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6

탐진치 [ 貪瞋癡 ]

 






원불교대사전

탐진치 [ 貪瞋癡 ]

욕심ㆍ성냄ㆍ어리석음. 오욕 경계에서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부딪쳐 미워하고 화내며, 사리(事理)를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탐욕심(貪欲心)ㆍ진에심(瞋恚心)ㆍ우치심(愚癡心)을 말한다. 이러한 마음은 지혜를 어둡게 하고 악의 근원이 됨으로 삼독심이라고도 한다. 《정전》 법마상전급십계문에 ‘탐심을 내지말며’, ‘진심을 내지 말며’, ‘치심을 내지 말라’고 했다. 법마상전급은 마음속에서 ‘법(法)과 마(魔)를 일일이 분석하고 경계 중에서 사심을 제거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않는 공부’의 단계로 ‘세밀한 일이라도 반수 이상 법의 승(勝)을 얻는 사람의 급이다’(《정전》 법위등급).

공부의 세밀한 단계에서 자성을 반조하여 마음속의 마를 항복받아가는 공부이다. 자유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자에게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어두운 마음으로 이를 항복받는 공부가 법강항마위에 오르는 관문이 된다.

참조어
[네이버 지식백과] 탐진치 [貪瞋癡] (원불교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삼독
[ 三毒 ]

유형
개념용어
목차
정의개설내용
정의
불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

개설
탐욕(貪慾)·진에(瞋恚)·우치(愚癡)를 의미한다. 줄여서 탐·진·치라고도 하며, 이 세 가지 번뇌가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이라고 한다.

내용
탐욕은 탐애(貪愛)라고도 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에 욕심을 내어 집착하는 것, 자기의 뜻에 맞는 일에 집착하는 것, 정도를 넘어서서 욕심을 부리는 것, 명성과 이익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5욕(五慾)이라고 하여 식욕(食慾)·색욕(色慾)·재욕(財慾)·명예욕·수면욕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구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 아니라 그것이 정도를 지나칠 때 탐욕이라고 한다.

한편, 여자가 가지는 욕망으로는 색욕·형모욕(形貌慾: 얼굴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위의욕(威儀慾: 옷치장에 관한 욕망)·자태욕(姿態慾: 아름다운 몸매에 관한 욕망)·언어욕(言語慾: 아름다운 음성에 대한 욕망)·세활욕(細滑慾: 피부의 윤기에 대한 욕망) 등 6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진에는 분노하는 것으로서, 산목숨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에 속에는 분노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진에는 수행을 하는 데 가장 큰 허물이 되는 것이며, 다스리기도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우치는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마음으로서, 이로 인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치 때문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삼독은 모두 ‘나[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 스스로에 미혹한 것이 우치이고, 그 우치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으면 탐욕을 일으키고, ‘나’에게 맞지 않으면 진에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독은 중생을 생사의 윤회 속으로 빠뜨리는 근원이 되고, 중생의 고통을 만드는 원인으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삼독을 제거하면 곧 고(苦)를 떠나서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삼독을 없애기 위한 수행으로는 바른 견해(正見)·바른 생각(正思惟)·바른 말(正語)·바른 행동(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인식(正念)·바른 정신(正定)의 팔정도(八正道: 여덟 가지의 올바른 수행법)와 계(戒)·정(定)·혜(慧)의 삼학(三學)을 들고 있다. 즉, 계로써 탐욕을 다스리고, 정으로써 진에를 다스리며, 혜로써 어리석음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불교학개론(佛敎學槪論)』(김동화, 보련각, 1980)
[네이버 지식백과] 삼독 [三毒]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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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다스리는 방법
성종(性宗) 2011-01-09 09:13:44, 조회 : 3,303
탐진치


- 탐진치란 수행자가 수행함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욕심, 분노, 어리석음을 말한다.  
저는 지금까지 욕심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욕심이란 노력은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것을 탐내면 그것이 욕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노력한 것에 대한 댓가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력에 대한 평가 기준이 뭘까 궁금합니다.

