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3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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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youngs1357/90154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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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소리-에서 출판한 [보리수 잎]입니다
그 서른 네번째, 마음챙김과 알아차림中에서 옮겨 옵니다
(全文이 아님을 알립니다) ^*^
-상략우리의 행동들은 습관적인 것이 되면 생각 없이 그것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자동적' 내지는 '본능적'인 것이 된다
머리를 긁거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이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무의식적 행동'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것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무의식적 행동'이란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은 '행동'은 '의도'라고 규정지으신다
그리고 의식 없이는 어떤 의도도 있을 수없다.
따라서
무의식적 행동이라면 행동이 전혀 없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단순히 그리고 순전히 '움직임'이 될 다름이다
우리가 보통 무의식적 행동이라 부르는 것은 다만 일부러 하지 않은,
부지불식간 행해진 의식적 행동인 것이다
우리가 보통 의식적 행동이라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일부러 한 행동,
가령
이전에 해본 적이 없거나 자주 해보지 않았던 어떤 일을 하려들 때처럼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생각을 요하는 그러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을 할 때에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수를 범할지 모르므로.
사실 '알아차림'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 보는 것 그것이다
살펴봄 없이 행하는 행동은 무의식적 행동이 아니라
알아차리지 못하고 한 행동인 것이다
왜 우리는 알아차림 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분명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세 가지 중요한 이유를 댈 수 있겠다
첫째 ;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항상 알아차리고 있는 사람은 계를 지키기가 한결 쉬워진다
          가령 
          옆집 아낙네에게 정신이 팔린 사람이
          '내가 지금 남의 아내를 탐하고 있구나'하고 알게 되면
          부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세 번째 계를 어기려 하는 자신을 깨닫게 됨으로서,
          남의 아내를 탐하면서도 전혀 자각이 없는 사람에 비해 정신 차리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요컨대
          알아차림은 일종의 자기비판으로 이끈 다음 자기 시정을 하게끔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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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 알아차림은 '식힘'에 해당되며,
          욕망이나 미움같은 '끓임'에 해당되는 격정들과는 정반대 관계에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끊임없이 알아차림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격정을 누를 수 있는 제어력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알아차림의 공부를 계속해나가면 격정이 일어났을 때 이를 억누를 수 있을 뿐 아니라
          격정의 빈도 또한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셋째 ; 알아차림의 수행은 불법의 핵심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선행조건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정신이 팔려 알아차림이 없이 행동하고 있는 보통상태에서는
          오직 이런 저런 경험---('저 여자가 나를 사랑한다' '저 여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나  특정한 상황과만 관련될 뿐이지
          보편적경험---(사랑의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과는 결코 관계없는 상태로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여전히 우리는 행동하거나 느끼고 있지만
          그 행동이나 느낌은 어느 정도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그럴때
          행동과 느낌의 보편적 성질이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그런 경우
          지금 내가 봉착하고 있는 특정 행동과 경험은
          보편적 행동과 느낌의 한 예로 나타난 것이 될 뿐이다
          이렇게
          모든 사물의 보편적 성질이 보여질 때
          우리는 비로소
          부처님의 안내에 힘입어 [무상] [고] [무아]라는
          모든 존재에 고루 편만한 특성을 파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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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 바른 마음챙김(正念)
