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기 어려운 시대… ‘K-철학’의 위상 변화를 보다
김선욱
승인 2024.08.12
‘2024 세계철학대회’ 로마 현장을 가다_①
이번 대회에 참여한 한국의 학자·학생들은 50여 명에 달했다.
그들은 로마까지 먼 곳으로 와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 시대가 철학하기를 어렵게 만들지만,
철학의 중요성은 날로 더해간다. 한국의 철학자들은
이런 시대적 요구를 감당하기 위해 이처럼 열심이다.
1900년에 제1차 세계철학대회가 아테네에서 개최된 이후 올해 제25차 대회가 로마에서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열렸다. 세계철학대회는 대학이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개최한다. 2008년에 22차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고, 필자는 당시 사무총장으로 복무를 했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다.
대회의 장면 장면에서 과거의 일들과 오버랩되는 경험도 했다. 특히 곳곳에서 수고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가슴에 다가왔다. 22차 대회에서도 학생들로 이루어진 자원봉사단이 큰 역할을 해 주었다. 그리고 폐막식에 우리 자원봉사 학생들이 모두 무대로 나와 파란색 대회복을 입고 “대학생의 노래(가우데 아무스)”를 합창했던 것은 참석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원래 25차 대회는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되기로 했는데 무슨 사정인지 대회를 포기하는 바람에 급히 로마에 있는 라 사피엔자 대학에서 개최하게 됐다. 로마 유적지들이 주요 매력점이기는 하지만 더위와 비용 문제가 참가자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현장에 와 보니 130여 개국에서 3천여 명의 참석자들이 와서 대회는 성황리에 개최됐다.
김선욱 한국철학회 회장(숭실대 철학과 교수)가 단상에 서 있는 모습이다. 지난 1일부터 8일 동안 제25차 세계철학자 대회가 로마에서 열렸다. 사진=김선욱
카라칼라 대욕장에서 열린 개막식
첫날 개막식 행사는 놀랍게도 카라칼라 대욕장에서 진행됐다. 그곳은 로마 중심의 목욕탕 유적지였다. 낮에는 비용을 받고 구석구석 투어를 하고, 저녁에는 중앙에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곳이다. 개막식에는 로마 시장과 대회를 개최한 라 사피엔자 대학 총장 등의 연설, 그리고 국제철학연맹의 회장인 루카 스카란티노 이탈리아 밀라노 IULM(International University of Languages and Media) 대학 교수의 연설이 있었다. 영어로 연설을 한 스카란티노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이탈리아어로 연설을 했다. 로마 시장의 연설은 정치 철학적 언설로 구성돼 있었다. 정치의 나라의 정치가 다운 연설이었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언어의 품격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연설 후에 기념행사로 푸치니의 「토스카」의 명장면을 남녀 한 명씩 유명 가수가 출연해 연주했다. 개막식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이곳 저녁 시간에 실제로 공연되는 내용의 하이라이트를 연주했다.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의 탁월한 연주를 들으면서 이탈리아 예술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참가자들의 소통을 위해 만든 단톡방에서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철학)가 “역시 이탈리아는 제국”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제국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국가이니, 결국 개막식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무대였다는 말로 들렸다. 서울 대회에서 필자는 영산회상 등의 국악 연주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결정권을 가진 우리의 원로들은 그런 것은 외국인들에게 지루함만을 남겨줄 것이라며 반대해서 그 아이디어는 무산됐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런 자신감을 가질 때가 된 것 같다. 제국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날 한국철학회 관계자 50명이 참여하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위 사진은 한국철학회 특별 세션에 참가한 한국인 학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김선욱
한국 특별 세션, 조선 시대 철학도 다뤄
지난 6일에는 종일 한국철학회의 특별 세션을 가졌다. 한국과 관련된 여러 철학적 주제에 대해 영어로 발표할 논문을 공모했고, 9개의 논문발표가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연구자가 포함된 공동발표가 하나 있었으니 총 10명의 발표자의 발표가 있었던 셈이다. 영어로 발표가 이루어져서 외국인들도 더러 참여해 관심을 보이고 질문도 많이 나왔다. 동서양 철학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가 대부분이었고, 또 조선 시대 철학도 다뤄줘서 국내외 참석자 모두가 흥미를 가지고 들을 수 있는 주제였다. 같은 내용으로 한국에서 다시 철학회를 열어 발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국제철학연맹의 회장 루카 스카란티노 회장이 축사를 해 주었는데, 한국철학회의 특별 세션에 대해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다른 나라의 철학회도 특별 세션을 많이 열었는데, 대부분 자기들 언어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처럼 열린 방식으로 학회를 열어줘 세계철학대회의 정신에 부합하여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8월 3일에는 국제철학연맹 총회가 열렸다. 국제철학연맹에는 약 150여 나라의 철학회가 참여하고 있고, 기관으로는 200여 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철학회가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총회에서는 회장단 선정, 집행위원 선정, 차기 대회 장소 선정 등 주요 안건이 다루어진다. 한국철학회는 2개의 표결권을 가지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는 합의 추대된 교수가 회장직을 끝까지 고사하였기 때문에 회장과 그와 협력해 일하기로 한 사무총장의 선출에 실패했다. 향후 3개월 이내 회장 선출을 위한 투표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2028년 세계철학대회는 도쿄에서 개최
차기 대회 장소로는 세 곳이 경합을 벌였다. 에티오피아 철학회, 아랍에미리트의 하우스오브필로소피, 그리고 일본의 철학회연합에서 각각 유치 설명회를 가졌다.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는데, 1차 표결에서 일본 철학회연합에서 과반을 득표해, 2028년 세계철학대회는 도쿄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됐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철학대회가 열렸던 곳은 2008년 서울이었고, 이후 2018년에 베이징에서 열렸으니, 10년 주기로 세 번째 아시아 대회가 열린 셈이다.