탐진치(貪瞋癡)의 삼독심(三毒心)을 다스리는 방법


1.삼독심의 번뇌를 없애려면

불교에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께 귀의한 스님들을 세 가지 보물,  즉 삼보(三寶)라고 합니다.
반면에 탐욕[貪], 분노[瞋], 어리석은 판단[癡]을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는 독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독이란 그 양이 적다고 하더라도 점차 온 몸에 퍼져 마침내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의 몸에 독이 들어왔을 때 그것을 즉시 제거하지 않으면 독으로 인한 복통, 두통 등에 시달리고 때를 놓치면 제아무리 좋은 약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를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삼독심의 가르침을 통하여 번뇌를 제거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정진하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탐(탐욕)이란?
말 그대로 지나친 욕심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더 좋은것,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나아가서 노력에 대한 정당한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고 편법으로라도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다치게까지 합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본능적인 욕망은 곧 생명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이성에 대한 욕구도 충족되어야 하고, 재물과 명예도 또한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일지라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램,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도와주고자 하는 바램, 국가와 세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바램, 부처님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바램, 이러한 마음 또한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번뇌의 씨앗일 것입니다.

좋은 바램 속에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거나 반드시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 또한 탐애라고 할 것입니다.

진(분노)이란?
성내는 마음입니다. 성내는 마음은 타인과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마음입니다. 성내는 마음은 개인 간에는 싸움을, 개인과 집단 간에는 따똘림을, 집단과 집단 간에는 차별을, 국가 간에는 전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이 성내는 마음은 분명한 실체가 없습니다. 분노란 삼독 중에 가장 공격적인 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어리석은 판단)란?
객관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마음으로, 사람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아가서 어리석은 판단은 오해와 곡해를 불러오고 그로인해 성내는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어리석은 판단은 선입견, 무지, 오해, 이기심 등에서 비롯되어 항시 우리의 마음을 번민하게 만듭니다. 탐욕을 본능적인 독, 분노는 감성적인 독이라 한다면, 어리석은 판단은 이성적인 독이라고 할 것입니다.

2. 삼독을 관찰하라

번뇌를 일으키는 세 가지 독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항상 함께 일어납니다. 가족에게 화가 날 때에는 사랑의 지나침이 있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화가 날 때에는 미움의 지나침이 있기 마련입니다.

화는 이성적 판단 능력을 저하시켜 어리석은 판단으로 이끌기 쉽고, 표면적으로는 성내는 마음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자신의 지나친 욕심과 잘못된 판단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삼독심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독이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를 차분히 관찰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성내는 마음이 앞설 때 타인에 대한 어떠한 언행도 삼가고 조용한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말과 행동 속에 성냄이 담겨 있으면 상대에게 또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화나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나의 판단에는 잘못이 없었는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 거기에 지나친 욕심은 없었는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하고 삼독을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고, 화를 내고, 그로인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을 다스려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보다 앞서 애초부터 욕심을 줄이고, 화를 적게 내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바른 수행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 속에 잠복해 있는 삼독이 온 몸에 퍼져 매사에 지나친 욕심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은 판단을 일삼기 전에 근원적으로 뿌리를 뽑는 치료를 의미합니다. 삼독을 다스리는 바른 수행으로 삼학(三學)을 들 수 있습니다.

삼학이란?
계학(戒學)과 정학(定學)과 혜학(慧學)을 일컫는 것으로 예불문 첫머리의 오분향례에 나오는 아주 친숙한 용어들입니다. 계란 계율을 지키는 것 정이란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것, 혜란 참된 지헤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삼독을 이 삼학에 대비시켜 본다면 본능적인 욕망의 지나침은 계율을 지키는 것에 의해서, 감성적 성냄은 흔들리지 않는 바른 마음가짐을 닦는 것에 의해서, 그리고 어리석은 판단은 참된 지혜를 닦는 것에 의해서, 삼독의 근본적인 독소를 마음으로부터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율이란?
우리의 말과 행동을 제약하는 금기 사항이 아니라 마음의 집을 본능적 과욕으로부터 지켜주는 울타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재가신도(在家信徒)는 다섯가지 계율을 지켜아 합니다.

첫 째, 살생을 하지 말라
둘 째,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셋 째, 음행을 하지 말라
넷 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술을 마시지 말라

마음에 흔들림이 없음이란 남들의 칭찬과 비방에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항상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또한 삼보에 대한 조금의 의심도 없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데 있어서 어떤 주저함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실체 없는 분노를 사전에 방지할 수가 있습니다.