2016.10.26
사물에 대한 궁극적인 법은 직접 볼 수 있고 와서 보라고 부르고있는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
하신다 법은 언제나 우리에게 손 가까이 있고 현실로 실현되는 곳은 바로 우리 자신의
 ...http://blog.naver.com/jyoungs1357/90154100831 작성자명 : jyoungs1357| 블로그명 : 다솔마루

사물에 대한 궁극적인 법은
직접 볼 수 있고
와서 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법은
언제나 우리에게 손 가까이 있고
현실로 실현되는 곳은 바로 우리 자신의 내부이다
궁극적 진실인 법은
무언가 신비롭고 먼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진실이다
그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을 이해하는 길
경험을 곧바로 밑바닥까지 꿰뚫어 보는 길 뿐이다
이것은
어떤 매개물의 개입도 없이 직접 알아야 한다
단순히 신심으로 받아 들이거나
또는 책이나 스승의 권위때문에 그것을 믿거나
또는 연역이나 추리의 방법으로 깊이 생각해서 결론을 짓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은 오직
직관에 의해 알아야 하는 것이며
특별한 종류의 앎,
'중간개재가 없이 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앎에 의해서 흡수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른 마음챙김을 닦을 때는
마음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지금 이 자리에서
열린, 고요한 그리고 또렷한 상태에서 觀하도록 훈련시킨다
모든 판단과 해석은 중지되어야 하며,
만약 중지 되지 않고 일어날 경우에는 단지 등독만 시킨 다음 떨어내야 한다
인지과정은 일반적으로 해석 과정이다
마음이 그 대상을 개념화과정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지각하는 것은 잠시 동안 뿐이고
마음은 초기 각인을 붙잡자마자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범주와 가설의 견지에서 알기 쉽게 만들어 버린다
이와같은 심적 짜맞추기 과정을 '다듬기' '꾸미기', 또는 '개념의 증식'이라 부른다
'다듬기'는 현장제시의 현장성을 차단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최종적 인식대상인 줄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의 가치, 계획, 행위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 그것이 기실은
원래의 그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조각조각 기워 만든 창작물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가공과정을 작동시키는 태엽은 눈에 띠지 않는 숨은 번뇌들이다
여기서
올바른 마음챙김이 할 일은
인식의 장(場)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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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올바른 마음챙김이 할 일은
인식의 장(場)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다
즉,
생각하지 않기, 판단하지 않기, 연상하지 않기, 계획하지 않기, 상상하지 않기, 바라지 않기 등이다
이 모든 우리의 행함(doings)들은 실은
간섭의 갖가지 모습들인 것이며,
마음이 경험을 조작하고 그것(마음)의 주도권을 쥐려는 노력인 것이다
마음챙김은
단지 '주시할 뿐임'으로서 이러한 '행함'들의 엉킴과 매듭을 풀어 원상으로 되돌려 놓는다
주시 이외의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고,
다만 경험이 이루어질 때마다 그것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것은 지켜볼 뿐이다
마음챙김은
마음을 어떤 대상에 굳건히 자리잡게 해준다
잘 챙겨진 마음은
기억, 후회, 두려움, 희망 등에 떠밀려 과거나 미래로 표류하지 않는다
마음챙김이 강력할 때는
마음이 떠돌면서 표면만 스치지 않고 대상과 같이 머물고 그 특성을 깊이 꿰뚫어 본다
그리하여
마음챙김은
고요함과 통찰력 둘 다 용이하게 얻도록 해준다
바른 마음챙김은
네 가지 토대
즉,
몸[身], 느낌[受], 마음[心], 현상[法]의 네 가지 대상 영역에 대한
주의 깊은 수관(隨觀)이라 불리는 수행을 통해 계발된다
이 네 가지의 토대는
"청정을 이루도록,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도록,
고통과 근심을 끝내도록,
바른 길(팔정도)로 들어서도록,
그래서 열반을 실현시키도록 이끄는 유일한 길이 된다

(1) 몸을 관하기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근본 명상주제')은 전체 수관과정의 토대가 된다
이는
"불선하고 불건전한 생각들이 일어나는 즉시 추방해 버리는,
 평화롭고 고귀하며 순수 지복의 주처"다
그저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으면 된다
이때 호흠을 통제 하거나 자기가 예정해 놓은 대로 호흡을 끌어들이려 해서는 안 되고
자연스럽게 들이쉬고 내쉬고 있는 과정을
그저 주의해서 관(觀)하기만 해야 한다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은
우리의 산만한 생각의 타래를 잘라내고,
헛된 상상의 미궁속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는 상태로부터 벗어나 현시점에 확고하게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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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주의해서 관(觀)하기만 해야 한다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은
우리의 산만한 생각의 타래를 잘라내고,
