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8

[알라딘서재]부모의 '은혜'라는 허구

[알라딘서재]부모의 '은혜'라는 허구

효경한글역주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9년 7월
평점 :


효경이란 책은 중국고대에 만들어진 책이고 효사상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동아시아에 효를 퍼뜨린 공헌을 한 책이다. 효경을 읽어보면 여기서 말하는 효는 단순히 부모에 대한 효가 아니라 통치이데올로기로서 충이 가미된 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여튼 우리는 이런 사상을 이어받아 지금도 효 타령을 하고 있다.

우리는 부모의 흔혜를 갚자는 뜻으로 효를 강조한다.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 은혜'라고 기독교인이 흔히 쓰듯이, 공짜로 무엇을 받았다는 뜻이다. 어떤 타자가 아무 조건없이 공짜로 나에게 그 무엇을 주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래서 은혜를 갚는다, 는 말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은혜를 갚는다면 이는 논리상 은혜가 아니다. 은혜를 공짜로 입은 만큼 그대로 돌려 갚는다면 그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닌 셈이 된다. 은혜가 계속 은혜이려면 은혜를 갚으면 안 된다. 내 딸이 결혼하는데 누가 부조를 했다. 다음에 그 사람의 딸이 결혼하는데 나두 거기에 맞게 부조를 했다면 이 부조행위는 은혜를 베푼 게 아니라 거래를 한 것이다. 건전한 좋은 거래.

그런데 부모의 은혜라 하면 부모가 자식을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일 것이다. 그래서 이 은혜에 효로 보답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연 부모가 자식을 낳고 길러 준 행위가 은혜의 행위일까? 아니다.

새가 새끼를 낳고 어미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아다 주면서 키운다. 새끼 새는 어미에게 은혜를 입은 것인가? 어미는 새끼에게 사랑을 베푼 것인가? 절대 아니다. 모든 동물이 자기 새끼를 낳고 키우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 생명체로서 본능을 행한 것 뿐이다. 어미가 새끼를 낳고 키우는 것은 본능이다.

어미도 새끼도 이를 사랑또는 은혜라고 의식하지 않는다. 모성애 라는 말을 인간들이 쓰는데 이 말은 잘못 된 말이다. 어미는 사랑으로 새끼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저 동물적 본능에서 행한 것뿐이다.

은혜가 아니므로 새끼가 은혜를 갚는다 만다 할 문제가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는가? 천만에 본능이다. 본능을 넘어선 사랑의 행위가 있는가? 없다. 용돈 만원 줄 것을 능력이 있어 십만원 준 것이 사랑인가? 자식은 부모에게 자기를 낳아달라고 애원한 적이 없다. 사람들은 자식에게 낳아준 것, 즉 이 지구에 자식이 존재하게 해 준 것만 해도 은혜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축하 할 일인가?

석가모니는 왕자로 태어났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여기고 해탈을 추구했다. 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축복할 만한 일일까? 인생 참 편하게 살았구만. 인생의 쓴 맛을 봤으면 석가처럼 해탈하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텐데.

태어났으니 그저 사는 것이지. 노자의 제자인 장자처럼 축제 속에 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태어나게 해달란 적도 없으며,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은 부모 자신의 선택이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은 본능이며 의무이지 사랑, 은혜를 시혜하는 게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 부모는 자식에 대해 의무만 있지 권리가 없다.

저자가, 부모가 먼저 자식에게 효를 해야 자식도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절대 옳다. 효는 쌍방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에 더 나가서 효를 서로 간에 할 필요도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어버이날'도 없애는 게 좋다.

자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부모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없다. 노인복지 문제는 사회 국가 차원에서 또 달리 다루어야 할 문제다.

따라서 부모는 은혜를 베풀었다는 명분으로 자식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것은 자식이 알아서 할 문제다.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이야말로 사랑에서 주는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부모가 본능 차원에서 자식을 대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잘못된 생각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로 인해서 다 잘못돼 가고 있다. 이를 막는 게 이 사회의 큰 문제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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