이 결정에 대해 루카 회장은 한국철학회 모임에 와서 흥미 있는 일화를 전해 주었다. 2008년 대회를 2003년에 이스탄불 대회에서 결정할 때 서울에서 유치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정당한지 논의됐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철학의 발전에 대한 서구인들의 무지와 편견이 반영된 토론이었단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 있던 당시 다수의 집행위원의 지지로 서울에서의 대회 유치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철학계의 영향력과 활동력으로 말하자면 동아시아 3국에서 한국이 가장 앞섰고, 당시 그 선구적 역할을 해내었던 것이다. 일본철학회연합의 대표인 도쿄대학의 노토미 교수는 과거 서울 대회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서 한국철학회에 많은 도움을 요청해 왔다. 한국철학회는 일차로 당시의 활동을 담은 백서를 보내주기로 했다.
이 대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집행위원회의 구성인데, 총 39명으로 구성된 위원은 회원학회 대표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며,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차기 대회와 국제철학회의 운영에 관한 주요 결정들을 하게 된다. 그동안 한국철학회에서는 1명의 위원을 할당받아 서유석 호원대 명예교수가 지난 회기 동안 수고를 했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철학회의 추천을 받은 필자가 전체 3위의 다득표를 해서 추가로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이런 다득표가 가능했던 원인은 잘 모르겠다. 다만, 과거 서울대회의 사무총장으로서의 경력과 K-철학의 위상 변화가 그 배후에서 작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 대회에 모두 109개국에서 57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제출된 논문의 절반만 발표가 허용되어 총 4천309편이 발표되었다. 학생 발표도 997건이 있었다. 한국에서온 참가자는 50명을 넘었다. 시대가 철학하기를 어렵게 만들지만, 철학이 중요성은 거대한 변환의 시대에 날로 커져간다. 한국의 철학자들은 시대의 요구를 감당하기 위해 이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김선욱
한국철학회 회장·숭실대 철학과 교수
Tag#김선욱#한국철학회#김선욱교수#숭실
카라칼라 대욕장에서 열린 개막식
첫날 개막식 행사는 놀랍게도 카라칼라 대욕장에서 진행됐다. 그곳은 로마 중심의 목욕탕 유적지였다. 낮에는 비용을 받고 구석구석 투어를 하고, 저녁에는 중앙에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곳이다. 개막식에는 로마 시장과 대회를 개최한 라 사피엔자 대학 총장 등의 연설, 그리고 국제철학연맹의 회장인 루카 스카란티노 이탈리아 밀라노 IULM(International University of Languages and Media) 대학 교수의 연설이 있었다. 영어로 연설을 한 스카란티노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이탈리아어로 연설을 했다. 로마 시장의 연설은 정치 철학적 언설로 구성돼 있었다. 정치의 나라의 정치가 다운 연설이었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언어의 품격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연설 후에 기념행사로 푸치니의 「토스카」의 명장면을 남녀 한 명씩 유명 가수가 출연해 연주했다. 개막식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이곳 저녁 시간에 실제로 공연되는 내용의 하이라이트를 연주했다.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의 탁월한 연주를 들으면서 이탈리아 예술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참가자들의 소통을 위해 만든 단톡방에서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철학)가 “역시 이탈리아는 제국”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제국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국가이니, 결국 개막식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무대였다는 말로 들렸다. 서울 대회에서 필자는 영산회상 등의 국악 연주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결정권을 가진 우리의 원로들은 그런 것은 외국인들에게 지루함만을 남겨줄 것이라며 반대해서 그 아이디어는 무산됐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런 자신감을 가질 때가 된 것 같다. 제국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날 한국철학회 관계자 50명이 참여하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위 사진은 한국철학회 특별 세션에 참가한 한국인 학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김선욱
한국 특별 세션, 조선 시대 철학도 다뤄