헛된 상상의 미궁속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는 상태로부터 벗어나 현시점에 확고하게 서게 된다
처음 두 단계는
길게 들이쉬는 숨이나 길게 내쉬는 숨을 그대로 주의해서 바라보고
짧게 들이쉬는 숨이나 짧게 내쉬는 숨을 그대로 주의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들숨의 시작에서부터 중간과정을 거쳐 끝날 때까지, 그리고 바로 이어서
날숨의 시작에서부터 중간과정을 거쳐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호흡운동의 온 과정을 하나도 놓치지
을 분명히 느껴 알기'라고 한다
네 번째 단계는
호흡과 이에 관련된 신체기능들을 극도로 가늘고 섬세해질 때까지 점차로 가라앉히는 것이다 
                ....이 단계는 '몸의 기능을 가라앉히기'라고 한다  
'자세에 관한 마음챙김'이 몸을 觀하는 또다른 방법이다
이는 어떤 몸가짐을 취하고 있든 그 몸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걸을 때는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 있을 때는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누워 있을 때는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세를 바꿀때에는 자세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몸가짐에 대한 수관 공부는
몸의 무아(無我)성을 분명히 밝혀준다
즉,
몸이 자아가 아니며 자아에 속한 것도 아니며,
단지 의욕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는,
살아있는 물질의 배열상(配列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 다음 수련은 마음챙김의 외연(外延)을 한 걸음 더 확장시키는 것으로
'마음챙김과 분명한 파지(把知) [正念正知]'라 부르는 것으로
'맨 알아차림'에 이해라는 요소를 더하는 수련이다
무슨 행위를 하든 그 행위를 철저히 알아차리거나 분명히 파악하면서 그 행위를 하는 것이다
갈 때, 올 때, 앞을 볼 때, 옆을 볼 때, 몸을 굽힐 때, 펼 때, 옷을 입을 때, 먹을 때, 마실 때, 소변 볼
대변 볼 때, 잠들 때, 잠 깰 때, 말할 때, 침묵할 때,
그 모두가 분명한 파지속에서 수행의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된다
주석서에서 '분명한 파지[正知]'를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행위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즉, 행위의 목적을 알고 그것이 법에 부합되는지를 판단하는
(2)적합성을 이해하는 것.......,...........즉,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아는 것
(3)자신의 명상 범위를 이해하는 것.....즉, 행위를 하고 있을 때도 마음을 항상 명상의 틀 속에 유지
                                                    키는 것
(4)미혹됨이 없이 이해하는 것............즉, 행위를 보기를 통어하는 자아라는 실체가 없는
                                                    무주적(無主的)운동과정으로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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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비매력적인 성질에 대한 명상이다
이것은 특히 성적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성적 충동은
갈애의 한 표현이며, 따라서 苦를 종식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반드시 약화시키고 근절시켜야만 하는 苦의 원인이라고 가르치신다
이 명상은
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인식적 토대,
즉 몸을 관능적 유혹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자체를 허물어버림으로써,
성적 욕구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수행해 내는 것이 부정관으로
밀물처럼 밀려오는 육욕을 물리치는 한 방법으로서 인식의 차원에서
그것의 버팀목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몸을 구성요소별로 해부한 후,
그 하나하나를 검사하여 그것들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를 밝혀나가는 것이다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횡경막, 지라, 허파, 큰창자, 작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기름기, 콧물, 침, 관절활액, 오줌의 서른두 가지의 부분을 열거
***'뇌'를 뺀 서른한 가지 일 수도 있다
이 부분들이 혐오스러우면, 전체인 몸도 혐오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명상의 목적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그 목적은 혐오감이나 역겨움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애착을 끊는 것, 육욕의 불을 끄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다음의 몸을 수관하는 방법은
'요소별 분석'이라 부르는 수행법이 있다
이는
마음속으로 몸을 네 가지 요소로 분석하는 것이다
지, 수, 화, 풍으로 불리는 것으로
견고성(지)은.....몸의 장기,근육,  뼈처럼 몸의 견고한 부분에서 가장 분명히 볼 수 있고
유동성(수)은.....몸속의 액체에서
열기(화)는........몸의 체온에서
운동성(풍)은.....호흡과정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폭 넓은 시야로 우리 몸을 보게 되면 이 몸을 두고 '나'나 '나의 자아'로 동일시하던
관성을 멈추는 데 큰 도움을 받게 된다
이렇게 명상하기를 계속 밀고 나가면 마침내 [제법무아]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되면