3. 날마다 자기를 살펴보자

참된 지혜란 부처님의 지혜를 일컫는 것으로 반야(般若)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세상을 사는 분별의 지혜를 넘어선 깨달음의 이치인 분별이 없는 지혜를 말합니다. 참된 지혜를 대자대비의 지혜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우리는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듯이 다른 사람에게 관대합니다.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보살의 마음가짐과 같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대자대비한 바른 지혜만이 궁극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삼독을 없애는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이야기하셨습니다

팔정도란 번뇌를 제거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여덟가지 적극적인 실천을 말합니다. 거짓말이나 근거 없는 남에 대한 비방을 하지 않는 바른 언행(正語)과 살생과 음행 등을 하지 않는 바른 생활(正行)은 우리의 지나친 욕심을 점차적으로 줄여 줄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확실히 믿고 따르는 바른 마음가짐(正念), 부처님의 진리를 부지런히 닦는 바른 수행(正精進) 그리고 남들의 비방과 창찬에도 흔들림이 없는 바른 마음자세(正定)는 우리의 마음을 분노, 시기, 질투로부터 지켜 줄 것입니다. 나아가서 오만과 편견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바른 견해(正見)와 바른 생각(正思)은 어리석은 판단 대신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지혜, 즉 반야의 지혜로 우리의 마음을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번뇌로 물들이는 삼독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마음 현상입니다. 또한 각각의 삼독들 역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삼독을 다스리는 방법인 삼학과 팔정도도 독립적으로 하나하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독으로 인해 생긴 번뇌도, 그것을 다스리는 삼학과 팔정도도 어느 것 하나 개별적으로 생성 소멸하는 것은 없습니다.

마음 안팎의 모든 것들이 서로 의지하고 관련을 맺으면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울 때 우리의 마음은 전체와 객관을 잃어버리고 나침반을 잃어버려 표류하는 배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처럼 자신의 과욕과 분노 그리고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한 어리석은 판단 속에서 평온과 고요를 잃어버립니다.

매일 몇 분만이라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스스로를 조용히 바라보고 그 마음의 현상을 원인과 결과로 나누어 보는 자기관조(自己觀照)의 시간을 가지는 생활 습관은 삼독에 찌든 우리의 마음을 좀더 부처님의 마음에 가까이 인도해주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위 내용은 인터넷 상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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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 개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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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itechair ・ 2016. 3. 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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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다팡하』(해제)

삼독[三毒]

삼독이란 탐욕(貪慾, lobha)과 진에(瞋恚, dosa)와 우치(愚癡, moha)를 가리킨다.
​탐욕은 본능적 욕구를 포함해서 탐내어 구하는 것을 말하고,
​진에는 뜻에 맞지 않을 때 일어나는 증오심이나 노여움이며, 마지막으로
우치는 탐욕과 진에에 가려 사리분별에 어두운 것을 말한다.

​우치는 모든 번뇌의 원천인 무명(avidya), 혹은 근본무명과는 구별된다.
​삼독과 근본무명은 상호작용하면서 강화되므로 순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탐진치로 통칭된다.

삼독은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전생의 괴로움을 받게 하는 가장 큰 적이지만, 이러한 번뇌가 생겨나게 된 근본 원인은 결국 자아에 대한 도착된 견해[我見 혹은 我相]와 그 사견에 대한 집착이다.
​탐진치로 대표되는 번뇌는 아상을 중심으로 생성, 발전하기 때문이다.
​무아에 대한 통찰은 모든 번뇌의 서식처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수행의 근본이며,
​불교가 지혜를 중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원문>
"모든 유위법의 평정(平靜)이며, 모든 번뇌를 버리는 것이며, 갈애의 지멸(止滅)이 열반이다."(SN Ⅰ, 136)

"오, 비구들이여, 무위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탐욕의 소멸이며, 진에(瞋恚)의 소멸이며, 우치(愚癡)의 지멸이다. ···"(SN Ⅳ, 359)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인 욕망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존재하고자 하는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어리석음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워졌을 때, '자유로워졌다'라는 앎이 있고, '윤회는 끝났다. 청정한 범행은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해 마쳤고, 이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라고 그는 안다."(MN Ⅰ, 279)

[네이버 지식백과] 삼독 [三毒] (『밀린다팡하』 (해제), 2004.,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1) 삼독
말 그대로 세 가지 독을 말하는데, 삼독은 불교에서 중생의 선한 마음을 해치는 근본적인 3가지 번뇌를 독에 비유한 것이다.
삼독은 삼불선근(三不善根)·삼구(三垢)·삼화(三火)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삼독은 세 가지 즉 - 탐욕·진에(瞋 : 분노·노여움)·우치(愚癡) - 로서 흔히 '탐·진·치'라 한다.
​탐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
​진은 탐의 이면에 있는 것으로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감· 혐오· 불쾌 등의 감정을 말한다.
탐과 진이 감정적인 측면에서 발생한 번뇌라면 치는 지적인 번뇌라고 할 수 있다.

