사, 백우정사, 불심원, 원각회 등의 법당을 떠돌았으며, 결국 법당을 구하지 못해 가정집에서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럴수록 회원들은 열심히 분발했다. 전남 광주 모임을 이끌고 있는 조선대 미술교육과 김인경 교수는 1분간의 입실지도를 받기 위해 몇 해 동안 매주 토요일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기도 했다. 그 결과 오늘날 5명의 법사들이 70여 명의 회원들을 지도하는 전국 모임으로 활성화 된 것이다.
선도회 회원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교수, 대학생, 벤처사업가, 예술가, 가톨릭 신부와 수녀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간화선을 통해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고 있다.
“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 하루를 부린다.”
선도회 회원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이렇게 말한다. 수행이 쌓이면서 일의 경중을 헤아리는 힘이 생기고, 한가지 일에 잡념이 없이 몰두할 수 있게 된 것. 그래서 매일 매일이 즐겁다. 또 날이 갈수록 하루가 단조롭고 규칙적으로 변하지만, 항상 오는 오늘이 아니라 언제나 활기와 생기가 넘친 오늘이다. 선도회에 수 십년을 함께 수행해 온 도반이 어느 모임보다 많은 것도 이런 수행의 효과 때문이다.
남은 목표는 전문 재가 선원 건립
선도회는 작지만 알찬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일반인도 누구나 쉽게 간화선을 할 수 있도록 전문 재가 선원을 건립하는 일과 종달 이회익 노사의 10여 권이 넘는 저작들을 모아 새롭게 발간하는 일이 그것이다.
좌일주칠(坐一走七). 원오극근 선사의『원오불과선사어록』에서 하신 말씀이다. 하루 2시간 좌선하면 나머지 하루 일과를 어떤 잡념 없이 온전하게 뛰어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경지는 선도회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자신의 삶 속에 걸어 들어올 것이다.
선도회 지도법사 박영재 교수
“간화선은 바쁜 현대인에 적합한 수행”
“간화선은 일상생활과 수행을 함께 해야 하는 재가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입니다. 간결하고 명징할 뿐만 아니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지요. 간화선이 힘들고 어렵다는 주장은 그래서 절대 옳지가 않아요. ”
1990년 초대 지도법사인 종달 이회익 노사의 뒤를 이어받아 선도회를 이끌고 있는 서강대 물리학과 박영재 교수〈47〉는 “스승만 제대로 만나면 간화선 만큼 쉬운 수행이 없다”며 “한가지 일에 집중해야 하는 전문직 종사자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또 “향이 한 대 타는 시간동안 어떤 잡념도 없이 호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철저한 수식관을 통해 힘이 길러졌을 때 화두를 받아야 온전하게 몰두할 수 있다”며 “화두를 통해 길러진 집중력은 번잡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달라이라마의 법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 수행을 시작한다고 해도 달라이라마와 같은 경지에 오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달라이라마가 4살부터 치열한 수행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지요. 그러나 간화선은 늦게 시작했다 하더라도 단 시일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다양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두, 즉 공안이지요”
“남송 무문 혜개 스님의 [무문관]을 소위 경전으로 수행을 하고 있다”는 박 교수는 “간화선이 불교 수행의 골수만을 모아 새롭게 제창한 가장 발전된 수행임에도 불구하고 남방불교국가에서 옛 수행법들을 다시 역수입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