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5

주굉스님 수필집 ‘죽창수필’ - 불교신문

道 배우는 데는 요행이나 굴욕이 없다 - 불교신문

道 배우는 데는 요행이나 굴욕이 없다
하정은 기자
승인 2014.11.13

실상사 연관스님, 10여년만에 주굉스님 수필집 ‘죽창수필’ 개정판 내
운서주굉스님 지음 / 연관스님 옮김 / 불광출판사

지리산 실상사 화엄학림 초대학장을 지낸 연관스님은 폭우가 몰아쳤던 지난 8월 어느날 원고뭉치가 담긴 USB를 가지고 불광출판사를 찾았다. 스님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스님이 주석하는 실상사 수월암에 낙뢰가 떨어져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채 깡그리 전소됐다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불길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USB에는 명나라 4대 고승 중 하나인 운서 주굉스님의 주옥같이 수필이 담겨 있었다. 이 수필집은 1991년 연관스님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 이후 15년간 불교서적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았다.

81세에 입적한 주굉스님이 떠나기 전 자신이 살아온 80여해를 뒤돌아보며 후학들에게 꼭 전하고픈 이야기를 죽창 아래서 붓가는대로 진솔하게 풀어놓아서 책이름은 <죽창수필>이다.

명나라 4대 고승 중 하나
운서 주굉스님 ‘죽창수필’
1991년 출간하자마자 ‘화제’
2005년 절판…다듬어 개정판

당시 <죽창수필>은 청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생의 참뜻과 지혜를 전하며 세상의 격류를 건너는데 튼튼한 징검돌이 될 정도로 호평이 쏟아졌었다. 2005년 여러 사정으로 절판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아쉬움을 남겼고, 연관스님은 절판 10여년만에 다시한번 우리 곁에 <죽창수필>을 내놓게 됐다. 새롭게 태어난 <죽창수필>은 어마어마한 불길에도 굴하지 않고 장엄하게 피어난 화중연화(火中蓮花)나 다름없다.

하마터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던 개정판 <죽창수필>의 서문에서 연관스님은 이같이 밝혔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삶은 무엇입니까? 놓아버려라. 죽음은 무엇입니까? 놓아버려라. 선(善)이란 무엇입니까? 놓아버려라. 악(惡)이란 무엇입니까? 놓아버려라.…갑오년 8월18일, 폭우 속에서 발절라(vajra, 벼락)는 이렇게 법을 설하였다.”

고전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혼돈의 시대, 그렇게 <죽창수필>은 10년만에 다시 왔다. 개정판은 현대인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번역의 오류와 한문투 문장을 세심하게 다듬고 주석을 대폭 보강했다.

개정판 원고 담긴 USB
지난 8월 낙뢰서 살아남아
‘화중연화’로 다시 태어난 격
수행자 구도법열이 빚어놓은
400여편 주옥같은 ‘문자사리’

주굉스님의 상세한 일대기로 시작되는 책은 깨달음과 수행에 관한 짧지만 강렬한 수필 400여편이 빼곡하게 실려 있다. 수필 ‘좋아하는 것’은 쉽고도 명쾌한 한편의 법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좋아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요, 또한 그 좋아하는 것에 따라 세월을 보내고 늙음에 이르게 된다”라고 수필은 시작된다. 좋아하는 것에 맑고 탁한 것이 다를 뿐이라는 스님은 재물 모으기, 여자를 좋아하는 것, 술마시기를 좋아하는 것을 지극히 탁한 것으로 꼽았다. 맑은 것에 관한 예시는 상세하게 밝혀두었다.

“조금 맑은 것으로는 골동품과 거문고를 좋아하거나 바둑 두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혹은 산수(山水)를 좋아하고 시가(詩歌) 읊조리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또 더 나아가면 독서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책을 펼치면 이익이 있으므로, 모든 좋아하는 것 중에는 독서가 가장 낫다 할 것이다.” 이어 수행을 강조하며 이렇게 피력했다.

“더 나아간다면 불경(佛經) 읽기를 좋아하는 것이요, 
또 더 나아간다면 마음을 깨끗이 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데 이르면 세간이나 출세간의 좋아하는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 할 것이니, 점점 아름다운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사탕 맛을 보듯 할 것이다.”


81세에 입적한 주굉스님이 자신이 살아온 80여 해를 뒤돌아보며 후학들에게 꼭 전하고픈 이야기를 죽창 아래서 붓가는대로 진솔하게 풀어놓은 것이 <죽창수필>이다. 사진은 중국의 경산사 대나무숲. 불교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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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주제의 수필은 오늘날 승가에 가하는 일침과도 같다. “출가인은 처음 출가했을 때 반드시 마음이 용맹하니, 이때 바짝 달려들어 단숨에 공부를 마쳐야 한다. 
이 때를 놓쳐 버리면 훗날 주지가 되고 제자를 거느리며 혹은 보시가 넉넉하여 거기에 얽매여 처음 뜻을 잊고 말기 일쑤다. 설사 성인이 되었더라도 정처없이 떠돌게 된다. 수행인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수행을 통한 결실을 노래한 ‘마음이 고요한 이익2’도 눈길이 간다. “술이나 식초 따위는 오래 갈무리할수록 더욱 좋은 맛이 나는데, 그것은 단단히 봉하고 깊이 저장하여 다른 기운이 전혀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인이 말하기를, ‘20년동안 입을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그런 후에 네가 어찌 부처를 얻지 못하랴!’ 하였다. 아름답다 이 말씀이여!”


공부하는 방편과 자세를 언급한 작품은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 일에 관해 요행을 바라거나 굴욕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본보기가 될만하다.

“하루는 따뜻하고 열흘은 차듯이 게으르면서 도업을 얻는 자는 없었다. 
또한 뜻을 돈독히 하여 힘써 행하고 정성을 다하고 신명을 다 바쳐 쉬거나 물러나지 않으며, 깨달음으로 최후의 목표를 삼으면서 도업을 이루지 못한 자도 없다.…
도를 배우는 자는 오직 굳은 마음으로 정진할 따름이지, 
요행을 바랄 것도 뜻을 얻지 못할 것을 걱정할 일도 아니다. 
도를 배우는 데는 요행이나 굴욕이 없다.”

“공부는 오로지 한가지에만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한 곳에만 두면 무슨 일이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마음이 두 갈래로 나눠지면 일이 하나로 돌아오지 않고, 생각이 전일하고 뜻이 돈독하면 속히 삼매를 이룰 수 있다. 참선하는 이든 염불하는 이든 이 말을 깊이 명심하라.”

서른한살 다소 늦은 나이에 무문성천(無門性天)에게 출가한 주굉스님은 소암덕보(笑巖德寶)의 법을 이었다. 법어집이 <어선어록>에 편입되어 주굉스님은 돌아가신 후에 성광이 더욱 빛났다. 역저자 연관스님은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제방선원에서 선을 익히고 교를 배웠다. <금강경 간정기>, <선문단련설>, <용악집>, <학명집> 등을 번역ㆍ출간했다.

[불교신문3058호/2014년11월15일자]