​치는 사제(四諦)나 연기(緣起) 등 불교에 대한 무지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무명(無明)과 관련이 있다.
​세상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세상의 참 모습을 바로 볼 수 없으며, 그것은 고통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보았는데, 이 삼독은 인간의 청정함을 해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삼독은 인간의 숱한 번뇌를 압축한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이 삼독에 갇혀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보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탐, 진, 치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탐욕심을 버려서 청정심을 기르고, 성낸 마음을 없애 밝은 마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청정한 마음, 평화롭고 자비한 마음, 지혜롭고 밝은 마음이 우리의 본래의 마음임을 알고 삼독을 극복하여야 한다.

2) 삼학

삼학은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고자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3가지 수행 방법을 말한다. 삼학을 삼승학(三勝學)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의 세 가지가 그것이다. 이를 줄여서 계·정·혜라고도 한다. 계·정·혜는 수행의 순서를 정해놓은 것이기도 한데, 계는 의지, 정은 감정, 혜는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 수행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계, 정, 혜가 융합하여 이상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루어서 완전한 인격이 형성된다.
계는 악을 행하지 않고 참선을 하는 계율(戒律)을 말하고, 정은 마음을 차분히 하여 정신을 맑게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혜는 번뇌를 없애고 진리를 얻어가는 지혜를 가리킨다.
삼학은 불교 수행의 방법을 제시한다. 점진적으로 얕은 분야에서 시작을 해서 깊은 분야로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경험과 지식 또는 말로 행해지는 나쁜 행위를 방지하고 덕을 행하는 계학과, 선정을 수행하여 마음의 흔들림 없는 고요하고 평안한 경지에 이르게 하는 정학, 마음속 고통 없이 평온함에서 진리를 얻는 혜학이 그것이다. 계·정·혜로 불리는 삼학은 서로 보완적으로 불교의 수행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며 진리를 얻는 과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독, 삼학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청서출판)

출처 시공 불교사전 | 삼독




번뇌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나타내는 불교 심리용어.

불교에서는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있다고 보아 이를 3가지 독(三毒)이라 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인식기관인 눈·귀·코·혀·몸·뜻의 6가지 문을 통해 항상 흐르는 번뇌에 의해 마음은 산란되고 갈등을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불교 경전에서는 이 번뇌의 다른 표현으로 미혹함·잠듦·물듦·흐름·얽매임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탐욕·성냄·어리석음 등의 근본번뇌와 이에 따라 일어나는 게으름·불신·경망스러움·교만 등 20가지 정도의 수번뇌가 있으며, 결국 불교의 이상은 이러한 번뇌를 극복함으로써 평온한 열반의 경지에 다다른다고 보았다.

이러한 번뇌 종류가 수없이 많음을 팔만사천번뇌라 하며 6가지 감각을 중심으로 삼세에 걸친 3가지 선택지로서 계산한 108번뇌는 보다 철학적으로 정리된 번뇌로서 알려져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라 하여 번뇌의 성품이 비었음을 깨우치는 것이 번뇌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의 첩경임을 설명하며, 수많은 번뇌 가운데서 깨우치는 대승적 해결로서 초기 불교에서의 번뇌에 대한 여러 가지 분류와 이의 세세한 대치보다는 마음의 걸림 없음을 통해 보살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네이버 지식백과] 번뇌 [煩惱] (두산백과)


삼독

불교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
개설 탐욕(貪慾)·진에(瞋恚)·우치(愚癡)를 의미한다.
줄여서 탐·진·치라고도 하며, 이 세 가지 번뇌가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이라고 한다.