지난 6일에는 종일 한국철학회의 특별 세션을 가졌다. 한국과 관련된 여러 철학적 주제에 대해 영어로 발표할 논문을 공모했고, 9개의 논문발표가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연구자가 포함된 공동발표가 하나 있었으니 총 10명의 발표자의 발표가 있었던 셈이다. 영어로 발표가 이루어져서 외국인들도 더러 참여해 관심을 보이고 질문도 많이 나왔다. 동서양 철학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가 대부분이었고, 또 조선 시대 철학도 다뤄줘서 국내외 참석자 모두가 흥미를 가지고 들을 수 있는 주제였다. 같은 내용으로 한국에서 다시 철학회를 열어 발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국제철학연맹의 회장 루카 스카란티노 회장이 축사를 해 주었는데, 한국철학회의 특별 세션에 대해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다른 나라의 철학회도 특별 세션을 많이 열었는데, 대부분 자기들 언어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처럼 열린 방식으로 학회를 열어줘 세계철학대회의 정신에 부합하여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8월 3일에는 국제철학연맹 총회가 열렸다. 국제철학연맹에는 약 150여 나라의 철학회가 참여하고 있고, 기관으로는 200여 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철학회가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총회에서는 회장단 선정, 집행위원 선정, 차기 대회 장소 선정 등 주요 안건이 다루어진다. 한국철학회는 2개의 표결권을 가지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는 합의 추대된 교수가 회장직을 끝까지 고사하였기 때문에 회장과 그와 협력해 일하기로 한 사무총장의 선출에 실패했다. 향후 3개월 이내 회장 선출을 위한 투표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2028년 세계철학대회는 도쿄에서 개최
차기 대회 장소로는 세 곳이 경합을 벌였다. 에티오피아 철학회, 아랍에미리트의 하우스오브필로소피, 그리고 일본의 철학회연합에서 각각 유치 설명회를 가졌다.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는데, 1차 표결에서 일본 철학회연합에서 과반을 득표해, 2028년 세계철학대회는 도쿄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됐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철학대회가 열렸던 곳은 2008년 서울이었고, 이후 2018년에 베이징에서 열렸으니, 10년 주기로 세 번째 아시아 대회가 열린 셈이다.
이 결정에 대해 루카 회장은 한국철학회 모임에 와서 흥미 있는 일화를 전해 주었다. 2008년 대회를 2003년에 이스탄불 대회에서 결정할 때 서울에서 유치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정당한지 논의됐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철학의 발전에 대한 서구인들의 무지와 편견이 반영된 토론이었단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 있던 당시 다수의 집행위원의 지지로 서울에서의 대회 유치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철학계의 영향력과 활동력으로 말하자면 동아시아 3국에서 한국이 가장 앞섰고, 당시 그 선구적 역할을 해내었던 것이다. 일본철학회연합의 대표인 도쿄대학의 노토미 교수는 과거 서울 대회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서 한국철학회에 많은 도움을 요청해 왔다. 한국철학회는 일차로 당시의 활동을 담은 백서를 보내주기로 했다.
이 대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집행위원회의 구성인데, 총 39명으로 구성된 위원은 회원학회 대표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며,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차기 대회와 국제철학회의 운영에 관한 주요 결정들을 하게 된다. 그동안 한국철학회에서는 1명의 위원을 할당받아 서유석 호원대 명예교수가 지난 회기 동안 수고를 했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철학회의 추천을 받은 필자가 전체 3위의 다득표를 해서 추가로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이런 다득표가 가능했던 원인은 잘 모르겠다. 다만, 과거 서울대회의 사무총장으로서의 경력과 K-철학의 위상 변화가 그 배후에서 작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 대회에 모두 109개국에서 57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제출된 논문의 절반만 발표가 허용되어 총 4천309편이 발표되었다. 학생 발표도 997건이 있었다. 한국에서온 참가자는 50명을 넘었다. 시대가 철학하기를 어렵게 만들지만, 철학이 중요성은 거대한 변환의 시대에 날로 커져간다. 한국의 철학자들은 시대의 요구를 감당하기 위해 이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김선욱
한국철학회 회장·숭실대 철학과 교수
Tag#김선욱#한국철학회#김선욱교수#숭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