몸을 자아와 동일하다고 여기기를 그치게 되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도 그치게 된다
몸에 관한 마음챙김의 마지막 수련방법은 '묘지 명상법'이다
죽은 후에 몸이 해체되는 것을 觀하는 방법이다
썩고 분해되어 가는 몸의 형상을 마음속에 선명히 떠올린 후,
'이 몸도 지금은 생명력으로 차 있지만 저와 같은 성질을 가졌고 저와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
죽음을 피할 수도 없고 붕괴를 막을 수도 없으며 결국은 죽어서 썩고 분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
이 명상의 목적 또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 명상의 목적은 죽음이나 시체에 대한 병적 환상에 빠져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우리의 자아론적 집착을 부숴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관법수행을 통해
그 집착을 분리하고 절단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모든 형성된 것은 영원하지 않다[諸行無常]'는 가르침을 생생히 떠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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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 몸이 해체되는 것을 觀하는 방법이다
썩고 분해되어 가는 몸의 형상을 마음속에 선명히 떠올린 후,
'이 몸도 지금은 생명력으로 차 있지만 저와 같은 성질을 가졌고 저와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
죽음을 피할 수도 없고 붕괴를 막을 수도 없으며 결국은 죽어서 썩고 분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
이 명상의 목적 또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 명상의 목적은 죽음이나 시체에 대한 병적 환상에 빠져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우리의 자아론적 집착을 부숴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관법수행을 통해
그 집착을 분리하고 절단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모든 형성된 것은 영원하지 않다[諸行無常]'는 가르침을 생생히 떠올려야 할 것이다
(2)느낌을 관하기
느낌은 촉(觸)이라 부르는 심적 사건을 의지해서 일어난다
이 촉이라는 요소로 인해서
의식이 감각기관을 통해 마음에 스스로를 드러내며 대상을 접촉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섯가지 감각기능에 상응해서 촉도....안촉, 이촉, 비촉, 설촉, 신촉, 의촉의 여섯종류가 있다
다시 말해
느낌도 어느 촉에서 비롯되는 것이냐에 따라 여섯가지로 나뉜다
느낌은
흔히 잠재상태의 번뇌를 활동상태로 유발시키기 때문에
館 수행의 대상으로서 특별한 중요성을 띤다
느낌들은
의식에 분명하게 등재되지 않더라도 미묘한 방식으로 심적 경향을 불선한 쪽으로 부추기고 북돋운
그래서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면....탐욕이라는 번뇌의 영향을 받게 되어 집착하고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불쾌, 미움, 두려움등으로 반응하는데
                                    이들은 혐오가 표출된 것이다
치암에 지배당한 마음이 되면...모호한 느낌이 일어날 때에는 일반적으로 그것을 주목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런 느낌이 우리를 속여서 거짓된 안정감에 빠뜨리
그러나 모든 느낌이 번뇌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즐거운 느낌이 예외없이 탐욕으로/ 괴로운 느낌이 혐오감으로/ 모호한 느낌이 치암으로 이
이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끊어질 수도 있는데
그것들이 끊어지려면 마음챙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느낌은
주시하지 않고 있을 때에만(즉, 관찰이 아니고 탐닉의 대상이 되고 있을 때에만)
번뇌를 자극해서 불러 일으킨다
따라서
느낌을 관찰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림으로써 불선한 반응을 자극, 촉발시킬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애착, 혐오, 무관심 등을 통해 습관적으로 느낌과 관련을 맺는 대신
수관을 통해 관련을 맺음으로써
그 느낌을 오히려 경험의 성질을 이해하는 도약대로 삼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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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단계의 느낌에 대한 관법 공부는
이미 일어난 느낌을 두고.... 그것이 즐거운 성질의 것인지
                                         괴로운 성질의 것인지
모호한 성질의 것인지 그 특성을 주시하는 일이 포함
그 느낌을 자기와 동일화하지 않고
즉 '나' 또는 '나의' 또는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그냥 주시한다
이때의 알아차림을 '맨 주의'라 하며
 덧칠됨이 없이 /매번 느낌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그것을 단순히 하나의 느낌으로/
 일체의 주관적 고려나/ 모든 자아 지향성을 벗겨낸/ 장식되지 않은 /
한낱 심적 사건으로 지켜 보는 것이다
단지
느낌의 질감이랄까 색조랄까,
즉 즐거운 감, 고통스런 감, 또는 모호감만 주목 할 따름이다
그러나
정진이 진척되면서, 다시 말해
느낌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그것이 지나가도록 놓아주고
그리고 그 다음번 것을 주시하기를 계속해 가면서
자연히 주시의 촛점은
느낌의 성질을 살피는 것에서 느낌 그 자체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옮겨진다
그 과정을 살펴보고 있으면