내용  탐욕은 탐애(貪愛)라고도 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에 욕심을 내어 집착하는 것,자기의 뜻에 맞는 일에 집착하는 것, 정도를 넘어서서 욕심을 부리는 것, 명성과 이익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5욕(五慾)이라고 하여 식욕(食慾)·색욕(色慾)·재욕(財慾)·명예욕·수면욕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구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 아니라 그것이 정도를 지나칠 때 탐욕이라고 한다.
한편, 여자가 가지는 욕망으로는 색욕·형모욕(形貌慾: 얼굴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위의욕(威儀慾: 옷치장에 관한 욕망)·자태욕(姿態慾: 아름다운 몸매에 관한 욕망)·언어욕(言語慾: 아름다운 음성에 대한 욕망)·세활욕(細滑慾: 피부의 윤기에 대한 욕망) 등 6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진에는 분노하는 것으로서, 산목숨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에 속에는 분노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진에는 수행을 하는 데 가장 큰 허물이 되는 것이며, 다스리기도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우치는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마음으로서,
이로 인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치 때문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삼독은 모두 ‘나[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 스스로에 미혹한 것이 우치이고, 그 우치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으면 탐욕을 일으키고, ‘나’에게 맞지 않으면 진에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독은 중생을 생사의 윤회 속으로 빠뜨리는 근원이 되고, 중생의 고통을 만드는 원인으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삼독을 제거하면 곧 고(苦)를 떠나서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삼독을 없애기 위한 수행으로는
바른 견해(正見)·바른 생각(正思惟)·바른 말(正語)·바른 행동(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인식(正念)·바른 정신(正定)의 팔정도(八正道: 여덟 가지의 올바른 수행법)와 계(戒)·정(定)·혜(慧)의 삼학(三學)을 들고 있다.
즉, 계로써 탐욕을 다스리고, 정으로써 진에를 다스리며, 혜로써 어리석음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독 [三毒]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탐진치 개념정리|작성자 white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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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 삼독 행복 방해하는 근본 번뇌
 성운 스님(삼천사 회주, 동국대 석좌교수) 승인 2018.08.26 12:06 댓글 0기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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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물아일체. 그림=조향숙
선정-물아일체. 그림=조향숙
우리 중생은 번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불교의 8만 4천 법문은 코끼리가 함정에서 빠져 나오듯 번뇌의 지옥에서 벗어나 행복에 이르는 이고득락의 가르침입니다.

마음가짐 중에서 가장 나쁜 3가지 번뇌를 ‘독이 있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근본적인 번뇌로서 탐욕(貪慾)과 진에(瞋? 성냄)와 우치(愚癡 어리석음)를 말합니다. 줄여서 탐진치인데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같아서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삼독
‘아상과 집착’에서 비롯
삼법인과 계정혜로 제거
“자아 죽어야 무아 된다”

탐진치는 악의 근원으로 업의 덩어리이며 파괴적인 마음가짐으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합니다.

일체의 번뇌를 압축한 삼독은 ‘나’에서 나옵니다. 자아에 대한 아상과 집착에서 생성되는 고통의 원인입니다.

*탐욕은 자기가 욕망하는 것에 욕심을 내어 집착하는 것입니다. 탐애라고도 합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도

사람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

욕망에는 짧은 쾌락에

많은 고통이 따른다.”

‘99개를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100개를 채운다’는 속담처럼 우리 중생은 욕망의 대상을 갖고 끊임없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탐욕은 계속됩니다.

탐의 반대는 계(계율)입니다. 계정혜 삼학의 계학(戒學)에 속하는 8정도의 정어, 정업, 정명과 6바라밀의 지계와 보시 수행으로 탐욕을 다스려 무탐으로 갑니다.

*성냄·분노(진에)는 탐욕의 이면입니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분노하고, 시기 질투하는 것은 집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진에의 반대는 선정(禪定)입니다. 정학(定學)에 해당하는 8정도의 정정진, 정념, 정정삼매와 육바라밀의 인욕과 정진, 선정으로 분노를 극복합니다.

*어리석음(우치)은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볼 수 없는 어두운 마음입니다. 모든 번뇌의 근원으로 탐심과 진심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합니다. 치의 반대는 혜(지혜)입니다. 혜학(慧學)에 해당하는 8정도의 정견과 정사유, 지혜바라밀로 치심을 다스립니다.

*탐진치를 제거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집착을 없애 지혜로워 지는 것입니다. 무상과 무아에 대한 통찰과 계정혜 삼학은 탐진치 삼독을 여의고 열반에 이르는 수행의 근본입니다.

나라고 하는 아집 즉 자아(自我)가 죽어야 무아(無我)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 방하착(放下着)합시다. 내려놓고 비우면 걸릴 탐진치가 없습니다. 비움으로 되었을 때 사물의 판단을 정확히 할 수 있는 통찰지가 나옵니다. 거기에 세상의 행복이 있습니다.

탐진치의 불꽃이 꺼진 열반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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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 스님(삼천사 회주, 동국대 석좌교수)
성운 스님(삼천사 회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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