느낌이라는 것이 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남과 사라짐이 서로 승계해 이어져 나가고 있는
하나의 끊임없는 흐름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 흐름의 내부에는 영속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느낌이라는 것- 그 자체가
기껏해야 한낱 사건들의 흐름,
다시 말해
순간순간 생겨났다가는  그 즉시 사라져버리는 섬광같은
찰나지간의 존재가 실현되는 기회들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상에 대한 통찰이 시작되고
그것이 발전되어 가면서
탐, 진, 치라는 세 가지 불선의 뿌리는 파 뒤집혀지기에 이른다
거기에는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도/ 괴로운 느낌에 대한 혐오도/ 모호한 느낌에 군림하는 미망도 없다
그저 쏜살같이 빨리 지나가는 허망한 사건들 ....진정 즐길 것도 관여할 여지도 없는
사건들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3) 마음상태를 관하기
이 수념처(受念處) 공부를 해나가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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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우리는
느낌이라고 하는 한 특정한 심적 요소로부터
이 요소가 속하고 있는 전반적 마음상태에 대한 공부로 접어들게 된다
보통 우리는 마음을,
연속적으로 경험을 겪어나가면서도
그 자체는 늘 변함없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어떤 지속적 기능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변함없이 영속하는 심적 기관이라는 개념은 용납될 수 없다
이는
각기 별개로 분리된, 순간적 의식이 이어지는 움직임들의 연속으로 본다
그들간의 결합관계도 연기적 관계로 인한 것이라 본다
마음상태를 관하는 수행에는 열여섯 가지 마음이 주시 대상이 된다
욕망이 수반된 마음과 욕망이 수반되지 않은 마음
싫음이 수반된 마음과 싫음이 수반되지 않은 마음
미혹이 수반된 마음과 미혹이 수반되지 않은 마음
갇힌 마음과 흩어진 마은
계발된 마음과 계발되지 못한 마음
능가할 여지가 있는 마음[有上心]과 더 이상 능가할 여지가 없는 마음[無上心]
정정을 이룬 마음과 정정에 들지 못한 마음
해탈한 마음과 해탈하지 못한 마음
실천적 목적에서 보면
이들 열여섯가지 마음 중 탐, 진 치가 있거나/ 없거나 하는- 첫 여섯가지 마음상태에만 촛
마음이 불선한 뿌리와 관련되어 있는지,
아니면
이로부터 자유로운지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중 
어떤 식(識)의 상태가 있을 때 단지 그런 '識', 그런 마음상태로만 觀한다
그것을 '나' 또는 '내 것' 하는 식으로 자신과 동일시 하지 않음으로써 자아나 자아에 속한
그것이
순수한 마음 상태이든, 때 묻은 상태이든, 고상한 상태이든, 천박한 상태이든
그 때문에 의기양양하거나  의기소침해짐이 없이
단지 그 상태에 대한 분명한 인식만 있어야 한다
그 상태는 그저 주시되고,
그리고는 바람직하다고 집착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부함이 없이,
그냥 지나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觀수행이 깊어지면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들은 점점 더 순화된다
난무하던 생각, 상상, 감정들이 가라 앉으면서 마음챙김은 더 분명해지고
마음은 그 자체의 변화 추이를 주시하면서 또렷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4)현상[法]을 관하기
다섯가지 장애[五蓋]와 칠각지[七覺支]를
바른 마음챙김 수행과 관련되는 측면에서 살펴 본다
오개는 해탈을 이루는 데 주된 장애가 되고
칠각지는 도움이 되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를 요한다
오개...[감각적 욕구/ 악의/ 나태와 나른함/ 들뜸과 불안/ 의심의 다섯가지]는
일반적으로 공부의 초기단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작할 때의 큰 기대감과 혼란에 가까운 들뜬 마음이 가라앉고
미묘한 잠재성향들이 표면에 떠 오를 기회가 열린 직후에 그러하다
이들 장애중
어느 하나라도 불쑥 튀어 나오면 그 존재를 유의해야 하고
그런 다음 그것이 차차 희미해져 갈 때에는 그것의 사라짐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장애들을 계속 확실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해력이라는 한 특질이 필요하다
이런 장애들이
어떻게 일어나며/ 어떻게 제거될 수 있고/ 또 앞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
잘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형태의 觀은
마음챙김[念]/ 현상의 검토[擇法]/ 정진력[精進]/ 희열[喜]/ 편안함[輕安]/ 집중[定]/ 평온[捨]:
의 깨달음의 일곱요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 인자들 중
어느것이 일어나면 그것의 존재를 주시해야 한다
그것의 존재를 주시한 후에는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며/ 어떻게 하면 충분히 발달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탐구해야 한다
이들이 처음 솟아오를 때에는 힘이 약하지만,
지속적으로 계발해 나가면 그들은 점점 힘을 쌓게 된다
마음챙김은 觀의 과정이 시작되도록 한다
觀의 과정이 잘 정착되면 그것은 다시 지적능력이 지니는 검토기능인 조사[擇法]을 일으킨다
조사[擇法]는 다시 정진력[精進]을 끌어내고
정진력[精進]은 희열[喜]를 낳고
희열[喜]은 편암함[輕安]에 이르게 하고
편안함[輕安]은 한 점에 모아진 집중[定]에
다시 집중[定]은 평온[捨]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전체 진전과정은 마음챙김과 더불어 시작되고,
마음챙김은
마음이 맑고, 깨어 있고, 균형잡혀 있도록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통제력으로 시종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